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인배 한국전기안전공사 사장'1초 경영'등으로 공사 선진화, 오페라단·오케스트라 지원, 문화재안전지킴이도

간단한 문제 하나. 잘 사용하던 전기가 갑자기 끊어지면 어디에 전화를 걸어야 할까. 전기니까 당연히 한국전력(공사)일까? 답은 의외로 한국전기안전공사다. 우리가 전기 고장이나 안전에 관한 문제로 전화를 걸면 달려오는 것은 한국전력 직원들이 아니라 바로 한국전기안전공사의 직원들이다.

이곳은 흔히 한국전력의 자회사 정도로 알려져 있지만 별개의 회사로, 한국전력이나 전기업체들이 공사를 한 후 해당 전기시설에 대한 점검과 수리를 담당하고 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금배지를 단 국회의원이었던 임인배(54) 한국전기안전공사 사장 역시 이런 사실을 몰랐다. “한국전력은 전기를 생산해서 공급하는 회사이고, 전기시설물에 대한 안전관리는 우리 공사에서 합니다. 사실 저도 이곳에 취임하기 전까지 한국전력에서 고장 수리를 하는 줄 알았어요(웃음).”

근래 한국전기안전공사의 이름이 대중에 조금 더 익숙해지게 된 것은 몇 해 전 숭례문 전소 사건으로 인해 관심이 촉발된 문화재 보호시스템 때문이었다. ‘국보 1호’라는 상징적 문화유산을 잃은 국민적 슬픔이 다시는 이런 일을 겪지 말자는 각오와 함께 관련 단체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진 것.

그래서 임인배 사장은 지난해 취임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문화재청 주관으로 산림청과 소방방재청, 가스공사 등과 함께 ‘문화재안전지킴이’ 협약을 체결하기도 했다. 중요한 문화유산을 어떤 이유로든 훼손시키지 않도록 각 기관이 전기, 소방, 가스 분야별로 안전점검을 하기 위한 것이었다.

“가정, 빌딩, 아파트, 공장, 발전소까지 모든 전기 고장과 안전 문제는 우리가 책임집니다. 전신주는 당연하구요. 한 마디로 우리 한국전기안전공사는 전기 사용의 안전을 책임지는 ‘전기 종합병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제는 ‘한국전기안전공사’라는 이름 앞에 ‘우리’ 라는 애정가득한 호칭을 붙이며 말하는 임 사장이지만, 사실 6개월 전 그가 이곳에 부임할 당시 주변의 시선은 그리 좋지만은 않았다. 신한국당 시절부터 3선(15~17대) 국회의원으로 12년간 국정을 경험한 정치인이 공기업에 ‘낙하산’으로 온다는 의혹이 많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그는 전기안전공사 사장이 반드시 전기전문가일 필요는 없다고 일축하고, 회사를 잘 이끌고 혁신적인 변화를 주도하기 위해서는 대외적으로 도움이 되는 사람이 오히려 더 나을 수 있다고 반박했다.

“국회 산자위에서 감사하던 신분에서 그들의 눈치를 봐야 하는 피감 기관장이 돼 어색했는데 봉사한다는 생각으로 일에 임했습니다. 우리 공사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리고 앞으로 무엇에 중점을 둬야 하는지가 하나 둘 보이기 시작했죠.”

이런 그를 공기업의 경영자로서 확실히 자리매김하게 해준 것은 ‘1초 경영’이라는 경영 브랜드다. ‘1초 경영’이라는 슬로건은 지난해 10월 취임 후 경영학 교수 등 관련 전문가들을 만나 밥을 사고 이야기를 나누며 정리한 고민의 결과다.

그는 임기 내 ‘1초 경영’을 통해 한국전기안전공사가 세계 최고의 전기안전 전문기업으로 도약시키겠다는 뜻을 밝힌 후 조직 내 연쇄적인 변화를 이끌었다. 그 결과 지난 1월 한국일보가 주관하는 ‘2009 대한민국 지속창조경영 종합대상’ 수상을 시작으로 3월의 ‘2009 한국윤리경영대상 공기업부문 대상’, ‘대한민국 글로벌경영대상’, ‘한국 최고의 경영자 종합대상’, 지난달의 ‘한국윤리경영대상 종합대상’까지 경영에 관련된 굵직한 상들을 휩쓸었다.

그가 말하는 ‘1초 경영’이란 쉽게 말해 단 1분 1초를 소중하게 생각하며 업무를 처리한다는 뜻이다. “단순히 시간을 단축하는 것이 아니라, 급변하는 경영환경에 대응하면서 고객이 만족하는 서비스를 한 발 앞서 제공하는 겁니다. 고객 가치를 극대화시키기 위해서 조직문화를 역동적으로 바꾸자는 거죠.”

한국전력에 종속된 회사라는 오해와 공기업임에도 불구하고 ‘신이 버린 직장’이라는 자조적 마인드도 그의 이러한 노력과 실천으로 차츰 성과를 내기 시작했다. 특히 취임 시부터 마음에 걸렸던 열악한 예산 규모나 임금, 근무환경 등의 문제서부터 변화의 움직임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곳이 직장이니까 출근한다는 기계적인 생각으로는 좋은 직장이 될 수 없지요. 그래서 일한 만큼 충분한 보상을 해주는 환경을 만들고 무엇보다 직원 복지에 최우선인 기업 분위기를 만들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직원의 복지후생 지원은 큰 기업이라면 어느 곳이나 있는 서비스지만, 한국전기안전공사와 같이 다소 건조한 근무환경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문화적 복지 서비스의 제공이 절실할 터. 특히 사회 전반적으로 침체되어 있는 지금, ‘문화생활’에의 참여는 경제적·시간적으로 특별한 ‘용기’가 없으면 쉽게 시도할 수 없는 부분이다.

개인적으로도 영화와 스포츠에 남다른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있는 임인배 사장은 이런 점에 착안해 그동안 문화의 향취를 느낄 기회가 없었던 직원들에게 다양한 문화예술 행사 참여를 독려하고 이벤트를 제공해왔다.

“먼저 직원들 기를 살려야 되겠더라구요. 우리가 한국전력이나 국정원처럼 힘있는 곳은 아니잖아요. 그래서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보니 더 좋은 복지 서비스더라구요. 결국 가정이 화목해야 일도 잘 되는 거거든요. 그래서 직원 가족들이 함께 할 수 있는 여행 서비스나 공연 관람 기회를 자주 제공하려고 합니다.”

대구의 영남오페라단과 전통 판소리를 하는 아리랑 오케스트라의 고문이기도 한 임인배 사장은 지난해에는 대구에서 열린 오페라 공연에 전 직원을 초청하기도 했다. 특히 아리랑 오케스트라의 경우 우리 고유의 음악을 더욱 지키고 발전시킬 수 있도록 지속적인 지원을 하며 공기업의 사회적 환원도 성실히 수행하고 있다.

문화생활의 향유가 삶을 한층 윤택하게 해준다는 사실은 임 사장 본인의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다. 정치가, 행정가로서 경력을 쌓고 있는 임 사장이지만 어릴 적에는 액션 영화를 보면서 영화감독의 꿈을 오랫동안 꾸기도 했다. 비록 그 꿈은 이루지 못했지만 가지 않은 길이기에 언제나 문화 예술에 대한 관심과 애정은 놓지 않고 있는 그다.

“지금도 영화를 무척 좋아해 그 분야의 친구들이 많고, 아무리 바빠도 1주일에 한 두 편씩은 꼭 보려고 합니다.” 기존의 정체된 기업 분위기를 쇄신하고 유연한 사고방식으로 새로운 한국전기안전공사를 만들고 있는 데에는 그의 말마따나 ‘비전문인력’으로서의 장점이 십분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국회의원에서 CEO로, 거처도 여의도에서 서울의 동쪽 끝인 강동구 명일동으로 옮겨왔지만, 기본적으로 그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은 변함이 없다. 바로 서민 생활 수준의 향상이다. 그래서 올해 한국전기안전공사가 역점을 두고 있는 사업들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한국전기안전공사는 일부 저소득계층만이 혜택을 받고 있는 현 스피드콜 서비스(1588-7500)의 대상을 농촌과 사회복지시설에 이르기까지 확대하고, 재래시장 전기설비 개선을 통해 영세상인의 생활터전과 시장을 이용하는 서민의 생명과 재산 보호에 더욱 신경을 쓸 계획이다. 안전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영·유아 보육설비의 부적합한 전기설비도 개선할 예정이다.

“공기업 선진화도, 효율화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먼저 공기업이란 서민들의 힘든 점을 도와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서민과 닿는 곳에서 일하는 한국전기안전공사인 만큼, 우리 국민들이 꼭 필요로 하는 공기업을 만드는 것이 공기업 CEO로서의 목표입니다.”

한국전기안전공사가 전직원의 성과금 15%를 반납해 일자리를 늘린 것도 ‘국민을 위한 공기업’이라는 취지의 연장선에 있다. 전기안전공사는 당초 최소 필요인력 충원을 위해 45명 정도의 신입사원 채용을 계획했지만 성과금 15% 삭감하는 등의 제도개선을 통해 채용규모를 72명으로 확대, 채용을 완료했다.

임 사장은 최근 수익 개선을 위해 한국전기안전공사 창사 이래 처음으로 해외사업도 시작했다. “취임 후 전기안전 검사 등 공사의 주특기를 살려 해외 글로벌 기업들의 중국, 동남아시아 현지 공장에 대한 전기안전진단 업무를 수행했습니다. 최근엔 베트남 국영전력회사에 전기안전 기술을 전수하는 등 해외 사업 영역을 넓혀가고 있습니다.”

한국전기안전공사는 이를 신(新)성장동력으로 키워 재무구조를 획기적으로 개선한다는 계획이다. 전기안전공사는 올해 해외 첫 사업을 통해 20억원 이상의 순익을 낼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한다.

짧은 인터뷰 시간 내내 ‘직원 복지’와 ‘서민 생활’, ‘공기업 역할’의 세 가지 키워드를 중심으로 쉴 새 없이 관련 사업에 대한 이야기를 쏟아내는 임인배 사장. 그가 보여준 넘치는 의욕과 열정이 남은 3년의 임기동안 한국전기안전공사를 또 어떻게 변모시킬까.

‘1초 경영’의 최종 목적지는 어디가 될까. 3년이 지난 뒤 한국전기안전공사의 위상은 어떻게 변할까. 이 모든 의문들이 남은 임기동안 끊임없이 그의 행보를 지켜보게 하는 원동력이 되게 한다.

임인배 사장은…


김천고교, 영남대학교 법학과와 동국대학교(행정학 박사)를 졸업. 15대 국회 진출 이래 3선 연임. 한나라당 수석부총무, 경북도당위원장, 국회 산업자원위원회 위원,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 위원장을 역임. 대한사이클연맹 회장, 재경 김천향우회장 역임. 현 건국대 초빙교수, 한국전기안전공사 사장.




송준호 기자 trista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