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초대석] 이시영 시인등단 40년 기념해 그의 시집 11권서 작품 골라 시선집 발표

“그는 시인을 앞세워 걷지만, 목적지에는 먼저 도착해서 시인을 기다리는 때가 많다. 그는 시인보다 작게 웃고, 언제나 시인의 울음보다 제 목소리를 낮춘다.”

그를 소개하며, 누군가 이렇게 말했다. 한국의 내로라하는 시인에게 가르침을 받고, 누구보다도 많은 시집을 편집했으며, 그 자신도 시인인 사람. 이시영 시인이 등단 40년을 맞았다.

서정과 서사 사이에서

“제가 일찍 데뷔를 해서 그런 거죠. 새삼스럽고 쑥스럽기도 했는데, 저 모르는 사이에 후배들이 기획을 하고 낸 거라, 고마웠지요.”

소회를 묻는 질문에 그는 담담하게 말했다. 등단 40년을 기념해 후배들은 시선집 <긴 노래 짧은 시>를 냈다. 김정환, 고형렬, 김사인, 하종오, 네 명의 문인들이 그의 시집 11권에서 작품을 고르고, 배열하고, 해설을 썼다. 80편의 시가 담긴 이 시선집에는 40년, 그의 작품 세계가 함축돼 있다. 이 시선집을 내는 동안 그가 했던 일은 ‘긴 노래 짧은 시’란 제목을 붙이는 것이 전부였다.

‘사석에서 이시영은 40년에 걸친 자신의 시 창작품 전체를 ‘긴 노래, 짧은 시’라는 말로 표현한 적이 있다. 이 요약은 이시영 시를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단서일 뿐 아니라, 이시영 시를 통해 얼핏 평범한 이 내용이 아연 의미심장해진다.’(124쪽, 해설 ‘시의 장면과 시라는 장면, 그리고’ 중에서)

기실, 이 두 마디는 그의 시 세계를 함축하는 말이다. 선생의 시는 단 몇 문장으로 완결성을 갖는 단시(短詩)와 이야기 같은 산문시로 나뉜다. 이 두 형식은 ‘서정성’과 ‘현실’이라는 시인의 이상향을 담는 그릇이다.

서사성이 강한 산문시는 1970년대와 2000년에 주로 선보였다. 시인은 “젊은 시절 사라져가는 농촌공동체를 복원하는 시를 쓰고 싶다는 생각에서 서사성이 강한 시를 많이 발표했다”고 말했다. 그는 2000년대 다시 현실주의적인 시를 쓰게 되면서 산문시를 자주 선보인다. 2003년 발간한 시집 <은빛 호각>과 2004년 <바다 호수>는 그가 몸담은 창비 시절에 대한 기억을 담은 서사시로 가득하다.

2007년 발간한 시집 <우리의 죽은 자들을 위해>는 수난 받는 타자들(카슈미르, 인도네시아, 레바논, 팔레스타인 등)의 말과 실상에 대한 이야기를 시로 승화 시킨다. 스트레이트 기사, 르포 작품과 같은 이야기는 그의 손과 입을 통해 한 편의 시가 된다.

“로버트 카파, 앙리 카르테브레송의 사진집을 많이 갖고 있는데 기록 사진은 어떤 예술 작품보다 많은 이야기를 갖고 있다고 생각해요. 브레송의 사진 중에 2차 대전 이후 해방된 파리에서 소년이 아버지 심부름으로 포도주 한 병을 사가지고 기쁜 표정으로 골목길을 뛰어가는 작품이 있어요. 종전 후 해방감, 가난 같은 복잡한 상황들이 소년의 표정에 다 나와 있죠. 기사도 말하자면 가공한 어떤 현실이나 예술보다도 더 현실적이고 직접적이고 예술적인 충격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 기사를 따와서 인유시(引喩詩)로 쓸 수 있다고 봐요. 산문과 시 사이의 아슬아슬한 경계이죠.”

단시는 90년대 들어서면서 주로 보이는 경향이다. 시대 흐름이 바뀌면서 고도의 긴장으로 충전된 시, 팽팽한 긴장 안에 함축이 있는 시를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짧은 시의 행간에는 수많은 이야기가 스며 있다. 그의 시를 두고 신경림 시인은 “벌처럼 작으면서도 꿀과 침을 동시에 가진 촌철살인의 에피그램, 그리고 냉혹하고도 정확한 카메라로 포착한, 유머러스하면서도 인간미 넘치는 순간의 사서로 이루어져있다”고 말했다.

‘마른논에 우쭐우쭐 찬 봇물 들어가는 소리/앗 뜨거라! 시린 논이 진저리치며 제 은빛 등 타닥타닥 뒤집는 소리’ (시 <봄논> 전문)

<창비>와 함께한 날

그를 소개하며 출판사 <창비>을 빼 놓을 수 없다. 1980년 입사해 2003년 퇴직할 때까지, 그는 23년 2개월을 창비와 함께 했다. 1974년 송기원 소설가와 함께 자유실천문인협의회(이하 자실)의 ‘가방총무’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창비와 인연을 맺게 됐던 것. 그는 당시를 회상하며 “자실이 전위 조직이라면, 창비는 병참기지였다. 작품을 발표하고, 작가를 생산하는 출판사였다”고 말했다.

자실과 창비의 구분이 없던 터라 자연스럽게 출판사 직원이 된 것이라고. “출근해 안기부 직원을 만나고 낮에는 문인과 술 마시는 게 일이었던”그 시절의 이야기는 그와 창비의 역사이자 한국현대문학사이기에, 너무나 잘 알려진 그 일화들을 인터뷰에서 일일이 묻지는 않았다. 다만, ‘시인’이 20여 년의 세월을 한 ‘직장’에 몸담았던 이유가 궁금했다.

“그렇게 오래 있을 생각은 없었는데 시대가 그렇게 만든 것 같아요. 창비에 가자마자 잡지 2권 만들고 폐간되고, 또 열심히 아동문고 만들어서 돈 모아 김지하 시인 <타는 목마름으로> 내니까 안기부에서 압수당하고, 추징금 물리고. 노태우 정권 들어 복간돼서 좀 하다가 다시 황석영 작가 <북한 방문기>실어서 구속되고. 사건의 연속이니까 정신이 없었던 거죠.”

그는 이야기 한 토막을 들려주었다. 1979년 박태순 작가가 안기부에 조사를 받게 되면서 문인들이 밤샘 농성에 들어갔다. 그때 작고한 이문구 작가가 단식 농성을 하겠다고 소금 한 줌과 물 한 주전자를 갖고 방으로 들어가 문을 잠그고 단편 하나를 완성한 후에 방에서 나왔다고 한다. 그 작품이 <우리동네> 시리즈 중 하나인 <우리 동네 장씨>(1980)다.

“문인들이 당시 싸움만 한 게 아니고 좋은 문학을 생산했잖아요. 열심히 살고, 열심히 쓰는 분들의 모습을 보고 공부한 셈이죠.”

이데올로기가 강한 직장에서 근무한다는 것은 창작자에게 독이 될 수 있을 터다. 실제로 그는 창비에서 근무한 지 10년 만에 두 번째 창작집을 낼 수 있었다. 시인은 “그걸 극복하고 나서도 갈등과 긴장의 연속이었다”고 말했다.

“창비의 이념보다는 글을 쓰는데 온전한 자기만의 공간과 사색의 시간이 필요하니까 그 점이 힘들었죠. 10년이 지난 다음 창작 노트를 갖고 다녔어요. 쓰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절박감이 있어서.”

긴 노래 짧은 시

편집인 이시영과 출판사 창비를 오롯이 떼어놓고 생각할 수는 없지만, 시인 이시영을 말하며 시가 아닌 출판사의 이야기를 하기란 참 멋쩍은 것이다. 이야기는 다시, 시집으로 넘어갔다. 제1부(김사인 정선)는 1970,80년대 시집에서 24편, 제2부(고형렬 김정환 정선)는 1990년대 시집에서 28편, 그리고 제3부(김정환 하종오 정선)는 2000년대 시집에서 28편을 수록했다.

시선집은 삶의 희로애락을 담은 이야기시(<정님이> <공사장 끝에>), 문단의 산 역사와 시대정신을 담은 산문시(<푸른 제복><1974년 11월>), 시인 특유의 서정이 담긴 여백과 행간 넓은 단시(<야옹><사이>)들까지 다채롭게 빛을 발한다. 후기시로 올수록 단시의 아름다움과 냉철한 시대정신을 놓지 않는 산문시로 전쟁과 평화, 이주노동자, 철거민 등 다각적인 문제를 포착해 낸다.

‘이 바람 지나면 동백꽃 핀다/바다여 하늘이여 한 사나흘 꽝꽝 추워라’ (시 <오동도> 전문)

인터뷰에서 그는 가장 영향을 받은 시인으로 서정주를 꼽았는데, 그의 말을 듣고 시 <오동도>를 다시 읽어보니, 이 시는 마치 미당의 시 <동천>의 오마주처럼 읽히기도 했다. 그가 좋아하는 자작시로 꼽은 <야옹>, <사이>도 압축적인 문장이 긴장을 갖고 있는 단시들이다.

“미당에 대한 평은 엇갈리는 듯하다”고 말하자, 그는 잠깐 침묵하다 “예술가는 어떤 면에서 모순적인 존재”라고 답했다.

“가장 윤리적인 사람이 가장 훌륭한 예술가가 되라는 법은 없죠. 예술의 세계라는 게 본연의 의지와 상관없이 그 자체가 작가를 리드할 때가 있어요. 발자크가 왕당파였지만, 그의 소설에는 리얼리즘이 살아있는 것처럼. 서정주 시인을 옹호하는 건 아니고 김소월, 만해 한용운 다음으로 한국 시를 갱신한 인물이지요.”

그는 “좋은 시는 시 쓰는 사람을 이끌 때가 있다”고 말했다. 가끔 소설가들도 ‘내가 만든 작중 인물을 내가 감당하지 못할 때가 있다’고 말할 때가 있다. 작품이 작가를 밀어 올릴 때다. 이 충만한 기쁨이 문인을 창작의 고통으로 밀어 넣는 셈이다.

“이제 새로운 세계를 모색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지금까지 해온 것과 다른 걸 보여주는 거죠. 형이상적인 세계도 모색해 보고 싶고, 고향 지리산에 관한 서사시도 쓰고 싶고, 예술적으로 충만한 시도 쓰고 싶고. 시에 대한 열정을 잃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하지요.”

이시영 시인…


1949년 전남 구례에서 태어남

1968년 서라벌예대 문예창작과 입학. 서정주, 김동리, 박목월, 김현승, 김현 등에게 수학

1969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시조'수'가 당선되어 등단

1980년 <창작과 비평> 편집장으로 입사

2003년 23년 2개월간 근무한 <창작과 비평>사 퇴직

2006년 단국대 예술대학 문예창작과 초빙교수로 임용

시집 <만월>(1976), <바람 속으로>(1986), <길은 멀다 친구여>(1988), <이슬 맺힌 노래>(1991), <무늬>(1994), <사이>(1996), <조용한 푸른 하늘>(1997), <은빛 호각>(2003), <바다 호수>(2004), <아르길의 향기>(2005), <우리 죽은 자들을 위해>(2007) 등





이윤주 기자 miss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