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늑대' 저자 전성태6개월간 경험 밑천 삼아 쓴 6개의 단편 등 묶어 세 번째 소설집 출간

‘당신에게 노래 부르는 그의 모습을 먼저 보여주고 싶다. 그가 한 손을 번쩍 들고 ‘루마니아 국가’라고 우기며 독일민요를 부를 때, 그걸 보던 모든 사람들이 배꼽 빠지게 웃다가 눈물이 찔끔 날 때, 그의 몸에 루마니아 피가 흐른다는 농담이 사실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미칠 때, 나는 진짜로 울어버렸다.’

작가 천운영은 그를 이렇게 소개했다. 그를 꼭 닮은 소설은 순정하고 애틋하다는 말을 덧붙이면서. 공동체와 개인에 관한 고민이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에 버무려진 세계. 이것이 지난 10년 간 작가 전성태가 발표했던 작품의 모양새다.

소설집 ‘매향’(1999)과 ‘국경을 넘는 일’(2005) 등 정통 리얼리즘 소설을 선보였던 그는 최근 세 번째 소설집 ‘늑대’를 출간했다. 혹자는 이 작품집을 두고 “2천 년대 한국소설이 어떻게 진화했는지를 일러주는 최상의 지표”(문학평론가 한기욱)라고 말했고, 또 다른 혹자는 “좋은 소설은 언제나 비평의 언어로 포섭되지 않는 법, ‘늑대’는 매순간 ‘늑대’를 넘어선다”(문학평론가 이선우)고 칭찬했다.

이런 찬사를 뒤로하고, 작가는 인터뷰 전 소박하게 인사했다. “재미있게 읽으셨나요?”

몽골 관한 여섯 개의 시선

이 책을 빚어낸 시간은 꽤 지난한 것이었다. 작품집에는 2005년 가을부터 지난 해 겨울까지 4년 간 발표한 단편이 묶였다. 작가는 그 동안 몽골을 다녀왔고, 대학에서 강의를 했고, 장편 하나를 구상해 두었다. 2005년 가을 방문한 몽골에서 그는 한국의 문학과 역사를 가르치고 몽골의 작가들과 교류하며 6개월간 생활했다. 이 경험을 밑천 삼아 그가 쓴 작품이 6편이다.

“몽골에 다녀온 후 글 쓰는 데 수월해졌어요. 민족주의나 타자와의 관계, 공동체와 개인에 대한 생각이 이전 ‘국경을 넘는 일’을 쓸 때는 굉장히 혼란스러웠어요. 이번 소설은 혼란스러움이 없어요. 설득력도 더 생기지 않았나, 생각이 들어요.”

표제작 ‘늑대’는 몽골의 시원(始原)적 이미지를 표현한 작품이다.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대초원의 공간에서 신과 소통하는 초자연적인 힘을 미학적 문체로 담아냈다. 한국인 사냥꾼과 그의 여자 ‘허와’, 촌장과 딸 ‘치무게’, 라마승, 늑대 등 각 장마다 등장인물이 번갈아 1인칭 시점으로 서술하고 있다. 그는 “완성도와 별개로 제일 좋아하는 작품을 표제작으로 삼았다”고 말했다.

“몽골의 초원에는 알 수 없는 초자연적인 힘이 있어요. 이 느낌을 어떻게 이미지화 할 것인지, 고민하다 늑대 사냥을 경험으로 이 작품을 썼죠. (제 작품 중) 몽골을 가장 잘 형상화한 작품인 것 같아요.”

작가는 “몽골은 초자연적인 모습과 압축성장의 근대화 모습이 교차하는 곳”이라고 덧붙였다. 몽골의 압축성장과 문학계 모습은 단편 ‘중국산 폭죽’과 ‘두번째 왈츠’에 담았다.

‘목란식당’은 울란바타르에 있는 북한 식당을 배경으로 쓴 작품이다. 극우 기독교 단체, 교민사회 구성원, 타락한 386세대 등 목란식당을 오가는 남한 손님과 북한 접대원의 미묘한 관계는 오늘의 남북 현실을 투영하고 있다.

‘남방식물’은 무기력한 40대 가장 병섭이 아내가 운영하는 몽골 호텔에 머물면서 겪게 된 일화를 쓴 단편이다. 이 소설에서 단편 ‘목란식당’의 종업원이 등장해 마치 옴니버스식 소설을 읽는 듯한 느낌을 준다.

풍자적 해학이 넘치는 ‘코리언 쏠저’는 몽골에 체류하게 된 시인의 일화를 쓴 작품이다. 주인공 창대는 시원의 나라, 몽골에서 안식년을 보내며 시를 쓰겠다고 다짐한다. 그러나 저잣거리에서 강도를 당할 뻔하고, 열쇠 없이 아파트 문이 잠기는 상황에 처하게 되자 몽골을 야만의 공간, 칭기즈칸의 나라로 기억한다.

그리고 몽골에 칭기즈칸이 있다면 자신에게도 대한민국 군대가 있다며 제대한 지 20년이 넘은 자신을 ‘코리언 쏠저’라고 호기를 부린다. 그는 잠긴 아파트 문을 열기 위해 전선을 몸에 감고 30미터도 더 되는 건물을 내려온다. ‘코리언 쏠저’의 경험을 발판삼아서.

작품집은 이 밖에 자전 소설인 ‘아이들도 돈이 필요하다’를 비롯해 ‘강을 건너는 사람들’, ‘이미테이션’, ‘누구 내 구두 못봤소’ 등 단편소설 10편을 실었다.

“이번 소설집이 예전과 다른 건 여성에 대해 탐구하기 시작한 거예요. 우리사회에서 여성도 중요한 타자 같거든요. 몽고인이나 북한인들처럼. 그래서 ‘늑대’에서 나름대로 시도했고, ‘두번째 왈츠’도 그런 의도로 쓴 작품이에요. 민족주의가 아주 강한 나라에서 사는 여성들을 그린 거죠.”

웃음 끝에 남는 페이소스

작품집이 출간되자, 곧 ‘국경을 넘는 일’의 연장선이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작가 전성태는 탈북자, 몽골인, 퇴역 레슬러, 혼혈인 등 개인을 통해 공동체를 읽어냈다.

그가 내세운 타자는 사회의식의 발로로 읽혔고, 민족주의는 그의 작품을 읽는 하나의 코드로 작용했다. “소설이 정치적으로 읽히냐?”고 묻던 그는 “사회문제와 연관된 질문이 많아요. 제가 그런 면에 관심이 없는 건 아니지만, 어쩔 수 없지 뭐”라고 눙쳤다.

“제 작품이 개인이나 공동체에서 발견되는 의식, 무의식적 갈등을 많이 다루고 있죠. 한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우리가 겪을 수 있는 심리적인 정황을 많이 썼어요. 예를 들어 북한 사람들이 남몰래 쪽지를 건낼 때 대부분의 남한 사람들이 불안감을 가질 듯한데, 저는 이런 풍경이 기이하게 보인다는 거죠. 공동체와 개인의 관계성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계속 탐구하고 있어요.”

“요즘 도회지 일상에 관심이 간다”는 그는 고향인 전남 고흥을 무대로 한 장편을 구상 중이다. 레슬러와 복서를 비롯한 운동선수를 주인공으로 근현대사를 압축해서 선보일 생각이라고. 전 작가는 “이 곳은 정치적 출세길이 막혀 스포츠 영웅이 많다. 그들의 이야기를 코믹하고도 깊이 있게 그리고 싶다”라고 말했다.

“사회에 관심을 갖는 글이 나와야 하지만, 제 작품에 엄숙주의가 있다면 그런 면은 벗어나고 싶어요. 재미있게 읽고 나서 작품이 던지는 메시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는 작품이 됐으면 좋겠어요.”



이윤주 기자 miss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