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계 미국 작가 재니스 리데뷔작 '피아노 교사' 뉴욕타임즈 베스트셀러 23개국서 번역 출간

<딕테>의 차학경, <네이티브 스피커>의 이창래 그리고 얼마 전 세상을 뜬 <순교자>의 김은국.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영어로 작품을 써서 세계 무대에서 인정받은 한국계 작가라는 점이다. 최근 이 계보에 새 이름이 더해졌다.

홍콩에서 태어난 한인 2세 작가 재니스 리. 그는 올해 초 출간한 데뷔작 <피아노 교사>가 미국에서 출간된 직후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순위에 오르며 주목을 받았다. 이후 몇 달 만에 23개국에 번역, 출간되는 등 신인으로는 이례적인 대우를 받았다.

26일 <피아노 교사>(문학동네 발행)의 국내 출간을 기념해 가진 간담회에서 그는 "모국인 한국에서의 책 출간은 내게 큰 의미가 있다"고 소감을 말했다.

홍콩에서 태어나 15살에 미국으로 간 뒤, 하버드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한 작가는 28살에 직장을 그만 두고 헌터 대학 대학원에 들어가 이창래 교수에게 소설 창작을 배웠다.

그는 다른 한인 작가들과 달리 재외 한국인으로서 정체성이나 외국계 이민자에 대한 소외 등을 내세우지 않는다. 첫 장편인 이 작품에서 홍콩에 사는 영국인을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작가는 "사람들에게 나를 한국인이라고 소개하지만, 작품을 쓸 때 내가 한국인이라는 의식 없이 쓴다"며 "언젠가 한국에 관한 이야기도 쓰겠지만, 정해진 것은 없다"고 말했다.

장편 <피아노 교사>는 1940년대와 1950년대 2차 대전 전후의 홍콩을 배경으로, 영국인 윌 트루스데일과 그를 사랑한 두 여자 트루디, 클레어의 이야기를 그린 소설이다. 피아노 교사 클레어의 시각에서 시작되는 이 소설에서 작가의 자전적 경험은 거의 없다.

작가는 "1970년대를 배경으로 유럽계 피아노 교사와 아시아 학생에 관한 자전적 단편을 쓴 적 있지만, 자전적 이야기가 장편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며 "내가 경험하지 못한 세계를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쓰는 것이 좀 더 나를 자유롭게 한다"고 말했다.

이국적인 배경에서의 러브스토리, 화려한 사교계에 관한 묘사, 전쟁 등 다양한 요소로 독자를 유혹한다. 흡입력 있는 문체는 대학 졸업 후 잡지 <엘르>에서 서평 에디터로 일하며 익힌 감각이 한 몫 한 듯하다. 그는 "한 달에 10 여 편의 서평을 썼다. 이때 문학, 논픽션, 자서전 등 다양한 책을 선정했는데, 어떤 책이 좋은 책인지 알게 됐다"고 말했다.

첫 소설의 성공을 예상했느냐는 질문에 작가는 "소설을 쓸 때만 해도 이렇게 큰 반향은 전혀 예측하지 못했다"며 "다만 1940~50년대 홍콩은 경험하지 못해 본 것에 대해 흥미를 보인 것 같다"고 말했다.

"제 소설은 공통된 세계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인간에 관한 이야기이지요. 극단적 환경에서 인간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극단적 상황에서 자신을 규정하는 것은 무엇인가? 저는 어떤 거대한 압력과 이 환경 속에서 드러나는 야만이 인간의 본성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습니다."

현재 남편, 네 아이와 홍콩에서 거주 중인 작가는 "지금 몇 가지 아이디어를 구상하고 있고 내년쯤 구체적으로 차기작 작업에 들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윤주기자 miss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