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광일 두비컴 대표넌버벌 댄스컬 에든버러서 국제용 검증받고 베트남 초청도 받아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에는 삶을 유독 춤에 비견한 묘사가 자주 등장한다. '양을 쫓는 모험'이나 '댄스댄스댄스', '신의 아이들은 모두 춤춘다'에서 보여지는 그의 인생관은 '삶이란 춤을 추는 것과 같다'라고 말하는 것처럼 보인다. 아닌 게 아니라 삶과 춤은 참 닮았다. 우리는 저마다 자기만의 춤(삶)을 추며 살아간다. 그러다 때로는 타인에게 다가가 함께 추기를 권하기도 한다. 그리고 느낌이 통하면 두 사람은 함께 춤을 춘다. 그것을 다른 말로 우정 또는 사랑이라 부른다.

댄스컬 '사랑하면 춤을 춰라'는, 거창하게 표현하면, 이런 '삶의 통찰'을 제목에, 공연에 녹여냈다. 우리는 이렇게 살아가고 춤을 추고, 사랑을 나눈다. 셋은 명확히 나누어질 수 없는 어떤 일직선상에 있다. 그래서 '사랑하면 춤을 춰라'(이하 '사춤')는 일종의 동어반복처럼 들리기도 한다.

비슷한 말은 되풀이하면 지겹다. 그래서 무대 위 댄서들은 사랑을, 삶을, 몸으로, 춤으로 표현한다. 때로는 그런 몸짓 하나가 삶의 증명이기도 하다. 심오해보이지만 사실 너무나도 단순한 진리, '사춤'은 이런 삶의 이야기들을 춤과 음악으로 담아내 관객에게 다가간다.

이 모든 시작에는 최광일 두비컴 대표가 있었다. 1993년 대전세계엑스포 그랜드쇼와 2001년 경의선 복원 대축제 등 큼직한 국가 행사를 비롯해 정상급 가수들의 초대형 콘서트까지 도맡던 그는 한때 쇼 연출가로 이름을 날렸다. 하지만 대학에서 원래 연극연출을 전공한 그는 여기서 만족하지 않고 댄스뮤지컬에 도전을 했다.

그동안 번 돈을 들여 무려 13억 원이나 투자한 '댄서 에디슨'이 그것. 하지만 들인 제작비만큼 화려했던 무대가 오히려 관객들의 정서에 녹아들지 못했다. 훗날 '사춤'이 다른 화려한 댄스뮤지컬들과 다르게 오로지 관객과 '함께 하는' 소박하고 즐거운 춤 공연으로 탄생하게 된 것도 이런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다.

"'사춤'은 이른바 '비보이뮤지컬'과는 태생부터가 다릅니다. 비보이 공연들은 시종일관 현란한 기교들을 과시하고 관객들은 일방적으로 볼 수밖에 없는 공연이라면, 이 공연은 그 목표 자체가 관객과 함께 즐기는 공연이거든요."

최 대표는 그래서 기존의 '댄스뮤지컬'과 차별화하기 위해 '댄스컬'이라는 조어도 만들어 사용해왔다. 2004년 초연 후 그렇게 벌써 5년이 지났다. 댄스컬 '사춤'은 정말 애초의 그 목표를 충실히 이행하며 유지되고 있을까. 최 대표는 그렇다고 대답한다.

"모든 공연은 결국 관객이 다 완성시키더라구요. 오랫동안 계속 되는 공연들은 결국 관객들이 칭찬하고 인정하고 사랑하는 장면들로 이루어지는 작품들이에요. 지금의 '사춤'도 그런 장면들이 계속 걸러져 살아남은 것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저절로 완성되는' 공연인 셈이죠."

하지만 관객들과 함께 하는 것은 모든 공연들이 내세우는 공통의 목표이기도 하다. 특히 넌버벌 퍼포먼스에 춤을 소재로 하는 뮤지컬은 공연 시간동안 관객들을 지루할 틈 없이 몰입시킬 무언가가 필요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것을 대개 드라마와 스토리에서 찾는다. 이 점에서 '사춤'은 고질적으로 스토리의 빈약함을 계속해서 지적당해왔다. 최 대표는 이에 대해 '댄스컬'이라는 장르와 관객들의 인식에 대한 한계를 지적한다.

"영화가 가진 장점, 그러니까 꽉 짜여진 스토리텔링을 공연 창작물이 과연 어떻게 따라잡을 수 있을까요. 어렵습니다. 그래서 '사춤'은 그런 스토리 부분을 최대한 축소하는 대신 '넌버벌'이라는 공연 자체의 특성을 극대화시킨 것입니다."

1년 전 종로의 낙원상가 4층에 전용관을 잡은 '사춤'은 기존의 마니아층과 외국인 관광객을 그대로 유입하며 고정 팬층을 만들고 있다. 또 '난타'나 '점프'가 그랬듯이 '사춤' 역시 한류 콘텐츠로서의 가능성을 시험하기 위해 세계무대에도 도전했다. 지난해 영국 에든버러 페스티벌에서 진출한 '사춤' 팀은 세계인의 주목을 받으며 조지스퀘어 극장 사상 최초로 전석 매진을 기록하기도 했다.

'사랑하면 춤을 춰라' 공연 장면

"사실 에든버러에 가기 전엔 혹시 '사춤'이 '자뻑'에 빠져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도 있었습니다. 정작 세계무대에서 외면을 받으면 그야말로 '국내용'이라는 것이기 때문에 초긴장 상태였어요(웃음). 하지만 '헤럴드' 등 보수 언론단체에서도 별 다섯 개의 최고 별점을 매기면서 현지에서도 좋은 반응을 보여 자신감을 얻게 됐습니다."

'국제용'으로 검증된 보편의 정서 덕분인지 그후 좋은 소식이 '사춤'에 도착했다. 베트남의 한 공연기획사가 자국에서 공연할 공연 콘텐츠를 물색하던 중 '사춤'에 주목, 베트남 측이 모든 비용을 지불하며 '사춤'을 초청하기로 한 것이다. 특히 이번 공연은 한국 넌버벌 공연으로는 최초로 유료공연을 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전에도 '난타'가 초청된 적이 있었지만 무료공연이었다는 점에서 성격이 다르다. '사춤'은 오는 18일부터 하노이를 시작으로 다낭, 호찌민까지 베트남의 3대 도시에서 총 17회의 공연을 가질 예정이다. 이는 베트남에서 현재까지 선보였던 공연 중 최대 규모이자 최다 횟수의 공연이 될 전망이다.

최 대표는 "스타마케팅이 한류를 만들었고 정점을 이룬 부분이 있지만 이제 다소 하락세에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제 진정한 한류는 스타 중심이 아니라 공연콘텐츠 중심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이번 공연이 그 초석을 마련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라고 바람을 내비쳤다.

최 대표의 욕심은 베트남에 그치지 않는다. 이미 유럽과 일본 시장에서의 반응은 살펴봤고, 이번 베트남 공연을 통해 동남아시장의 반응을 알 수 있게 되는 셈이다. 또 그는 이번 기회를 계기로 싱가폴, 라오스, 캄보디아 등 인근 국가들까지 진출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려고 하고 있다.

그럼에도 그는 이제 사업 쪽으로는 간신히 첫 발을 뗀 것이라고 신중한 입장을 보인다. 사실 전용관을 오픈하고 운영한지도 1년밖에 되지 않고 공연팀도 2개밖에 되지 않아 현실적인 어려움은 여전히 남아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최 대표는 앞으로 이어질 세계 투어를 통해 글로벌한 '사춤'을 꿈꾸고 있다.

"그동안 여러 가지 사정으로 실현을 못했지만, 세계 투어를 통해서 우리 공연 콘텐츠를 수출하는 현장에서 '사춤'을 제일 앞에 세우는 것이 꿈입니다. 그러면서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사춤'을 알리고, 동시에 글로벌한 요소를 공연에 삽입해 어떤 나라에서도 통용될 수 있는 작품으로 만드는 것이 목표입니다." 어떤 나라에서 공연을 한다 해도 '사춤'의 작품성 만큼은 자부할 수 있다고 자신하는 최 대표. 그의 꿈은 '사춤'과 함께 계속되고 있다.



송준호 기자 trista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