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최열 미술평론가30여 년간 쓴 비평 엮은 펴내미술사의 한 축을 증언하는 쓰디쓴 문장들, 인간과 사회의 진보 물어

쓴 소리는 미술평론가 최열의 독자적 스타일이다.

대부분이 못 알아들을 밀어(密語) 혹은, 어째 짜고 치는 고스톱 같은 밀어(蜜語)가 흥건한 미술 담론 속에서 분명하고 가차없는 그의 언어는 낯설다.

더구나 흔한 미술평론처럼 작품에 안온히 머물지 않고 그 주변으로, 역학 속으로 나돌아 다닌다. 작가와 평론가는 물론이고 정치인과 정부, 기업인까지 제 소임을 못하는 모두가 쓴 소리의 표적이다.

최열 평론가는 어쩌다 이리 독야청청한 존재가 되었을까. 단서는 삶의 궤적이다. 한국 현대미술사에서 가장 전위적이었던 기획, 80년대 민중미술을 주도했다.

70년대 대학시절에 결성한 무등산모임과 광주자유미술인협의회는 민중미술운동의 모태였다. 80년대에는 민족미술협의회, 민족민중미술운동전국연합을 조직하고 공장, 농촌, 학교와 거리에 있었다.

그곳에서 미술은 명사가 아닌 동사였고, 비평 역시 독백이 아닌 행동이었다. 최열은 유인물과 대학 학보에 글을 썼다. 열렬한 공부와 현장의 감각, 동행과 나눈 뜻 그리고 엄혹한 시대를 바꾸려는 의지를 재료 삼았다.

이런 '역사'가 고스란히 밴 문장이기에 흔치 않다. 함께 건너온 세대도 하나 둘 잊어버린 시대가 여전히 생생하다. 내용이 아니라 스타일로, 엄준한 판단의 잣대와 사회를 향해 곤두세운 촉각으로. 그리고 그 중심에 우뚝한, 인간과 미술이 세상을 진보시킬 수 있다는 믿음으로 말이다.

20세기 마지막 해 최열 평론가는 미술세계에 기고한 글 '인간을 위한 미술을 위해'에서 광주자유미술인협의회를 결성할 당시를 떠올리며 "시대를 증언하는 증인으로 활약하고 싶었다"고 적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지금, 자신의 증언들을 정리했다. 30여 년간 쓴 비평을 엮어 <미술과 사회-최열 비평전서>를 냈다.

이는 '최열 스타일'의 연원인 동시에, 이런 평론가의 존재가 실은 시대·사회와 끈끈히 결부된 산물이라는 해석이다. 무엇보다 미술이 삶 속에서 더 인간적인 조건들을 구현하는 동력으로 역할한 역사에 대한 증명이다.

1976년부터 2008년까지의 비평을 정리하셨습니다. 이 책이 지금 한국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하길 바라시는지요.

스스로 작업을 정리하는 의미가 가장 컸습니다. 사회에서의 역할에 대한 기대는 내 몫이 아니지요. 다만 80년대 미술과 사회, 정치를 유기적으로 결합하려는 담론이 있었고, 그것이 지금의 자유로움에 기여했다는 것을 자리매김해줄 필요는 있었습니다.

순수주의, 예술지상주의, 심미주의 등 미술을 사회, 정치로부터 분리한 미술 담론이 아닌, 다른 미술적 시도들이 나름 성취를 이루었고 이어지고 있다는 것을 일깨우고 싶었습니다.

책을 엮을 때, 상정한 독자가 있습니까.

옛날 사람들보다는 지금 미술로 활동하는, 혹은 새롭게 시작하는 친구들이 읽으면 좋겠지요. 아마 시장 논리가 지배하는 '현실'에 우왕좌왕하는 친구들보다는 스스로 하고자 하는 것을 뚜렷이 안 후 현실을 모색하는 친구들이 관심을 둘 것입니다.

청년들이 읽게 하려면 이렇게 빽빽하게 편집하면 안될 텐데, 중간중간 그림도 넣었어야 했는데(웃음) 그건 아닌 것 같더군요. 80년대가 얼마나 답답한 시대였는지 구성에서부터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첫 비평은 1976년 유인물에 실은 것입니다. 당시 자료가 남아 있었습니까.

모아 놓았습니다. 1991년에 민족미술연합회 활동 때문에 이적단체 결성 혐의로 옥살이를 했는데, 그때 수사기관에 다 압수 당했었지요. 김영삼 정부가 들어서지 않았다면 영영 못 찾았을 지도 모릅니다.

그때 사면복권시켜주면서 보관하고 있던 증거물을 돌려줬어요. 빨간 딱지 붙여가며 잘 추려 놓았더군요.(웃음) 덕분에 90년 이전 자료는 정리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렇게 고생하시면서 어떻게 인간, 구체적으로는 민중에 대한 애정을 지켜오셨습니까. 미술, 비평, 운동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믿음도 여러 번 좌절되었을텐데요.

'이상' 때문이죠. 설명하긴 어렵지만, 그냥 그렇게 살아 왔습니다. 매 순간의 선택이 결국 그 사람의 행장(조선시대 고인의 살아온 일을 적은 글)이 되는 것처럼요.

그럼 지금 생각하시는 '민중'의 개념도 비평을 시작하신 때와 다르지 않습니까.

물론 상황에 따라 세부적 의미는 계속 바뀌었겠지요. 하지만 내게는 민중이 살아 있는 실체인 동시에, 추상적 관념이기도 합니다. 내가 꿈꾸는 이상사회의 이상적 인간형인 거죠. 그걸 버리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초기 글을 오랜만에 읽으셨을 텐데, 어떠셨나요.

그때도 내가 이런 기특한 생각을 했네? 싶었습니다.(웃음) 지금과 비슷하더라고요. 저는 진화가 안 되는 사람인가보다 싶기도 하고.(웃음) 그래도 그때 그런 생각을 했기 때문에 지금 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역사의 진보도 여전히 믿으십니까.

저는 모더니스트에요. 모더니스트는 진보주의자죠. 진보는, 포기할 수 없습니다. 다만 요즘 인간들이 자신만의 풍요를 위해 자연을 지나치게 희생시키는 것까지 진보라고 해야할 지에 대해서는 고민하고 있어요. 궁극적으로 인간이 자연과 일치하는 것,이 진보라고 한다면 그건 진보가 아니죠.

매우 섬세한 의미의 '진보'네요.

그렇게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우선은 생각일 뿐이죠. 어떻게 활동, 실천할 것인가는 다른 문제고요. 환경 미술 같은 것이 한 방법일 겁니다.

좋은 비평가의 자질은 무엇입니까.

세상의 질서를 잘 통찰하는 사람입니다. 자연까지 포괄하면 좋겠지만, 그러면 너무 추상적으로 들릴 테니 인간사회에 한정해 이야기한다면 인문학적 바탕과 사회에 대한 이해를 튼튼하게 갖는 비평가입니다.

미술은 세상을 담는 그릇이라, 세상을 모르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와 인간에 대한 공부를 많이 해야 합니다.

작가 역시 마찬가지죠. 사회와 인간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한 후 미술 이야기는 적절히 언급하면 됩니다. 이는 19c 이전 동양 미술에서의 전통이기도 합니다. 그림을 이해하려면 사람을 보라는 말은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최열 평론가는 젊어선 "운동권에서 미술계로 파견 나온 활동가"라고도 불렸지만 옥살이 후 미술사 연구에 매진하며 뜻을 함께 했던 이들이 참여한 노무현 정권의 정책도 적극적으로 비판했다.

이를 두고 변절했다는 소리도 더러 들었다. 드러남만 가늠하는 명쾌한 잣대로야 그리 평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활동가' 시절에 쓴 이런 문장들을 읽고도 그런 논리가 가능할까?

"이와 같은 시대에 미술의 역할이 무엇인가. 지금, 인기에 영합하면서 진실을 상실하고 결국 비역사, 반역사 태도를 취함으로써 사회변동과 무관한 데로 떨어져가는 미술에 대한 경계를 해야 할 때이며, 예술가는 오늘날 인간이 겪고 있는 불안, 불행에 관심을 기울여야 할 때이다." ('우리시대 미술에의 질문', 무등산 모임 유인물, 1978)

"민중, 대중의 공감대 획득은 내용의 좋고 나쁨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다. 적어도 예술 혹은 미술이 삶의 근저에 깔린 생명의 힘을 총체로 드러내는 것이라고 할 때, 형식과 내용의 총화로서 감동을 불러 일으켜야 한다.(중략)

가장 훌륭한 미술의 기능은 매체특성을 적극 파악하고 실현할 때 발휘 가능한 것이다. 매체 특성에 부합하는 양식이 리얼리즘이며, 그 개념은 포괄적이지만 삶의 자상한 국면을 그려내는 것이야말로 정점의 리얼리즘 방식일 것이다.

우리는 이미 그와 같은 리얼리스트를 역사 안에 갖고 있다. 김홍도, 신윤복을 포함한 숱한 풍속화가가 그들이다."('80년대 미술운동의 한계와 극복', <시대정신> 제1권, 1984)

"비평을 한다는 것. 실천 비평이건 강단비평이건 학문적 진지성과 면밀한 열정 없이 안되는 것이지만 그가 갖는 세계관과 그가 사는 세계상이 제대로 중심을 잡지 못하는 이상, 뛰어난 열정도, 탁월한 역량도 없는 것이다. 아무 것도 없는 것이다." ('비평-비평을 한다는 것', <미술공동체>, 서울미술공동체, 1986.4.30)

미술이라는 범주에도 미술과 사회, 미술과 인간이 맺는 관계에도 현상에서부터 원리까지 다양한 층위가 있을 것이다. 최열 평론가의 행동은 현상에 대한 것이었으나, 그 눈은 늘 현상을 두루 품은 원리를 향해 있었다.

원리에 어긋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연이 닿은 이들과 자신까지도, 꾸짖을 대상이었다. 그 이상향이 읽히는 순간 그의 삶의 궤적도, <미술과 사회-최열 비평전서>의 상당한 분량도 간명히 요약된다.

생명을 지닌 존재로서의 인간이 자신의 힘과 아름다움을 알아 세상과 너그럽고도 지극하게 어울려 삶, 으로의 질긴 고집만 남는다. 변절은커녕.

"추사의 예술론이 격조론이에요. 전 시대 유행했던 성령론이 인간의 성품을 기탄 없이 내뱉는 것을 추어올린 예술론이라면 추사는 그것에 격조까지 더해야 한다고 주장했죠. 그래서 추사의 글씨가 언뜻 뛰어 나가는 듯 강해도, 격과 통일성이 있습니다. 폭발하는 맛과 절제하는 맛, 이완과 긴장, 양면이 있는 거죠. 그래서 보는 사람이 넓고 깊게 느끼게 합니다."

마음에 오래 품은 것은 닮아가게 마련이라, 최열 평론가의 문장도 종종 그러하다.



박우진 기자 panorama@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