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류준하 씨클래식 초보자를 위한 책 펴내, 음악으로 열어가는 아름다운 세상 꿈꿔

작곡하는 배우, 노래하는 의사, 책 쓰는 회사원, 이런 풍경을 보는 것이 낯설지 않은 요즘이다.

현직 지리교사이자 지독한 클래식 애호가, 류준하(49)씨도 멀티 플레이어 혹은 호모 루덴스(homo ludens, 유희하는 인간)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주는 사람이다.

그가 최근 현암사에서 <너 음악회 가봤니?> 라는 책을 펴냈다. 클래식 초보자를 위한 책이라고는 하지만 막상 들여다보면 그가 유영하는 음악의 바다가 얼마나 넓고 깊은지를 상상하기 힘들 정도다. 음악 좀 들었다는 사람들이 보더라도 건질 게 많다는 말이다.

책은 세 명의 인물이 등장해 대화체로 서로 질문과 답을 하는 형식이다. 저자의 분신과도 같은 차 선생, 초심자 류수연, 그리고 아는 만큼 말도 많은 클래식 애호가 배도반이 그들이다.

배도반은 베토벤을 좋아하는 애호가로 베토벤의 한국식 발음이고, 류수연은 류준하 씨의 대학생 친딸 이름이다. 딸이 클래식과 친해졌으면 하는 바람으로 이름을 고스란히 가져왔다.

"원고를 쓰기 시작한 때를 2007년 1월로 기억합니다. 그러니 책이 나오기까지 꼬박 2년 10개월 걸린 셈이네요. 처음 쓰는 글이다 보니 시행착오가 많았어요. 지금 이 분량의 책을 다시 쓴다면 1년 정도면 될 것 같아요."

첫 저서치고는 분량이 제법 많아 400페이지를 훌쩍 넘긴다. 피겨 퀸 김연아가 피겨스케이팅 음악으로 선곡했던 생상스의 '죽음의 무도'를 시작으로 한 흥미 유발 주제부터 지휘자, 작곡가, 그리고 월드뮤직에 이르기까지 34개의 테마가 다채로우면서도 일목요연하게 담겼다. 원래 99개의 테마로, 모두 책으로 나왔다면 1500 페이지에 달하는 대작이 됐겠지만 데뷔작이라 욕심을 줄였다.

그가 클래식에 관심을 갖게 된 건 대학 4학년 무렵이다. 시내에 나갈 때마다 레코드점에 들러 한두 장씩 사 모은 앨범이 지금의 기반이 됐다. 그러나 클래식을 20년지기 친구로 맞을 수 있던 중요한 계기는 음악 전문지를 통해서였다.

"듣기만 하던 음악 감상에서 큰 변화가 생긴 건 1984년 창간된 음악동아를 접하면서부터였어요. 백발의 카라얀이 표지모델로 등장한 그 책을 지금도 가지고 있지요. 또 지금도 출간되고 있는 객석 창간호도 가지고 있지요. 알랭 마리옹이라는 프랑스 플루티스트가 표지에 나와 있는 책이에요. 책은 듣는 것만으로는 얻을 수 없는 또 다른 종류의 음악세계를 볼 수 있게 해주었죠."

음악가들의 삶과 작품에 얽힌 이야기를 읽는 재미로 한동안 음악 전문지란 전문지는 다 사 봤다고 한다. 그 책들이 그의 든든한 클래식 아카이브가 되어주고 있다.

그러나 30여년 사이 서점가는 많이 변했다. 음악동아는 사라진 지 오래고, 객석만이 홀로 긴 세월을 견뎌오고 있다. 그는 이런 현실이 안타깝기만 하다. 이 같은 책을 펴낸 것도 어쩌면 이런 현실에 일조하고 싶어서였는지도 모르겠다.

그가 10여 년간 홀로 사랑해온 음악을 사람들과 함께하기 시작한 건 12년 전부터다. 12년째 이끌어오는 경주고전음악감상회는 이제 직업과 지역을 불문하고 클래식 애호가들을 불러들이는 명문 동호회가 됐다.

책 속엔 음악감상회를 통한 경험이 묻어난다. 그 역시 과거엔 그러했고 지금은 클래식 초심자들을 만날 기회가 많다 보니 그들의 궁금증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너 음악회 가봤니?>가 유난히 재미있게 읽히는 것도 그 이유다.

"'음악을 모르고 사는 삶은 행복을 포기하고 사는 삶과 같다'라는 므라빈스키의 말을 이번 책에 인용했어요. 가슴 깊이 공감하는 말이죠. 하지만 제가 사는 울산에는 이제 음반을 살 수 있는 곳이 없어요. 음반을 사려면 서울까지 가야 하죠. 다행히 요즘은 서울에서도 음악감상회 진행을 맡고 있어서 좀 더 수월해지긴 했지만요. 음악감상회를 하면서 저도 아직 궁금한 게 많은데, 처음 접하는 분들은 얼마나 더 많을까요. 제가 가진 작은 것이라도 나누고 싶었어요. 가급적 쉽게 말이죠."

감상회 참가자들이 음악에 대한 끈을 놓지 않게 하기 위해 그는 지속적인 변화를 모색한다. 음악회가 거의 열리지 않는 지방의 현실에 맞게 10년 전 영상을 들여오고 국내외의 대중음악과 제3세계 음악, 국악, 재즈 등도 적극적으로 프로그램 속에 반영하는 것도 음악과 사람의 교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장르를 떠나 '감동'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한번은 스페인 영화 <그녀에게>에 쓰인 OST 중 '그녀에게'를 보너스로 틀었는데 그날 음악감상회에서 가장 큰 호응을 얻었어요. 최대한 다양한 음악을 들려주려고 하는데, 그 중에서도 특히 그리스나 남미 지역의 음악은 아픈 역사와 서민들의 애환이 담겨 있어 마음에 참 와 닿아요. 특히 아리엘 라미레즈의 '알폰시나와 바다'를 무척 좋아해요. 아르헨티나의 여류 시인 알폰시나 스토르니를 추모하는 노래인데요, 음악감상회에서 이 곡을 소개하니 다들 좋아하시더군요."

그는 음악감상회를 해오고 있지만 결국 마지막에 남는 건 음악이 아니라 '사람'이라고 했다. 음악을 듣기 위함이라기보다, 함께 들으면서 가지는 연대감, 동질감이 음악을 있게 한다는 것.

"음악을 같이 듣다 보니 음악 그 이상의 무언가가 분명히 느껴져요. 음악이 좋은 것 못지않게 음악을 통해 나누는 따뜻한 인간관계는 더욱 좋거든요. 결국 음악도 인간이 만든 거니까요."

일주일 24시간 수업과 그와 비슷한 수업 준비시간, 그리고 고3 담임으로 진로상담에 이르기까지 빠듯한 업무를 해내면서도 책을 써낼 수 있던 의지. 의지 뒤의 동기는 음악에 대한 지식을 나누고자 함도 있겠지만 마음 깊은 곳에선 이미 음악을 통해 이어진 사람을 향해있지 않았을까 싶다.



이인선 기자 kell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