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상원의원 연아 마틴- 뉴질랜드 국회의원 멜리사 리2009 세계 한인 차세대 대회 '미래 한국인 리더'로 초청 받고 방한

마틴 연아 캐나다 연방 상원의원(왼쪽)과 멜리사 리 뉴질랜드 국회의원(오른쪽), 미국의 예비 한인 정치인 킴벌리 조가 그랜드힐튼호텔에서 열린 세계 한인 차세대 대회에서 함께 포즈를 취했다.

‘한국인의 해외 정계 진출, 여성이 더 유리해요!’

외국의 두 여성 정치인이 최근 서울에서 자리를 함께 했다. 한 사람은 캐나다인, 또 다른 한 명은 뉴질랜드 사람. 둘 모두 한국계이다.

연아 마틴(한국명 김연아) 캐나다 연방의회 상원의원과 멜리사 리(한국명 이지연) 뉴질랜드 국회의원. 재외동포재단이 개최한 2009 세계 한인 차세대대회의 ‘미래 한국인 리더’로 초청받은 두 사람은 의원이 된 이후 처음으로 한국을 찾았다.

연아 마틴 의원은 한국인 최초의 캐나다 상원의원이다. 지난 해 말 스티브 하퍼 총리로부터 상원의원에 지명된 그는 올 1월부터 의원직을 수행하고 있다. 미국처럼 상하 양원제를 실시하고 있는 캐나다는 상원 의원 105명 전체를 총리가 지명한다. 법안이 상정되면 상하 양원 모두를 통과해야 하는 등 의회로서의 권한과 지위는 똑같다.

멜리사 리 의원은 2008년 11월 뉴질랜드 총선에서 국민당 비례대표 후보로 나서 한인 이민자로서는 처음으로 뉴질랜드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뉴질랜드는 국회 전체 120석의 의원 중 58석을 전국구 형식인 비례대표로 선출한다. 그는 1992년 미국 연방 하원의원에 당선된 김창준씨에 이어 다른 나라에 정착한 한국인으로 그 나라 중앙 정치무대에 발을 들여놓는 두 번째 사례다.

“오히려 한국인이었기 때문에, 그리고 현지 한인 사회의 적극적인 지원 덕분에, 국제 사회에서 크게 성장한 한국의 드높아진 위상과 국력에 힘입어 의원이 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공교롭게도 두 사람 모두 의원 당선 직전 하원과 지역구 선거에서는 나란히 고배를 마셨지만 마치 약속이나 한 듯 상원과 전국구에서 당선 소식을 전했다. 또 교육이나 문화 등의 분야에서 다양한 사회공헌 활동을 해왔다는 공통점도 갖고 있다.

연아 마틴 캐나다 연방의회 상원의원

“글쎄요! 제가 만약 한국에서 계속 살았더라면…(국회의원이) 안 됐겠죠(웃음). 가끔 그런 생각도 해 봐요. 제가 가진 본성(Nature)과 자질, 성향 등이 한국이라는 또 다른 환경(Nurture)에서 어떻게 작용했을지 모르니까요.”

서울에서 태어나 7살 때 부모를 따라 이민한 그는 20여년간 교사 생활을 했다. 원래부터 정치인이 된다고는 ‘전혀 생각도 해 본 적이 없었다’는 그는 ‘운명이 그를 정치 무대로 이끌었다’고 말한다.

“정치인이라는 것은 퍼블릭 서번트(Public Servant)잖아요. 그 자리에서 일해 보면 자유 시간이 거의 없습니다. 교민들 덕분에라도 당선이 됐으니까 교민은 물론, 캐나다 시민들을 위해서라도 아낌없이 24시간을 일해야죠. 뉴질랜드에서 온 멜리사 의원도 저랑 생각이 같더라구요.” 권위적이다거나 하는 모습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그의 첫 마디는 공공에 봉사해야 한다는 의식이 철저하게 몸에 배어있는 것 같다.

원래 그는 정치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냥 열심히 교사 생활만 했는데 ‘어느덧 자신도 모르게’ 정치 입문의 길이 열린 것. “어찌 보면 삶이 정치죠. (인생을 정치적으로 산다는 뜻이 아니라) 제 그동안의 삶과 생활 전체가 정계 진출에 도움이 된 것 같습니다.”

어렸을 때 낯선 나라에 도착해 말도 잘 안 통하는 상황에서 부모가 고생하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본 것은 오늘까지 그를 성장시킨 밑거름이 됐다. 그 자신뿐 아니라 필리핀, 아프리카 등 다른 나라에서 온 이들도 고생스럽게 사는 모습을 보면서 함께 어울려 살 수 있는 방법도 터득했다.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뼈저리게 느낀 것이 있습니다. 어린이들에게 솔직히 말하지 않으면 그들이 금방 알아챈다는 사실이에요. 아이들은 늘상 질문을 쏟아내게 마련인데 제가 모르면 모른다고 얘기합니다. 처음엔 실수도 했지만 실수를 통해 배웠고 그래서 더 말조심하게 되는 습관이 쌓였습니다.”

정치라는 분야가 ‘험난한’ 곳이라는 것도 그는 잘 알고 있다. 정치 무대에 나간다니까 그를 아끼는 주변 사람들 중에는 말리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무서운 곳에 왜 가냐? 교사 생활이 더 좋지 않냐” 등등. 그처럼 인정 많고 눈물 많은 어머니도 딸을 걱정했다.

“캐나다에서도 정치는 블러드 스포츠(Blood Sports)라고 말해요. 단 한 번의 실수나 비행, 과오 때문에 하루 아침에 나락으로 떨어지는 경우를 가끔 보거든요.: 한 선배 의원은 그를 위해 비법을 알려줬다. 정치인으로 살아가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고. 하나는 똑 같은 실수를 두 번 하지 마라는 것. 그리고 다른 사람(정치인)들의 실수를 보면서 배우라고.

무엇보다 솔직함이나 진실을 강조하는 그의 모습에서 우리네 정치인들과는 다른 모습, 다른 정치 풍토와 문화를 느끼게 한다. “딸아이를 보면서 저 때문에 세상에 들어왔는데 책임감을 느낍니다. 그럼 세상이 잘 돼야지 제 딸도 잘 되는 것이잖아요. 바로 정치인들이 잘 해야 할 일들이죠.” 그녀가 정치인이 된 가장 큰 이유다.

캐나다에서 열리는 한인 댄스 페스티발과 한인의 날 페스티발에서 프로듀서로도 일하고 한인 커뮤니티 ‘C3’를 설립하는 등 동포사회에도 헌신적인 그는 캐나다 내 다인종 다민족 다문화 사회의 교류와 융합을 위한 노력에 큰 관심을 갖고 있다. 한편 현재 캐나다에서 20%에 불과한 여성 의원의 비중이 높아지는 추세이기 때문에 앞으로도 한인들의 정계 진출에는 여성이 다소 유리하다는 것이 그의 진단.

멜리사 리 뉴질랜드 국민당 전국구 국회의원

“그냥 농담 삼아 이왕 한 거 장관이 목표라고 말은 했습니다. 의원으로서 당장 우선의 목표는 좋은 법을 만들어 서서히 과정을 밟아 나가는 것이죠.” 뉴질랜드 한인 이민자 최초로 국회의원에 당선된 멜리사 리 의원의 꿈은 한편으론 지금부터가 시작이다.

의원내각제를 채택하고 있는 뉴질랜드는 반드시 국회의원만이 장관이 될 수 있다는 점이 독특하다. 우리처럼 전문관료나 교수 등이 장관직에 오르는 경우는 찾아 볼 수 없다.

“캐나다에서 온 연아 마틴 의원을 만나 보곤 함께 ‘서울 시스터즈’라고 부릅니다. 서울에서 만났다고 붙인 이름인데 실상은 ‘소울(Soul) 시스터즈’를 의미합니다. 함께 발을 내디딘 신예 정치인으로서 같은 영혼과 마인드를 가지고 있어서죠.” 그 역시 청중에 항상 귀를 기울이면서 공공에 봉사해야 한다는 (왠지 우리 정치의 인상과는 다른) 정치관을 결코 감추지 못한다.

30년 전 초등학교 5학년 때 이민 간 그는 현지 신문사 기자, 방송사 PD와 앵커, 감독, 프로듀서, 시나리오 작가 등 다양한 경력을 거쳐왔다. ‘언론인’ 인 셈이다.

뉴질랜드는 비례대표라도 지역구에 사무실을 둔다. 우리나라처럼 지역구와 완전히 분리된 것이 아니라 국민들과 직접 접촉하고 소통하기 쉽도록 한 것. 그 역시 오클랜드 서부 지역 마운트 앨버트 지역에 사무실이 있다. 지난 해 이 지역구 선거에는 국민당 후보로 낙선했지만 비례대표로 선출됐다.

오랜 언론인 생활 덕분에라도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는 솔직하면서도 딱 부러진다. “제가 원래 겁도 별로 없어요. 어렸을 때 꿈이 뭐냐면 대통령이라고 이야기해 왔습니다.” 꼭 장관을 한다면 우리 행정자치부 격으로 경찰을 총지휘하는 경찰장관이나 예술 문화 담당 장관이 그가 꼽는 분야.

실제 '아시아 다운언더' 프로그램을 13년간 제작하고 있는 제작사 '아시아 비전'을 운영하고 뉴질랜드에서 2년마다 한국영화제를 개최하는 등 그는 양국 문화 교류 증진에 역할을 담당해 왔다.

“여성이라서 의원이 되는데 더 유리했을지, 글쎄요! 어쨌든 뉴질랜드는 여성에게 투표권을 준 전세계 최초의 국가로 남녀 평등 의식이 강합니다.” 뉴질랜드는 지금 국민당 집권 직전까지 여성 총리였고 지금 대법원장도 여성이다.

“기자와 정치 중에 글쎄요, 정치가 너무 재미있습니다. 국회서 서로 토론하는 것도 즐겁고 지역구에서 사람들을 도와주는 일이 너무 행복합니다. 언론도 비슷하지만 법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더 크고 많을 수도 있죠.”

뉴질랜드 국회에 ‘김치 클럽’이라는 정치 연구모임도 만들고 정치인들에게 김치를 전파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총리가 김치를 좋아하게 된 것도 적잖이 그의 공. 앞으로 한국과 뉴질랜드 두 나라 발전을 위해 일하는 것이 그의 첫 바람이다.

킴벌리 조(한국명 조민영) 미국 버뱅크시 IT관련계획행정 CIO

미국서 태어난 그는 차세대 예비 한인 정치인으로 꼽힌다. 지난 해 버뱅크 시의원 선거에 도전했지만 아깝게 떨어진 것이 그의 경력(?). “아주 근소한 차이였어요.” 여전히 아쉬움은 배어 있다.

현재 그가 일하고 있는 곳은 로스앤젤레스 카운티의 Chief Information Office. 미국에서 카운티라면 state 보다는 작고 city 보다는 큰 행정구역. 그의 카운티에는 88개의 도시가 속해 있다.

그가 맡고 있는 일은 IT 분야. 최첨단 정보통신 기술을 행정에 접목시켜 행정절차와 비용을 효율적으로 집행할 수 있는 정책안들을 책임지고 입안하는 업무다.

“지난 세대에서 해 오던 행정 업무 체계와 앞서가는 현대 기술과는 너무 차이가 커요. 그렇다고 한꺼번에 단 번에 바꿀 수는 없죠.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는 것이 저의 판단입니다.”

IT회사에서 4년여 행정기관에 컨설팅 업무를 담당하다 카운티 행정부에서 3년 근무한 그는 한인들이 공무원을 진출하기 위해서는 정치와 경제 두 가지를 다 이해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리고 열정도 가져야 한다는 것. 인종이나 민족 등 편견이 없어 진입장벽이 없다고도 그는 조언한다.

“지금의 문화 트렌드는 전세계적으로 네트워크화 되고 있다는 것이 가장 큰 특징입니다. 이는 정부 기관이나 행정 분야로도 그대로 투영되죠.” 태어나서 한국에 처음 와봤다는 그는 일단 시의회 진출에 다시 도전할 계획이다.

미스 캐나다에서 의원 특별 보좌관으로


한국을 찾은 멜리사 리와 연아 마틴, 두 국회의원이 입지전적인 성공 스토리로 관심을 끌었다면 아그네스 김(한국명 김정민)은 '미모'로 눈길을 끌었다. 하지만 그녀는 '아직 정치인까지는 아닌' 캐나다 유명 정치인의 보좌관. 캐나다 정부 내 여러 민족 문화를 아우르는 다문화부 장관의 최측근 특별 보좌관으로 일하고 있다.

"더 잘 했으면 미스 유니버스에 나갔을 수도 있었겠지만…" 그녀는 지난 해 미스 캐나다에 출전해 당당히 본선에 진출, 준결승격인 전체 15위 순위에까지 뽑혔다. 백인 미녀들과의 대결에서 선전함 셈인데 근래 한국 여성이 미스 캐나다 대회에서 본선 진출 15위 이내에 든 걸로는 첫 케이스라고 한다. 예상 외의 선전으로 교민 사회에 화제를 모았다.

"장관에게 걸려 오는 모든 전화와 연락 등 스케줄을 담당하고 있어요. 1주일에 200여개 정도의 초청이 오는데 모든 연락은 일단 저를 거쳐야만 결정됩니다. 저만이 일정에서 넣고 빼고 할 수 있어요." 장관을 지근 거리에서 모시는 그녀지만 주 1회꼴로 스케줄 점검 회의를 갖는다고 한다. 보통 6주 일정을 앞서 결정하는 것이 관례. 장관과 함께 동행하면서 연설문이나 중요 사항 등 제반 정보를 행사 5분전 직보하는 것도 그녀의 임무.

"장관 업무가 정말 바빠요. 같이 일한 지 6개월인데 장관 혼자 시간 보내는 것을 딱 한 번 봤을 정도에요. 해외 출장도 많고 또 다녀 오면 자리를 비웠으니까 더 할 일이 많아지죠."

그녀가 전하는 캐나다 정치 문화는 놀랍다. "한 번은 행사를 마친 장관이 혼자 스타벅스에 들러 간단히 식사를 하는 거예요. 인도인 운전사가 '인도에서는 장관이 절대 저럴 일이 없다'고 얘기하는 것을 들었어요. 장관이 힘이 세지고 지위가 높지만 생활이나 의식은 일반인과 다를 바 없죠."

그녀는 "캐나다에선 정치인들이 자기 맘대로 할 수 있다는 생각보다 지역에서 사람들의 의견을 들어 주고, 또 따르는 것 같다"며 "낭비나 화려한 치장 같은 것은 전혀 찾아 볼 수 없다"고 덧붙였다.

"지금은 여러 파트를 다니며 다양한 경험을 쌓는 것이 좋다"는 그녀는 정치보다는 '시험 공부를 열심히 해' 장차 외교관을 꿈꾸고 있다.





글 사진 박원식기자 park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