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혁명가] (42) 공연기획사 뮤지컬 해븐 박용호 대표성에 눈뜬 청소년들의 갈등 그린 뮤지컬 '스프링 어웨이크닝' 주목"작품의 진정성과 메시지로 승부하는 '좋은 공연' 계속 만들고 싶어"

“제 사춘기요? 성적 호기심과 알 수 없는 불안, 질투심, 혼란스러움, 방황으로 점철된 극중 모리츠(조정석)가 사춘기를 회상하게 만드는 에너지를 주고 있어요. 게다가 친구들에 비해 조숙한 모범생이자 무신론자이기도 한 천재 소년 멜키어(김무열)의 모습에서 저와 그 시절 제 친구의 모습을 엿보기도 한답니다.”

임신과 낙태, 자살, 동성애, 섹스신 등 뚜껑을 열기 전부터 ‘파격’이란 이슈를 몰고 다녔던 뮤지컬 <>이 닻을 올렸다. 이 작품은 어른도 아이도 아닌 막 성에 눈을 뜬, 섹스를 하고 싶은 성적 호기심으로 가득한 열다섯 살 청소년들이 자신들을 규범과 권위로만 억압하려 드는 어른들과 팽팽하게 대립하고 갈등하는 모습을 잘 그려냈다.

교복 속에 감춰두었던 마이크를 꺼내는 순간 1891년 독일 청교도 학교는 시공간을 초월해 현대로 넘어오는 기분마저 든다. 마치 인습과 규범에 얽매인 기성세대에게 반발하는 청소년들의 방황과 불안한 심리는 예나 지금이나 다를 게 없다는 듯. 팝 싱어송라이터 던컨 쉭의 강렬한 록음악과 극작가 스티븐 세이터의 ‘The Bitch of Living’과 ‘Totally Fucked’를 부를 때는 배우들이 가슴 속에 숨겨놓은 마이크를 꺼내듯 관객 또한 마음 속 마이크를 꺼내어 함께 어깨를 들썩이며 발을 구르고 싶은 충동마저 느끼게 한다.

이것은 <>이 지닌 불안하고 왠지 모르게 폭발한 것 같은 청춘의 에너지가 빚어낸 힘 아닐까. “2년 전쯤 처음 오프 브로드웨이에서 이 작품을 본 순간 심장이 멎는 줄 알았어요. 신선함이랄까요. 저에게 은 충격과 감동 그 자체였어요.”

<김종욱 찾기>, <쓰릴미>, <쉬어 매드니스>, <마이 스케어리 걸>, <스위니 토드>, <알타보이즈>, <씨왓아이워너씨>. 흥행을 했든 안 했든 레퍼토리를 나열한 순간 눈치가 빠른 사람들이라면 해븐, 아니 박용호 대표의 작품 고르는 안목에 주목할 것이다. 그는 주류에서는 선택하지 않는 ‘비주류’ 소재를 용감하게 선택하는 프로듀서로 유명하다. 그도 그럴 것이 박 대표는 ‘과연 저런 소재가 한국 공연 시장에서 먹힐까’라는 생각이 들 만큼 복수, 스릴러, 동성애, 살인, 섹스 등 다양하고 신선한 소재들을 과감하게 시장에 내놓았던 터였다.

“요리사가 새로운 음식을 개발하고 레시피를 만드는 것처럼 낯설고 새로운 장르를 선보이면 트렌드세터라 할 수 있는 공연 마니아들이 먼저 알아봅니다. 비주류 소재라 여겨지던 낯선 장르도 곧 주류가 되기도 하고요. 우리나라 관객들이 다양한 작품을 두고 취향에 맞는 작품을 골라 볼 수 있는 최소한의 선택권을 주고 싶었어요. 그런 면에서 저는 다양한 장르의 공연을 제작하는 ‘얼리 어답터’라 할 수 있는 거고요.”

특히 이번 작품 <>은 박 대표가 ‘목숨’을 건 작품이기도 했다. 일찍이 브로드웨이의 오리지널 프로듀서와 라이선스 문제를 협의 중이었지만 문제가 터지고 말았다. 그 사이 <>이 토니상 8개 부문에서 상을 받자 한국 제작사들이 너도나도 달려든 것이다. 한 순간에 ‘몸값’이 몇 배로 오른 <>을 박 대표 또한 포기할 수만은 없었다. 오래 전부터 확신을 가진 작품이었으니 말이다. 최후의 승자는 박용호 대표였다. 작품의 가치와 진면목을 일찌감치 알아보고 애정을 가졌던 박대표의 안목에 오리지널 프로듀서가 손을 들어준 것이다.

박용호 대표는 서울대 음대 성악과 출신으로 공연 프로듀서를 거쳐 뮤지컬 제작사 대표가 되었다. 그는 일에 파묻혀 사는 일벌레에 가깝다. 그 흔한 골프를 치지도 못하고 술도 못 마시는 편이다. 학교, 집, 성당을 오갔던 학창시절처럼 공연장과 집, 회사를 오가며 지금도 ‘모범생’에 가까운 생활을 하고 있단다.

“고등학교 2학년 사춘기 시절에 방황을 했어요. 갑자기 음대에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주변에서 만류했지만 그땐 너무 확고했어요. 공부도 곧잘 했던 고등학생이 성악으로 대학을 가겠다니 황당했었나 봐요. 물론 성당에서 성가대를 하며 노래도 불렀고 재능이 있다는 것도 알았죠. 그 시절 방황을 노래로 해소하고 싶었나 봐요.”

하지만 그는 대학 입학 후 4개월도 안되어 학교 생활에 환멸을 느꼈다. 꼭 음악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다. 타고난 재능을 발휘할 수 있는 일이 무얼까 곰곰이 생각하다 그는 졸업 후 유학을 가기로 결심했다. MBA 과정을 밟으며 경영공부를 하려 했지만 삼성영상사업단에 원서를 내고 시험을 친 결과 ‘덜컥’ 합격하면서 공연계에 발을 들여놓았다.

스프링 어웨이크닝

“삼성영상사업단에 입사해서도 저는 말단 직원 개념으로 일한 적이 없어요. 마인드는 늘 ‘사장’이었죠.(웃음) 아마 저의 사수들이 참 힘들었을 텐데 모두 저에게 선택권을 주고 믿고 맡기는 편이었어요. 하지만 막상 사장이 되어 보니 ‘프로젝트 프로듀서’랑은 천지 차이더군요.”

삼성영상사업단과 신씨뮤지컬컴퍼니 등 소위 대기업이란 주류에서 시작해 극단이라는 비주류에 이르기까지 그가 겪은 다양한 경험은 훌륭한 자양분이 되었다.

“주류와 비주류라는 이분법은 우리나라 공연 시장에만 존재하는 것 같아요. 조금 독특한 소재다 싶으면 파격이라는 수식어와 함께 왼손잡이 취급을 하잖아요. 오히려 다양한 작품이 나오면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받아들이는 태도도 필요할 텐데요.”

2004년 그가 설립한 해븐은 다양한 장르를 선보이는 뮤지컬 회사로 평단과 관객의 지지를 받아왔다. 2006년부터는 대학로 공연전용극장 ‘예술마당’ 2개관을 CJ엔터테인먼트와 공동 운영 중이고 올해 3월엔 신촌에 ‘더 스테이지’라는 복합문화공간을 개관해 소극장 운영에도 앞장서고 있다. 특히 뮤지컬 <쓰릴미>, <마이 스케어리 걸>과 영화 <살인의 추억>의 원작 연극인 <날 보러 와요> 등 작품성이나 흥행성으로 인정받은 작품들을 ‘더 스테이지’에서 만나볼 수 있다.

“뮤지컬 시장이 힘들어요. 워낙 시장 규모도 작고 수익도 좀처럼 얻기 힘들거든요. 돈을 벌면 다음 작품 만드는 데 다 쏟아 붓는 게 현실이에요. 그나마 공연을 제작하는 프로듀서들은 믿음과 희망이라는 ‘신기루’ 하나만 믿고 흥행을 위해 달리는 거죠. 소수지만 공연을 즐기는 마니아들이 늘어나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박 대표가 힘든 시기에 공연장을 운영하는 이유는 한 가지다. 자신이 만들고 싶은 공연을 대관하지 않고도 해븐이 운영하는 공연장에서 단골 고객에게 매 시즌마다 발표하고 싶은 작은 바람 때문이다. 박 대표는 그걸 ‘가두리 양식’이라고 표현한다.

“의사에게 처방을 받듯 공연이 한 사람의 인생을 이끌어주고 치유까지 해주면 얼마나 좋을까요. 진정성에 승부를 걸어 정말 좋은 공연을 만들고 싶어요. 작품이 주고자 하는 메시지가 관객에게 잘 전달되어 감동까지 받으면 더할 나위 없겠죠. 꽃미남 배우를 보러 오는 관객도 좋지만 작품마다 특성에 몰입하고 지지해주며 아낌없이 리뷰를 통해 응원하는 관객이 더 사랑스럽게 느껴지는 건 욕심일까요.(웃음)”



류희 문화전문라이터 chironyou@par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