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니스 비엔날레 '은사자상' 나탈리 뒤버그프라다 트랜스포머 현대미술 전시 위해 방한'턴 인투미' 선 보여

천장에 달린, 태양을 닮은 둥근 스크린에는 붉은빛이 채색된 또 다른 태양이 투사되고 있다. 하늘 높이 솟은 태양이 대지로 떨어지면서 천지는 오렌지색이 되었다가 곧 보라색이 된다. 나탈리 뒤버그(31)의 초기작 ‘선셋(Sunset)’이다.

그녀는 올해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은사자상을 받았다. 황금사자상이 평생공로상의 성격을 지닌다면 은사자상은 가장 촉망받는 젊은 아티스트에게 주어진다. 애니메이션 혹은 클레이메이션이라는 마이너 장르의 작가라는 점도 그녀를 향한 호기심을 자극한다.

사실 그녀는 베니스 비엔날레 이전부터 유럽과 미국에서 이름을 알려왔다. 스웨덴 출신으로 베를린을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는데, 2006년 스톡홀름에서의 단독전시 이후 2007년 런던의 테이트 브리튼과 비엔나의 쿤스트할레 빈에서 전시했다. 2008년 프라다 재단에서 단독으로 개최한 밀라노 전시를 비롯해 올해 파리의 퐁피두 센터에서도 전시한 바 있다.

나탈리 뒤버그, 그녀가 한국을 찾았다. 지난 4월부터 경희궁 앞에서 진행 중인 프라다 트랜스포머 프로젝트의 현대미술전시를 위해서다. 이를 위해 프라다 트랜스포머는 최근 구조물을 한 차례 더 회전했다.

회전으로 협소해진 공간에는 한 차례에 25명 만이 입장할 수 있다. 이번이 세 번째로, 바닥은 십자가 모양이 됐다. 다양한 상징적 의미가 있는 십자가형 위엔 나탈리 뒤버그의 ‘턴 인투미(Turn into Me)’가 펼쳐지고 있다.

그녀는 이번 전시가 ‘하나의 도전’이라고 말했다. “트랜스포머는 생각보다 공간이 작았어요. 구조물이 강력하다 보니 고민을 해야했지요. 건축과 함께 갈 것인가, 말 것인가를요. 처음엔 막막했지만 완성 후엔 만족스러워요. 애니메이션은 미니멀하죠. 그것을 거대한 건축물 속에 담아내는 일은 곧 소우주와 대우주가 만나는 것과 같았어요. 전 이 작품을 통해 사람들을 다른 세상, 곧 무의식 속으로 초대하고 싶었어요.”

프라다 재단 측은 바닥이 십자가형인 것에 착안해 성당처럼 꾸미자는 제안을 하기도 했지만 그녀는 내부를 흰색 펠트로 감쌌다. 그리고 그 위에 그림을 그렸다. 천장 부근에 닿을 듯한 거대한 그림까지도 그녀는 안전벨트를 매고 그려냈다. 홀로 부유하는 충혈된 눈동자와 해골, 수백 개의 빨판이 그로테스크하면서도 관능적이다. 그녀의 표현을 빌자면 ‘파괴적 페인팅’이다.“내 작품은 가까이 가서 봐야만 제대로 파악할 수 있죠. 시적이면서도 파괴적이에요.”

마치 동굴이나 고래의 뱃속 혹은 어머니의 자궁 속 같기도 한 아늑한 공간엔 기괴함과 유머가 공존한다. 하얀 막을 걷고 들어서면 거대한 감자, 돌무덤, 태양을 닮은 스크린, 그리고 가죽이 반쯤 벗겨진 고래 두 마리가 자리하고 있다. 그 안에는 각기 다른 애니메이션 다섯 편이 상영되고 있다. 그녀의 영상엔 썩어가는 신체, 인간의 반성 없는 잔혹성과 폭력성, 그 뒤에 숨겨진 쾌락, 그리고 사회적 가면 등이 때론 공포스럽게 때론 유머러스하게 표현되어 있다.

(좌, 우) Turn into Me

대상을 한 컷씩 움직이면서 찍는 방식으로 이루어진 그녀의 작품 속엔 나체가 자주 등장하고, 등장인물들이 하나같이 몸에 줄을 매달린 채로 움직인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나체 캐릭터가 다른 캐릭터보다 더 많은 메시지를 전달한다고 생각해요. 방어기제가 없어서 순수하고 상처입기 쉽지요. 또 벗은 몸의 인형이나 점토는 오히려 관객들과의 공감 폭을 넓히거든요. 그리고 줄에 매달린 인형은 곧 우리의 모습이 아닐까 싶어요. 하고 싶지 않아도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어쩔 수 없이 해야 할 일들이 많잖아요.”

사뭇 불편한 시선을 던지는 그녀의 작품의 발로는 ‘두려움’이다. 학창시절 그녀에게 가장 큰 영향을 주었던 조르주 바타유(Georges Bataille)의 글은 강한 공포와 불안을 심어주었다. “바타유의 수업은 나의 불안감을 모두 몸 밖으로 분출하도록 유도했어요. 당시 전 경험이 없는 어린 나이여서 더 충격적이었지요. 두려움, 그리고 두려움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가 저의 숙제입니다.”

그 런 그녀의 작업을 격려하는 이는 동갑내기 작곡가 한스 베르그다. 현재 나탈리 뒤버그의 옆 스튜디오에서 작업하는 한스 베르그는 일렉트로니카 프로듀서 겸 작곡가다. 뒤버그와는 2004년 처음 공동작업한 이후 꾸준히 호흡해오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 ‘바위가 천장에서 떨어지는 느낌, 딱딱하면서도 부드러운 사운드’를 사용했다는 한스 베르그에 대해,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그는 항상 제가 작업을 시작할 때 많은 에너지를 불어넣어 줍니다. 제가 언어로 적절히 표현할 수 없을 때, 대신 얘기해주기도 하지요.(웃음) 그의 음악은 언제나 관람객과 제 작품 사이를 연결해줍니다. 음악 자체도 아주 강렬하지요.”

언뜻 수줍어 보이지만 그녀는 자신의 작품에 대해 말할 때만큼은 단호하고 적절한 단어를 골랐다. “이번 전시가 좋은 반응을 불러올 것이라 믿는다”는 제르마노 첼란트 프라다재단 예술총감독의 말에 그녀는 곧바로 이렇게 덧붙였다.

“좋은 반응은 내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좋든, 나쁘든, 어떤 형태로든 반응이 있다는 것이 중요한 거죠.” 나탈리 뒤버그의 ‘턴 인투미(Turn into Me)’는 8월 15일에 시작해 9월 13일까지, 경희궁 앞에 위치한 프라다 트랜스포머에서 계속된다.



이인선 기자 kell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