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바로크합주단 김민 음악감독네 번의 전환점 넘긴 한국실내악단의 산 역사… 내년 창단 45주년 축제

클래식 음악 감상의 종착역이라고 불리던 실내악은 어느덧 관객 앞으로 성큼 다가왔다.

올해로 4회를 맞은 서울스프링실내악축제는 안정적인 궤도에 올라섰고 앙상블 디토의 성공은 더 이상 실내악이 멀리 있지 않음을 보여주었다.

국내 실내악단의 부드러운 안착을 기점으로 시간을 되돌려 보면 그 시작점엔 늘 서울바로크합주단(해외에서는'코리안 쳄버 오케스트라'로 불린다)이 있다. '있었다'가 아닌 건, 그들의 행보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며 동시에 미래지향적이기 때문이다 .

'최초', '최고'라는 수식어가 낯설지 않은 서울바로크합주단은 내년 창단 45주년을 맞는다. 매년 해외 유명 음악 페스티벌에서 러브콜을 받는 그들은 한국 실내악단의 살아있는 역사로 불린다.

철벽 같던 해외 시장에서 22년 전보다 30배 이상의 개런티를 받게 되었고 클래식 본고장인 유럽을 비롯한 전 세계 32개국에서 초청 연주회를 열었다. 지금껏 450회의 공연, 해외에서는 100회 공연을 눈앞에 두고 있다.

서초구 반포동 서울바로크합주단의 홀에서 만난 음악감독 김민 교수(서울대 명예교수)는 그간 한 몸처럼 끌고 온 서울바로크합주단의 주요 이슈를 반추하는 것으로 말문을 열었다.

"그동안 네 번 정도의 전환점이 있었어요. 고 전봉초 교수님이 실내악이라는 단어가 낯선 1965년대에 실내악단을 창단했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이슈였다면 두 번째는 5년간 중단됐던 서울바로크합주단을 1980년에 제가 다시 재창단한거죠. 그리고 1987년에 처음으로 해외 초청 공연을 하고 1997년에 정식으로 유럽에 진출한 것이 세 번째라면, 2003년에 서울바로크합주단이 사단법인으로 독립한 것이 네 번째 중요한 전기라고 할 수 있죠."

이들 이슈는 때로 국내 클래식 음악계의 중요한 사건이기도 했다. 창단 당시 악장이었던 김 교수는 독일 유학 중 쾰른 앙상블에서 악장으로 활동한 경험을 기반으로 서울바로크합주단을 부활시켰다. 이탈리아의 실내악단 '이 무지치'를 벤치마킹해 13명의 단원으로 구성하고 지휘자를 없앤 '부활 연주회'의 '참신한 시도'에 평단과 관객들의 호평이 쏟아졌다.

김민 교수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가던 음악단체를 '인공호흡'까지 해가면서 살려낸 이유는 단 한가지였다. 시작은 창대하고 끝은 미약하던 한국의 고질병에서 벗어나고 싶었기 때문이다.

베를린 필하모닉과 빈 필하모닉의 전통을 늘 부러워만 할 수는 없었다. 바로크 음악부터 현대음악에 이르는 폭넓은 레퍼토리에도 불구하고, 창단 때 지어진 '서울바로크합주단'이라는 이름을 지금껏 고수한 것도 같은 이유다.

그는 30여 년간의 자신이 이끌어온 서울바로크합주단의 역사를 꼼꼼히 기록하고 보관하고 있다. 근대 음악 작곡가들에 대한 자료도 소수를 제외하면 사라지고 거의 남아있지 않는 현실이 늘 안타까웠다.

"내가 자부심 가지는 것 중 하나가 30년간의 기록을 모두 정리해놨다는 겁니다. 연주기록, 앨범, 프로그램 북, 기사 스크랩, 하다못해 연주회가 있던 날 구입했던 간식비 영수증 한 장까지도 있어요.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서 나중에 다 자료가 될 테니까요."

1987년부터 시작된 꾸준한 앨범 발매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첫 앨범은 김 교수가 듣기에도 민망할 정도지만 자료를 위해서 그 앨범도 자료실에 정리해 놓았다고 했다. 유럽에 진출하던 1997년부터 세 장의 앨범을 레코딩하면서 지금까지 14장의 음반을 발표했다.

"우리가 들으면서 스스로 참 많이 발전했다고 얘기합니다. 우리 발자취이기도 하고 국내 실내악 자료가 되기도 하겠지요. 가요나 팝과 기준이 다르지만 어떤 음반은 십 년째 꾸준히 팔리기도 하죠. 45주년인 내년에 두 장의 앨범을 더 낼 겁니다."

이 같은 꼼꼼함과 집념은 높기만 하던 클래식 음악 본고장 진출도 가능케 했다. 10년간 두드려도 묵묵부답이던 해외의 음악 페스티벌은 이제 앞다투어 서울바로크합주단을 초청한다. 1회 공연에 120만원에 불과하던 개런티도 22년 사이 3600만원이 됐다.

"1987년, 일본, 워싱턴, 뉴욕에서의 공연이 우리에게 자신감을 심어줬습니다. 늘 콤플렉스가 있었지만 서양음악인 클래식을 한국에서 가공해서 그들에게 역수출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보였거든요. 1997년 유럽에 입성했고 2007년부터는 일류 페스티벌에서 꾸준히 초청 연주회가 열리고 2012년까지 해외 초청 일정이 잡혀있는 상태입니다."

올해만도 독일 순회공연과 크로아티아 루베니차 페스티벌, 독일 라인가우 뮤직 페스티벌과 팔라티아 클래식 페스티벌, 이탈리아 칼 오르프 페스티벌과 아스꼴리 피체노 페스티벌 무대에서 호평을 받았다. 내년 6월, 난탈리 뮤직 페스티벌이 해외에서의 100번째 연주회가 된다.

"여기가 끝이 아닙니다. 내년은 국내 연주에 주력하지만 2011년에는 영국 런던과 프랑스 파리에도 진출할 겁니다. 그리고 남미와 아프리카에서도 연주하고 싶어요. 그렇게 되면 클래식 음악으로 갈 수 있는 곳은 다 가는 셈이죠."

서울바로크합주단의 창단 45주년인 내년엔 한바탕 축제가 펼쳐진다. 일년 동안 6번 열리는 특별정기연주회는 세계적인 연주자들이 대거 내한한다. 바이올리니스트 바딤 레핀, 첼리스트 클라우스 칸기써가 협연하고 바이올리니스트 막심 벤게로프가 한국에서 지휘봉을 잡는다.

또 국내 첫 내한하는 세계적인 반도네온 연주자인 아르네 글로르비겐을 비롯해 2009년 퀸 엘리자베스 콩쿨 입상자인 윤소영(바이올린), 유럽의 라이징 스타 김소옥(바이올린), 그리고 국내 최고의 아티스트인 첼리스트 양성원도 협연이 예정되어 있다.

이들 공연 중엔 김민 교수 개인적으로도 감회가 남다른 무대도 있다. 거의 반세기를 서울바로크합주단에서 동고동락해온 평생지기인 바이올리니스트 전용우 (현 KBS교향악단 악장)씨와 아들 전인홍(바이올린) 씨가 김민 교수와 함께 꾸미는 <30 플러스 30> 콘서트와 서울바로크합주단의 바이로이트에서의 연주회다. 줄곧 빠르게 말을 이어가던 그가 잠시 생각에 잠기는 눈치였다.

"전용우 씨는 아주 특별한 친구예요. 대학 4학년 때 만나서 지금껏 함께 해왔거든요. 또 바그너 음악을 좋아해서 30년 동안 독일 바이로이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의 단원으로 활동했지요. 내년 7월 30일에 서울바로크합주단이 그곳에서 연주를 해요. 그날 하루 축제가 쉬는데, 바이로이트에 있는 시티홀에서 초청연주회를 하죠. 제겐 특히나 의미가 있는 연주회죠. 앞으로는 연주자가 아니라 청중으로서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을 찾겠지요."

내년을 기점으로 서울바로크합주단의 과제는 이제 '음악감독의 세대교체'라고 그는 말했다. "내가 아닌, 누가 음악감독으로 있어도 활동을 해나갈 수 있는 밑받침을 만들어 주고 싶어요. 지금까지 해외에서의 리뷰가 모두 좋았거든요. 양질의 실내악단임은 틀림없는데, 어떻게 명품 앙상블로 만들어 가느냐가 관건이죠." 자생적이고 모범적인 국내 실내악단 1호는 45년의 세월에도, 여전히 미래지향적이다.

김민 음악감독은…
1942년 서울생. 서울예고, 서울대음대, 독일 함부르크 국립음악원을 졸업했다. 유학 중 독일 쾰른 앙상블 악장 겸 솔로이스트를 역임했으며 1980년 서울바로크합주단을 재창단했다.

KBS교향악단 악장 역임, 1977년부터 2007년까지 세계적인 음악 축제 '독일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에서 오케스트라 단원으로 활동했다. 서울대 음대학장과 코리안 심포니 오케스트라 이사장도 거쳤다. 퀸엘리자베스 콩쿠르, 차이콥스키 주니어 국제콩쿨, 폴란드 비에냐프스키 국제콩쿨 등 세계 주요 콩쿠르 심사위원도 맡아왔다.

현재 서울바로크합주단 음악감독을 비롯해 윤이상 앙상블 음악감독에 재직 중이다. 서울바로크합주단의 리더로서 이탈리아 대통령 조르지오 나폴리타노가 수여하는 올해의 음악가 상인 '라이프 오브 뮤직'을 한국인 최초로 받기도 했다.



이인선 기자 kell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