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초대석] 이학준 서울옥션 대표아시아 넘어 세계 미술시장 허브 목표화랑과의 건전한 발전관계 진력

5월 14일부터 17일까지, 세계 미술계의 시선은 홍콩에 집중된다.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로 열리는 홍콩아트페어 때문인데, 올해에도 아시아는 물론 미주와 유럽의 화랑이 대거 참여한다. 홍콩 아트페어가 열리는 기간, 분주한 곳은 화랑만이 아니다. 수많은 딜러와 컬렉터들이 모인 기회를 활용하기 위한 경매회사의 손도 무척이나 바쁘다.

서울옥션 역시 아트페어가 진행되는 15일에 112 작품, 100억 원 규모의 경매를 홍콩 그랜드 하얏트에서 진행한다. 작품 중에는 국내 컬렉터에게 의뢰받은 데미안 허스트의 작품 ‘고요(Tranquility)’도 포함되어 있다. 일명 만화경 시리즈로도 불리는 이 작품은 박제된 나비를 둥글게 붙인 것으로 추정가는 20억 원이다.

경제침체에도 불구하고 미술품의 투자 가치가 인정을 받으면서 경매시장은 국내에서도 급속히 성장하고 있다. 그 중 국내 최초로 설립된 서울옥션의 성장은 두드러진다. 뉴욕, 런던에 이은 3대 미술시장으로 주목받는 홍콩에 지난해 홍콩법인을 세우고 본격적으로 세계 경매시장에 출사표를 던졌다. 그 이전에 아시아의 대표 경매회사로의 발돋움을 준비하고 있는 서울옥션의 이학준 대표를 만났다.

“당장의 수익보다 긴 안목으로 내다보고 접근하고 있습니다. 홍콩경매는 두 번째인데, 지난해보다 버라이어티해졌어요. 인도와 인도네시아 작품도 편입되었고요. 앞으로 일 년에 두 번쯤 진행할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국 근현대 미술품을 아시아 미술시장에 진출시킨다는 것과 소더비와 크리스티가 하지 않는 포스트 워 서양미술을 아시아 시장에 소개한다는 두 가지 목표를 가지고 꾸준히 하려고 해요.”

홍콩경매는 서울옥션의 세계 진출을 위한 교두보인 셈이다. 서울옥션은 이번 경매를 위해 지난 달 30일부터 이달 2일까지 아시아권 경매회사로는 처음으로 대만에서 프리뷰를 진행했다. 4월 중순과 5월 7일부터 9일까지 평창동 서울옥션스페이스에서도 프리뷰가 열렸다.

예상보다 관람객들의 반응도 좋았지만 홍콩의 몇몇 딜러들은 올해 출품작 중에 가장 알차다는 희소식을 전하기도 했다. 이미 소더비는 경매를 진행했고 5월에만 아시아 메이저 옥션인 중국의 폴리 옥션과 대만의 라베넬, 그리고 크리스티도 같은 달에 경매가 예정되어 있는 참이다. 그만큼 이 대표의 기대감도 커졌다.

“미술품 한 점이 아니라 문화를 파는 거지요. 전 세계에서 아시아 미술시장, 또 한국미술은 소외되어 있었습니다. 이번 경매는 일차적으로 한국미술이 아시아 미술시장의 중심부로 진입하는 계기를 마련해줄 거라 생각해요. 그동안 키아프(KIAF)도 성공적으로 자리를 잡았고 홍콩아트페어는 두 번째이지만 서양의 주요 화랑이 참여한다는 것만 보아도 아시아 미술시장에 대한 가능성을 엿볼 수 있거든요.”

중국 현대미술은 ‘소셜 리얼리즘’, 일본의 현대미술은 만화를 기반으로 한 ‘네오 팝아트’, 그러나 한국미술에는 딱히 떠오르는 이미지가 없다. 이 대표는 아쉬운 동시에 그로 인한 다양성이 강점이 될 수 있다고 낙관한다.

화랑과 경매회사. 미술시장에 비해 지나치게 늘어난 경매회사는 현재 화랑과 다소 불편한 동거를 하고 있다. 이미 3년 전에 불거진 사안들은 여전히 첨예하게 대립되어 있다. 그 중 하나가 아직 작품세계가 무르익지 않은 젊은 작가들의 작품이 대거 경매시장에 올려지면서 미술 발전을 오히려 저해한다는 지적이다. 저변에는 신진작가 발굴이라는 화랑의 본연의 몫을 경매회사가 침범하는데 따른 우려다.

“세계적으로 사이클이 짧아졌습니다. 컨템포러리 시장이 커지면서 유작들만 경매회사에서 판매했던 과거와는 확연히 다르지요. 동시대 취향이 맞는 작품이 시장에 어필하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그런 문제를 줄이기 위해 작가와 직접 거래하기 보다는 화랑을 통해 작가를 소개 받습니다. 화랑은 경매회사의 고객이기도 하거든요. 저희는 매년 6월 컷팅엣지라는 이름으로 젊은 작가들 위주의 경매를 진행하죠. 올해가 10회인데, 처음 시작할 때만해도 젊은 작가 시장이 따로 없었지만 이젠 활성화 되었지요.”

이학준 대표는 경매에서 한번 높은 가격에 거래되었다고 그것이 작품세계에 대한 온전한 평가기준이 될 수 없다고 강조한다. 10회 이상 진행되면서 축적되어야 하는 것으로, 젊은 작가들 역시 그런 것에 흔들려서는 안 된다는 것이 그의 말이다. 또한 평론이 활발하지 않은 가운데, 시장과 평론이 협업하지 못하고 따로 움직이는 상황은 숨겨진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여전히 화랑과 경매회사 사이에 조율해야 할 난제들은 많지만 10여 년 전, 경매회사가 국내에 생겨나면서 미친 긍정적인 영향도 적지 않다. 이 대표는 ‘있는 그대로의 시장을 반영한다’는 점을 첫 손에 꼽는다.

“선진 미술시장의 선례를 보면, 90년대 초에 3~4년쯤 침체에 허덕이다가 금방 회복이 된 적이 있습니다. 이는 경매의 순기능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가격이 떨어지면 떨어지는 대로 반영을 해주고 올라가면 올라가는 대로 반영을 한다는 거죠.”

수익에 몰두하기보다 미술계에 일조하려는 노력도 엿보인다. 서울옥션은 자선경매를 통해 소외된 아동들의 미술학습을 지원하고 있는데, 세 차례의 자선경매에서 많게는 3억 원을 기부하기도 했다. 경매회사로서 가장 큰 애로사항이기도 한 미술품 감정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기여하고자 하기도 한다.

정확한 기준이 없어 위작논란이 끊이지 않거니와, 서울옥션은 지난해 박수근의 ‘빨래터’의 위작논란으로 긴 시간 홍역을 치르기도 했다. 이 건은 이제 거의 마무리 단계에 있다.

“해외에서는 샤갈 작품의 경매를 하면 파리에 있는 샤갈 재단에서 보증서만 받으면 되고 워홀의 작품을 경매하려면 워홀의 재단 혹은 전작이 담긴 도록을 확인하면 되거든요. 하지만 우리나라 미술시장이 급격히 발전하다보니, 그런 인프라가 약합니다. 위작논란이 끊이지 않는 박수근의 전작도록도 없는 실정이죠.”

현재 서울옥션은 외부 전문가와 유족들, 그리고 감정가협회의 도움을 받음과 동시에 위탁자가 가져온 감정서로 크로스 체크를 하고 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위작논란에서 자유로워지려면 전작도록과 같은 기준이 필요하다는 이 대표는 객관성 확보를 위해 서울옥션은 직접 참여를 하지 않고 펀딩을 할 의사가 있다고 덧붙였다.

현재 경매시장의 큰 축은 영국과 미국이다. 그러나 2005년 급격히 성장한 아시아 미술시장을 기반으로 한국과 중국, 일본이 거대한 블록을 이루고 있다는 점을 이 대표는 주목하고 있다. 더구나 작가와 갤러리, 컬렉터, 그리고 경매회사를 모두 갖춘 곳은 한국뿐이라는 점은 아시아의 중심지로서의 가능성에 무게를 싣는다.

“홍콩과 대만에는 작가가 적고 중국에는 화랑이 적습니다. 반면 우리나라는 모든 것을 갖추고 있지요. 이제 홍콩에 버금가는, 아시아에서 나아가서는 세계 미술계의 허브가 되는데 정부차원의 관심이 있을 때가 아닌가 싶어요. 소더비의 현대미술 경매가 뉴욕에서 5월 13일에 열리는데요. 경매 전에 수많은 스페셜리스트들이 위탁물품을 받으러 한국에 옵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우리 미술시장의 위상은 상당히 높다는 거죠. 구체적으로 접근을 하면 좋은 결과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는 5년 후쯤에는 아시아 허브의 역할을 서울옥션에서 기대해 봐도 좋겠다며 환하게 미소지었다.

이학준 서울옥션 대표는…


1965년생. 고려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1989년부터 1999년까지 (주)가나아트갤러리의 국제부장으로 재직했다. 이후 (주)서울경매(현 (주)서울옥션)에 창립멤버로 합류해 총괄이사 및 영업본부장으로 근무했으며 2006년 전무이사로 선임되었다.

(주)가나아트갤러리 국제부장으로 재직 중 그는 해외미술의 국내소개 및 한국미술의 해외 프로모션을 담당했다. 재스터 존스(1991), 로이 리히텐스타인(1991), 게오르그 바젤리츠(1992), 장 드뷔페(1995), 조르주 브라크(1996) 등의 해외 유명 작가들의 국내 전시와 오수환(1992), 오치균(1993), 고영훈(1993-1995) 등의 한국작가를 해외 개인전 및 프랑크푸르트(1991), 모스크바(1993), 파리(1993) 등 한국현대미술그룹전 기획을 통해 한국 현대미술을 해외시장에 소개하는데 주력했다.

서울옥션으로 자리를 옮긴 이후에는 1999년 5회 경매부터 2008년 10월 첫 홍콩세일 등 100여 회 이상의 경매를 성공적으로 진행했다. 2005년부터 개인적으로 컬렉션을 하기 시작한 그는, 작품이 주는 기쁨과 동시에 가족과의 늘어난 대화 시간을 통해 컬렉션의 묘미를 알아가고 있다.





이인선 기자 Kell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