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초대석] 성기숙 한국춤평론가회 신임회장춤의 위기 시대 창작과 비평 활성화, 춤과 대중의 소통 휩쓸 터냉정한 자성과 치열한 공부, 평론가의 변함없는 임무 지속

오래 전 죽음을 선고받은 비평. 그 존재의 의미를 다시 말하는 것은 이미 허탈한 것이 됐다.

철학적, 미학적 개념과 전문용어들로 채워진 심층적 비평 대신 소비되는 것은 쉽게 읽히는 소프트한 정보들이다. 정보 선택의 기준도 그 작품이 어떤 내용인가 혹은 재미있는가이다. 한 마디로 설명되지 못하거나 재미가 보장되지 못한 작품은 어떤 부연 설명이 붙어도 선택 순위에서 밀려나고 만다.

비교적 대중적인 장르의 상황이 이렇다면 순수예술 장르의 상황이야 말할 것도 없다. 춤 비평이 바로 그렇다. 문화가 '소비'되는 지금의 상황에서 이해도 어렵고 재미도 느끼기 어려운 춤과 그 비평이 처한 현실은 굳이 다시 말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예술 창작과 유통의 흐름이 원활하지 못할수록 평론가의 역할은 더 커져간다. 이제는 공허한 메아리처럼 들리는 '춤의 대중화'라는 난제가 춤 평론계에서 계속해서 반복되고 있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급변하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가는 춤 환경. 새로운 비평은 무엇을 읽어내야 할까. 40대로서 처음으로 전통의 한국춤평론가회를 이끌게 된 성기숙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교수의 고민도 같은 데 있다.

연낙재 운영을 통한 춤의 연구와 보존

춤계에서 성기숙 교수의 이름은 평론가나 전통예술원 교수보다는 연낙재(硏駱齋) 관장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연낙재는 2006년 3월, 대학로에 개관한 국내 최초이자 유일의 춤 전문 자료관. 원로 평론가이자 월간 '춤'지 발행인인 조동화 선생이 평생 수집한 근현대 춤 관련 자료를 기증하며 출발했다.

'연낙재'라는 이름도 조동화 선생이 '춤'지가 있는 동숭동 금연재(琴硏齋)와 춤 자료관 뒷쪽의 낙산(駱山)에서 한 자씩을 따와 만든 것이다.

"제가 자료를 물려받게 된 것도 비록 평론가이기는 하지만 동시에 무용사를 하는 학자이기 때문에 그 자료를 사장시키지 않고 언젠가 춤계를 위해서 잘 활용하리라는 믿음이 있어서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일하기도 했던 성 교수는 평소 자료의 수집과 분류에 대한 열악한 보존환경을 잘 알고 있었고, 이런 관심이 노 평론가의 신뢰를 얻었다는 것이다.

연낙재가 처음부터 춤 자료관으로 출발한 것은 아니었다. "공연예술의 메카인 대학로에서 예술을 하는 사람들에게 공부할 수 있는 커뮤니티를 마련하자는 차원에서 시작했어요. 공교롭게도 리모델링 과정에서 조동화 선생의 공급과 이 공간의 수요가 맞아떨어진 것이 오늘날의 연낙재를 만든 거죠."

개관 당시 밝힌 대로 연낙재는 점차 사라져가는 춤 자료를 계속 발굴 수집하고 보존하며 춤 문화의 저장고 역할을 해왔다. 원래의 목적이었던 연구 공간으로서의 기능도 충실히 수행 중이다.

조택원 선생 탄생 100주년이던 지난 2007년에는 그의 유품과 공연자료를 모아 특별전시회와 직접 제작한 다큐멘터리를 상영하기도 했다.

'무용가를 생각하는 밤' 모임을 통해서는 한국무용사에서 소외돼 온 최승희 직계 제자 김민자와 이화여대 무용과를 창설한 박외선, 궁중정재의 대가 김보남 등 우리 춤의 선구자를 재조명하는 작업을 계속해 왔다.

춤 비평과 언론의 역할

춤의 과거와 미래를 잇는 자료관을 운영하지만 평론가라는 직업은 '늘 위기'인 현재에도 눈을 돌리게 한다. 이미 춤계 내외부의 연구와 논문을 통해 춤 환경의 토대가 열악한 까닭은 잘 드러나 있다.

그래서 그는 원론적인 이야기보다도 춤이 대중과 만나는 지점에서의 매체에 대한 아쉬움을 많이 드러낸다. 결국 비평이 실리는 지면의 수와 양과 그 형태에 관한 이야기다.

"결국 '춤의 위기'라는 말은 창작 현장뿐만 아니라 비평과 언론 모두의 위기라는 말이거든요. 특히 더 많은 독자들과 만나는 장인 일간지나 주간지에서 심층적인 글들이 나와줘야 하는데 그러질 못하는 점이 아쉽죠."

대중적 파급력 면에서 일반 매체와 전문지는 차이가 클 수밖에 없다. 때문에 작품의 소개와 비평이 전문지에만 집중되어 있는 현실은 춤이 계속' 그들만의 예술'로 남겨지는 큰 이유 중 하나다.

심지어 전문지마저 자신의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할 때 춤 저변의 확대는커녕 기반 자체가 불안해진다. 성 교수를 비롯한 평론가들이 지금보다 더 양질의 비평이 실렸던 옛날을 그리워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예전에는 특히 한국일보에서 예술가들에 대한 연재에 많은 할애를 했었어요. 2007년에 조택원 선생 탄생 100주년 행사를 했는데 그때 연극계 원로들이 방문해서 자신들이 70년대에 조택원 선생과 관련해 30여 회의 연재를 했다면서 '100주년'이라는 긴 역사에 놀라워하더라구요."

타 분야의 사람들까지 춤계 인물을 돌아보게 하는 것은 역시 미디어가 가진 힘을 입증한다. 성 교수는 80~90년대까지만 해도 장르별 연재도 있곤 했지만 지금은 오로지 흥미 위주의 기사와 인기 있는 일부 장르와 인물 중심으로만 다루어지는 접근법에 아쉬움을 나타낸다.

"의미는 없지는 않지만 일부보다는 전체, '예술로서의 춤'을 조명할 때 대중의 인식도 변화하고 대중성도 확보될 겁니다."

창작, 홍보, 비평 구조 모두 변해야

하지만 언제까지 남의 탓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언론의 변화는 '독자에게 흥미로운 기사'의 기준이 바뀌었다는 말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춤계는 예술성을 담보한 채로 보다 대중적이고 의미 있는 작품을 만들기 위해 고민 중이다. 작품 외의 유통 구조에서만 위기의 원인을 돌렸던 과거와는 다른 양상이다.

"기본적으로 춤과 대중의 소통이 요원했던 것은 기본적으로 기획과 홍보, 마케팅의 기능이 원활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보다 먼저 작품 안에 대중적으로 어필할 수 있는 요소가 전제가 되어야죠."

지루하게만 느껴졌던 한국 춤이 전통적 소재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거나 전통 콘텐츠를 발레 틀 안에 녹여낸 최근의 작업들은 이런 자성과 노력의 결과물인 셈이다. <심청>과 <춘향>이 한국 창작춤과 발레 양쪽의 사랑을 오랫동안 받아오고 있는 데도 이 같은 이유가 있다.

"일단 고전으로서 검증된 작품은 텍스트로서 창작 접근에 용이하거든요. 명작이 아닌 것들은 창작 시도에는 위험 부담이 있어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유명한 작품들이 일반에 알리는 데 효과적인 작품입니다."

얼마 전 국립발레단이 무대에 올린 <왕자 호동>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하지만 우리에게 잘 알려진 고전작품들에 비해 이제까지 창작된 작품들은 얼마 되지 않는다. 성 교수가 고전이나 신화 텍스트에서의 새로운 소재 발굴이 여전한 숙제라고 말하는 이유다.

하지만 어떤 무용가들은 아직도 대중에게 난해한 주제가 높은 예술성을 의미한다고 믿고 있다. 성 교수는 이것이 70년대 이후 대학 무용가를 이끌어온 소위 '교수 무용가'들과 그 제자들로 이뤄진 동인단체의 뿌리 깊은 예속관계에 기반한다고 지적한다.

그 당시에는 그런 흐름에도 분명히 나름의 성과가 있었지만, 지금까지 이어지는 예속관계의 고착은 결국 춤의 대중적 확산이 실패한 한 원인이라는 것이다.

"대중에게 어필하는 작품이 안 나오는 건 현재 주도권을 쥐고 있는 60대 무용가들의 보수적이고 순수예술지상주의적 사고가 주요한 원인이에요. 비평가의 태만도 빼놓을 수 없겠죠. 비평가는 창작자에게 자극을 주고 담론을 생성해서 제공해야 하는데 그런 의무를 소홀히 한 부분도 분명히 있어요. 무엇보다 대중성에 대한 무용계 전반의 왜곡된 인식도 춤의 대중화 실패의 중요한 원인입니다."

이런 점에서 성 교수는 전통사회에서 근대사회로 넘어오는 과도기에서 단지 신무용이라는 새로운 사조를 창출한 최승희, 조택원의 위대함을 다시 언급한다.

"둘 다 이시이 바쿠라는 일본 무용가에게서 춤을 배웠지만 '전통의 현대화'와 '서양의 한국화'를 통해 대중에게 어필하는 데 성공했다는 데 의미가 있는 거죠."

급변하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창작-향유 환경도 따라 변하고 있다. 지체된 춤 비평은 또 어떻게 변해야 할까. "한 마디로 평론가들이 더 공부해야 합니다. 평론가들은 담론을 선도해야 하지만 현실은 뒤쫓아가기도 급급하거든요. 솔직히 말해서 가끔 비평의 고유한 역할에 대해 회의를 느낄 때가 많아요. 그래서 평론계 내부에서도 냉정한 자성과 비판이 더욱 절실합니다."

현재 춤계를 주도하고 있는 집단에 대해서도 거침없는 비판과 함께 같은 평론가 집단의 자성을 촉구하는 40대의 젊은 평론가회장 성기숙 교수. 그래서 일각에서는 이번 취임을 두고 세대교체를 알리는 하나의 지형 변화라고 평하는 반응도 있다.

그 때문인지 부담이 많다는 성기숙 교수는 "평단뿐만 아니라 춤계 전반의 건강한 환경 마련을 위해 더욱 노력할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출사표를 내민다.

성기숙 한국춤평론가회 회장은…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교수. 성균관대 동양철학과에서 박사학위 취득. 국립문화재연구소 연구원,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무용소위 위원, 국립무용단 자문위원 등을 지냈다.

현재 문화재전문위원, 한국춤평론가회장, 연낙재 관장. 90년대 중반부터 월간 《춤》, 《댄스포럼》, 《공연과리뷰》에 정기적으로 기고하며 왕성한 평론활동을 해왔다. 한국 최초의 춤 자료관 연낙재를 운영하며 춤 자료를 비롯해 희소 가치가 높은 공연자료 15만점을 소장하고 있다.



송준호기자 trista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