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절한 천재 작곡가 슈베르트의 '아르페지오네 소나타'등 담은 신보 발표

"여기서 망설이면 안돼. 아이고야. 힘겨워하면서도 밖으로 외쳐야지. 그렇지! 안에 뭉쳐있는 고통을 뱉어내야 하는 거야." 첼리스트 양성원(42) 씨의 인터뷰를 위해 찾은 연세대학교 음대.

그의 교수실 안에서 새어 나오는 목소리는 성악가 성량 못지 않은 것이었다. 예상치 못한 개인레슨을 5분쯤 지켜봤을까. 그는 까다롭고 요구사항이 많은 교수였다. 에너지가 넘치다 못해 치열하기까지 하다. 평소 그를 떠올리면 연상되던 온화하고 부드러운 이미지와는 상당한 이질감이었지만 그가 음악과 삶에 대해 가진 태도를 짧은 시간에 고스란히 엿본 느낌이다.

"얼마나 하고 싶은가의 강도가 무엇을 하느냐, 안 하느냐를 결정하는 거 같아요. 학생을 가르치면서도 대곡을 연주하고 녹음을 계속하고 싶은 간절한 바람이 있습니다. 제 삶의 모토는 그거에요. 20년 넘게 같은 키와 같은 몸무게를 유지하고 있지만 내적으로는 무한한 성장을 할 수 있다는 거죠. 벽돌 쌓듯 하나씩 쌓아가는 재미에 여기에 시간을 투자하는 거죠." 후학양성과 아티스트로서의 삶을 병행하는 것이 힘들지 않느냐는 물음에 그는 이렇게 말했다. 여전히 하루 평균 다섯 시간 동안 홀로 첼로를 켠다.

그가 최근 신보를 발표했다. EMI에서 유니버설 뮤직에 둥지를 트며 발표한 첫 앨범으로, 슈베르트의 '아르페지오네 소나타', '피아노 트리오 2번' 그리고 '세레나데'를 담았다. 서른 한 살에 요절한 슈베르트는 천 여 곡 중 603개의 가곡을 남겨 '가곡의 왕'으로 불린다. 그러나 그가 실내악에서 도달한 '절제의 미학'은 음악가들 사이에서 아름다움의 극치로 꼽힌다. 현대음악의 거장인 스트라빈스키는 슈베르트의 음악에서 천국을 보았다고 했다. 이는 양성원 씨에게도 예외는 아니다.

"슈베르트만큼 아름다운 선율을 작곡한 사람이 없어요. 또 제가 첼로를 하면서 좌절감을 맛봤을 때 다시 첼로 케이스를 열게 한 음악가 역시 슈베르트였죠. 그의 음악은 슬프지만 한 구석에 미소가 있어요. 아름다움과 순수함이 절망에 빠지지 않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죠."

오랜 시간 좋아했지만 음악이 몸에서 무르익을 때까지 기다렸다는 그는 여러모로 슈베르트와 연이 깊다. 어릴 적 그가 무대 위에서 처음으로 연주한 곡도 아르페지오네 소나타였다. 아르페지오네는 첼로와 닮았지만 첼로보다 높은 음역대를 가진 여섯 줄의 현악기다. 슈베르트의 곡을 통해서 겨우 존재만을 알려왔던 아르페지오네. 그는 앨범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아르페지오네를 재현해 녹음한 음원을 찾아냈다. 그리고 해석이 아닌 이해를 통해 진정한 슈베르트와도 조우했다

"피아노 트리오 2번의 주제선율은 스웨덴 민요에서 가져온 겁니다. 악보를 찾아서 가사를 보니 이렇더군요. '오 희망이여, 저 산 너머 지는 햇볕처럼 떠나네. 이별, 이별' 슈베르트가 죽기 전, 끝에서 두 번째로 쓴 곡이에요. 가사를 몰랐을 때는 아름답게만 연주하려고 했습니다. 이번엔 곡의 해석보다 이해를 하려고 했죠. 이별이란 주제가 4악장에서 두 번 더 나오거든요. 단조에서 장조로 바뀌는 부분은 운명을 상대로 싸우려는 영웅적인 선율, 죽음과 싸워서 이기고자 하는 솟구침이 있어요. 만약 그가 60~70세까지 살았다면 이런 음악은 없었을 겁니다. 죽음을 알았기에 불멸의 작품이 나온 거겠지요."

연주자로서, 특히 첼리스트로서 연주하고 싶은 곡이 많다는 그에겐 요즘 변한 것이 하나 있다. 과거에 음악을 들을 때 연주자의 연주력에 귀 기울였다면, 얼마 전부터 그는 작곡가의 언어와 작품 세계에 집중한다. 연주자의 개성보다는 음악 자체를 바라보게 된 것이다.

"껍질이 벗겨졌다고 봐야겠죠. 과거엔 어디에서 호흡하는지, 어디에서 여려지는지를 살펴보면서 음악을 수직적인 시각으로 바라봤다면 이제는 수평적인 시각을 갖게 된 거 같아요. 전체적인 흐름을 보게 된 거죠. 바다에 가서 파도를 보다가 이제는 하늘과 바다, 그리고 그 사이의 수평선까지 즐기게 된 것과 같다고 할까요."

2000년부터 해온 레코딩에서 매번 청중을 앞에 두고 연주하는 것과 똑같이 마이크만 놓고 연주하는 그는 이번 앨범에서도 디지털 편집기술을 완전히 배제했다. 그 덕에 그의 앨범엔 '유기농 녹음'이란 별칭도 붙었다. "완벽하지 못한 아쉬움은 있지만 인위적이면 또 뭔가가 사라지기 마련이거든요. 찰리 채플린의 영상을 보면 노이즈가 많아 보기 힘들지만 영화의 감동은 충분히 전해지죠. 일본에 연주가 있을 때마다 가면 SP레코드를 많이 듣는데요. 한 장에 고작 5~6분 밖에 녹음되어 있지 않지만 실황과 똑 같은 음악을 들으면 마치 타임캡슐처럼 시대를 초월한 감동이 고스란히 전해지죠. 그런 게 바로 품위가 아닐까 싶어요."

첼리스트 양성원의 '슈베르트' 연주는 오는 9월 22일 대전을 시작으로, 24일 진주, 25일 울산, 그리고 27일 서울 LG아트센터에서 공연으로 만날 수 있다. 2007년 베토벤 공연과 같은 4시간의 공연시간에는 연주와 더불어 슈베르트의 생애와 작품세계를 토크세션을 통해 들려줄 예정이다. 토크세션 중에는 아르페지오네로 연주한 음원도 공개한다.



이인선 기자 kell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