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각장애아 성폭력 사건 다룬 '도가니' 초판 10만 부 가뿐히 넘겨

사진 신상순 기자

한국 문학 시장에서 공지영은 하나의 브랜드다. 90년대 청춘을 보낸 여성이라면 누구나 읽어보았을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부터 요즘 중고생도 읽는다는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까지, 기실 그녀의 이야기가 주목받지 못한 때가 한번이라도 있었던가.

<네가 어떤 삶을 살든 나는 너를 응원할 것이다>,<아주 가벼운 깃털 하나> 등 최근 2년간 에세이를 꾸준히 발표했던 그는 지난 7월 장편 <도가니>를 내놓았다. (본지 2281호 '책과 작가' 참조)

가상의 도시 무진을 배경으로 청각 장애아들의 성폭력 사건을 다룬 소설은 우리 사회 권력층의 검은 결탁을 표적으로 삼았다. 김승옥의 소설 <무진기행>의 오마주로 읽히는 작품의 배경에 대해 작가는 "현대문학에서 유일하게 거론된 가상 도시 무진과 무진의 안개 이미지를 빌려오자, 소설 속 청각장애인, 안개, (권력층의)은폐의 이미지가 잘 맞아떨어졌다"고 말했다.

교회의 부패, 권력의 카르텔을 정면에 다룬 이 책은 무거운 문제의식에도 초판 10만 부를 가뿐히 넘었다. 공지영, 이름 석자만으로 독자를 끌어 모으는 이 탁월한 작가에게 질문을 던졌다. 사람들이 당신 말에 귀 기울이는 이유가 뭡니까? '마지막까지 신열에 들떠 며칠씩 누워있어야 했지만 이 글을 쓰며 행복했다'(도가니, 작가의 말 중에서)는 작가를 작품 밖으로 끌어내면서.

# 소통의 글쓰기

"소통은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인 것 같아요. 소통은 인류 생존의 전제 조건이거든요."

작가는 이렇게 말했다. 청각 장애인, 그러니까 소통 단절의 상징을 신작의 주인공으로 내세운 작가의 이례적인 답변이다. 그는 인터넷 서점 '예스 24'에서 뽑은 '네티즌 추천 한국의 대표작가'로 선정돼 강원도에서 열린 문학캠프를 찾았는데, 행사 전 기자들과 만나 한편의 강연을 준비한 듯 소통에 관한 생각을 풀어놓았다. 인터뷰 전 '강연회를 듣고 난 후, 공지영의 소설이 더 와 닿았다'는 한 지인의 체험은 빈 말이 아닌 듯했다.

그는 아프리카 부족부터 어린 아이와 노인에 이르기까지 모든 인류는 이야기를 만들고, 듣고, 남기며 살아간다며 인류는 자신과 상관없는 존재와 공감하는 법을 배워왔다고 술술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그리고 덧붙였다. "우리는 공감 잘하는 인류의 후손인 것 같아요."

"문학의 효용성은 산업의 관점에서 판단할 게 아니라는 거죠. 예를 들면 소설을 쓰기 전에 저도 독자도 청각장애인에 대해 잘 몰랐지만, 이제 <도가니>를 읽으면서 청각장애인에 대한 시선이 이전과는 조금 달라졌을 것 같아요. 그런 의미에서 문학, 영화, 연극처럼 어떤 사람에 대해 공감할 수 있는 장르는 전 국가적으로 의무적으로 일 년씩 배워야 된다는 생각이 들어요."

최근 몇 년 간 침체된 문학시장에 대안으로 떠오른 방안이 인터넷 연재다. 전문가들은 독자의 반응을 실시간 알 수 있는 이 '소통 창구'가 기존 소설의 양식을 바꿀 것이라는 조심스러운 전망을 내놓기도 한다. 주지하다시피 신간 <도가니>는 지난 11월부터 6개월 간 인터넷 포털사이트 다음에 연재된 바 있다.

"찰스 디킨스가 영국 신문에 연재를 할 당시, 미국 뉴욕 항에 영국 신문을 기다리는 독자가 기다리고 있다가 '그 주인공 살았어? 죽었어?'라고 외치면 영국선의 갑판에 있는 사람이 신문을 미리 읽고 내용을 말해주었다고 해요. '살았어!'라고 하면, 항구에서 축제가 벌어지고 '죽었어!'라고 말하면 항구 사람들이 전부 울었데요. 그때가 소설가로서 가장 행복한 시대가 아니었나, 생각이 들어요. 인터넷 연재하면서 찰스 디킨스를 떠올렸는데, 독자들이 그런 반응을 보이더라고요. '강인호가 어떻게 되나요?' 다음 내용을 물어보는 독자 댓글을 보면서, 인터넷이 소설가의 천국을 가능하게 해줄 수 있구나, 생각이 들었어요."

사진 제공:예스 24

# 나의 화두는 재미

몇 해 전 텔레비전에 나온 수줍던 공지영 작가를 기억하는가? 지상파 텔레비전의 오락프로그램 <느낌표!>의 코너에서 소설 <봉순이 언니>가 선정 도서가 되면서 그는 잠깐 프로그램에 얼굴을 비췄고 이 책 역시 그해 베스트셀러가 됐다. 이후 그는 텔레비전에 모습을 거의 드러내지 않는다.

"얼굴이 알려지면, 선술집에 가서도 특별대우를 해주거든요. 작가가 보통 사람들이 겪는 애환을 겪을 일이 없고 대중과 유리될 수밖에 없어요. 제가 텔레비전에 모습을 비추지 않는 건, 선술집에 가서 제 옆 사람들의 생생한 언어를 듣고 싶어서에요."

같은 날 가진 독자와의 대화에서 그는 말했다.

"사실, 반 묶은 이 머리모양은 평소에는 거의 하지 않거든요. 어떻게든 눈에 띄지 않고 싶어서요."

90년대 공지영의 작품은 2가지로 나뉘었다. 90년대 방황하는 젊은 지식인을 그린 소설(등단작 <동트는 새벽>, 소설집<인간에 대한 예의>)과 가부장적 남성에 의해 억압받는 여성의 삶을 그린 작품(장편<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봉순이 언니>)이다.

2000년대 그는 이 경향에서 벗어나 <사랑 후에 오는 것들>, 자전 소설 <즐거운 나의 집> 등을 발표하며 '위로의 문학'이란 수식어를 달았다. 신간 <도가니>는 다시 90년대 공지영의 소통 방식으로 돌아간 듯하다. 작가는 "2000년 이전 문학적 화두는 '내 소설의 의미가 무엇인가?'였지만, 지금 문학적 화두는 재미"라고 말했다.

"재미가 굉장히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질 수 있거든요. 한국문학이 한때 침체됐다고 말했는데 바로 재미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또 달리 말하면 우리 삶과 아무 관련이 없다는 얘기에요. 드라마를 보면서 즐거운 건 우리와 똑같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요. <007>영화부터 소설까지 각각의 장르가 갖는 재미가 있어요. 독자에게 지적인 질문을 던지고 거기서 통찰의 재미를 주는 게 제 문학의 화두에요."

'질문 주세요'라고 새침하게 시작했던 대화는 메밀 동동주로 화기애애해졌다. 등단 21년째를 맞은 그에게 마지막으로 물었다. 그동안 무엇이 변했습니까? 수 천 권의 책을 읽고 수십 권의 책을 쓰며 세 아이의 엄마가 되는 동안, 당신의 세계관은 어떻게 변했나요?

"얼마 전에 생각해 봤는데, 20살 때와 지금 세가지만 변했더라고요. 여행가서 화장실 없는 방에서는 못잔다. 무거운 짐 지고 하는 여행은 안한다. 이동할 때 3등 칸은 못탄다. 이것 빼고는 똑같은데, 한 가지 차이가 있다면 조금 여유 있어 진 것 같아요. 그데 큰 차이를 만드는 것 같고. 예전에는 '지금 도망가는 너, 나쁜 놈'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30분 후에 이 사람이 다시 되돌아 올 수도 있겠다'고 기다리는 여유가 생긴 거죠. 이게 제 문학 세계의 변화이기도 하고요."

출판가에서 공지영은 하나의 현상이다. 그가 작품을 쓰면 편재했던 사회문제도 수면위로 올라온다. 1000만 부 그의 책(2008년 공지영 작가의 누적 판매량)을 사고 1000만 번 그의 소설 방(<도가니>인터넷 연재 당시 블로그 누적 방문객 수)을 찾은 독자들은 작가의 이 마음을 공감하는 게 아닐까.



이윤주 기자 miss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