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CEO] 이종덕 성남아트센터 사장예술의 전당·세종문화회관 이끈 경륜성남아트센터 수도권 문화 허브 올려놔

그는 웃고 있지 않으면 그냥 ‘무뚝뚝한 사장님’이다. 굳게 다문 입술과 무표정한 얼굴은 농담이라고는 한 마디도 하지 않을 것 같은 호랑이상이다. 그런데 예상 외로 무대 스태프들이 먼저 다가와 인사를 하고 농담을 건넨다.

으레 건네는 인사가 아닌, 진심에서 우러나온 편안한 인사다. 그러자 그는 넉살좋게 웃는다. 앞에 앉은 기자에게 무대 스태프들을 칭찬하며, 한편으로는 그들에게 ‘지금 칭찬하고 있으니 잘 들어’ 하고 우스갯소리를 하기도 한다.

서울의 여느 공연장 못지 않은 화려하고 거대한 이 공연장은 성남아트센터 오페라하우스. 무서운 인상과 달리 부하직원들과 스스럼없이 농담을 주고받는 사람은 성남아트센터의 이종덕 사장이다.

이 사장은 지난 2004년 12월 1일 성남아트센터 사장으로 부임해 현재 3기 상임이사로 재임하고 있다. 2005년 개관 이래 현재까지 성남아트센터는 수도권의 문화 허브이자 세계 초연의 작품들을 접할 수 있는 공연장으로 평가받아왔다. 또 지난해 성남아트센터를 찾은 관객이 100만 명을 돌파하는 등 개관 후 짧은 기간에 눈부신 성과를 내고 있다.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성남아트센터가 이처럼 빠른 속도로 수도권을 대표하는 문화공간으로 성장하고 있는 것은 다른 공연장들과는 차별화된 기획 프로그램과 공연장 지명도를 높이기 위한 저가 정책, 그리고 수도권 인근 도시의 접근성에 있어 용이한 점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또 성남을 중심으로 한 시민들의 참여를 유도하는 각종 프로그램들이 성남아트센터에 친근한 이미지로 덧입힌 면도 주효했다는 평가다.

이 같은 성과의 배경에는 예술행정가로서 40년이 넘는 세월을 거치며 역량을 키워온 이종덕 사장의 경험과 실무 능력이 자리잡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우리 나이로 75살이라는 고령에도 불구하고 그는 여전히 정력적이고 여유롭게 업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환갑이 지난 후부터 예술의전당과 세종문화회관 등 국내 최고의 공연장들을 맡아온 노장의 관록은 성남아트센터에서 그 정점을 찍고 있다는 느낌이다.

“굳이 이런 성공의 비결이라고 한다면 하루에 내 능력을 100% 활용한다는 것입니다. 언젠가 세계적인 발레리나 강수진이 어린 발레리나 350명이 모인 강의에서도 비슷한 말을 했다지요. 이 말은 오늘날의 나를 만든 것이고, 사실 예술가뿐만 아니라 모든 인간에 다 해당되는 말이기도 하지요.”

비록 100%를 다 했다고는 하지만 그가 생각하기에 성남아트센터가 갈 길은 아직 많이 남아 있다. 지난해 100만 명이라는 관객수에도 불구하고 시민들에게 친숙하게 다가가는 정책이나 사업 면에서는 아직 보완할 점이 많았다는 것. 그래서 성남아트센터가 올해 추진 중인 사업은 특히 지역 공연장으로서의 성격을 강화해 문화 행사를 자주 누리지 못했던 시민들이 문화적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대폭 확대한 것이 눈에 띈다.

“취임하면서 걱정했던 게 성남이 문화적으로 낙후됐다는 이미지였거든요. 공연도 중요하지만 주민들의 문화예술 소양이 중요한데, 이에 대한 대책은 거의 없었습니다. 그동안 예술의 전당 사장, 세종문화회관 사장 등을 거치면서 깨달은 건 공연장 덩치만 키워서 될 게 아니라 시민들 소양교육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사장은 시민들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문화정책을 모색했다. 그래서 고민의 결과로 나온 것이 자발적인 문화예술 동호회를 위한 ‘사랑방 문화클럽’. 성남문화재단에서 2006년도에 ‘성남시 사랑방 문화클럽 실태 및 욕구조사’를 실시한 결과 무려 1103개의 시민 문화예술 동호회가 활동하고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이 사장은 여기서 70개를 추려서 각 지역에 봉사활동도 하게 하고 문화 공간을 대여하는 등 공연문화를 장려하는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3년이 지난 지금 이 클럽의 활동은 문화관광부나 다른 문화재단에서도 벤치마킹을 할 만큼 훌륭한 모범사례가 되고 있어서 뿌듯하게 생각한다고.

이미 상반기에 성남국제무용제를 성공적으로 치러내며 국제공연행사장으로서의 위용을 또 한 번 뽐낸 성남아트센터는 하반기에는 야심찬 프로젝트 뮤지컬 ‘남한산성’을 자체 제작해 오는 10월 무대에 올린다. 예술의 전당 사장 부임 전 서울예술단의 단장으로 일하며 뮤지컬에서도 많은 경험을 쌓아왔던 이종덕 사장은 이번 ‘남한산성’의 제작에서도 총감독을 맡아 어김없이 자신의 100%를 발휘할 예정이다.

이 사장은 “과거에 묻혀 있던 ‘남한산성’이라는 역사를 뮤지컬이라는 장르를 통해 선보이는 작업을 통해 우리의 과거를 바라보는 시각을 재조명할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현재 경기도에서 복원한 남한산성은 올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추진하고 있어 뮤지컬이 공연될 경우 관광상품과의 결합으로 인한 시너지 효과도 기대되고 있는 실정이다.

워낙 오랜 시간동안 문화예술계의 다방면을 횡단하며 준(準)예술인 대우를 받는 그이지만, 역시 본분은 예술행정가다. 40년이 넘는 그의 경력을 고려하면 ‘예술행정’이라는 단어조차 생소했던 시대 그는 이미 예술행정가로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던 셈이다.

“70년대 문화공보부 재직 시절에는 정말 ‘예술행정’이라는 말 자체가 없었습니다. 일례로 당시 ‘국민학교’와 공연장 사이는 300m 이상의 거리가 확보되어야 건축이 허가된다는 조항이 있었는데, 이 거리가 직선인지 곡선인지 불분명한 겁니다. 이에 대한 문의가 왔는데 담당사무관이었던 제가 직선거리라고 대답을 한 거죠. 통화를 끝내고보니 과연 조항이 모호해서 당시 국무회의 통과만으로 가능했던 시행령 수정안을 추진해 1주일만에 통과시킨 적도 있습니다.”

정부 산하의 힘 있는 공무원으로서 20년을 근무하면 제법 어깨에 힘이 들어갈 법도 하지만 그가 오늘날 범 문화예술계에서 고른 인정을 받는 것은 뜻밖에도 영향력이나 권위가 아닌 ‘인간미’다. 실제로 이종덕 사장이 생각하는 ‘좋은 예술행정가’의 모습과 그가 걸어온 예술가들과의 교류사는 일맥상통하는 면이 많다.

“좋은 예술행정가란 특별한 게 아니라 남의 이야기를 잘 경청하고 배려할 줄 아는 자세를 갖춘 사람입니다. 결국 행정하는 사람은 예술가들이 더 좋은 공연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사람이거든요. 특히 공연장에서는 무대 스태프들의 역할이 중요하기 때문에 무대의 메커니즘이 잘 돌아갈 수 있도록 조명·음향·기계·무대장치 등 관련 스태프들과의 화합이 중요한 건 물론입니다. 그래서 나는 새로 취임할 때마다 직원들을 소집해서 ‘좋은 공연을 위해 이렇게 하자’라고 내 방식을 이야기합니다. 결국 편안한 작업 공간을 제공하자는 거죠.”

늘 사람들과 함께 하길 좋아하고 사원 한 명 한 명을 챙기는 세심한 ‘관리’ 덕에 문화예술계에는 ‘이종덕 라인’도 있다. 특히 예술의 전당 시절 부하 직원으로 있던 이들이 이제는 전국의 대표적 예술공연 기관의 수장이 되어 한국의 예술시장을 이끌고 있다. 대표적인 인사가 경기도 문화의 전당 박인건 사장, LG아트센터 김의준 대표, 김해 문화의 전당 김승업 사장, 경남문화예술회관 곽정석 관장 등이다.

그가 2004년 펼쳐낸 자서전 ‘내 삶은 무대 뒤에서 이루어졌다’에는 그의 폭넓은 인간관계가 더 자세히 기재되어 있다. 국내외 유명 예술가들과 기업인들은 물론 역대 대통령들과의 친분도 그의 친화력을 입증하는 부분이다. 이쯤 되면 그가 문화예술계에서 발휘하는 영향력의 순도를 의심할 법도 하지만, 막상 그가 걸어온 길을 돌이켜보면 ‘출세’보다는 ‘인정’에 가까운 길을 걸어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예술의 전당 사장에서 세종문화회관 사장으로 취임했을 때 그에게 구상 시인의 시 한 편이 전달됐다.

앉은 자리가
꽃자리니라
네가 시방
가시방석처럼 여기는
너의 앉은 그 자리가
바로 꽃자리니라


지금도 그의 집무실에 액자로 걸려 있는 ‘꽃자리’라는 이 시는 당시 장관급이던 예술의전당 사장에서 국장급이던 세종문화회관 사장 직에 임명된 이 사장을 격려해주기 위한 것이었다고. 어느 자리에 가던 직급이나 환경이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떻게 일을 해내느냐에 따라 환경은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는 마음가짐에 대한 조언이었던 셈이다. 이후 이 사장은 이 시의 의미를 가슴 깊이 새기고 자서전에도 넣어 인생의 철학으로 삼고 있다.

욕심을 내지 말고 분수를 지켜 최선을 다 하자는 그의 철학은 생전에 교분을 나누었던 고 김수환 추기경으로부터 받은 영향에서 비롯된다. “그분이 항상 하는 얘기가 ‘용서하고’ ‘베풀고’ ‘나는 바보다’라고 하라는 거였거든요. 그런데 난 아직 ‘내가 바보’라는 말은 못하고 있어요(웃음). 사실은 그건 가식이고 나는 지금도 바보처럼 살고 싶어요. 너무 똑똑하고 잘 나가면 남에게 시기와 질투를 받기 쉽잖아요.”

해맑게 웃는 그에게 앞으로 성남아트센터가 어떤 모습으로 발전하기를 바라냐는 거창한 질문을 던지자 역시나 그는 소박한 대답으로 응수한다. “내가 없더라도 이미 체계가 잘 구축되어 알아서 잘 돌아가는 상태요. 누가 온다고 해서 잘 되는 것이 아니라. 나는 그걸로 만족합니다.”

이종덕 성남아트센터 사장은…


1935년생, 연세대 사학과 졸업, 1963년 문화공보부 종무담당관, 1983년 한국문화예술진흥원 이사, 1989년 서울예술단 단장, 1994년 서울예술단 이사장, 1995년 예술의전당 사장, 1999년 세종문화회관 사장, 2002년 단국대 산업경영대학원 예술경영학과 주임교수, 2004년 성남아트센터 사장





송준호 기자 trista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