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계 앙팡테리블] (45) 소설가 황정은발랄한 이야기 뒤 삶의 비애… 2000년대 젊은 소설 변화 보여줘

모자가 된 아버지(단편 <모자>), 말하는 애완동물(단편 <곡도와 살고 있다>), 오뚜기가 되는 아내(단편 <오뚜기와 지빠귀>). 흡사 만화를 보고 있는 듯 발랄한 이야기의 한편으로 삶의 비애가 흐른다.

평범한 일상은 이 젊은 작가의 서사적 감각과 만나 한 겹의 코팅막이 입혀진다. 그의 명랑성은 이전 시대 작품들이 보여준 풍자나 골계, 익살의 범주에서 벗어난다.

때문에 이 작가에게 붙은 수식어는 '황정은 풍 서사'. 단편집 한 권을 낸 신인이 제 이름의 수식어를 갖는다는 것이 어리 그리 쉬운가. 젊은 작가가 가져야 할 첫째 요건으로 '개성'을 친다면, 그는 성공적인 데뷔전을 치른 셈이다.

2005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한 작가는 이제 막 한 권의 책(소설집 <일곱시 삼십이분 코끼리 열차>, 문학동네 펴냄, 2008)을 냈을 뿐인데, 이 작품집은 한국일보 문학상, 이효석문학상 등 굵직한 문학상 후보에 올랐고, '작가가 선정한 오늘의 소설', '올해의 문제소설'에 선정됐다. 요는 그가 써낸 일련의 작품이 2000년대 젊은 소설의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는 것. 그가 그려낸 이야기를 따라가 보자.

등단작 <마더>는 생모에게 버림받은 채 병든 개와 동거하는 자살 사이트 회원의 이야기다. <문>에서 주인공은 언젠가부터 자기 뒤에 문이 있음을 알게 되고 그로부터 사자(死者)들의 혼령이 등장한다.

<곡도와 함께 살고 있다>에서 곡도는 말하는 애완동물이다. 그러나 이 기묘한 동물은 거꾸로 주인을 평가하고 주인의 서비스를 받는다. 그 이야기의 끝에 한 자락 페이소스가 남는 이유는 작가가 '인간은 각자 살아가는 존재'라는 걸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등단 때부터 지금까지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같아요. 사람이 맞는 쓸쓸함, 그 쓸쓸함의 정서를 표현하고 싶었어요."

문학평론가 서영채는 그의 작품집 끝에 붙인 해설에 이렇게 썼다.

'작품들을 시간 순서로 늘어놓으면 출발점에는 <마더>와 <소년>의 세계가 있고, 그 반대편에는 <곡도와 살고 있다>가 있다. 삼년 정도 짧은 기간이지만 그는 환상 밖의 세계에서 환상 속의 세계로 점차 이동해왔던 것으로 보인다.'(285페이지, 명랑한 환상의 비애)

작가는 '환상'이란 말에 얼핏 동의하지 않았고, 등단 때와 비교해 자신의 작품 모양새가 변한 것에는 동의했다.

"단편 <무지개풀>을 쓰면서 '소설을 이런 식으로 쓸 수도 있구나' 즐거움을 알았어요. 제가 하고 있는 이야기, 그러니까 몸은 같은데 입고 있는 옷이 다른 거죠."

지난 가을 <세계의 문학>에 발표한 작품 <백의 그림자>는 그의 '몸'이 변화는 지점을 보여준다. 철거를 앞둔 재개발 지역을 무대로 가난한 남녀의 연애를 그리는 이 소설은 최근의 사회적 변화와 맞물려 다양한 해석을 담고 있는 작품이다.

작가는 이 작품의 집필기간 동안 "안에서 바깥을 응시하고 있다가, 이제 손잡는 법을 배워가는 중인 것 같다. 짧은 순간이라도 사람 사이 연대가 발생할 수 있고, 굉장히 큰 힘이 될 수다는 걸 발견했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5월부터 7월까지 이 작품을 썼고, 주지하다시피 이 기간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지식인들의 시국선언 등 다양한 사건이 있었다.

"원래 제 소설 속 인물은 각자 쓸쓸해요. 사람 사는 게 그렇다고 지금도 여전히 생각하지만, 아주 예외적으로 사람이 용기를 내고, 그렇게 하고자 마음먹었을 때 연대가 발생할 수 있고 그 연대가 구체적인 결과로 나타나지 않더라도 굉장히 큰 힘이 될 수 있다는 걸 발견했어요. 작품은 두 남녀가 어두운 섬에서 나루터를 향해서 걸어가는 것에 끝나요. 그 장면을 쓰면서 '이 두 사람이 어둠 속에서 누군가를 만났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을 했거든요. 어떤 바람을 갖고 소설을 쓴 건 처음이에요. 어떻게 보면 큰 변화이죠."

작가 황정은이 주목받는 이유는 발칙한 상상력과 감각적 문체가 아니라, 삶을 대하는 그 진정성 때문이 아닐까.



이윤주기자 miss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