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계 앙팡테리블] (40) 극작가 김지훈'원전유서' 대한민국연극대상 작품상, 동아연극상 대상 등 휩쓸어

서른 살, 젊은 극작가 김지훈 앞에는 <원전유서> 네 글자가 꼭 따라 붙는다. 공연시간 4시간 30분의 이 작품은 작년 첫 무대에 오르기 전부터 화제를 모았고, 그를 '가장 주목받는 극작가'로 만들었다.

"희곡 쓰기는 하늘에서 뚝 떨어진 글쓰기였어요."

원래의 꿈은 시인이었노라고, 그는 말했다. 2004년 문화일보 신춘문예 시로 등단한 작가는 "시집을 내려고 했는데, 미사여구밖에 보이는 게 없어 포기했다"고 말했다.

그는 고려대 문예창작과 재학 시절, 비평 과제로 생전 처음 본 연극에 실망해 '나도 쓸 수 있겠다'고 쓴 작품 <양날의 검>이 2005년 대산대학문학상 희곡부문에 당선되면서 두각을 나타냈다. 심사위원이던 이윤택 예술감독은 당시 '최인훈 이후 가장 한국적 정서를 잘 표현한 작가'라고 평했다.

"최인훈 작가는 제가 유일하게 전집을 갖고 있는 작가였고, 존경하는 분이었어요."

그리고 "좋은 희곡을 쓰려면 먼저 배우의 과정을 거치는 것이 좋다"는 이윤택 감독의 말을 듣고, 그가 이끄는 연희단거리패를 따라 밀양으로 갔다. 정단원 50명, 스태프 20명이 공동생활을 하는 그곳에서 밤 10시 연습이 끝나고 새벽까지 쓴 작품이 <원전유서>. 이 감독은 세상 사람들이 네 글을 읽어낼 수 있다면 연출을 해준다고 말했고, 이 작품은 재작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창작희곡 활성화사업인 '창작예찬' 공모 당선작에 당선됐다.

'원전유서'는 쓰레기 매립지 위에서 살아가는 주소 없는 사람들의 사연을 들려준다. 사회악을 상징하는 아비는 정신질환 남자의 아내와 자식을 데리고 살며 악행을 일삼는다. 자식들은 상가에서 대신 울어주는 아이로 울음을 팔러 다닌다. 결국 두 아이는 죽어서 나무가 되는데, 죽기 전 자신의 편지를 남긴다. 이 작품에서 '유서'는 인간의 일생이 담긴 가장 아름다운 '원전'이 되는 셈이다.

약속대로 이윤택 감독이 이 작품의 연출을 맡았고, 이 작품은 지난 해 대한민국연극대상 작품상과 동아연극상 대상, 희곡상 등을 휩쓸었다. 지난 해 첫 공연 때는 물론 지난 주 서울국제공연예술제 공연에서도 관객들은 이 진중한 작가의 이야기를 집중해 '경청'했다.

"관객 반응을 보면서 우리 연극에 희망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쉽게 가지 않고, 의식 있게 쓴다면 희망이 있다고요."

물론 그가 이제껏 주목받은 이유가 '완벽한 희곡'을 썼기 때문은 아니다. 작품의 메시지는 주인공의 입을 통해 직설적으로 발현되고, 극의 전개도 부자연스러운 점이 눈에 띈다. 희극의 미학은 '상징을 통해 절제된 언어'란 점에 비춰볼 때 필요한 말을 골라내는 훈련도 필요하다.

작가도, 그의 가능성을 알아본 이윤택 감독도 이 부족함을 모른 바는 아니다. 이 감독은 24일 <원전유서> 상연 후 가진 관객과의 대화 "줄이려면 2시간 40분까지 줄일 수도 있지만, 작가의 의도를 존중해 4시간 30분으로 만들었다"라고 말했다.

"작품을 수정할 시간을 주셨는데, 모자라면 모자란대로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이 작품은 그대로 두고, 그 비판은 다음 작품을 쓸 때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죠. 연극은 관객이 직관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면 잘못된 글쓰기더라고요. (불필요한 부분은) 과감하게 삭제해야 하는데, 그게 희곡 작가에게는 굉장히 긴 짐인 것 같습니다."

그가 주목받는 이유는 천재적인 감각보다 연극에 대한 진진한 자세, 진정성 때문일 터다.



이윤주기자 miss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