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순용 작가 출간 감동과 깨달음 주는 종교 관련 에피소드 묶어

"우리사회 종교의 배타성은 노골적으로 드러나 있지는 않지만 기저에는 서로 배타, 질시, 무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섞을 필요는 없지만 서로 인정하고 열린 태도로 교류하는 게 필요합니다. 작은 이야기 한토막이 그런 소통의 촉진제가 될 수 있다고 봅니다."

설법에 감동받고 인생을 바꾼 사람. 장순용(57)씨가 다시 감동과 깨달음을 주는 종교 관련 에피소드를 묶어 책으로 내놨다. 크리스마스에 때맞춰 나온 <천국보다 높은 곳>이 그것이다.

장씨는 20여년 동안 종교•명상서적 출판기획과 번역•저술을 하며 모은 감동적이고 성찰적인 에피소드로 책을 만들었다.

매일 전지전능한 자를 만날 것이라는 의심속에서 남몰래 이교도 가정을 찾아 봉사하던 어느 랍비 이야기, 불법을 저버렸다는 오해를 받으면서도 남의 아기를 자기 자식처럼 키우다 돌려준 하쿠인 선사 이야기 등이다.

새로울 것 없는 이야기지만 감동이 있다. 한 페이지 내외의 에피소드지만 깊은 생각거리를 던진다. 연말연시를 조금은 성찰적으로, 그러나 너무 무겁지 않게 보내고 싶은 이에게 권할 만하다.

장씨는 "우리 사회에서는 종교의 이름으로 사사로운 욕심이나 가치를 관철하거나, 타종교에 대한 배타• 질시•무시를 가르치는 경우가 많다"라며 "이야기 한 토막이라도 마음속에서 되씹고 어느 순간 인연이 닿으면 깨달음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요약했다.

"에피소드의 힘"

"종교적인 정신의 정수를 담은 이야기는 쉽게 읽히면서 독자의 마음에 씨앗으로 남습니다. 감사와 기도를 자기 인생에서 되돌아보고 재정립하게 만들어주는 에피소드 한 토막의 힘은 그 어떤 가르침보다 강렬한 것이죠."

책에 등장하는 목사, 신부, 고승, 수피, 랍비 등을 통해 성직자의 통념을 뒤집고, 역설적으로 인생에 대한 나의 태도를 되돌아보게 하고자 했다는 게 장씨의 의도다.

그렇다고 이 책이 처세술에 그친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장씨는 열린 마음으로 서로를 이해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관용'의 메시지에 집중했다.

성탄을 맞은 종교는 대부분 사랑과 관용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역사 속에는 배척과 증오가 비일비재하다. 지도상 사찰 표기 누락 등에서 촉발된 불교계와 이명박 정부•기독교계 사이의 갈등이 가까운 예다.

한 여성이 오랫동안 믿어온 종교를 포기했다. 새로운 교파에 들어갈 때마다 환영받았지만, 그녀의 내적 상태는 혼란스러웠다.

여인의 주장과 생각을 들은 스승이 말했다. "집으로 돌아가시오. 내 결정을 하나의 메시지로 보내겠소."

얼마후 스승의 제가가 찾아왔다. 꾸러미에 담긴 세 개의 유리병에는 검은 모래, 붉은 모래, 하얀 모래가 세 개의 층으로 절반쯤 담겨 있었고, 그 위를 솜뭉치가 틀어막고 있었다. "솜뭉치를 없애고 병을 흔들면 당신의 상태를 알리라."

그녀에게 남겨진 것은 한 덩어리의 잿빛 모래였다.

* 어떠한 종교도 그 자신의 권위에 바탕을 두고 믿어지길 바라면서 신앙이 없는 사람을 위협한다. (파스칼) - <신앙을 바꾸다> 요약. 책 중에서

"내 인생을 바꾼 이야기"

"감동과 깨달음이 있는 이야기가 좋은 이야기이죠. 에피소드는 읽는 사람에게 종교를 막론하고 생각이 아닌 가슴으로 감동을 전해줍니다. 삶과 존재의 근본을 밝히게 해주는 것들이죠."

장씨의 삶 그 자체가 이야기의 힘을 보여준다. 대학원에서 불교철학을 전공하던 그는 한학자이자 금석학의 거두였던 청명 임창순(1914∼1999)을 사사하려고 경기 남양주시 마석 지곡서당에 들어갔다. 지곡서당에서 손꼽히는 재가불자였던 백봉 김기추(1908∼1985)의 설법에 감동을 받고 참선과 율법 공부를 시작했다.

1985년부터 장씨는 시골로 내려가 불법과 선을 공부했다. 그는 90년 다시 사회로 나왔다. 종교•명상 관련 서적을 출판 기획, 번역하는 일을 하기 시작했다. 현재는 팔만대장경을 우리글로 번역하는 사업을 하는 동국대 역경원의 역경위원이기도 하다.

"흔히 빵만으로 살 수 없다는 말을 하곤 하죠. 물질적인 최소한의 수요가 충족되면 거부이든 가난한 이든 자기 삶에 존재론적인 물음을 하게 돼있습니다. 이에 대해 답하는 것이 종교적인 가르침인데, 이야기는 누구에게나 쉽게 이를 전달합니다."

"당신은 지금 행복한가?"

책은 에피소드를 통해 '행복'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철학적 질문도 던진다. 장씨는 책 서문에서 "당신은 부와 성공을 이루어서 행복하다고 느끼지만, 그 행복은 당신 마음의 부와 성공을 즐기면서 비롯된 것이지 성공 자체에서 나오는 것은 아니다"라며 "말하자면 행복은 전적으로 외적 대상이 아닌 마음에 달린 것이라 할 수 있다"고 썼다.

책은 '당신은 행복한가, 지금 당신이 믿는 행복이 진짜 행복인가, 과연 진정한 행복을 알긴 아느냐'고 묻는다. 책에 부자의 책망에 '돈을 번 다음에 편안히 앉아 쉬면서 인생을 즐기는 것과, 지금 고기를 더 잡지 않고 누워 쉬는 게 다를 바 없다'고 답하는 어부의 이야기를 실은 이유다.

장 씨는 "같은 이야기도 그릇의 크기만큼 감동과 깨달음을 달리 선사한다"며 "이 에피소드는 '머리로 읽지' 말고 '가슴으로 만나야'한다"고 말한다.

"자기 삶에 대한 존재론적 물음을 거부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종교는 죽어가는 사형수에게도 이야기로 감화와 감동을 줘서 하늘로 인도합니다. 좋은 이야기에는 세상의 갈등을 덜고 탐욕을 줄여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장순용씨는…
종교•명상 서적 출판 기획자. 동국대 역경원 역경위원.
고려대 사학과 졸업. 동대학원 철학과 수료.
민족문화추진회 국역연수원, 태동고전연구소 지곡서당 수료. 백봉 김기추 문하에서 불법과 선을 참구.
<도솔천에서 만납시다> <같은 물을 마셔도 뱀에게는 독이 되고 소에게는 젖이 된다> <십우도> 편저.
<반야심경과 생명의학> <참선의 길> <티베트 사자의 서> 등 번역.



김청환기자 ch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