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진호 감독 인터뷰영화 '집행자' 교도관 시선으로 사형제도 이면의 다양한 논란 일깨워

쿵. 누구라도 숨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바닥이 열리면서 사형수가 목 매달리는 순간. 조용했다. 굵은 밧줄 아래 늘어진 몸뚱이가 몇 차례 푸드득거리다가 멈췄다. 하지만 아직 끝나지 않았다. 두 번의 사형 집행이 더 남았다.

영화 <집행자>의 클라이막스는 연거푸 세 번 집행되는 사형 장면이다. 주인공이 교도관들이기 때문이다. 첫 집행부터 정공법으로 보여준다. 고통스럽다. 하마터면 선정적일 수 있는 시도였다. "그래도 그것을 보여주지 않고 어떻게 집행자들의 심정을 알게 할 수 있었겠나." 최진호 감독이 나직하게 되물었다.

사형수가 등장하는 영화는 많아도 사형을 집행하는 교도관의 심정을 헤아린 적은 없었다. 교화위원이 드나드는 동안 교도관은 교도소의 일부로 물러나 있었다. 그들은 그런 '역할'이었다. 사람의 목숨을 끊는 일도 직업의 일부일 뿐이다.

하지만 누구라도 괜찮을 리가 없지 않은가. 감독은 2년 전, 사형을 집행한 교도관들이 겪는 정신적 문제를 다룬 신문 기사를 읽었다. 누군가는 약물 치료를 받고 있었고, 누군가는 알콜 중독에 빠져 있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사형집행장과 그들의 내면에서 일어났는지 궁금했다.

호기심은 때로, 어떤 명분보다 정당하다. <집행자>는 사형제도를 둘러싸고 제기될 수 있는 딜레마들을 치우침 없이, 빠뜨림 없이 짚어낸다. 사형제도에 대한 특정한 입장이 아닌 인간에 대한 우직할 만큼 정직한 호기심으로 접근했기 때문이다.

잔혹한 방식으로 연쇄 살인을 저지른 장용두(조성하)가 붙잡히자 사회적으로 사형을 집행하라는 여론이 들끓는다. 법무부는 이에 대한 정치적 제스처로 10년 이상 중단되었던 사형 집행을 재기하기로 하고, 소식을 전해들은 교도관들은 누가 이 일을 할 것인지를 두고 고민에 휩싸인다.

김 교위(박인환)는 유일하게 경험이 있다는 이유로 사형집행조에 포함되지만, 그 트라우마 때문에 괴로워한다. 인정사정 볼 것 없는 교도관 종호(조재현)는 태연하다 못해 뻔뻔한 장용두를 인간 취급도 안 하지만, 그에게 동생을 잃은 한 여인은 "장용두와 똑같은 짓을 하고 싶진 않다"며 사형 집행을 반대하는 탄원을 한다.

한편 장용두와 함께 사형대에 오르는 이성환(김재건)은 20년간 교도소에서 자신의 죄를 뉘우쳐 온 착한 심성의 소유자. 그와 친하게 지낸 김 교위가 "도저히 못하겠다"고 도리질을 치자 중호는 차분히 말한다. "죽이는 게 아니라, 법을 집행하는 겁니다." "그 법이 그렇게 죽이는 거잖아! 이제 무섭다."

감독은 사형제도를 소재로 삼은 기존 영화들이 흔하게 취했던, 인권을 내세워 사형제도 폐지를 주장하는 태도의 명쾌함과도 선을 그었다.

"사형이 올바른 징벌인가, 라는 질문은 던질 수 있다. 하지만 사형수의 죄까지 용서하라고는 감히 말할 수 없다. 그것을 판단하는 것은 피해자와 그 가족의 몫이다. 사형수 중에도 여러 캐릭터가 있다. 동정하거나 미화하는 것이 아닌 객관적인 시선으로 조망하고 싶었다."

교도관의 시선도 그 자신의 고충만을 대변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형식적으론 가해자지만 실질적으로는 피해자이고 법제도의 집행자이자 대리인, 때로는 방패막이인 그들은 이 모든 딜레마를 정확하게 읽어내기 위한 '위치'이기도 하다. 그들을 통함으로써 사형 제도 이면에 이렇게나 다양한 논란의 지점이 있음을 일깨우고자 했다.

취재가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사형 집행 경험이 있는 교도관에게 직접 이야기를 듣고 싶었지만 여의치 않았다. 떳떳하게 노출할 경험이 아니다 보니. 그래서 전직 교도관의 수기와 인터뷰 기사 등 자료를 위주로 취재했다.

사형 집행 장면이 충격적이다. 이렇게 찍기까지 고민이 많았을 것 같은데.

원래는 커튼을 친 상태에서 집행한다. 하지만 그 실재를 보여주지 않고 어떻게 사형 집행관들의 심정을 알게 할 수 있을까 싶었다. 촬영할 때도 섬뜩했다. 하지만 충격적인 효과를 내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전후 맥락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세 명의 사형수 각각의 집행 장면을 집행 순간, 집행 직전, 집행 직후로 나누어 찍었다.

촬영 때도 감정이 이입되어서 김 교위와 마지막까지 대화를 나누는 이성환의 상황은 슬펐고, 바닥이 잘 열리지 않아 사형이 지연되더니 목 매달린 후에도 숨이 끊어지지 않고 버티는 장용두의 상황에선 '빨리 죽었으면'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신경이 곤두섰다.

장용두의 사형 집행에 차질이 생기자 종호가 이를 성공시키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그 모습이 슬프고 처절한 부조리극처럼 보인다.

장용두를 죽이려는 것이기보다 이 상황을 빨리 끝내고 싶다, 그래야 벗어날 수 있다는 심정이었을 것이다. 법적 절차지만, 그 고통스러운 경험은 고스란히 교도관들의 몫으로 남는다. 교도관들은 사형을 집행한 날에는 집에 들어가지 않는다고 한다. 악운이 따라온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또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88만 원 세대' 담론이 상징하는 젊은 세대의 문제가 들어온다는 것이다. 재경(윤계상)은 공무원 시험을 친 지 3년 만에 '취직'하게 된 신참 교도관. 재경이 교도소에서 겪는 일련의 통과의례들, 중호로부터 이 '수컷 사회'에서 살아남는 법을 배우고 폭력에 익숙해지고 급기야 예기치 않았던 사형 집행까지 하게 되는 과정은 그의 '성장담'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런 맥락에서 보면 교도관들이 범죄자를 가두면서도 스스로 가두는 공간으로서의 교도소는 지금의 한국사회를 은유하는 것이 아닐까. 교도관들은 사형 집행 수당으로 받은 7만 원으로 진탕 취한다.

재경은 교도관들 중 유일하게 '사생활'을 가진 인물인데, 이 역시 그리 순탄치 않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며 편의점에서 '알바' 중인 여자친구가 임신을 한 것. 방음도 안 되는 단칸방 신세의 재경 입장에선 선뜻 아이를 낳거나 결혼을 하자는 말을 할 수 없다.

"상황이 좀더 좋아지면…"이라며 대답을 미루던 재경은 사형을 집행한 날, 비로소 여자친구에게 "포기하지 말자"고 말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낙태 소식이다. 재경의 손에 피가 묻은 순간, 그의 아이도 죽었던 것이다. 여자친구는 싸늘하게 묻는다. "도대체 오늘 얼마나 중요한 일을 한 건데?"

장년층인 김 교위, 중년층인 종호 그리고 막 사회에 발을 디딘 청년층 재경(윤계상)까지 여러 세대의 교도관을 함께 등장시킨 점도 흥미로웠다.

처음엔 김 교위와 종호가 섞인 한 명의 교도관에서 출발했다. 그 인물을 조직의 룰을 알면서, 그것을 좀 넘어설 줄도 아는 유한 품성의 김 교위와 조직의 룰을 대변하는 듯 강하지만 상처가 있는 종호로 나누었다. 성격이 다를뿐더러 세대가 다른 두 인물이 나온 것이다.

재경은 가장 마지막에 들어온 인물이다. 교도소를 외부와 매개하면서 사생활을 통해 현실을 반영한다. 세대별로 나뉨으로써 이들은 서로가 서로의 과거이자 미래가 되기도 한다. 재경이 종호처럼, 종호가 김 교위처럼 될 것임을 암시하는 설정이기도 했다.

교도소 안팎 간 균형을 맞추는 것도 쉽지 않았을 것 같다.

교도소 안의 문제를 교도소 밖의 시선으로 반문하는 사람이 재경의 여자친구다. 재경은 언제나 그렇듯이 힘들다고 투정 부리려 여자친구를 찾아가지만, 그녀가 묻는다. 얼마나 중요한 일이었냐고. 교도관 자신에게는 무엇보다 직업의 일부니까 중요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하지만 넓은 의미에서도 정말 중요한 일이었는지 고민하는 계기를 만들고 싶었다.

재경과 여자친구의 사연에선 요즘 젊은 세대의 문제가 드러나기도 한다. 몇 년째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미래가 불안해 아이를 낳거나 결혼을 하는 결정을 내리는 것도 어려워한다. 젊은 세대의 상황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나.

대부분이 먹고 살 걱정에 매달려야 한다는 데에 미안한 마음이 있다. 그들만의 책임이 아니다. 우리 같은 윗 세대가 만든 부분이 있지 않나.

재경의 여자친구가 낙태를 하는 설정이 있다. 사형과 낙태를 일대일로 대응시키는 데 부담이 많았다고 했는데, 어떻게 극복했나.

낙태 자체만으로도 영화 한 편을 만들 수 있을 만큼 사회적 함의가 큰 문제 아닌가. 사형과 낙태를 섣불리 등치하면 유치해질 것 같았다. 또 남성 감독이 여성에게 더 큰 문제인 낙태를 소재적으로 차용하는 것 같아 걱정이 됐다. 시나리오에서 가장 많이 넣었다 뺐다 한 설정이다. 함께 시나리오 작업한 여성 작가와 많이 토론했다. 여성 스태프들의 이야기도 많이 들으려고 했고. 주인공에게 문젯거리 하나를 더 던져주는 것처럼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집행자>는 이처럼, 사형제도를 어떻게 할 것이냐가 아니라 사람들이 사형제도를 어떻게 살아내고 있느냐를 다루었다. 그 찬찬한 시선을 따라가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최진호 감독은 이 영화가 최근 몇몇 강력 범죄로 가열된 사형제도 존폐 논란의 분위기와 연결되는 것이 달갑지만은 않다.

하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집행자>는 필요한 영화다. 호흡 가쁜 언론이 놓친 여러 중요한 논점을 제기하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사람에 대한 세심하고 풍부한 호기심이야말로 '논란'이 아닌 '논의'를 가능하게 한다는 것을 일깨운다. 11월5일 개봉한다.



박우진 기자 panorama@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