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초대석] 김명곤 전주세계소리축제 조직위원장신종플루 확산으로 사실상 취소… 참신한 프로그램 많이 준비했는데

전주세계소리축제(9월23일~27일)가 신종플루 확산으로 취소될 위기에 놓여 있다. 전주에서 축제 개최 방향에 대한 회의를 마치고 서울로 올라온 김명곤 전주세계소리축제 조직위원장의 얼굴엔 안타깝고 착잡한 표정이 역력했다.

"11일 전주에서 임시총회를 통해 최종 결정하겠지만 아무래도 이번 축제가 고령의 명창들과 어린이들, 청소년들이 많이 참여하는데다 야외 프로그램이 많아 취소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입니다."

올해는 특히 소리축제를 지역 잔치 수준에서 벗어나 세계적인 축제로 발돋움시키기 위해 국내 최고의 명인명창 100인은 물론, 세계 여러 나라의 명인들과 해외공연을 초청하는 등 대규모 행사를 기획해 많은 관심과 기대를 모았다.

고은, 신경림, 김지하 등 현대 시인들과 조정래 등 소설가의 작품에 판소리를 접목시키는 등 예년과 차별화된 참신한 프로그램도 많이 준비했다. 또, 축제기간 중 수도권과 전주를 잇는 전용 소리열차를 운행하고, 전주의 한옥마을과 연계해 관광도 즐길 수 있게 하는 등 풍류 가득한 축제를 선보일 계획이었다.

그런 축제가 취소될 위기라니 아쉽다. 김 위원장은 올해 기획됐던 축제 내용은 내년으로 연기하고, 그 중 일부는 올해 안에 소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판소리, 무용, 기악, 풍물 굿 등 국악 전분야에 걸친 100인의 국내 명인명창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백인의 별 전주에 뜨다>와 국악 특강 릴레이, 장기발전연구 세미나 등 몇 개의 프로그램은 올 연말에 개최할 예정입니다. 그때는 일일이 명인명창들의 집으로 찾아 뵙고, 예방접종을 해드릴 거예요."

전통은 문화의 미래다

비록 이번 축제가 뜻하지 않은 암초를 만나 사실상 취소 혹은 축소·연기 됐지만, 지방의 국악 행사를 세계축제로 도약시키려 한 과감한 도전과 참신한 시도의 의의는 크다.

여기서 김명곤 조직위원장은 남다른 역할과 비전을 제시했다. 그는 문화부 장관 시절부터 대중문화는 한류의 미래가 될 수 없다고 강조해왔다.

"대중가요, 영화, 드라마 같은 대중문화는 수명이 아주 짧아요. 따라서 대중문화 컨텐츠만 가지고는 한류의 미래가 없어요. 한복, 한옥, 한식, 한국음악, 한글 등 한국의 전통문화를 산업화하고 세계화하는 작업이 시급합니다. 저는 특히, 국악의 세계화와 현대화 그리고 문화상품으로서의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고 보고, 이번 소리축제에서 그것을 보여주려 했었죠."

김 위원장은 오래 전부터 국악과 각별한 인연을 맺어왔다. 대학시절 우연히 판소리를 듣고 그 매력에 심취해 직접 판소리를 배웠고, 연극을 하면서 민요와 풍물, 탈춤, 굿을 배우며 조예를 키워나갔다.

1993년 영화 <서편제>에 출연해 청룡영화상 남우주연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는 전통예술의 현대화에 많은 고민을 기울여왔다. 세계적인 문화예술 컨텐츠를 보면, 하나 같이 자국의 전통을 계승하고 발전시킨 것들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나라들은 자국의 전통문화를 지키기 위해 심혈을 기울이는 반면, 서구문화의 영향을 크게 받은 제3세계 국가들은 전통문화가 사라져가는 위기를 겪고 있지요.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고요. 특히, 서구화된 문화의식을 가진 사람들이 문화정책을 담당하면서 우리 전통문화가 위축될까 우려됩니다. 나는 "전통은 미래"라는 말을 하고 싶어요. 그런데 요즘 재능 있는 젊은 인재들이 전통문화의 현대화 작업에 많이 도전한다는 점에서 희망을 봐요."

아비뇽페스티벌 '통일굿' 무대에서 김명곤, 정승진(꽹과리)(위 사진)
권병길, 이청준, 김명곤(왼쪽부터)

베짱이 인생 강조하는 축제기획자

그가 우리 전통음악의 현대화 비전을 제시하고, 참신한 축제 기획을 진두지휘할 수 있었던 데는 다양한 직업경험에서 얻은 지식과 감각이 자양분이 됐을 것이다.

김 위원장은 문화부 장관과 국립중앙극장 극장장, 배우, 극단대표, 작가, 기자 등 다양한 직업에 종사한 매우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다.

그는 "축제기획은 늘 해오던 일이며, 국립극장 극장장 시절엔 봄 꽃 축제, 열대야 페스티벌 등 계절별 축제를 기획해 호평을 받기도 했다"고 말한다.

어찌 보면, 김 위원장 본인의 인생이 축제와 닮아 있다. 기자와 교사라는 안정된 직장을 때려치우고, 연극배우의 길을 걷고, 극단을 창단하고, 영화와 드라마에 출연하고, 희곡을 쓰고, 행정가가 되어 문화정책을 담당하고, 다양한 축제를 기획해왔다. 평생 직장에 매여 사는 일반인들에겐 꿈 같은 삶이다.

"좋은 직장에 다녔지만 연극을 하고 싶다는 욕망 때문에 갈등이 심했어요. 그래서 부모님을 책임져야 하는 장남에다 가정까지 있는 남자가 대책 없이 직장을 관두고 연극배우가 됐지요. 물론 자유를 얻은 만큼 혹독한 대가를 견뎌내야 했지만 후회하지 않아요. 사람은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아야 한다는 원칙에는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거든요."

그가 요즘 강연에서 주로 하는 테마가 "잘 놀아라. 노는 사람과 기업이 성공한다"다. 그러면서 그는 재미있는 '21세기형 개미와 베짱이 우화'를 들려줬다.

"일본에서는 베짱이가 개미한테 얻어먹으려고 개미 집에 가서 문을 두드렸더니, 대답이 없더랍니다. 문을 열어보니 개미가 과로사했고요. 소련에서는 개미가 베짱이한테 먹을 걸 나눠주다가 먹을 게 동이 나 같이 굶어 죽었대요. 미국 베짱이는 어땠을까요? 구걸하러 온 베짱이한테 개미가 "니 밥벌이는 니가 하지 어디 와서 구걸이냐?"고 호통쳤고, 서러운 베짱이가 집에 와 기타 치며 노래를 불렀어요. 그런데 베짱이 집을 지나던 음반기획자가 그 노래를 듣고 음반을 내보자고 제안했고, 음반이 대박을 터뜨렸다는 얘기예요."

그는 우리사회도 베짱이에 대한 인식이 달라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문화예술적 감수성이 풍부하고, 창의적이며 조직을 거부하는 베짱이들을 잘 길러내야 한다는 것이다.

"제 자신도 베짱이지요. 베짱이들이 살기 힘든 사회구조가 바뀌어야 문화 경제적으로 더 발전할 수 있어요. 축제만 해도 그래요. 축제 하면 놀고 먹는 거다, 낭비하는 거다라는 잘못된 인식이 깨져야 하지요. 축제는 건강한 삶의 활력을 찾아주고, 오히려 일과 생산에 커다란 기여를 합니다. 또, 영국의 에딘버러 페스티벌 같은 해외 유수의 축제를 보세요. 지역경제 활성화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의 전주세계소리축제 조직위원장 임기는 일단 올해 말까지다. 내년에 연임하게 될지 여부는 아직 미지수다. 조만간 다시 베짱이 생활로 돌아간다.

그는 셰익스피어의 <햄릿>을 한국을 배경으로 오필리어의 시각에서 뒤집어보는 뮤지컬 작품을 기획해 거의 마무리 단계에 있다. 영화 시나리오도 구상 중이다. 하지만 이것은 그의 향후 계획 중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김 위원장은 "저도 제가 앞으로 어디로 튈지 모릅니다."라는 말로 불투명하면서도 역동적이고, 흥미진진한 인생을 표현했다.

김명곤 전주세계소리축제 조직위원장은

1952년 전북 전주 출생으로, 전주고등학교를 거쳐 서울대 독어교육학과를 졸업했다. 잡지사 <뿌리깊은나무> 기자와 배화여고 교사를 비롯해 배우, 극단 <아리랑> 창단대표, 연극 연출가, 극작가로 활동했다. 2000년엔 국립중앙극장 극장장을 맡았고, 2006년엔 제8대 문화부장관에 취임했다.





전세화 기자 cand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