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원 선생의 2010년 관상학허영만 화백 만화 '꼴' 감수자… '밥상머리 토크'서 '관상 교실' 열어

관상을 보고있는 신기원 선생
"(얼굴) 성형수술로 타고난 숙명을 어길 수는 업습니다. 하지만 운명도 노력의 진가만큼 약간은 변화되고 나아질 수 있는 것이죠. 성형수술도 그런 노력의 일환이 될 수는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요리만화 '식객'의 작가이자 맛의 대가로 알려진 허영만 화백. 만화 외길 34년을 걸어 온 허 화백이 지금 심혈을 기울여 연재하고 있는 만화의 이름은 '꼴', 사람 얼굴의 비밀을 풀어 내는 다소 색다른 주제, 즉 관상에 관한 것이다.

헌데 허 화백이 언제 관상에도 일가견이 있었나? 비결은 허 화백이 함께 일하고 있는 관상학자 신기원 선생의 존재 때문. 3

허 화백은 벌써 4년째 매주 한두 차례 신기원 선생을 찾아 '얼굴을 보고 마음을 읽는' 공부를 해오고 있다. 그래서 만화 '꼴' 제목 밑에는 '감수 신기원'이라고 적혀 있다.

국내 관상학의 대가 신기원 선생이 2010 새해를 맞아 허영만 화백과 함께 '관상 교실'을 열었다. LG상사 트윈와인(대표 김수한)이 지난 연말 맛에 조예가 있다는 전문가들과 함께 마련한 한식과 와인이 함께 하는 '밥상머리 토크' 자리에서다.

신기원 선생(왼쪽)과 허영만 화백
"사람의 운명에는 2가지가 있습니다. 타고난 숙명은 결코 이겨내지 못합니다. 순응할 수 밖에 없는 것이 자연의 섭리이지요. 그런 바탕 위에서 운명을 후천적으로 개척하고 노력해 나갈 수 있는 여지는 충분히 있는 것입니다."

신 선생은 관상학이 겉만 보는 것이 아니라고 설명한다. 얼굴의 생김새와 색깔에 정해진 이치가 있지만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인간의 마음을 읽는 것이라는 주장.

그의 상법(相法), 즉 관상법은 음양학과 맞닿아 있다. 세상의 사물에는 표리, 즉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2가지가 있다는 것. 겉과 안, 정신과 물질, 무형과 유형, 음과 양, 그리고 꼴(얼굴 생김새)과 마음이다.

이런 형상론을 제쳐 놓고 글자나 숫자에서 드러나는 기운만을 가지고 운명을 따지는 것은 사주팔자라고 그는 설명한다. 꼴을 보면서 떠오르는 직관 없이 운명을 추리하는 사주팔자는 때문에 추명학이라고도 한다.

성형수술을 통해 미인이 됨으로써 운명 또한 바꿔 보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욕망에 대한 그의 관상학적 설명도 단호하다. "성형 미인이 절대 미인이 되기는 정말 어렵습니다.

어떻게 어머니 모태에서 자라난 자연의 미와 똑같이 사람이 만들 수 있겠습니까? 자연미는 인간이 결코 흉내낼 수 없습니다. 비슷할 수 는 있겠지만…또 꼴, 모양만 비슷하지 속과 내용까지 같아지는 것은 아니죠."

신기원 선생의 명함에는 '상학 연구가'라고 쓰여 있다. 그가 밝히는 관상학 연구 시간만 무려 60년. 1939년생인 그의 나이가 올 해 71세인데 어릴 때부터 관상을 공부한 덕에 '기나긴' 경력을 갖게 됐다. 또 사주 공부 경력은 40년. 또한 작명가로서의 지명도도 높다.

그처럼 오랜 기간 공부하지 않고서 '나'도 신 선생처럼 관상을 잘 볼 수는 없을까? 얼굴 생김새만 보고 사람의 마음을 판별하는 재주만 있다면야 수많은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을 것만 같이 느껴진다. "그런 사람은 사회 생활에서 인물 됨이 작은 사람들로부터 배신도 당하지 않습니다. 배신이라면 그릇이 작은 사람들이나 하는 것이지 큰 인물이 어디 배신합니까?"

굳이 별도로 상학을 공부하지 않고서도 사람을 잘 살피는 사람이 있다. 한마디로 타고난 사람들인데 모두 모태로부터 받은 것이다. 신 선생은 대표적인 인물로 삼성그룹 창업자 고(故) 이병철 회장을 꼽는다.

사업에서도 큰 인물이었지만 사람을 볼 줄 아는 능력이 '상상 이상으로' 탁월했다는 평가. 아들인 이건희 전 회장은 이 부분에 있어서만은 아버지의 능력을 물려받지 못했다고 그는 진단한다. "이건희 회장은 사람들에게 아낌없이 무척 베푸는 상입니다."

신기원 선생은 주변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관상을 봐달라는 요청을 많이 받는다. 밥상머리 토크 자리 또한 마찬가지. 수많은 질문들이 쏟아지고 한 자리에서 무려 20여명의 '꼴'들을 살펴봐야만 했다. "저 시집 갈까요?" "재물운은 어떤가요?" "사업을 하면 어떨까요?" "지금 만나는 남자 친구와 잘 될 수 있을지?"

관상을 보는 그만의 비법이랄 것 까지는 아니겠지만 신 선생은 거의 대부분 이마를 들어 보이라고 한다. 그러고선 사람마다 고신기(고독한 기운)나 이재운, 부모나 남편, 자식 운까지도 진단한다. "여자는 덕이 중요한데 머리카락을 들어 귀도 보여 줘야지…" 더불어 귀를 유심히 살피는 것도 공통된 특징.

"잇몸이 많이 보이는 것을 보니 조금 기분파구먼." "눈썹꼬리에 창의력이 숨어 있네." "나이가 30대라구요, 서두를 것 없이 느긋하게 결혼할겁니다." 조금 더 족집게 같은 실사례도 확인된다.

"무인의 기가 흐른다"는 얘기에 "육사에 합격했다 시력이 나빠 탈락했다"고 말하거나 "남편이 군인이 될 상"이라는 여성이 "한때 사관학교를 고려했다"는 답변도 나온다. 같은 기운은 서로 만나게 돼 있다는 부연 설명.

신 선생의 상법은 단순히 운세만을 보는 것도 아니다. 그의 해석과 말 한마디 한마디에는 깊은철학이 담겨 있다. "고독한 기운이면 안 좋은 것 아니에요?"라는 질문에 그는 "높은 산이 외롭잖아요. 욕망이나 자부심이 높고 강한 것도 고독입니다." "마음이 운명을 결정합니다. 타고난 마음은 천성인데 그걸 어떻게 고치나요?" "또 만날 사람은 어떻게든 꼭 만나게 돼 있습니다."

그럼 그 자신의 관상과 운명은 어떠할까? 신 선생은 스스로 '가난뱅이로 태어나 외국도 아직까지 한 번도 못 나가봤다"고 말한다. 결코 슬프다거나 부정적으로 언급한 것은 아니지만 일제시대 고등문관 시험에까지 합격한 아버지가 엘리트이면서도 크게 성공해 자리잡지 못한 아쉬움은 묻어난다. "부자도 한편으로 타고나는 겁니다. 가난뱅이를 부자로 만들기는 무척 어렵죠."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다양한 인생과 운명을 목격해 온 그의 결론은 단순하다. "중국이나 일본 사람들은 잘 뭉치는데 해외의 한인사회에서 쌈박질 소식을 듣습니다. 비방과 모략이 난무한 당파싸움이나 이웃이 땅을 사면 배 아프다는 얘기도 많이 하죠. 탐욕스러운 생각들을 버려야 합니다. 모두 소인배들이나 하는 것들이죠."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되새겨 들어야할 만한 뼈있는 그의 일침이다.

평소 막걸리와 소주를 즐겨 마신다는 그는 밥상머리 토크에서 생전 처음으로 와인과 한식 디너정찬을 맛보았다고 한다. 하지만 밀려드는 관상 청탁에 두 시간여 동안 제대로 식사도 하지 못하는 곤욕(?)을 치러야만 했다.

청빈한 딸깍발이를 생각나게 하는 인상에 한마디 한마디마다 철학적이면서 사려깊은 생각이 드러나는 신기원 선생은 오늘도 서울 상계동의 조그만 사무실에서 손님맞이에 한창이다.



박원식기자 park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