[문화계 앙팡테리블] (14) 영화감독 부지영'지금, 이대로가 좋아요' 삶을 두루 껴안는 성숙한 시선

23일 개봉을 앞둔 ‘지금, 이대로가 좋아요’는 설명하기가 쉽지 않은 영화다. 장르적 범주로 가두기에는 미끄러져 나가는 부분이 많고, 드라마의 뼈대인 인물들의 감정도 명쾌하게 정리하기엔 너무 세심하다. ‘여자영화’라는 꼬리표에서 연상되는 아기자기함이 있는가 하면, 뜻밖의 스산함과 블랙 유머, 처연함이 툭툭 튀어나온다. 부지영 감독의 말마따나 “불균질하다.”

그러나 이 불균질함이 복잡하게 느껴지지 않는 것은 그 바탕에 면면히 버틴 쿨한 정서 때문이다. 예를 들면 이런 장면의 뒷맛. 차를 몰고 가던 명주(공효진)와 명은(신민아)은 티격태격하다가 결국 큰 사고를 낸다. 언덕 아래로 굴러 떨어진 차에서 각각 몸을 추슬러 나온 이 자매는 서로 걱정하기는 커녕 ‘네 탓’이라며 싸움을 이어간다.

“내가 그렇게 싫어? 왜 싫은데?”라고 북받쳐 묻는 명주에게 명은은 힘껏 악을 쓴다. “그냥 다 싫어, 그걸 어떻게 설명해!” 그리고 다음 장면에서 둘은 나란히 앉아 담배를 피고 있다. 바람이 불고, 그러다 피식 웃는다.

여기에는 어떤 낙천성이 있다. 아무것도 모르는 천진난만함이 아닌, 성숙한 긍정으로서의 낙천성. 관계 맺기나 문제 해결에 최선을 다하되 끝내 설명해낼 수 없는 지점에 맞닥뜨려본 후, 사람이든 상황이든 각각의 존재 방식이 있음을 인정한 결과로서의 낙천성 말이다. 그것이 부지영 감독을 주목하게 하는 지점이다.

그는 상대적으로 늦게 영화 연출에 입문했다. 어린 시절 TV를 “끌어안고” 살며 영상 쪽 일에 대한 동경을 키웠지만 꼭 영화 일을 하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대학 졸업 후 영화사에 들어가 홍보 업무를 맡은 것이 계기가 되었다. 3년 동안 여러 영화 감독을 만나고 영화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비로소 영화 연출로 진로를 정했다.

3수 끝에 한국영화아카데미에 들어갔고 2002년 단편영화 ‘눈물로 대구단편영화제 특별상을 수상했다. 그렇게 삶과 인간관계에 대한 성숙한 시선을 갖춘 채 영화계에 데뷔했다.

그리고 그 와중에 두 아이의 엄마가 됐다. 그래서일까. ‘지금, 이대로가 좋아요’의 어떤 부분은 ‘엄마’가 아니면 만들 수 없었을 것처럼 느껴졌다. 열여덟 살 명주의 출산 장면이 그 예였다. 이 장면에서 카메라는 기쁘기만 한 것도 걱정스럽기만 한 것도 아닌, 순진하고도 초탈한, 안쓰러우면서도 뿌듯한 얼굴로 툭, 울고 마는 공효진의 얼굴을 클로즈업한다.

“그냥 그렇게 돼요, 아이를 낳아 안으면. 이 여린 목숨이 살겠다고 나왔구나 싶고, 어린 생명에 대한 경외감도 들고요.” 명주의 출산 전후로 어떤 곡절이 있었는지, 또 있을지 아주 짐작 못할 바는 아니지만 아이를 안는 순간은 그냥, 그 뿐인 거다. 그러니 복잡한 세상만사를 ‘그냥 그렇게’ 두루 껴안게 된다. 더불어 사는 사람의 허물도, 제 안의 이죽거리는 욕망도. 삶의 바탕인 자연과의 관계도 돌보게 된다. 이런 태도가 영화 전반에 묻어난다.

‘지금, 이대로가 좋아요’로 작년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은 부지영 감독은 아주 특별한 관객을 만났다. 예순이 훌쩍 넘은 나이의 한 할머니가 “영화를 보고 너무 행복해졌다. 고맙다”고 했다. 부지영 감독이 “큰 절이라도 올리고 싶었다”던 그 소감이 그에 대한 사람들의 기대를 대변한다.

부지영 감독은 요즘 다음 작품의 시나리오를 쓰고 있다. ‘지금, 이대로가 좋아요’에서 자매를 중심으로 가족 이야기를 했다면, 차기작의 내용은 부부를 중심으로 한 가족 이야기가 될 거라고 했다.



박우진 기자 panorama@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