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계 앙팡테리블] (41) 뮤지컬배우 임혜영앙상블서 주역으로 2년간 연이은 주연 캐스팅 여우신인상 수상도

가수는 자신이 부르는 노래를 따라간다는 말이 있듯이, 배우는 자신이 맡은 배역을 닮아가는 모양이다. 뮤지컬 <브로드웨이 42번가>에서 여주인공 '페기 소여' 역을 열연한 임혜영의 경우가 그렇다.

그는 같은 역을 맡은 옥주현과 견주어 뒤지지 않는 연기력으로 얼마 전 열린 제15회 한국뮤지컬대상 시상식에서 여우신인상을 거머쥐었다. 무명의 코러스걸로 출발해 일약 브로드웨이 스타가 되는 페기 소여의 여정을 임혜영이 그대로 따라가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뮤지컬배우에 대한 동경으로 무작정 상경해 코러스걸이 된 페기처럼, 대학에서 성악을 전공하던 임혜영도 뮤지컬에 대한 염원을 가지고 '이쪽 세계'로 건너왔다. 용기가 없어 오디션도 못보고 있던 그는 대학교 4학년이던 2006년 뮤지컬 <드라큘라> 오디션을 통과해 마침내 꿈꾸던 뮤지컬 무대를 밟게 됐다.

"데뷔할 때의 느낌은 '좋다', '행복하다', '감격스럽다', 이런 감정을 느끼기도 전에 꿈을 꾸는 것 같고 벅찬 마음에 엉엉 울었던 기억이 있어요."

앙상블로 출발한 임혜영의 꿈은 지난해 <마이 페어 레이디>의 공개오디션에서 만개하기 시작했다. 1183대 1의 치열한 경쟁률을 뚫고 일라이자 역에 뽑히는 순간, 임혜영의 '떡잎'은 주목받기 시작했다. 뮤지컬을 시작한 지 1년밖에 되지 않은 생짜 신인이 주역을 맡아 처음으로 무대에 오르던 순간을 그는 지금도 자세하게 기억한다.

"온몸 구석구석 모든 신경을 다 열고, 작은 움직임과 미세한 소리에도 반응하고 느꼈던 순간이었어요. 하지만 동시에 길고 조금은 두려웠던 시간의 터널을 빠져나와 맑은 햇살을 맞은 느낌이기도 했어요."

성공적인 주역 데뷔를 마친 임혜영은 이후 <로미오와 줄리엣>의 줄리엣, <지킬 앤 하이드>의 엠마 등 여자배우들이 탐내는 캐릭터들을 잇따라 맡으며 급속한 성장을 보여왔다. 대개의 성악 전공 뮤지컬배우들이 보이는 노래 편향의 작품 선택과는 달리 댄스 씬이 많은 <브로드웨이 42번가>를 택한 것도 그의 다양한 욕심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이다.

이번 한국뮤지컬대상 시상식에서 수상을 위해 단상에 오른 임혜영은 "제가 탭댄스를 출 수 있을까 의문을 가질 때 끝까지 믿어준 분들께 감사합니다"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하지만 겸손한 소감과는 다르게 <브로드웨이 42번가>에서 임혜영은 완벽한 탭댄스 실력을 선보여 관객들의 찬사를 받았다. 이는 시종일관 화려하고 스펙타클한 춤과 음악 장면으로 관객에게 어필하는 <브로드웨이 42번가>에서도 두드러지는 부분이었기에 임혜영의 그간의 노력을 추측가능케 한다.

앙상블에서 주역으로, 그것도 단 2년 동안의 연이은 주역 캐스팅, 그리고 여우신인상 수상. 거기에 오는 12월 16일부터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열리는 가족뮤지컬 <오즈의 마법사> 주인공 도로시 역에 캐스팅돼 당분간 상한가를 올릴 것으로 평가받는 임혜영. 하지만 그는 데뷔 당시와 비교하면 달라진 점이 하나도 없다고 겸양한다.

"여전히 어려워요. 새로운 작품 속에서 새로운 인물을 만나고, 그 인물로 관객을 만나는 일은 항상 어려워요. 하지만 새로움과 시간의 기약이 주는 기회가 흥미와 열정을 자극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항상 즐겁습니다."

여전히 신인의 자세로 배우로서의 역량을 차근차근 쌓아가고 있는 임혜영. 수상을 기쁨을 뒤로 한 채 다시 한 번 자신을 채근하고 있는 그의 모습에서, 순수하지만 당차게 모험을 시작하는 도로시의 모습이 벌써부터 비춰지고 있다.



송준호기자 trista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