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계 앙팡테리블] (43) 클라리네티스트 김한13세 '천재소년' 벌써 국제적 커리어… 싱포르로 유학

클라리넷 영재는 국내에서 귀한 존재다. 클라리넷, 플루트, 오보에가 속한 목관악기 섹션은 국내 오케스트라의 취약 파트로 유명하다. 서울시향에서 유독 목관주자 양성을 위해 우드윈드 아카데미를 개설한 것도 이 고질적인 문제에서 벗어나기 위함이었다.

클라리네티스트 김한. 겨우 만 13살 소년의 커리어는 그러나 이미 국제적이다. 리코더 대신 클라리넷을 쥔 지 3년 반 만인 올해 5월, 소년은 베이징 국제음악 콩쿠르에서 심사위원 특별상인 '최고 유망주 상'을 수상했다. 32세 이하의 전문연주자를 대상으로 한 대회에서 그는 최연소 참가자이자 수상자였다.

"클라리넷이 국제 콩쿠르가 많지 않아요. 마침 가까운 중국이고 해서 경험을 쌓으려고 나갔지만 친구들이 건방지다고 할까 봐 사실 신경도 쓰였어요. 하지만 가길 잘한 거 같아요. 상을 탄 것 말고도 얻은 게 참 많거든요."

소년은 그때 훌쩍 자랐다. 또래들만 모이는 국내 콩쿠르와 달리 열 살쯤 많은 참가자가 대부분인 그곳은 경쟁보다 배움의 자리였다. 당시 김한의 연주를 들은 심사위원은 '음악에 대한 이해가 뛰어나다'고 평했다.

무대 아래서는 시트콤(요즘은 '지붕 뚫고 하이킥'을 즐겨 본단다)을 즐겨보는 10대 소년이지만 '무대 체질'을 타고난 덕에 무대에서 연주하는 모습이 제법 어른스럽다. 친할머니인 소프라노 박노경(서울대 음대) 명예교수와 삼촌인 김승근(서울대 음대 국악 작곡과) 교수 역시 음악인으로서의 김한의 태도에 대한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할머니는 세세한 무대 매너에 대해 많은 조언을 해주세요. 한번은 무대에 구부정하게 걸어나간 모습을 보시고는 '항상 네가 최고라고 생각하고 자신 있게 무대에 나가라'고 말씀해 주셨어요. 이 말씀이 늘 큰 힘이 돼요. 또 제게 클라리넷을 권해주신 분이 삼촌이세요. 늘 중요한 선택의 순간에 큰 도움이 되어주세요."

데뷔 후 길지 않은 시간 동안 김한은 성인 연주자 못지 않은 화려한 공연 커리어를 쌓아왔다. 2007년 금호 영재콘서트로 데뷔, 소프라노 임선혜 독창회 협연, 유라시안 필하모닉, 광주시향, TIMF 앙상블, 서울국제음악제 개막연주가 그가 선 국내 공연의 일부라면, 해외도 이에 못지 않다.

2008년 일본 국제 클라리넷 페스티벌에 최연소 솔로이스트로 초청돼 '천재 소년'이라 불리며 리사이틀을 했던 것을 시작으로 베이징 국제음악 콩쿠르를 통해 베이징 콘서트 홀과 북경 이태리 대사관에서 수상자 연주회를 펼쳤다. 지난 8월에는 독일 아우리히에서 열린 2009 오스트프리슬란트 음악 페스티벌에 초청받아 세 차례나 무대에 오르기도 했다.

"사람들 앞에서 제가 가진 것을 표현하고 보여줄 때가 무척 신이 나요. 관객들이 많을 때 더 즐거워하고 흥분하는 걸 보고 무대 체질이라고들 하시더라고요. 아마 그게 저의 가장 큰 장점인 거 같아요." 하지만 종종 고조된 감정을 주체하지 못해 실수하기도 해서, 감정을 매끄럽게 컨트롤하는 것이 자신에게 주어진 과제라고 했다.

예원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이던 김한은 싱가포르의 국립예술학교인 SOTA(School of the Arts)로 유학을 떠났다. 내년 1월부터 전액장학금을 받고 공부하기로 했다. 이메일로 근황을 전해온 그는 정식 입학 전 학교의 배려로 미리 개인 영어수업과 음악 수업을 듣고 있다고 했다.

"처음엔 환경이 낯설기도 했는데, 이젠 친구도 생기고 분위기도 많이 익숙해졌어요. 악기 연습은 매일 학교에서 두 시간씩 기초 다지기 위한 스케일 연습을 위주로 하고 있고요. 선생님께서 '너만의 것을 찾아야 한다'고 말씀하시는데, 여전히 부족한 게 많아서 연습 외에도 화성악 같은 음악이론도 공부하고 있습니다."

피아니스트 랑랑처럼 관객과의 소통과 음악을 즐기며 연주하고 싶다는 클라리네티스트 김한. 벌써 내년 상반기에만 한국과 유럽에서 다섯 차례 이상의 스케줄이 잡혀 있다. 첫 무대는 1월 9일에 열리는 금호 영재 신년 독주회가 그 무대다. 여기에서 그는 클라리넷 솔로로 13분 동안 연주하는 현대곡을 연주한다.

"스톡하우젠의 '인프로인트샤프트'('우정'이라는 뜻)라는 곡인데요. 현대곡이라 어려운 부분도 있지만 악기가 가진 다양한 소리를 잘 표현하는 곡이에요. 유명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자주 연주되지 않아서 제 나름대로 재미있게 소개해드리고 싶어요." 어리지만 음악인으로서는 이미 어리지 않은, 소년의 도전하는 자세가 아름답다.



이인선 기자 kell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