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초대석] 소설가 김훈약육강식의 더러운 세상서 함께 살자는 신작 '공무도하' 이어 독한 야심

혹자는 그의 글을 탐미적이라 했고, 혹자는 사변적이라 했다. 탐미적이든, 사변적이든 그의 글 앞에 붙은 이 수식어들은 그가 추구하는 '언어의 구체성'에서 정확히 반대의 벡터로 나아간다. 이 형용모순이 그의 글을 읽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 요(要)는 그의 글이 2000년대 한국 문학시장에서 하나의 대세를 이루었다는 것이다.

그의 연필이 지난 자리가 탐미(耽味)이든, 탐미(耽美)이든 그의 말은 그 의미의 원형보다 주어와 술어 사이의 여백이 아름답다, 그의 글을 두고 또 두고 보는 이들은 말한다. 흑에서 백으로 흐르는 물 같은 문장은 하나의 문체를 이룬다. 그가 휘모리 장단으로 <칼의 노래>를 쓰든, 중모리 장단으로 <현의 노래>를 쓰든, 단 몇 개의 문장만으로 사람들은 그것이 그의 글임을 안다.

주어와 동사로 만든 언어는 세상의 파편을 담아낸다. 그는 그가 전달할 수 있는 언어로만 인간의 개별성을 말하고, 약육강식의 세상을 말하고, 세상의 저 편을 구체적 언어로 서술하지 못하는 언어의 덧없음을 말한다. 그는 거대담론과 이데올로기와 초월과 구원의 세계를 입에 담지 않는다. 언젠가 인터뷰에서 그는 "몸이 검증 안 한 언어를 쓸 수는 없다"고 말했다. 왈(曰), 그의 글은 그의 말, 말을 빚어내는 그의 몸과 닮아 있다. 그의 글은 몸과 합일되는 하나의 '문체(文體)'를 이루지만, 또한 그 문체는 그 만이 써낼 수 있는 것이다.

소설가이자 에세이스트이자 전직 기자인 그는 '한국문학에 벼락처럼 쏟아진 축복'(2001 동인문학상 심사평)이 됐고, 이 축복은 그의 언어가 그 언어를 빚어낸 몸과 하나라는 사실에서 비롯됐다. 단, '언어의 덧없음'을 언어로 담아내는 것을 평생의 업으로 살았던 그의 역사를 제외하고서.

# 비틀거리며 나아가는 인간

1995년 <빗살무늬 토기의 추억>이란 소설을 처음 써냈지만, 본격적으로 작가의 이름이 알려진 건 장편 <칼의 노래>를 통해서다. 그는 이 작품으로 문학상을 받았고, 이 작품은 5년에 걸쳐 밀리언셀러의 반열에 올랐다. 잇달아 발표한 <현의 노래>, <남한산성>등 굵직한 장편 또한 베스트셀러가 됐다. "역사소설을 쓴 것이 아니라 소설의 배경으로 역사를 소재로 끌어다 쓴 것"이라는 작가의 말에도 불구하고, 그의 작품은 또한 2000년대 역사소설의 붐을 만들기도 했다.

전쟁 중의 장군이든, 패망한 나라의 악인(樂人)이든, 고립된 성 안의 국왕이든, 그가 발표한 일련의 작품들은 비틀거리며 나아가는 인간의 모습을 담아낸다. 작가의 입을 빌리자면, "현실은 선과 악으로 판단하기 불가능한 본질적인 운명이 있기 때문"이다. 그 어쩔 수 없음이 그가 세상을 대하는 태도이자 그가 써낸 작품들을 관통하는 핵심이다. 얼마 전 발표한 소설에서 그는 '인간은 비루하고, 인간은 치사하고, 인간은 던적스럽다'(장편 <공무도하> 35쪽)라고 썼다.

"선도 아니고 악도 아니고, 미도 아니고 추도 아닌, 어떤 잣대로 해석하거나 설명할 수가 없는 새로운 운명의 국면이 있는 거죠. 그러니까 (인간은) 비루하고 치사한 거예요. 비루하고 치사한 것도 삶의 중요한 국면인 것이죠. 인간의 삶이 영광과 자존만으로 가득 찰 수는 없잖아요. 인간의 역사도 마찬가지죠. 영광과 자존과 찬란함만으로 가득 찬 인간의 역사라는 건 있을 수 없는 것이죠."

던적스러운 인간들이 부딪치는 사태를 그는 그저 3인칭의 관점에서 관망할 뿐이다. 작품에는 '이러저러 해야 한다'는 계몽이나 '그래서 슬프다'는 서정적 서술이 한 줄도 없다. 작가는 "나는 어떤 인간의 편이 아니다"고 말했다.

"소설로 나를 표현하고 그 결과로서 남과 소통하는 걸 시도해 보는 것이죠. 내가 세상의 아름다움과 세상의 추악함을 쓰잖아요. 다른 사람들이 그걸 보고 '아, 세상이 아름답기도 하고 추악하기도 하는구나'라고 느끼면 소통이 되는 거잖아요. 그런 것들이 글 쓰는 사람의 보람이겠지요. 그리고 소통이 안 되어도 할 수 없는 거예요."

# 왜 달보다 손가락을 말하는가

그가 삶을 바라보는 태도와 작품으로 드러내는 말은 이렇듯 일관되지만, 독자는 언제나 그 말의 의미보다 '문장'에 집중한다. 그가 참여하는 독자 행사에서는 어김없이 "독특한 문체를 갖게 된 비법은?"같은 질문이 나온다. 마치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을 보면서 '손가락이 길고 희고 예뻐'라고 말하는 것처럼.

"아주 곤혹스러워요. 나는 문학적인 문체가 따로 있다고 생각 안 해요. 어떤 문체가 됐든 그걸 작가가 끌어다 쓰면 되는 것이죠. 그걸로 문학을 만들면 되는 것이고."

그는 되물었다.

"내 문체가 어때요? 아름답지 않잖아요? 형용사도 없고, 부사도 없고, 정서나 감정이 드러나지 않잖아요? 아주 거칠고 무미건조한 글이지요. 자꾸만 내 글이 아름답다고 하니, 난 참 이상해."

그는 "말로써 호명하거나 소환할 수 있는 것들은 많지 않다"고 말했다. 인간은 세상의 파편 중 일부만을 볼 수 있고, 또 그 중 일부만을 겨우 언어로 담아낼 수 있다고.

"언어의 덧없음을 젊은 시절에 알았다면, 다른 일로 밥벌이를 하지 않았겠느냐"는 질문에 그는 대답했다.

"매우 어려웠을 거예요. 할 줄 아닌 게 뭐 있었어야지." "몸이 검증 안 한 언어는 쓸 수 없다고 하시는데, 그 검증 안 된 일에 평생을 매달린다는 게, 참 아이러니 한 일이에요."

"그렇지, 아이러니한 게 한 둘이 아니지…. 그런데 장자도 '말을 버려야 한다'고 그걸 또 말하잖아요. 그 말을 할 수밖에 없잖아요."

일체의 수사를 벗어난 그의 문장이 역설적으로 독자들의 공감을 얻는 이유가 여기에 있을 터다. "건조한 문장 행간에 독자들이 저마다의 의미를 부여할 수 있고, 이 점이 공감대를 이끌어내는 것 같다"는 말에 작가는 "스트레이트 문장이 갖는 힘일 것"이라고 말했다.

"난 스트레이트 문장이 좋아요. 형용사, 부사, 감성을 포기하고 3인칭으로 쓰잖아요. 그리고 대상을 객관화시켜야 하잖아요. 그런데 스트레이트 문장으로 쓰려면 참 힘들어요. 너무나 많은 걸 버려야 하잖아요. 자기 정서를 버려야 하고. 10장 쓸 수 있는 걸 2장에 넣어야 하니까 원고 매수가 안 나가. 생계에 막대한 타격이 있는 것이죠."

# 강의 이쪽 사람 이야기

신작 <공무도하>는 스트레이트 문장으로 쓴 세상의 단면이다. "소설은 다 지어낸 것이고, 100% 허구"라는 말에도 불구하고, 주인공 문정수와 작가의 기자 시절이 겹쳐 읽힌다. 에세이에서 보인 사유가 다시 반복되어 나타나기도 한다. '언어의 허약함'을 말하는 작가지만, 그는 불안한 언어, 그 허약함 안에 소통의 힘이 내장되어 있기에 말이 세계를 개조하리라는 꿈을 버리지 않는다.

'멀고 아득한 것들을 불러서 눈앞으로 끌어오는 목관악기 같은 언어를 나는 소망하였다. 써야 할 것과 쓸 수 있는 것 사이에서 나는 오랫동안 겉돌고 헤매었다. 그 격절과 차단을 나는 쉽사리 건너갈 수 없었다.' (문학동네 인터넷 블로그, '연재를 시작하며' 중에서)

제목인 공무도하는 그가 고등학생 시절 배운 '공무도하가'에서 따온 말이다. 주지하다시피 '공무도하가'는 봉두난발이 백수광부가 강물에 빠져 죽고, 나루터 사공의 아내 여옥이 이 죽음을 슬퍼하며 울면서 부른 노래다. 작가는 "백수광부의 혼백은 기어이 강을 건너갔을 테지만, 나의 글은 강의 저편으로 건너가지 못하고 강의 이쪽 사람의 이야기이며 약육강식의 더러운 세상에서 함께 살자는 노래"라고 말했다.

한국매일신문 사회부 기자 문정수는 기르던 개에게 물려 죽은 소년의 어머니를 찾기 위해 십년 전 군인으로 복무했던 해망을 찾는다. 이후 해망 방조제에서 벌어진 교통사고, 해망 방조제도로 교통, 해망 해저 고철 인양 사업 등을 취재하며 해망과의 질긴 인연을 이어간다. 그는 서남소방서 소방위 박옥출, 아들이 개에 물려죽은 후 자취를 감추는 오금자, 베트남에서 한국으로 시집와 가출한 후에, 후에와 함께 바다 속 포탄 껍질과 탄두를 건져 올려 살아가는 장철수 등을 취재 현장에서 만나고, 기사로 담지 못하는 이야기를 애인 노목희에게 전한다.

작품의 배경인 가상의 도시, 해망은 현대의 많은 편린이 재구성된 공간이다. 작가는 "바다 해(海), 바라볼 망(望)을 쓰는 해망은 내륙의 해안 도시로 바다 너머를 바라본다는 뜻으로 지었다"고 말했다. '공무도하'의 배경은 백수광부의 강에서 내륙의 해안 도시로 넘어 온다.

애인인 노목희는 지방 미술대학을 졸업하고 출판사 편집자로 근무한다. 책 편집과 표지작업을 함께하는데, 인문서적 <시간 너머로>를 편집하며 그는 색연필로 표지그림을 그린다. 유화물감과 붓, 손의 이질감을 극복하지 못한 그녀는 '어린 화가'다. 이 책의 표지를 본 후, 저자인 타이웨이 교수는 자신이 교환교수로 가게 되는 해외대학에 편집디자인과정 장학생으로 그녀를 추천하고, 그녀는 길을 떠난다.

"노목희가 기름을 컨트롤 못하니까 유화가 아닌 색연필로 표지를 그리잖아요. 색연필은 수채화 계통, 물 쪽이죠. 유화는 기름 쪽이고. 결국 노목희는 물의 세계로 돌아오는 것이죠."

문정수와 박옥출, 장철수와 노목희, 오금자와 후에는 강 건너 저편으로 가지 못하고 약육강식의 더러운 세상에서 함께 살아간다. 작가는 "누구도 강을 건너는 사람은 없지만, 타이웨이와 장철수 사이에 아득한 거리가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난 스트레이트 문장으로 소설을 하나 더 쓰고 싶어요. 독한 야심이에요."

그가 쓰는 다음 작품 역시 약육강식의 비극과 거기에 저항할 수밖에 없는 인간 운명의 또 다른 변주일 터다.

'인간의 일들을 인간의 바깥쪽으로 끌고 가면서 뭐라고 중얼거리는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이 저주받은 안쪽을 들여다보고 있겠습니다.'(2001 동인문학상 수상 소감 중에서)

저기, 한 남자가 간다. 그는 1948년생이고, 전직 기자이다. 소설로 몇 개의 상을 받았고, 앞으로 몇 편의 소설을 더 쓸 예정이다. 남자의 이름은 김훈이다.

김훈은…

▦1948년 서울 출생

▦68년 고려대 영문학과 입학

▦73~90년, 99~2000년 한국일보 기자

2000년 시사저널 편집장

2002~2003년 한겨레신문 기자

▦장편 <빗살무늬토기의 추억>(1995) <칼의 노래>(2001) <현의 노래>(2004) <개>(2005) <남한산성> (2007) <공무도하>(2009) 소설집 <강산무진>(2006)

▦에세이 <풍경과 상처>(1994) <자전거여행 1ㆍ2>(2000, 2004) <원형의 섬 진도>(2001) <너는 어느쪽이냐고 묻는 말들에 대하여>(2003) <밥벌이의 지겨움>(2003) 등



이윤주 기자 miss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