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갑 서울대의대교수담배 제조 및 판매 금지 법안 입법청원…전국돌며 금연 심포지엄도

박재갑
"담배 속에는 발암물질 62종이 들어 있고, 그 중엔 A급 발암물질도 15개나 됩니다. 담배연기 속에 들어있는 화학물질 중에는 사형가스로 쓰이는 청산가스도 있는데, 30갑 흡연 시 나오는 청산가스의 양은 70kg 나가는 사람이 한 번에 들이마시면 사망할 수 있는 치사량입니다. 담배는 인간에게 팔아서는 안 될 독극물이죠. 국민의 생명을 보호해야 할 국가가 담배의 판매를 합법화하는 것은 국민을 상대로 사기(詐欺)치는 겁니다."

서울대의대 외과 교수는 11월 11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금연 심포지엄에서 1600명의 참석자들을 향해 담배의 제조와 판매를 완전히 금지해야 한다며 열변을 토해냈다.

박 교수는 "과격한 발언으로 주변에서 걱정도 많이 들었다"며 "의사로서 인류의 건강과 생명에 담배보다 더 해로운 것은 없다는 것을 알게 된 이상 담배 판매를 불법화 하지 않는 것은 직무유기"라며 초유의 금연의지를 밝혔다.

식상한 얘기가 이어질 법도 한 금연 심포지엄. 하지만 외과의사다운 그의 열정과 박력 넘치는 화법, 특유의 유머에 청중은 푹 빠져들었다. '담배를 아예 만들지도, 팔지도 못하게 만들자'는 외침이 그처럼 호소력 있게 마음을 움직일 것이라고 기대한 사람이 얼마나 될까.

지난 2000년, 국립암센터 초대 원장으로 부임하면서부터 금연운동에 힘써 온 그는 지금까지 괄목할 만한 공로를 세웠다.

박재갑(왼쪽) 국립암센터 원장이 언론사 최초로 신문 지면에서 흡연 사진을 추방한 한국일보사를 방문해 장재구 회장에게 감사패를 전달하고 있다.
2000년부터 전국을 돌며 금연심포지엄을 통해 담배의 폐해와 금연의 필요성을 대중에게 알려왔다. 공개석상에서 대통령과 총리를 향해 "고만 사기 치라"며 담배 판매 금지법을 강력히 촉구했고, 2001년 국립암센터 개원식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향후 10년~15년 후에 담배를 판매 금지하자고 건의했다.

박 교수는 "김 전 대통령이 퇴임 후, 동교동 자택으로 불러 "내가 대통령 때 그렇게 해줬으면 좋았을 걸"하고 후회했다"는 말도 전했다.

또, 금연대책의 일환으로 TV드라마에 흡연장면 금지를 건의했고, 주요 신문사에도 흡연 사진 게재를 금지시킬 것을 건의했다. 군대 내 면세담배 판매를 금지시켰고, 담배가격 인상 운동을 펼쳤다.

2004년 '담배없는세상연맹(Tobacco Free World Alliance, ToFWA)'을 창설했고, 2005년 프랑스 리옹에 있는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연구소에 22개국의 암센터 원장들이 모였을 때 담배 제조 및 매매금지를 위해 공동노력하기로 하는 리옹 선언을 채택하도록 했다.

금연운동의 공을 인정 받아 2005년 세계보건기구로부터 금연공로상을 받기도 했다. 그는 2006년과 2008년, 담배의 제조 및 매매를 완전히 금지하는 법을 만들자고 국회에 입법청원을 제출했다. 명실공히 금연운동의 대가다.

흡연, 국민 사망에 가장 크게 기여

하지만 그는 자신을 "금연운동을 시작한 지 9년 밖에 안 된 새내기"라고 낮춰 말한다. 대장외과 전문의인 그가 금연운동에 뛰어들게 된 계기는 국립암센터 원장 부임이었다.

"국립암센터 원장으로 취임할 때만 해도 저는 그랬어요. 담배만 몸에 나쁜가? 설탕도 안 좋고, 안 좋은 거 투성이지 라고. 그런데 암을 연구하면서 암 사망자의 3명 중 1명이 담배에 의한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고, 국민을 암으로부터 보호하려면 반드시 금연운동을 해야겠다고 결심하게 되었지요."

우리나라에서 담배로 인해 목숨을 잃는 사람은 매년 5만 명 이상, 매일 137명이다. 박 교수에 따르면 우리 국민의 사망에 가장 많이 기여하는 것이 담배다.

"6·25 전쟁 때 매일 120명 정도가 사망했다고 합니다. 그러니 담배로 인한 생명 손실이 전쟁의 피해보다 큰 것이죠. 한 두건 발생할지 말지 가능성 여부도 모르는 광우병에 대해서는 그렇게 큰 관심을 보이면서 왜 담배 때문에 촛불시위를 하는 이들은 없는 것일까요?"

흡연이 암을 비롯해 각종 심혈관성 질환과 당뇨병, 고혈압, 호흡기질환, 치매 등의 발생위험을 크게 높인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뿐 아니라, 여성이 담배를 피우면 불임과 기형아 출산 위험이 커지고, 남성은 정력에 치명타를 입는다.

그러나 담배가 그처럼 건강에 해롭다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우리나라의 흡연인구는 약 800만 명이나 된다. 금연을 시도하는 사람들은 계속 늘고 있지만, 금연 성공률은 5% 정도에 그치고 있다.

담배에는 니코틴이라는 화학물질이 들어 있는데, 이는 어떤 마약보다 의존성이 강하기 때문이다. 또, 흡연이 질병이나 사망으로 이어지는 기간은 30여년 정도로 길기 때문에 많은 이들은 긴박하게 여기지 않는 경향이 있다. 여기에 담배 제조회사와 담배경작 농가, 담배로부터 세수를 거둬들이는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이해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

그래서 많은 이들은 담배 제조 및 판매 금지 법안 제안을 두고, "무모하고, 무책임하다. 헌법에 명시된 국민의 행복 추구권과 사생활의 자유를 침해하는 범법행위"라고 비난하기도 한다.

이에 대해 박 교수는 "나는 범법행위를 하겠다는 게 아니라 담배로 인한 보건상의 위해를 방지해 국민의 건강권 보장과 국민보건 향상에 기여하도록 법을 바꾸자는 것이고, 담배 경작 농가들이 대체작물을 경작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지방세 대체세원을 마련하는 등 국가와 함께 대책을 마련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강연 말미에 그는 "11월 11일은 내가 5년 전, 담배없는세상연맹(ToFWA)을 창설한 날"이라며 "이제 '빼빼로 데이' 대신 '금연 데이'로 만들자"고 의미를 부여하기도 했다.

프로필
1948년 생으로, 경기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했다. 현재 서울대의대 외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1995년부터 2000년까지, 서울대의대 암 연구소 소장을 맡았다.

1989년 정부에 국립암센터 설립을 건의했고, 1997년부터 보건복지부 국립암센터 설립 준비단으로 활동했다. 2000년부터 2006년까지 국립암센터 초대 및 2대 원장을 역임했고, 각종 암 예방사업과 금연운동에 힘쓰고 있다.



전세화 기자 cand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