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이너 홍승완대를 이어 입을 수 있는 '비스포크 슈트 로리엣'으로 일본 시장 공략

깜짝 놀라게 하는 것을 즐기는 장난스러운 남자가 있는가 하면 일부러 상대방이 불편해할 소리만 골라서 하는 철없는 남자도 있다. 물론 가장 좋은 것은 주관이 뚜렷하고 다정하면서도 은근히 장난기로 번득이는 눈을 가진 남자다.

디자이너 홍승완이 비스포크 수트 로리엣(roliat)을 론칭했다. 지난 3월 일본에서 첫 선을 보였고 오는 8월부터 일본 10여 곳의 편집 매장에서 판매가 이루어진다. 국내 디자이너가 직접 일본에 진출하는 드문 경우다.

디자인을 시작한 지 8년 만에 조심스럽게 두 번째 레이블을 내놓으면서 그는 할 말도 많고 보여줄 것도 많다. 지금은 흔적 기관이 되어 버린 정통 수트의 디테일을 복원하는 과정을 통해, 그는 처음 수트가 만들어졌을 때를 그리워하고, 지금은 무너져 버린 착장과 품위를 잃은 사회를 고발하며, 그 사이사이 농담도 잊지 않고 던진다.

스위트 리벤지 이후로 8년 만에 선택한 것이 클래식이다

새로운 것보다 손 때 묻은 것들에 더 강한 흥미를 느낀다. 하나의 수트를 가지고 3대가 물려 입었던 과거 유럽의 정서를 재현하고 싶었다. 한국의 인스턴트 패션 문화에 대한 반기라고 볼 수도 있겠다. 옷은 사람을 향하고 있어야 하는데 어째 점점 더 패션만을 향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로리엣을 통해서 수트의 전통적 가치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고

1920년대 영국의 테일러링이 로리엣의 모태다. 요즘의 수트는 경량화 추세를 따라 점점 더 가볍고 간단해지고 있다. 수트의 가슴 부분에 들어가는 체스터 캔버스만 해도 전통적인 방법에 따르면 여러 겹의 심지를 직접 손으로 꿰매서 만드는데 요즘엔 모양이 비슷한 가벼운 심지 하나로 대신한다.

이렇게 하면 무게도 훨씬 덜 나가고 봉제도 쉽지만 시간이 지나면 차이를 알 수 있다. 금방 형태가 흐트러지는 반면 제대로 만든 체스터 캔버스를 댄 수트는 20~30년을 입어도 끄덕 없다.

실제로 30년 이상을 입을 수 있는 옷을 만든 건가

물론이다. 1900년대 초 영국에서는 실제로 그렇게 했다. 세빌로(Savile Row: 런던의 고급 맞춤 신사복 거리)에서 일부 테일러 숍을 통해서만 전승되어온 정통 수트에 디자이너만의 감성을 접목했다고 보면 된다.

패스트 패션이 부상하면서 반대로 클래식과 슬로 패션에 대한 관심도 높다. 홍승완이 생각하는 클래식은 무엇인가

내가 생각하는 클래식은 규범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 이게 내가 생각하는 클래식이다. 현대의 수트 착장은 세월을 거치면서 왜곡된 부분이 많다. 바른 착장에서 느껴지는 가치가 있는데 그게 사라지는 것 같아 안타깝다. 한복에도 규범이 있지 않나.

수트도 마찬가지다. 대표적으로 러닝 셔츠를 드레스 셔츠 안에 입는 것이 그렇다. 드레스 셔츠는 원래 속옷이다. 그리고 재킷이 셔츠의 역할이고 코트가 첫 번째 아우터다. 사무실에 들어서면 코트를 벗고 재킷의 소매를 걷은 후 일을 했다. 그 증거로 옛날 재킷의 소매 단추는 모두 푸르고 채울 수 있었다. 요즘엔 쓰지 않기 때문에 장식으로 바뀌었지만. 로리엣의 재킷은 소매 단추를 실제로 푸르고 채울 수 있도록 만들었다.

정통 착장에 대한 향수를 표현한 건가

그렇다. 엘보 패치(elbow patch: 팔꿈치에 덧대는 천)도 마찬가지다. 당시에는 할아버지에 아버지에, 아들까지 물려 입다 보면 팔꿈치가 쉽게 해졌다. 하지만 워낙 오래 전에 맞춘 옷이라 똑같은 원단을 찾을 수 있을 리가 없다. 로리엣의 재킷에 다른 천으로 만든 엘보 패치가 달려 있는 이유다. 빳빳하게 다린 셔츠 칼라를 떼었다 붙였다 했던 당시의 습관을 따라 칼라 역시 탈부착식이다.

옷에 30년이라는 시간을 미리 입혀 놓다니 참 재미있는 상상력이다. 일본에서의 반응은 어땠나

지난 3월 첫 전시 후 10여 곳의 편집 매장에서 주문이 들어왔으니 반응은 괜찮은 편이다. 오는 8월에 전시회를 한번 더 열고 본격적으로 판매가 시작될 예정이다.

일본은 수트 강국이다. 굳이 일본으로 진출한 데는 어떤 자신감이 있었을 것 같다

일본은 아주 건강하고 규모가 큰 시장이다. 소비자들의 구매력이 높고 옷에 대한 식견도 상당하다. 때문에 섣불리 접근하면 안 된다. 좋은 소재를 고집한 것은 물론이고 특급 호텔 테일러 숍의 수트를 도맡아 봉제하는 장인들을 찾아가 로리엣의 수트를 맡겼다.

국내 디자이너들 중에서는 아직까지 일본 시장에 성공적으로 안착한 케이스가 없다

일본은 글로벌한 취향을 가지고 있지만 그 구조에 있어서는 동양적인 색깔이 강하다. 폐쇄적이고 인맥 중심이란 뜻이다. 게다가 경쟁도 상당히 치열하다. 따라서 아는 사람 하나 없이 일본 시장에서 바닥부터 시작하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그런지 한국인 디자이너들 중 파리나 뉴욕을 거쳐 일본으로 들어오는 경우는 있어도 일본으로 바로 진출해 성공을 거둔 케이스는 없다. 나는 일본에서 대학을 다니면서 아는 사람이 약간 생겨 도움을 받았다. 일본에서 자리를 잡으면 내년에는 뉴욕과 유럽으로 진출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그럼 한국에서는 판매를 하지 않을 예정인가

그렇지 않다. 올해 8월부터 스위트 리벤지 매장과 란스미어, 샌프란시스코 마켓 등에서도 판매를 시작한다. 다만 노리고 있는 주요 시장이 한국이 아니라 일본과 미국이라는 얘기다. 지금 계획으로는 여성복도 론칭해 내년 뉴욕 패션위크 기간에 전시회를 하고 싶은데 일단 첫 시즌이 끝나고 나야 판단할 수 있을 것 같다.

데뷔 8년 차다. 한국에서 디자이너로 살아 남는 법에 대해 말할 수 있겠나

나도 잘 모르겠다(웃음). 아직 답을 못 찾았다. 한 가지 분명한 건 이제 ‘한국에서만’ 으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디자이너가 디자인도 하고 판매도 하는 한국 패션계의 시스템은 디자이너에게 정말 치명적이다. 그래서인지 많은 디자이너들이 해외로 진출하고 있고 그들은 나보다 훨씬 더 잘하고 있다.

나 역시 이번 일본 진출을 통해 후배 디자이너들에게 좋은 선례를 남겨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낀다.

로리엣의 성공을 기원하며,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나는 운이 좋았다. 도움을 많이 받았고 여기까지 왔다. 로리엣에 대해서는 아직 결과가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뭐라 말할 수 없지만 지금까지의 도움의 손길들을 떠올리면 이제 진정한 평가를 받을 수 있도록 더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이런 이야기도 결과가 나오면 그때 하고 싶다.



황수현 기자 sooh@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