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초대석] 작곡가 진은숙서울시향의 '아르스노바'와 자신의 '로카나' 한국 초연 위해 내한

재독 작곡가 진은숙(48)을 수식하는 문구는 많다. ‘21세기를 이끌어갈’ 다섯 명의 작곡가 중 한 명으로,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음악감독 사이먼 래틀은 그녀를 지목했다.

또한 40대의 젊은 나이에 ‘작곡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그라베마이어상을 거머쥐며 죄르지 리게티, 피에르 불레즈와 이름을 나란히 놓았다. 쇄도하는 위촉 곡으로 이미 4~5년간의 스케줄이 가득 찬 그녀는 ‘세계 클래식 음악계의 중심’에 있다.

음악평론가인 진회숙의 동생이자 진보논객 진중권의 누나라는 사실을 비롯해 18살 연하의 피아니스트 남편(마리스 고토니)과 잉글리쉬 체임버 오케스트라의 상임지휘자인 시아버지 랄프 고토니까지. 가족관계까지 더해지면 화제는 훨씬 더 풍부해진다.

대학을 졸업하고 독일로 떠난 진은숙은 2006년부터 일 년에 한 차례 이상 한국행 비행기에 오르고 있다. 서울시향의 야심 찬 현대음악 프로젝트 ‘아르스노바’(새로운 예술)의 상임작곡가로 활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두 달을 꼼짝없이 쏟아 부어야 하기 때문에 그녀가 소속된 영국의 대형 출판사 부지 앤 훅스는 그녀의 한국행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녀는 작곡하는 것보다 재미있다고 말한다.

지난 4월 21일 열린 아르스노바와 24일 자신의 작품 ‘로카나’ 한국 초연을 위해 4월 초 그녀가 내한했다. 입국 후 독일 앙상블 팀과의 작업을 위해 며칠간 중국에도 며칠 다녀온 참이었다.

공연이 열린 21일 낮, 리허설 전에 만난 그녀는 몸에 베인 매너와 친근한 말투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시종일관 말 한 마디 허투루 흘리는 법이 없었다.

“작곡 외에 다른 일을 하고 싶었어요. 작곡을 하면서 내 맘대로 되는 게 없다는 걸 느껴요. 하지만 아르스노바는 ‘하면 된다’는 걸 알려주죠.(웃음) 또 한국에서 활동하면서 젊은 작곡가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했는데, 그 모든 것의 이상적인 형태라고 생각합니다.”

현대음악은 여전히 대중들에게 생경하지만 4년차로 접어든 ‘아르스노바’에는 이제 고정 팬들도 생겨났다. 연주 퀄리티에 미치지 못했던 시스템도 1~2년이 지나면서 안정권에 들어섰다. 그러나 현대에 생산되는 모든 음악의 필터링을 직접 하다보니 준비시간이 만만치 않다. 아르스노바를 위해 듣는 곡은 이미 100곡을 훌쩍 넘어섰다.

“지금처럼 작곡가가 많은 시대도 없을 거예요. 정말 홍수같이 작품이 쏟아집니다. 과거의 음악은 이미 시간이 흐르면서 좋은 곡이 추려진 상태지만 현대음악은 그 단계가 없었어요. 오케스트라 단원들은 에너지와 시간을 투자할 가치가 있고 관객은 듣고 만족할 수 있는 작품을 찾고 있어요. 지금까지 제가 좋아하는 곡들과 좋아하지 않더라도 잘 만들어진 곡이라면 소개해왔습니다.”

좋은 곡을 찾기는 점점 더 어렵지만 레퍼토리는 여전히 무궁무진하다고 했다.

24일 한국 초연된 ‘로카나’는 아이슬란드의 설치미술가 올라프 엘리아손의 작품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이다. 산스크리트어로 ‘빛의 공간’이라는 뜻의 ‘로카나’는 지난해 3월 몬트리올 초연을 시작으로 뉴욕, 시카고, 베이징에 이어 서울에서도 연주되었다.

“엘리아손의 작품 자체가 물의 움직임이 빛으로 투영되는 형태를 가졌어요. 빛이라는 존재와 물의 움직임이 음악으로 표현하기 좋은 것 같아서 아이디어를 얻었죠.” 문학에서 영감을 얻는 경우도 많지만 노래곡이 아닌 연주곡의 경우는 대체로 추상적인 음의 조합으로 만들어진다고 했다.

그녀는 올해만도 세 작품을 세계 각국에서 초연한다. 매년 여름, 전 세계 클래식 애호가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영국의 클래식 음악축제, BBC 프롬스에서 첼리스트 알반 게르하르트의 협연으로 ‘첼로 콘체르토’가 초연된다. 같은 달, 일본 도쿄 산토리홀에서 도쿄심포니와 중국 생황 연주자 우웨이의 협연으로 ‘생황 콘체르토’ 역시 세계 첫 연주이다.

이어 10월에는 국내에도 내한한 바 있는 구스타보 두다멜의 지휘로 LA필하모닉에 의해 미국 초연되고, 내년 3월 암스테르담에서 네달란드 라디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6월 독일 에센에서 정명훈의 지휘로 서울시향이 연주할 예정이다. 이제 쓰기 시작한다는 ‘생황 콘체르토’는 베를린에서 듣게 된 우웨이의 연주에 매료되어 작곡을 결심하게 됐다.

“말로 표현하기 어렵지만 생황의 음색이 참 좋았어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소리의 색깔을 가졌지요. 관악기인데, 여러 소리를 동시에 낼 수 있다는 점도 좋았습니다.”

작곡가 진은숙에겐 음악적 경계가 없다. 거장이라 불리는 대개의 현대음악 작곡가들은 자신이 음악 스타일을 캐릭터화해 고수하고 있다. 그러나 그녀는 서랍 정리식의 손쉬운 분류를 사양한다.

“음악을 다양하게 하고 싶어요. 옛날 작곡가들의 작품을 보면 음악적으로 참 풍부하죠. 다양한 형태에 깊이도 있고 폭도 넓어요. 오히려 현대로 오면서 좁아집니다. 하지만 전 다양한 세계를 추구해요. 제 음악의 경우, 앙상블은 현대적이면서 복잡하지만 오케스트라 작품은 듣기 쉽습니다. 또 오페라는 현대음악을 몰라도 감상 후에 얼마든지 자신의 의견 말할 수 있지요. 전 그런 면이 좋아요.”

창작의 고통으로 하루에도 몇 번씩 지옥을 경험한다는 작곡가 진은숙. 경제적인 궁핍이 정신적 위축감으로 이어졌던 어린 시절과 독일 유학시절 스승인 리게티로부터 존재를 부정당한 20대 중반은 과거엔 ‘수렁’이었지만 현재에는 ‘서바이벌 에너지’가 되고 있다.

1986년의 그라베마이어 수상자인 세계적인 작곡가 리게티를 사사하기 위해 떠났던 유학생활. 가우데아무스 콩쿠르 우승으로 다소 우쭐했던 그녀를 리게티는 야멸치게 몰아세웠다. “쓰레기통을 갖다 대면서 악보를 다 찢어버리라고 하셨어요. 그에게 철저하게 거부당하고 3년간 곡을 안 썼지요. 학교도 자주 빠지고 우울증과 거식증도 앓았어요. 그를 이해하는데 20년이 걸렸습니다.”

스물넷부터 시작된 3년간의 뼈아픈 성장통을 그녀는 뚜렷이 기억하고 있었다. 리게티가 함부르크 음대에서 퇴직한 후 베를린으로 옮겨온 그녀는 전자음악을 하면서 회복해갔다. 그러나 과거의 독이 현재의 약이 된 스승이 있었기에 지금의 자신이 존재할 수 있었다고 힘주어 말한다. 미래의 포부나 섣부른 역사적 평가에 대한 기대는 ‘허영심’이라고 잘라 말하는 그녀는 현재는 “좋은 곡을 쓰고 싶을 뿐”이라며 서둘러 리허설이 열리는 공연장으로 향했다.

작곡가 진은숙은…


1961년생. 서울대학교 작곡과에서 강석희 사사. 1985년부터 1988년까지 독일 함부르크음대에서 죄르지 리게티를 사사했다.

베를린 도이체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통영 국제음악제의 상임작곡가를 역임하고 현재 서울시 교향악단의 상임작곡가이자 세계 클래식 음악계에서 가장 각광받는 작곡가이다.

대학재학시절 세계적인 권위의 가우데아무스 콩쿠르 1위(1985)를 수상했으며 부르주 국제 전자음악 작곡콩쿠르 1위(1999), 일본 국제작곡콩쿠르 1위(1993)의 쾌거를 거두었다.

작곡상 중의 작곡상, 세계 최고의 작곡상인 그라베마이어 상을 2004년에, 이듬해 아널드 쇤베르크 상을 연달아 수상했다. 세계 굴지의 클래식 레이블 도이치그라모폰에서 2005년, 한 장의 앨범이 발매되었다.





이인선 기자 kell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