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철훈 소설가러시아 볼세비키 혁명 주역으로 전설이 된 한국인 여성 책으로

“유관순보다 앞선 시기에 이미 국제적 견지에서 성숙한 정치인으로 활동한 그를 남북이 통일된다면 함께 기리게 되지 않을까”

1910년대 러시아 볼셰비키 혁명의 한 가운데 놀랍게도 한국인 여성이 있었다. 알렉산드라 페트로브나 김 스딴께비치(1885~1918). 제정 러시아를 뒤집은 혁명의 주역이었던 그는 러시아 민중 사이에 전설로만 남아있었다.

사회주의자인 동시에 한인사회당 결성을 주도하기도 한 민족주의자였던 그의 실존이 ‘일국 사회주의’를 주창한 스탈린 시대를 거치며 부정되고 역사 속에 묻힌 때문이다. 아무르 강에 수장된 그를 기리는 러시아 민중들은 이 강에서 잡힌 물고기는 먹지 않는다고 한다.

당초 레닌 정부는 건국의 주역으로 김을 추앙했고 동상 건립 등을 추진했었다고 한다. 모스크바 붉은 광장의 역사박물관에 10월 혁명의 주역으로 레닌의 부인과 나란히 사진이 걸려 있었다는 증언도 있다.

흐르는 강물 아래 사라졌을 그의 몸과 같이 묻혔던 ‘이야기’를 되살린 것은 문학전문 기자이자 시인·소설가인 정철훈(50)씨다. 정 작가는 3년여의 러시아 유학기간 동안 러시아 국립 문서보관소, 각 자치공화국의 문서보관소·박물관의 기록물을 뒤지고 김을 기억하는 후손과 고려인 등을 만나 사실을 취합한 끝에 그의 실존을 뽑아냈다. 정 작가는 이미 지난 1996년 <김 알렉산드라 평전>을 내놓은 바 있다.

지난달 24일 <소설 김 알렉산드라>를 펴낸 정 작가를 12일 서울 여의도에서 만났다. 정 작가는 “레닌, 백위군, 혁명 등 시대적 장치를 걷어내면 그에게는 강이라는 하나의 이미지만 남는다”며 “시대와 운명에 저항한 한 아름다운 인간의 이야기”라고 요약했다.

우랄의 로자 룩셈부르크

김 알렉산드라의 삶은 얼마 전 목이 잘려나간 채 본인으로 추정되는 시신이 발견된 로자 룩셈부르크(1871~1919)와 닮아있다. ‘마르크스 이래 최후의 두뇌’, ‘피에 굶주린 로자’라는 엇갈린 평가를 받기도 하는 그는 독일 공산당 전신인 스파르타쿠스단을 설립한 여성이다.

김과 로자의 공통점은 더 있다. 바로 ‘죽음’의 과정이다. 김은 혁명의 와중에 백위군에 의해 총살된 뒤 아무르 강에 수장됐다. 로자는 독일 우파 민병대에 의해 총살됐고, 그의 시신은 베를린 운하에 내던져졌다.

김은 어떻게 러시아까지 가서 볼셰비키의 혁명의 핵심 지도자가 됐을까. 정 작가의 추적에 의하면 김은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뤼순까지 이어지는 시베리아 횡단열차의 동부축 공사를 맡았던 철도회사를 운영하던 아버지를 둔 이주 1.5세다.

김은 극동 시베리아의 우스리스크에서 태어나 아버지의 일터인 철도 공사판에서 지내며 노동자들 틈바구니에서 자랐다. 어린 시절 친구 스딴게비치와 결혼했으나 아들 하나를 둔 채로 별거했다. 이후 러시아정교 신부 오바실리와 사랑에 빠져 둘째 아들을 낳았다.

그러나, 그는 가정생활에 안주하지 않았다. 1915년 가족을 떠나 우랄의 페름시 나제진스크 목재소로 가 통역을 하다 착취당하는 조선·중국인 노동자의 인권을 대변하는 우랄노동자 동맹을 조직하며 운동가로 변신한다.

책에는 당시 착취와 억압에 시달리던 이주노동자들의 현실이 적나라하게 묘사돼 있다. 벌목장에서 일하던 조·중 노동자는 심한 매질 끝에 살해되기도 한다. 소설 속의 김은 이렇게 말한다.

“흥분을 가라앉히세요. 우리는 분노를 노동자장에서 한꺼번에 분출해야 됩니다. 지금은 분노와 흥분의 에너지를 한껏 몸 속에 저장해둬야 합니다. 망자를 관에 안치하도록 합시다. 망자는 우리 자신들의 모습이라는 것을 똑똑히 기억해주기 바랍니다. 장가가 땅에 묻힐 때 우리도 함께 묻힌 것입니다.” – 책 155~156쪽

정 작가는 우랄에 있었던 이주노동자의 현실과 디아스포라(이산)에 주목했다. 정 작가는 “철저하게 절망하여 그 밑바닥에 닿으면 거기에서 새로운 정신, 새로운 자아가 탄생하고, 그때 우리는 바닥을 걷어차고 힘차게 수면위로 떠오를 수 있다”며 “우랄은 절망의 땅이자 새로운 시작의 땅이었다”고 말했다.

이후 1937년 20여만명이 강제 이주돼 노역하고, 서부전선에서 숨져간 ‘디아스포라’의 역사를 안고 있는 바로 그 땅에서, 이미 김 알렉산드라는 고려인을 뛰어넘어 노동운동과 혁명의 주역으로 활동했던 것이다.

쑤라, 시베리아를 넘어 강이 되다

우랄을 떠난 이후 김의 삶 역시 ‘비판’과 ‘저항’으로 점철돼 있다. 그는 이미 개인이 아니라 ‘공적 인간’이었다. 여성으로서, 시대적으로, 소수민족으로서 놀랍도록 거대한 발자취다. 정 작가의 시선을 따라 이데올로기라는 층위를 잠시 걷어내고 보면 그렇다.

우랄노동자 동맹 건설의 공을 인정받은 김은 1916년에는 러시아 사회민주당에 가입해 하바로브스크시(市) 당 비서가 됐고 극동에서 소비에트를 구축하는 임무를 맡고 동부로 가 블라디보스토크 등지에서 볼셰비키 혁명의 중심세력으로 활동한다. 그는 한국 최초의 사회주의 정당인 한인사회당을 발기했으며 1917년에는 극동소비에트 3차 대회에서 인민위원회 외무위원에 임명된다.

정 작가는 “알렉산드라는 자신이 몸 담았던 체제를 시대적 운명과 개인적 운명이 합쳐진 시간의 축적물로 보았다”며 “경계를 따라 이월하면서 생을 개척해야 한다는 성찰의 소유자”로 평가했다.

그러나, 김은 1918년 반혁명세력인 백위군의 공격을 받고 피신하다 체포돼 처형됐으며 시체는 아무르 강에 버려졌다. 러시아 하바로브스크시 마르크스가 24번지에는 그를 추모하는 기념비가 있다.

정 작가는 “쑤라는 삶이 ‘먼 거리로의 여행’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며 “우랄산맥을 넘나들며 러시아 전체를 하나의 화폭으로 삼았던 그의 삶은 사표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서른 셋의 나이에 신화가 돼버린 김 알렉산드라. 비판과 저항의 문화가 사라진 오늘의 시대를 사는 젊은이들에게 탐독을 권할 만한 거대한 ‘강’이다.

정철훈 작가는…


국민일보 인물팀 부장. 문화전문기자. 국민대 경제학과 졸업. 러시아 외무성 외교과학원 수료. '10월혁명 시기 러시아 극동에서의 한민족해방운동'으로 박사 학위.

1997년 <창작과 비평> 봄호에 '백야' 등 6편의 시를 발표하며 등단. 장편소설 <인간의 악보>, <카인의 정원>과 시집 <살고 싶은 아침>, <내 졸음에도 사랑은 떠도느냐>, <개 같은 신념> 등 펴냄.

<소련은 살아 있다>, <김 알렉산드라 평전>, <옐찐과 21세기 러시아>, <뒤집어져야 문학이다> 등 저술.





김청환기자 ch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