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은행 송은하 대표국제문화포럼 '워 더 컬쳐'발족… 세계 문화인재 위한 허브 역할 할 것

12월 7일, 숙명여대 100주년 기념관에서는 의미 있는 행사가 열렸다. 풀뿌리 민주주의, 풀뿌리 미디어와 같은 맥락의 풀뿌리 문화운동이라고 해야 할까.

기존에 정부가 주도하는 탑-다운(Top-down) 방식의 문화 행사나 정책에서 벗어나 각계 지식인들과 전문가들이 주축이 된 문화운동이, 그 시작을 알리는 자리였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위 더 컬쳐 포럼'(we the culture)이라 이름 붙여진 국제 문화 포럼의 첫 단추를 끼우는 자리로, 이 날은 한국준비위원회의 발족식이 열렸다.

김장실 전 문화체육관광부 차관, 김형효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 김문환 서울대 미학과 교수, 김정아 CJ 엔터테인먼트 대표, 최태지 국립발레단 예술감독, 고정민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등 각계의 전문가들이 '문화'라는 단 하나의 키워드로 모였다.

'위 더 컬쳐 포럼'의 한국준비위원회를 넘어 해외로 확장해보면 프랑스 관광청, 이탈리아 정부 관광청, 스위스 정부 관광청, 주한 영국 관광청 등 해외의 정부기관이 이 문화적 움직임에 함께 하겠다고 손을 잡았다.

각 나라, 각계 분야를 하나로 묶어낸 것은 문화이지만 이들을 하나로 꿰는 이는 문화은행㈜의 송은하 대표다. '위 더 컬쳐 포럼'의 아이디어도 그녀에게서 나왔다.

"내년에 세계 정부, 미디어 관계들과 석학들로 구성된 국제 문화 포럼이 바로 서울에서 열릴 겁니다. 다보스 포럼이 20세기, 경제에 관한 가장 큰 포럼이죠. 하지만 그 이전에 다보스란 도시를 들어본 적이 있으세요? 정말 작은 도시거든요. 다보스의 한 교수가 각국의 경제분야 오피니언 리더들과 세계 경제를 논의하는 자리를 마련하면서 알려지기 시작했는데요. 그게 시작은 결국 한 사람의 힘이었습니다."

문화가 경제의 동력이 되면서 이젠 기업인들도 자신을 '문화인'이라고 일컫는 시대다. 그냥 도시가 아니라 경쟁적으로 '문화도시'의 정체성을 '구축'해가고 있다. 그러나 문화는, '문화'라고 부르는 순간 꽃을 피워주지 않는다. 그러길 바랬다면 인류가 가진 지식, 행위, 신념의 총체인 '문화'를 잘못 이해하는 것이다.

'위 더 컬쳐'의 정신을 말하다

"문화는 곧 사람입니다. 그걸 잊고 있죠. 문화는 적선도 아닙니다. 같이 하지 않으면 문화화되지 않는 거죠. 일방이 아니라 쌍방으로 소통하는 개방된 방담이 시작되는 곳이 될 겁니다."

문화와 관련한 포럼이 '위 더 컬쳐 포럼'이 결코 처음이 아니지만 자발적으로, 민간 주도로 이루어진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송 대표는 '위 더 컬쳐 포럼'의 정신을 말하면서 '세상을 바꾼 네 개의 사과'를 꺼냈다. 윤리를 알게 한 아담과 이브의 사과, 트로이를 멸망시킨 파리스의 사과, 약소국의 독립을 이끌었던 윌리엄 텔의 자유와 정의의 사과, 그리고 과학을 진일보하게 한 뉴턴의 사과가 그것이다.

"우리는 어떤 사과를 가지고 싶은가를 이야기하면, 사과 자체에만 집중합니다. 하지만 열매는 그냥 생기지 않거든요. 비옥한 토양, 좋은 나무, 꾸준한 보살핌이 달콤한 사과를 만들 수 있는 거죠. 열매에만 집중해서 큰 사과, 광택이 좋은 사과, 예쁜 사과만 찾다 보면 농약으로 버무려진 사과가 나올 수 있겠지요. 가시적인 결과에만 집중해선 안 되는 게 진짜 문화라고 생각해요. 오피니언 리더들의 시선이 너무 아웃풋을 향해 있지 않은가. 토양을 어떻게 만드느냐를 전 지구적으로 논의하는 자리가 될 거예요." 송 대표는 여기서 자란 긍정적인 에너지를 컬쳐 에너지, 곧 'C-nergy'로 명명했다.

'위 더 컬쳐 포럼'의 정신이 구체적으로 발현되는 곳은 '컬쳐 리더 스쿨'이다. 송 대표의 말에 따르면 이곳은 사람이 모이고 문화가 충돌하고 증폭하며 성장하는 공간이다. '위 더 컬쳐 포럼'에 참여하는 국내외 정부기관과 민간기업의 문화 공헌 차원에서 만들어지는 문화 학교다. 송 대표가 밝히는 컬쳐 리더 스쿨의 개교 의의는 단순한 문화 공헌 이상이다.

"메세나 하면 이탈리아의 메디치가를 떠올리지요. 그들의 공헌을 경제적인 후원을 부각시키곤 하는데요. 돈으로 치면 그들은 절대 최고가 아니었어요. 그건 돈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들의 진정한 공헌은 사람을 모이게 했다는 점이죠. 이전까지만 해도 화가는 화가끼리, 음악가는 음악가끼리, 건축가는 건축가끼리의 서클이 있었거든요. 분야가 다른 이들이 교류하는 경우는 없었죠.

하지만 메디치 가는 그걸 가능하게 했습니다. 살롱을 만들어서 그곳에 건축가, 철학자, 화가, 음악가들이 모여서 교류를 하게 한 거죠. 이로써 컨텍스트(context)가 가능해지는 겁니다." 송 대표는 이로써 세계 문화 인재를 위한 허브 역할을 하겠다는 다부진 각오를 다졌다.

Fake it until make it

이쯤에서 떠오르는 생각이 고개를 갸웃하게 한다. 과연 대한민국과 '세계 문화의 허브'는 어울리는 조합일까? 하는 의문이다. 세계인의 머릿속에서 '문화'하면 떠오르는 나라는 많다. 음악, 그림, 철학, 문학 등으로 세분화하면 그 수는 더 늘어나겠지만. 그중에 대한민국이 차지할 자리, 아직은 넓어 보이지 않는다.

여전히 대한민국에서의 문화생활은 소수의 혜택 받은 이들의 전유물인 경우가 적지 않고 소외계층을 위한 선심성 행정의 일환이기도 했다. 그동안 우리에게 문화는 생활이라기보다 적지 않은 부분이 이벤트였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송 대표 역시 이 의견에 동의했다. 그리고 그 의구심에 대한 답변을 포럼을 준비하는 과정 중에 있던 모임의 이야기로 갈음했다. "우리 포럼의 얼라이언스들이죠, 외국 정부기관에서 10년에서 30년 동안 근무하신 분들과 모여서 각 나라의 경쟁력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이탈리아는 다양성, 프랑스는 패션과 문화, 또 다른 나라는 경제력이나 군사력, 그리고 교육이라고 했죠. 한국이 나오니, 아무도 선뜻 말하지 못하더군요. 하지만 누군가 '사람'을 이야기했더니 모두 동감하더군요.

월드컵 응원하면서 붉은 악마가 보여줬던 저력은 세계인들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줬던 것 같아요. 21세기 화두는 문화이고, 문화는 곧 사람이니, 우리나라로 바통이 넘어올 수 있지 않을까요?"

무하마드 알리가 말한 바 있고, 또 비 종교인임에도 불구하고 <성경 말씀대로 살아본 1년>이란 독특한 책을 썼던 A.J.제이콥스는 그 1년 동안의 신비한 경험을 한 문장으로 압축했다. 'Fake it until make it! (그렇게 되고 싶다면, 그런 척해라)'. 이는 곧 자기 최면이다.

"허세가 아니라 우리 문화의 힘이나 관심, 가능성을 스스로 인식할 필요가 있습니다. 부산국제영화제도 처음엔 다섯 명으로 시작했죠. 처음부터 끝까지 다섯 명이 아니거든요. 뜻이 맞고 열정이 닿으면 함께하고자 하는 사람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게 됩니다."

벤치마킹하는 순간 문화적 고유성을 잃기에, 어떤 사례도 모델로 삼지 않는다는 송 대표. 이미 그려진 그림보다 앞으로 그려갈 여백이 더 많다.

조급함이 들 법한데, 그녀는 "문화는 이벤트나 결과가 아니라 늘 현재진행이자 과정"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아브레우 박사가 30여 년 전 시작해 지금까지 40만 명의 빈곤층 청소년이 거쳐간 베네수엘라의 '엘 시스테마'가 그 '즐거운 과정'이 주는 기적을 바로 보여주고 있지 싶다.

문화은행 송은하 대표는…
1997년부터 외국 정부기관의 국가 브랜딩 프로젝트와 국내 정부부처 및 공공기관의 문화정책, 다국적 기업의 경영 컨설팅을 해왔다. 현재 리서치·컨설팅 전문조직인 문화경영연구원CMN(Culture Management Network)의 대표 컨설턴트이자, 문화은행㈜의 대표로 재직 중이다. 부산국제영화제 전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중앙대, 건국대, 숙명여대 등에서 문화예술경영론, 글로벌 캠페인 기획 등을 강의하고 있다.



이인선 기자 kell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