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살인사건'의 홍기선 감독사건 해결보다 과정 통해 성찰의 기회 제공하는 게 목적

"뭔가 보여줄게, 따라와 봐(I'll show you something cool, come with me)."

1997년 4월8일 밤 10시경 이태원의 한 햄버거가게. 두 한국계 미국인 소년들이 화장실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들이 예고했던 대로 '뭔가'가 벌어졌다. 소년들이 떠난 자리에 피범벅이 된 한국인 청년이 쓰러져 있었던 것. 시비가 붙었던 것도, 돈을 빼앗으려던 것도 아니었다. 단지 재미로, 였다. 이런 잔인무도한 범죄는 철저히 단죄되어야 마땅할 텐데, 두 명의 용의자는 결국 무죄로 풀려났다. 이유는 증거불충분이었다.

현장 사진과 용의자들의 진술이 사건을 재구성할 수 있는 실마리의 전부였던 상황에서, 용의자들이 서로를 범인으로 지목하며 엇갈린 진술을 했던 것. 그날 밤 그들과 어울렸던 친구들의 증언 역시 오락가락했다. 결국 사건은 피해자는 있으되 가해자는 없는 상태로 무마됐다.

홍기선 감독은 이 사건에서 한국사회의 한 상징적인 단면을 보았다. 미군에 의해 미국 문화가 유입되는 관문과도 같은 이태원이라는 지역, 미국 문화의 전형인 패스트푸드 가게라는 장소, 한국계 미국인인 용의자들의 캐릭터가 의미심장했다.

"한국인이면서 사고방식이나 행동거지가 미국적이면서 조사 과정에서 이중성을 보이는 그들의 정체성이 곧 한국사회의 정체성처럼 느껴졌다. 한국사회의 정체성 혼란을 보여준달까."

그는 4년 동안 기록을 뒤지고 관련된 사람들을 만나가며 그 전후 과정을 복기해냈다. 진실에 대한 호기심은 세간의 변덕과 가파른 속도에 한참 밀려난 참이었다. 그러나 자신만의 리듬으로 천천히, 우직하게 영화를 만들어온 홍기선 감독에게 중요한 것은 오직 이 이야기를 해야만 한다는 판단이었다.

그렇게 만들어낸 영화 <이태원 살인사건>이 10일 개봉한다. 이 영화에는 피해자에 대한 슬픔, 사건에 대한 진지한 의심, 미스터리에 대한 매혹 그리고 그것을 통해 감독이 들여다본 한국사회의 불안과 혼돈이 생생하다.

영화‘이태원 살인사건’한 장면(왼쪽)
영화'이태원 살인사건'한 장면(왼쪽)

어떻게 이 사건을 영화화하게 됐나.

4년 전 인터넷에서 우연히 다시 접하게 됐다. 감독으로서 당기더라.(웃음) 미국 문화가 유입된 한국사회의 한 단면 같았다. 개인적으로 한미관계에 대해 이야기해보고 싶은 생각이 있었다. 사건 자체가 미스터리적 요소를 갖고 있다는 점에도 끌렸다.

나 이전에 몇몇 감독이 영화화하려고 시도했었는데 실패했었다. 미제사건인 탓에 기승전결 중 결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영화 속에서 굳이 사건을 해결하려 하지 않았다.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 곧 성찰할 기회를 주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게 영화의 역할이다.

은근히 무섭더라. 영화를 본 후 마지막 장면이 자꾸 떠올랐다. 폐쇄된 화장실 안을 비추면 당시 살해된 조중필씨의 주검이 아직도 거기에 누워 있는 장면 말이다.

두 가지 의미다. 범인을 아는 단 한 명은 바로 그라는 것과, 사건이 해결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때 흐르는 음악은 중필이를 위한 진혼곡이다. 나도 영화를 보면 볼수록 무서웠다. 허구가 아니라 현실이라서 그런 것 같다. 사건은 해결되지 않았고, 용의자들은 어딘가에서 살고 있고, 그들의 속내는 알 수 없어서.

정진영 씨가 맡은 박대식 검사가 사건을 조사해 나간다. 고지식하고 진실에 대한 집념이 강한 그는 미국 범죄수사국(CID)이 두 용의자 중 피어슨(장근석)을 범인으로 지목한 결과를 뒤집어 알렉스(신승환)를 의심한다. 한국 검찰이 미국 시민권을 가진 용의자를 수사하는 데 제한이 있는 상황을 고려할 때, 이런 구도 때문에 영화가 단순한 '반미 영화'로 받아들여질 가능성은 우려하지 않았나.

미선이, 효순이 사건에서 볼 수 있듯 한미관계 때문에 한국사회에서 미국 시민의 범죄를 재판하는 데 한계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 사건에서도 그런 어려움이 있었다. 하지만 이 영화의 초점은 거기에 맞춰져 있지 않다.

중심축은 박대식 검사와 용의자 피어슨 간 갈등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피어슨이 범인이 아니라고 굳게 믿었던 검사의 혼돈이다. 그를 통해 우리는 어떻게 진실을 알 수 있는가, 라는 문제를 제기하고 싶었다.

그렇다면 한국사회 정체성에 혼란을 주는 문제적 미국 문화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용의자들이 화장실에 가면서 하는 말("I'll show you something cool")이 상징적이다. 'cool'을 '뭔가'라고 옮기긴 했지만 사실 번역하기가 마땅치 않은 단어다. 그 단어가 풍기는, 개인적이고 성찰이 없고 빠른 정서가 문제적이라고 생각한다. 먹는 문화를 빨리빨리 앞뒤 없이 해치우는 것으로 바꾸어 놓은 패스트 푸드가 그 예다. 문화가 바뀌니 주변을 배려한다거나 천천히 사유하는 마음도 점점 사라지는 것 같다.

영화를 준비하면서 사건에 관련된 사람들을 만났을 텐데, 반응이 어떤가.

다들 이 사건을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사건 당사자들, 수사를 담당한 검사와 용의자 알렉스 변호인 등이 당시 자신의 판단에 대해 갖고 있는 확신이다. 특히 검사는 사건에 푹 빠졌었던 것 같다. 자신에게 운명적인 사건이라고 이야기하더라. 워낙 정의감과 집착이 강한 인물이어서인 것 같다. 변호사도 여전히 알렉스는 절대 범인이 아니라고 말하고. 나름의 입장이 있는 거니까 이해한다.

사람을 이해할 때 그 사회적 역할을 많이 고려한다는 인상이다.

내가 이 사건에 대해 느끼는 안타까움은 피해자만을 향한 것이 아니다. 나는 가해자들도 안타깝다. 이들이 진술을 번복하는 등 혼란해하는 모습을 통해 어떤 불안을 드러내려고 했다. 그들도 이해하고 왜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그려내고 싶었다. 나의 목적이 이런 문제점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고, 사람에 대한 이해가 영화의 기본이기 때문이다.



박우진 기자 panorama@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