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초대석] '꽃의 화가' 김희재'시든 꽃'의 메시지와 감동… 40년 꽃 그림 체계적 정리 개인전 열어

오른쪽은 작품 '허공'을 배경으로 한 김희재 작가
"키아프 최고의 작가는 김희재다."

2004년 KIAF(한국국제아트페어) 전시장을 둘러본 수필가 피천득 선생(1910∼2007)은 김희재 작가의 작품을 그렇게 높이 평가했다. 일면식도 없는 작가의 작품에 대해 한국 수필계를 대표하는 선생의 평은 이례적이어서 당시 미술계에 화제가 되기도 했다.

피천득 선생이 김희재 작가의 작품을 주목한 이유는 무엇일까? 2년 뒤인 2006년 12월 김 작가는 허윤정 시인 등과 선생의 댁을 방문했을 때 당시의 찬사에 뒤늦은 감사를 표했다. "어떻게 젊은 사람이 그런 그림을 그릴 수 있나?" 피천득 선생은 짐짓 물었으나 김 작가의 작품에 담긴 '인생의 깊이'를 꿰뚫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작품의 깊이를 27일 서울 삼성동 김희재 작가의 갤러리에서 어렴풋하게나마 확인할 수 있었다. 갤러리에 들어서니 <허공>(1990년)이란 작품이 압도하듯 들어온다.

"지리산 고사목에서 영감을 얻었는데 마치 신기(神氣)에 빠진 것처럼 사흘낮 사흘밤을 잠을 자지 않고 그렸습니다."

왼쪽부터 '기억속으로, 2008', '기억속으로 2009'
<허공>은 허무적 분위기에다 황량한 산야에 외롭게 서있는 고사목과 화면 상단의 허공, 그리고 고사목에 감겨있는 넝쿨 속에 핀 꽃이 한 폭에 담긴 300호 대작이다. 나무와 꽃을 통해 상징되는 굴곡의 인생을 관조하는 듯한 인상이다. 어쩌면 피천득 선생은 그런 작가의 내면, 영혼의 소리를 들었는지 모른다.

김희재 작가는 40여 년을 꽃만 그려온 '꽃의 화가'다. 그것도 화단에서는 유일하게 야생화라는 자신만의 작품세계를 구축한 화가다. 그에게 야생화는 어떤 의미이고, 고집스럽게 야생화만 추구하는 이유는 무얼까?

"야생화에 대해선 특별한 경험들이 있어요. 그것이 내 그림에, 인생에 필연적인 영향을 줬습니다."

그 중에는 '산의 화가' 로 불리는 박고석 화백(1917∼2002)과의 인연도 자리한다. 대학(중앙대 회화과) 재학 중에 박 화백 일행과 등산을 하면서 느낀 자연의 신선함은 김 작가에게 충격이었다고 한다. "그때 자연이 준 감동은 이루 말할 수 없었어요. 자연이야말로 최고의 예술이라는 특별한 경험이었다고나 할까요."

그러한 자연의 경험은 그가 1973년 대학을 졸업하고 광주 숭의중학교에서 교사 생활을 시작한 무렵 작가의 길로 들어서면서 구체적으로 이어진다.

김희재 작가는 당시 뒷산 숲으로 산책(등산)을 하면서 숲길을 헤치고 다니다 야생화를 발견하고 경이로운 아름다움을 느꼈다고 한다. 말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눈물이 나올 만큼의 아름다움을. "외로이 산속에 홀로 피어 있는 야생화의 몸짓에서 영혼을 느꼈고, 그 꿋꿋하고 당당함이 하루아침에 이뤄진 것이 아니라 사계절 눈보라와 세찬 바람을 이겨낸, 마치 서정주 시인의 '국화' 를 연상시키는 감동을 주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그림을 그리면서 교직 생활을 병행하기 어렵다고 판단, 6개월여 만에 교사직을 그만두었다. 그리고 결혼과 함께 아이를 키우면서 친구도 안 만나고, 오직 그림 그리기에 열중했다. 그렇게 모은 작품으로 1983년 미도파 화랑에서 첫 개인전을 열었다. 국내 최초로 야생화를 소재로 한 전시회였다. "그 때는 꽃그림은 회화적 가치가 없다고 할 시대였고, 들꽃에 관한 사진 한 장 변변치 않은 시절이었어요."

김희재 작가의 첫 전시회는 당시 생소했으나 그가 야생화 화가로 확고한 자리매김을 하는 출발점이 됐다. 그리고 그의 작품은 점차 안목 있는 전문가들의 주목을 받았다. 선화랑의 김창실 대표는 김 작가의 작품성을 판단하고 1990년 그의 세 번째 작품전을 열어 주었다. 이듬해엔 표화랑의 표미선 대표가 김 작가의 화실을 방문할 정도로 열의를 보이며 네 번째 작품전에 초대하였다.

김희재 작가는 여러 훌륭한 스승을 사사했으나 수채화가 배동신 선생과의 인연을 각별히 여긴다. 그는 개인적으로 그림을 지도한 적은 없으나 김 작가를 개안시켜 준 사람이다.

"선생님은 당신의 작품을 보여주면서 소감을 묻곤 했는데 그냥 좋다고 하면 아무 내색을 안 하셨어요. 어느날 작품을 보는데 갑자기 그림이 움직이더니 베토벤 음악처럼 마음을 치고 들어오는 거야요. 그 사실을 얘기하니까 '되었소' 라고 하시더라고요."

예술작품이란 그림을 잘 그린다는 차원을 넘어 영혼을 뒤흔드는 작품, 다른 사람에게 감동을 주는 작품이어야 한다는 것을 깨우치게 했다는 게 김 작가의 설명이다.

그의 작품은 연륜이 쌓이면서 해외에서도 관심을 끌었다. 프랑스와 미국 화단의 높은 평가와 함께 전시 요청이 이어지면서 2000년 뉴욕아트엑스포를 계기로 이듬해 마이애미의 라이얼스 갤러리에서 워크숍 형식의 개인전이 열렸다. 우리나라 화가, 교수, 학장 38명 중 오직 김희재 작가만 단독으로 초대를 받은 것이다.

라이얼스 갤러리는 세계 각국의 유망한 작가들을 엄선해 후원해 주는 것으로 명성이 나 있으며 김 작가 후원은 한국인으로는 최초였다. 베트남 출신의 화가이기도 한 후앙(Huong) 갤러리 관장은 "김희재의 작품을 보았을 때 난 나와 같은 여인의 삶을 느꼈다. 그림 속에 녹아든 예술의 열정에 대한 죽음, 즉 강렬한 죽음을 통해 삶의 희열을 나타내는, 그리고 쏟아져 내리는 불꽃을 바라보게 돼 감동을 받았다"며 극찬했다.

김 작가는 어릴 적부터 꿈이었던 파리행을 통해 예술의 진정성과 자신의 작품세계의 정체성에 대해 나름의 해답을 찾았다. 2003년부터 2년간 파리에 체류하는 동안 '에꼴 데 보자르'(Ecole des Beaux-Arts)를 수학하고 수많은 박물관, 미술관의 작품을 관람한 뒤에 얻은 결론이었다.

"많은 작품을 보고 나니 이제 현대미술에서 더이상 새로운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나온다고 해도 그다지 의미가 없고요. 예술은 사람을 놀래키는 게 아니라 감동을 주는 것이라고 봤어요. 그럴려면 내 작품에 대해 나부터 감동하는 창작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김 작가는 미술이건, 음악이건 '감동'이 있어야 가치 있는 예술작품이라고 강조한다. "파리에서 나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 예술에 대한 혜안을 갖게 되었죠. 지금까지 해 온 내 작업이 '감동'을 줄 수 있으면 세계에서도 통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김 작가는 예술이란 가치를 떠나 일종의 '하소연'이라고 말한다. 감동, 느낌을 안에서 끄집어 낸 것이 예술이라는 것. 이런 점에서 미술, 음악, 문학은 차이가 없다는 게 김 작가의 설명이다. "내 감정, 희망, 고통, 기쁨, 슬픔 등을 야생화가 잘 표현하고 있다고 봅니다."

김 작가의 야생화는 시든 꽃이 대부분이고 황색, 갈색, 흑색이 주조를 이룬다. 이러한 특성에 대해 서성록 한국미술평론가협회장은 "작가의 작품에 등장하는 꽃은 자연의 모방을 넘어선 자기 정서의 혼입", 김상철 미술평론가는 "작가는 야생화라는 소재를 통해 피안의 이상을 추구하고 있으며 화면의 색채는 작가의 사유와 감성이 더해진 서정 이상의 정신적인 것"이라고 평한다.

김 작가는 '시든 꽃'이 그저 사라지는 꽃이 아니라 잘 여문 씨앗을 만들기 위해 '새 생명을 잉태하는 과정'이라고 해석한다. 작품에 등장하는 '엉겅퀴'는 강원도 철원의 군사분계선을 지날 때 바람에 흩날리는 한 무더기의 꽃송이가 새 생명을 날려보는 것으로 인상 깊게 다가왔다고 한다.

"사람들은 시들어 가는 꽃을 절망으로 느끼지만 오히려 종자인 씨를 안고 있어요. 죽음이라는 것, 시든다는 것이 꼭 절망적이지만은 않아요. 그게 더 큰 환희고, 더 큰 희망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시들어가는 꽃이 소중하고 아름답게 느껴져 '시든 꽃'을 많이 그렸습니다. 사람의 인생과 똑같으니까요."

김 작가의 갤러리는 늘 음악이 흐르고 한쪽 비좁은 작업실엔 문학과 철학 서적이 가득하다. 그는 자신의 작업세계를 지탱해주는 것으로 음악과 문학을 들었다. 무한한 상상력과 자극을 주고 지치지 않고 행복하게 작업할 수 있는 에너지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그림도 문학, 음악과 일맥상통하죠. 그림은 눈으로 즐기기 위함이 아니라 영혼의 울림이라고 할 수 있죠. 그리움, 절망, 아픔, 희망 등 인간의 하소연을 문학도 음악도 담아내고 풀어내는 게 아닌가요."

대화는 순간 미술에서 플로베르가 마음으로 쓴 소설이라는 <보바리 부인>, 김지하 시인의 시 <무화과>, 폴 발레리의 미학 등으로 넘어갔다. 대화가 끝날 무렵 김 작가는 서고의 책 중 김혜순 시인의 <나의 우파니샤드, 서울>(문학과지성사,1994) 시집을 건넸다.

다시 미술로 돌아오자 4일부터 인사동 인사아트센터에서 열리는 개인전에 의미를 부여한다. "이번 전시는 40여 년 꽃을 그려온 궤적을 한번 체계적으로 정리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모처럼 전시회를 통해 얼굴을 알리기도 하고요." 김상철 평론가는 "작가의 자연에 대한 관조와 이상에 대한 추구는 각박한 현실에서 일상의 삶을 영위하는 현대인들에게 하나의 안식의 공간을 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 작가에게 향후 계획을 묻자 내년 4월 미국 시카고에서 전시가 예정돼 있다며 해외에도 적극적으로 자신의 작품을 알리겠다고 한다.

갤러리를 나오면서 펴든 <나의 우파니샤드, 서울>의 서문 중 "시는 아마 길로 뭉쳐진 내 몸을 찬찬히 풀어, 다시 그대에게 길 내어주는, 그런 언술의 길인가 보다"라는 구절이 인상적이다.

김희재 작가는

중앙대 회화과 졸업, 프랑스 파리 Ecole des Beaux-Arts 수학 2003-2004 COURS ADULTES POUR 일본문화원 초대전(1986), 그랑 펠레 비엔날레 89, 파리(1989), 인도 국립미술관 구상작가 초대전(뉴델리), NEW YORK ART EXPO(2000), 마이애미 라이얼스 갤러리 워크숍 개인전(2001), 시카고 아트페어(2009), 개인전 15회(선화랑, 표화랑, 조선화랑,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등)



박종진 기자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