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김기철쉽고 활달하고 명상적인 인터페이스로 관객에게 다가가

김기철의 명함에는 두 가지 직업이 적혀 있다. 조각가와 사운드 엔지니어다.

학부와 대학원에서 조각을 전공했고, 미국 유학 때 미디어 기술을 공부했다. 소리를 물리적 장치로 변환해 내는 작업을 하기 때문에 '소리 조각가'로 불린다.

예를 들면 이런 작업이다. 가로로 긴 받침대 중간에 인형 두 개가 마주 보고 있다. 받침대 양쪽 끝에는 마이크가 있다. 마이크가 소리를 감지하면 인형이 앞으로 움직인다. 두 명의 사람이 각각의 마이크에 대고 동시에 소리를 내면 두 개의 인형은 뽀뽀를 하게 된다. 작품 제목은 'contact'다.

흰 테이블 위에 선을 그으면 그에 따라 피아노 소리, 작가의 목소리 등이 흘러나오는 작품도 있다.('sonud drawing') 이것을 응용한 는 테이블 대신 성조기 그림에 선을 긋도록 한 작품. 관객들의 흔적으로 성조기가 덮이면 소리 재생이 끝나고, 마침내 작업이 완결된다.

이런 작업의 바탕에는 석굴암과 야구 중계가 있었다. 대학 시절 미술사 수업 때 슬라이드로 본 석굴암 관음상이 영감을 주었다. '관음(觀音)'을 직역하면 '소리를 봄'이다.

'sound drawing-star spangled banner'
이에 따르면 소리를 보는 경지가 곧 이치를 깨닫고 세속을 해탈하는 상태가 아닐까? 마침 플레이 오프 시즌이었는데 라디오의 야구 중계에 귀 기울이다가 경기가 눈에 보이는 것 같은 깨달음을 얻었다. 여기에 착안해 라디오에 불상을 올려놓은 형태의 첫 작품 '11face'를 만들었다.

이후 그의 작업은 개념을 빼고 접촉을 늘리는 쪽으로 변해 왔다. 바닷물과 계곡물 소리, 빗 소리를 각각의 물과 함께 전시하는 등('sound looking water') '자연스런' 작업을 하다가 조금씩 인간 현상을 담기 시작했다.

'contact'의 전작이라고 할 만한 'we can't talk without a mask'는 두 개의 마주 본 마스크를 '실 전화'로 이은 작품. 두 사람이 각자 마스크에 얼굴을 파묻은 채로야 서로 대화할 수 있다.

소리에 뜻을 담는 것은 어떤 섬세한 장치로도 자연음을 살려낼 수는 없다는 깨달음 때문이다. 문명 속에서 재현된 자연음이, 청각을 삶에서 단절시키는 환청에 머물 위험에 대해 작가는 좌절하지 않고 오히려 삶을 두루 끌어안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거리에서 채집한 소리를 작업에 넣고, 관객에 반응하는 기제를 구현해 보는 중이다. 마치 중생 보편에게서 스스로 구원하는 길을 구하는 종교 교리처럼, 김기철 작가 작업의 인터페이스는 쉽고 활달하면서도 명상적이다.

김기철 작가는 23일부터 내년 초까지 슬로베니아 멀티미디어센터에서 전시를 연 후 3월에는 서울 종로구 원서동의 공간에 개인전을 마련한다. 이때에는 턴테이블 형태의 작품으로 디제잉 퍼포먼스를 한다. 세상에, 소리로 해탈하는 방식이 하나 더 늘겠다.



박우진 기자 panorama@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