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이너 서상영6월 말 네이버서 09 F/W 등 선보여… 한국 넘어 세계와 소통할 것

젊은 디자이너에게 기대하는 것은 신선한 아이디어, 파격적인 디자인, 사실 이런 것들보다 융통성이다. 손과 눈에 익은 것을 과감하게 버리고 이제 막 형성되고 있는 생태계를 기웃 거리는 것. 여기에는 융통성 말고도 겸허함이 또 필요하다.

디자이너 서상영이 국내 최초로 온라인 컬렉션을 선보인다. 파리에서 겐조, 마틴 싯봉 등을 거쳐 국내에 자기 이름을 걸고 데뷔한 지 6년, 벌써 13번째 컬렉션이다. 10대처럼 유연하고 30대답게 겸허한 그의 컬렉션이라 더욱 기대가 된다.

온라인 상에서 컬렉션을 선보인다고 들었다

그렇다. 6월30일과 7월1일. 09 F/W와 10 S/S 컬렉션을 네이버에서 연달아 선보인다.

이전에도 포털 사이트 ‘다음’과 함께 온라인 컬렉션을 진행한 적이 있지 않나

2006년 S/S에 포털 사이트의 패션 콘텐츠 형식으로 한 번 선보인 적이 있다.

지금도 생소하지만 당시에 온라인으로 보는 패션쇼는 국내 최초였다. 한번 해보니 어떻던가

정말 굉장했다. 지금은 많이 바뀌었지만 당시만 해도 옷을 충분히 볼 수 있을 정도로 큰 동영상을 버퍼링 없이 재생시키는 것이 거의 불가능했다. 모니터마다 해상도가 다른 것도 문제였고. 결국엔 순간 촬영으로 해결했다.

모델의 움직임을 세세하게 포착한 사진들을 전부 플래시로 이어 붙여서 마치 동영상처럼 보이도록 만들었다. 찍은 사진 개수가 15만장이 넘었는데 한번 그냥 훑어보는 데만 3일이 걸렸다. (웃음)

그야말로 막노동 수준이었겠다. 이번에도 그런 방식인가

아니다. 이번에는 스틸 컷으로 보여주려고 한다. 힘들어서라기 보다는 패션에는 이런 방식이 더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영상이 내러티브라면 스틸 컷은 시다. 잘 연출된 한 장의 사진에서 더 많은 것을 느끼고 상상할 수 있다.

왜 온라인인가.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내가 알기로는 헬무트 랭이 파리에서 뉴욕으로 본거지를 옮기면서 최초로 시도했었고 빅터앤롤프도 했었다. 그러나 브랜드 사이트에서 보여준 정도고 대형 포털과 결합해 본격적으로 파급 효과를 노린 경우는 아니었던 것 같다.

그렇다면 바잉을 노린 온라인 컬렉션으로서는 서상영이 세계 최초인 셈인가

그렇다고 볼 수 있겠다.

처음인 만큼 부담도, 위험 요소도 클 것 같다

위에서 말한 온라인의 단점들이 있다. 만질 수 없고 색상이 정확하게 전달이 안 되는 점 등등. 하지만 그것 때문에 제쳐 두기에는 인터넷의 장점은 너무나 크고 점점 더 커지고 있다.

하나만 예를 들어볼까? 현재 네이버의 심야 시간 평균 접속자 수는 480만 명이다. 오프 라인 쇼에서는 많이 와 봤자 수백 명이다. 이제는 일도 놀이도 전부 인터넷 없이는 상상할 수 없는 세상이다. 패션도 당연히 이런 환경에 맞춰야 하지 않을까.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인가

커뮤니케이션을 하고 싶다. 지금까지 디자이너들은 어떻게 말하면 대중의 위에 존재했다. 마치 다른 세계에 사는 사람들처럼 희한하고 비싼 옷을 만들며 특이한 말투로 이야기하는…이런 역할이 강요된 측면도 적지 않다. 하지만 사실 패션은 우리가 가장 가깝게 즐길 수 있는 문화 중 하나다.

이번 컬렉션에 내가 기대하는 것은 별 게 아니다. 그냥 대학생 김 모 군이 네이버의 검색 창 아래에 있는 배너 광고를 클릭해 ‘아, 서상영이라는 디자이너가 이런 옷을 만드는구나’라고 생각한다면 그걸로 만족한다.

보여주는 걸로 만족한다고 했지만 당연히 바잉을 염두에 둔 컬렉션일텐데

물론이다. 바잉이 없는 디자인은 건강하지 못하다. 한국은 특히 백화점을 중심으로 한 수수료 비즈니스 때문에 개인 디자이너들이 살아 남기 어렵다. 국내 편집숍 바이어들과 해외 바이어들에게 서상영의 디자인을 어필하고 싶다.

그런데 컬렉션은 바이어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하고 있지 않나

당연히 그 불특정 다수에 바이어도 들어가 있을 테니까. 컬렉션이 끝난 후에는 해외 바이어들에게 카탈로그를 제작해 배송할 계획이다.

이번 컬렉션에 대한 힌트를 조금 달라

굳이 테마를 정해서 할 생각은 없다. 지금 가장 많이 신경 쓰고 있는 것은 퀄리티다. 패션에서 쇼의 측면이 강조될 때는 사실 단추가 얼마나 튼튼하게 달렸는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한번 나왔다 들어가는데 잘 보이지도 않는다. 하지만 판매를 위한 패션이라면 이런 것들이 무엇보다 중요해진다.

샤넬 쇼에 가본 적 있나? 나도 없다. 하지만 샤넬은 그 쇼를 보지 못하고 그 옷을 직접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에게도 선망의 대상이다. 그건 샤넬이 퀄리티를 통해 고객과 신뢰를 쌓아 왔기 때문이다. 이제는 점점 더 기본에 충실하려고 한다. 물론 아름다움을 위한 퀄리티라는 전제가 붙는다.

콘셉트를 잡거나 연출하는 부분을 네이버와 협업해서 진행하나

네이버에서는 콘텐츠를 띄워주는 일만 하고 나머지는 전부 우리 측에서 한다. 모델 섭외부터 장소 섭외, 연출 등 옷 만드는 것 외에도 할 일이 엄청나게 많다. 그래도 국내 디자이너가 한다고 많이 도와준 편이다. 검색 창 아래에 있는 광고면을 하루 사용하는 비용이 원래 1억2천만원 정도다.

그런데 가격을 많이 내리고 이틀로 쪼개서 쓸 수 있도록 허용해 줬다. 컬렉션을 하는 이틀 동안 하루에 30분, 서상영 컬렉션을 상징하는 배너가 바뀌지 않고 고정돼서 떠 있을 예정이다.

어떤 식으로 연출할 계획인가

전신 샷을 찍을 수도 있고 디테일만 클로즈 업해서 찍을 수도 있겠지.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연예인도 등장시킬 예정이다. 하지만 얼굴을 돌리거나 고개를 숙여 누구인지 잘 모르도록 할거다.

스타 마케팅에 목을 매는 패션 업계를 향한 일종의 비아냥이라고 봐도 좋겠다. 이런 것들이 브랜드 이미지에 도움이 될 거라고 믿는 마케팅 담당자들을 보면 안타깝다.

이번 컬렉션이 성과를 거두면 후발 주자들이 생길 것 같다

트렌드가 됐으면 한다. ‘해외 진출’이라는 허울 좋은 타이틀만 가지고 돌아와 우리끼리 칭찬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 정말로 해외에서 팔리는 옷을 만들어야 한다. ‘글로벌 호환’이 되는 디자이너냐 아니냐, 이건 등급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다.



황수현 기자 sooh@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