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태환 연출가연극 '마땅한 대책도 없이' 냉혹한 현실 속 사람다움에 대한 고민 던져

최근 국내 직장인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70%가 스스로를 ‘워킹 푸어’(working poor)라고 답했다고 한다. 워킹 푸어란 근로 빈곤층으로, 일을 계속해도 빈곤을 벗어날 수 없는 개인이나 가족을 말한다. 일을 계속해도 현재의 상태를 벗어날 수 없지만, 그렇다고 일을 하지 않으면 그 생활조차도 영위할 수 없다는 자조적인 분위기마저 내포하고 있어 씁쓸하다.

태어날 때부터 주어진 부가 없어 일을 할 수밖에 없는 근로자들, 그러나 그들이 노동력을 제공할 자리에서 조차 밀려나고 있다. IMF사태로 인해 2001년엔 대우자동차의 대대적인 구조조정, 한미 FTA로 전국이 시끄러웠던 2007년, 그리고 최근에야 노사합의로 파업이 중단되었지만 여전히 휴화산 같은 쌍용차 사태 등은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노동자들의 이야기가 담긴 연극 한 편이 마침 무대에 올랐다. <나생문> <친정엄마와 2박 3일> <고곤의 선물> 등을 연출해 호응을 이끌어낸 대학로의 젊은 연출가 구태환 씨(38)의 신작 <마땅한 대책도 없이>이다.

2007년 일종의 연극 콘테스트인 거창국제연극제에서 단 한 차례 선보인 작품으로 에피소드를 더하고 완성도를 높였다. 당시 거창국제연극제에서 남자배우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 연극은 불과 4~5페이지에 불과한 영국작가 아서 모리슨의 동명의 작품을 모티브로 하고 있다. 에피소드는 한국의 실정에 맞게 조정되었고, 사실감을 높이기 위해 대사는 서울역 노숙자들의 말을 인용하기도 했다.

“대학 1학년 때쯤 본 소설이에요. 처음 읽고 ‘헉’했죠. 보통 이런 류의 작품은 가진 자는 악역이고, 없는 자는 선인으로 표현되기 마련인데, 이 작품 속엔 가진 자 계급이 한 명도 나오지 않죠. 현실에서 없는 자와 가진 자는 공존하지 않거든요. 각각의 서클을 이루고 사는데, 없는 자들 안에서도 계급이 있고 분배의 불평등 속에 엇갈리는 삶의 명암이 있는 거죠. 그걸 담아내려고 했습니다.”

연극 <마땅한 대책도 없이>는 생계를 위해 거리로 나선 하청업체의 계약직 노동자 만석과 정만의 이야기다. 회사의 파업으로 사측과 첨예하게 대립했던 그들은 ‘먹고 살기 위해’다시 일용직 일자리를 찾아 전국을 전전한다. 냉혹한 현실에서 무기력함을 느끼면서도, ‘언젠가는’이라는 실낱같은 희망을 안은 그들. 그런데 결말이 충격적이다.

“꼭 해피엔딩일 이유는 없는 거 같아요. 문제 제기와 더불어 양면성에 대해서도 생각했습니다. 전 이 작품에선 노동자의 시선으로 바라봤지만, 사용자의 입장도 있을 거고, 분규를 해결하는 자의 입장도 있을 것이고, 전혀 관계없는 제3자의 입장도 있을 거거든요. 노동자의 입장에서는 불행할 수 있지만 다른 이들의 입장에선 행복한 결말이 될 수도 있는 거겠지요.”

남진의 ‘저 푸른 초원 위에’는 차가운 콘크리트 바닥으로 내몰린 서민들의 마음을 대변한다. 노동운동가인 동료가 한참 열변을 토할 때, 만석은 딸이 가지고 싶어하던 ‘피아노를 싸게 파는 곳’을 물어보는 장면에서 그들의 이상향이 여실히 드러난다. 노동운동보다 앞선 것은 결국 가족의 행복인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따스하지만은 않다. 그것이 구태환 연출가가 주목하는 점이다.

“내 모습은 알 수가 없어요. 거울을 보거나 영상을 통해서야 내 모습을 확인할 수 있지요. 전 연극이 그런 역할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연극을 위한 연극도 있을 수 있고, 어떠한 해답을 제시할 수도 있겠지만 전 질문을 하고 싶었습니다. 보는 동안 불편할 수 있지만 고민하고 철학적 사유를 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죠.” 구태환 연출가가 생각하는 연극의 소임이다. 그리고 그는 이 시대가 요구하는 연극성이 과연 무엇인지에 대해서 여전히 고민 중이다.

“가장 관심을 가진 소재는 인간이에요. 증오하기도하고 사랑하기도 하고 배반하기도 하고. 육체만 놓고 보면 고기덩어리일 뿐이지만 다양하게 드러나는 인간성. 인간이 과연 무엇일까에 대해서 늘 생각하고, 담아내고 싶은 거죠. 이 작품 역시 결국 인간에 대한 이야기이죠.”점점 더 거친 경쟁의 격랑에 시달리면서 인간미를 잃어가는 시대. 인간에 대한 성찰은 오히려 소구력을 갖기 마련이다.

우연히 쌍용차 사태와 맞물려 공연을 올리게 되었다는 그는, 연극을 올리는 과정에서 2년 전보다 더 잔인하고 냉정해진 현실과 맞딱뜨려 더 씁쓸했다고 말했다. 분배의 그늘 속에서 엇갈리는 명암, 냉혹한 현실 속에서 건져 올릴 수 있는 사람다움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이 담긴 연극 <마땅한 대책도 없이>는 대학로 정보소극장에서 이 달 30일까지 계속된다.

앞으로의 연극에서는 현실 투영의 작품뿐 아니라 다양한 인간군상만큼이나 넓은 스펙트럼을 가져가고 싶다는 구태환 연출가에게는 올해만 세 작품이 더 예정되어 있다. 9월 말부터 <나생문>의 재공연, 12월에 <13월의 길목>이라는 창작 작품이다. 지난해가 구 연출가에게 ‘고전탐구의 해’였다면 올해는 ‘창작의 해’로, 아직은 제목을 밝힐 수 없는 또 다른 창작 연극도 준비 중이다.



이인선 기자 kell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