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초대석] 송방송 교수'한국 근대음악인 사전' 발간 음악인 5천 명의 활동 담아

"송 박사, 음악 통사 한번 써보는 게 어떤가. 내가 문학 통사를 써보니까 무엇을 모르는지 알겠더라고. 요즘은 돈키호테처럼 사는 학자를 찾아보기 어렵지만 난 그렇게 살고 싶어. 자네도 통사를 쓰다 보면 무엇을 더 공부해야 할지 알게 될 거네."

벌써 27년 전 얘기다. 송방송 교수(68, 한국예술종합학교 전 교수)는 대학 선배인 조동일 교수(문학평론가이자 서울대 국문과 교수)의 권유를 듣자마자 고대음악사부터 차례로 연구하기 시작했다.

무려 15년이 걸려 탈고한 <한국음악통사>(1998년, 초판)는 이젠 국악계의 바이블로 자리 잡았다. 최연소 국립국악원장 역임, 음악사의 체계적인 정리를 배우기 위해 떠난 미국 유학, 캐나다 맥길 대학교 음대 교수로서의 경험과 역량을 집결해낸 첫 번째 대작이었다.

젊음과 건강을 담보로 펴낸, 국악계 바이블

두터운 한 권의 책으로 말끔한 모습을 드러냈지만 이 책은 송 교수의 젊음과 건강을 담보로 한 것이었다.

책을 펴내기에 앞서 모든 자료는 3x5인치 크기로 잘라 만든 주제색인 카드로 정리됐고 10여 년간 주말 없이 이 작업에 매달렸다. 찜통더위 속에서도 얇은 종이로 만든 주제색인 카드가 날아갈까 선풍기 한번 켜지 않으며 몰두했던 시간.

그는 조선음악사 연구를 위해 <조선왕조실록>을 읽던 중 동맥경화로 쓰러졌다. 왼쪽 상반신이 마비됐고 건강 회복에는 꼬박 1년이 걸렸다. 다행히 운동신경은 손상되지 않았지만 지금도 물 온도를 확인할 땐 오른손을 담가 봐야 한다.

"<조선왕조실록>은 음악사 연구의 기본 사료지요. 색인카드로 정리하면서 읽다 보니 꼬박 5년이 걸렸어요. 원래는 <한국음악통사> 개정판을 10년 만에 펴내려고 했는데, 건강에 한번 자신감을 잃고 나니 2007년에야 증보판을 발간하게 됐습니다."

그나마 한국학 중앙연구원에서 선정하는 영역본 대상 서적이 되면서 개정판을 서두른 덕이다. 건강에 무리를 끼치면서까지 연구에 몰두했지만 여전히 갈 길은 멀었다.

송 교수는 2000년부터는 근대 음악사를 파기 시작했다. 방송, 신문, 잡지, 음반 자료를 찾아내 읽고 정리하면서 논문을 완성해냈다. 이런 인고의 세월 안에서 잉태된 책이 최근 발간된 <한국 근대음악인 사전>이다.

1900년에서 1945년 사이에서 크고 작게 빛내던 음악인 5000명의 활동이 담겼다. 국악은 물론이고 클래식, 대중가요, 동요 작사, 작곡가까지를 아우른다.

어마어마한 사전 작업을 마쳤지만 그는 현재 세 번째 사전인, <조선시대 음악인 열전>의 막바지 집필이 한창이다. 새벽 산행과 월요일마다 출강을 제외하곤 하루 10시간 이상 컴퓨터 앞에 앉아 집필에 몰두한다.

'읽히는 한국 음악사'를 쓰겠다는 오랜 꿈이 이루어졌음에도 무엇이 이 노 교수를 쉼 없이, 게다가 강도 높게 연구하게 하는지, 궁금했다.

"음악사를 정리해 보면 근대음악사가 가장 구멍이 커요. 참고문헌을 꼼꼼히 넣은 것도 후학들이 공부할 때 원전을 보면서 더 많은 작업을 해줬으면 하는 바람이지요. 문학에서는 평전도 많이 나오지만 음악가 평전은 나오질 않았거든요. 음악계를 주도하던 사람들이 직접 무대에 서는 사람들이었고 상대적으로 학문을 연구하던 사람들은 적었던 이유입니다."

송 교수는 그 첫 단추를 끼는 일이 자신의 몫이라고 여기는 듯했다. 그가 네 가지 기둥으로 삼은 것은 경성방송국의 방송, 유성기 음반, 일제시대 150여 종의 음악 관련 기사를 모은 한국근대음악 기사 자료집, 그리고 매일신보, 조선일보, 동아일보 등의 일간지였다.

-근대음악인에 대한 자료가 많이 남아있지 않다는 음악인들의 말씀을 많이 들었는데요. 혼자 하기에는 대단히 큰 작업이었던 것 같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빨리 책을 냈느냐고 의아해하시는 분들이 계셨어요. 하지만 정리하는 데는 1년 걸렸지만 준비를 위한 시간이 8년이었습니다.

그 사이 근대음악인들에 대한 논문도 수십 편 발표했고요. 교수로서 해야 하는 역할을 빼고는 개인생활을 모두 포기했죠. 집사람이 늘 그래요. "어떻게 당신은 그 흔한 동창회나 교수 모임도 안 나가냐"고요. 독불장군이란 얘기도 많이 들었죠.

-이번 저서에서 어떤 부분에 초점을 맞추셨나요?

사전의 생명은 참고문헌에 달렸습니다. 제가 유학하면서 배운 것이죠. 서술된 내용도 중요하지만 후학들의 연구를 위해서는 정보를 오픈하는 것이 더 중요하거든요. 사전에 충실하기 위해 음악인에 대한 주관적인 가치판단을 하지 않고 사실만 담았습니다.

사진이 참 귀했는데, 기생 200~300명의 사진이 담긴 <조선미인보감>이 큰 도움이 됐습니다. 현존하는 분들은 직접 사진을 찍기도 했고요. 스캔하는 데만도 많은 시간이 걸렸어요.

또 서양음악이라고 해서 배제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나라에 뿌리내려 우리 문화가 되었는데, 그 분들을 어디에 넣어야 할까요?

유행가나 동요 가사는 이광수 소설가나 이은상 시인 같은 당대 유명 문인들이 많이 썼거든요. 그런 분들을 제가 적지 않으면 누가 하겠어요. 나중에 참고가 될 겁니다.

기생, 근대 음악의 작은 별

-개인적으로 기억에 남는 음악인들이 있을 텐데요.

무명의 음악인들은 잊히기 마련이지요. 하지만 기록을 살펴보면서 근대 음악사에 '작은 별'들이 참 많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들을 다 담고 싶었어요. 대표적인 이들이 권번(券番, 조선시대 기생들을 관리하던 '기생청'의 후신으로 일제시대에 이렇게 불렸다)의 기생들이었습니다.

기생이라고 하면 몸 파는 여자라고만 알고 있는데, 옛날 기생들은 흥을 돋워주는 촉매제 역할을 했어요. 여럿이 모인 자리에서 술을 마시면서 자작시를 노래로 읊었지요. 이 노래들이 수록된 책이 <청구영언>, <해동가요>, <가곡원류> 잖아요? 시조집이 아니라 가곡이라는 노래 사설입니다.

일제시대만 해도 권번에서는 유명한 선생을 모아놓고 노래, 악기 연주, 춤을 가르치고 졸업생들에게는 기예증을 줬어요. 그 기생들이 라디오 방송도 나가고 음반도 냈지요.

지금의 연예인이라고 생각하면 쉽죠. 왕수복이나 선우일선 같은 기생은 해방 이후에 이북에서도 열심히 활동한 사람들이지요.

-서문에서도 밝히셨듯이, 정년퇴임 후에는 온전히 음악사전을 만드는 데 여생을 바치는 것이 꿈이라고 하셨는데요. 이번에 그 첫 단추를 끼신 것 같습니다. 후속작은 어떤 건가요?

한국음악사전이라는 큰 산봉우리를 넘기 위해서는 작은 산봉우리 몇 개를 넘어야 하는데, 그 첫 번째 작은 산봉우리가 음악인 사전이었어요.

두 번째는 지금 출판사에서 편집 중인 <악학궤범 용어총람>이에요. 궁중문화를 담은 <악학궤범>은 조선 전기 우리나라 공연예술의 집합체거든요.

음악용어뿐 아니라 공연에서 입던 의상이 다 들어 있어서 복식사에도 중요합니다. 옷감 하나하나까지 다 정리되어 있어요. 또 거기 나오는 노랫말은 국문학자들의 관심사죠.

지금 난 <조선시대 음악인 열전>이라는 원고 마무리 집필 중입니다. 조선시대의 주요한 행사를 기록한 '의궤'라는 것을 보면 음악인 이름이며 곡명이며 음악인의 모든 것이 정리되어 있어요.

18 종류의 의궤가 남아있는데 음악인들이 천 명 이상 나오죠. 또 음악을 관장하는 기관의 등록이라고 해서 '악장등록'이란 건 일기체로 써져 있습니다.

이 같은 기록 중에서 가장 중요한 내용을 <조선왕조실록>에 실은 겁니다. 여기에 등장하는 음악인들이 모두 이 책에 담길 겁니다. 이렇게 차례로 완성되면 <한국음악대사전>이 완성되겠지요.

이 땅에서 태어나 자랐지만 우리가 역사적인 국악인을 떠올리는 것은 클래식 음악가들을 기억하는 것보다 절대 쉽지 않다.

그러나 요즘 들어 생겨나는 바람직한 변화는 젊은 국악인들이 국악기의 진화나 창작 국악 작곡, 그리고 서양음악의 국악화 등에 정성을 쏟고 있다는 점이다. 송 교수 역시 이런 점을 높이 평가했다. 하지만 이제 시작일 뿐이다.

"피아노 가지고도 얼마든지 우리 리듬을 넣을 수 있고 클라리넷이나 오보에로 피리의 마음을 낼 수 있거든요. 캐롤을 가야금으로 연주할 것이 아니라 캐롤송과 같은 음악을 우리가 만들어서 세계에 수출해야 합니다. 이런 것들을 우리 세대는 머리가 굳어서 많이 못 했어요. 신세대들이 할 수 있으리라 믿어요."

'송아지'라는 동요에서마저 우리나라에는 없는 '얼룩 송아지'가 등장하는 걸 보면 은연중에 서구 지향적인 의식을 가지게 된 것이 아닌가, 라고 말하는 그의 뼈아픈 환기는 어쩐지 듣고 넘길 수만은 없겠다 싶다.

송방송 교수는…

서울대 음대 국악과에서 학사와 석사를 마쳤다. 캐나다 토론토 대학교에서 박사과정을 수학했으며 미국 웨스레얀 대학교 대학원에서 음악학박사(PhD)를 취득했다. 캐나다 맥길 대학교 음대 조교수와 국립국악원장을 지냈다.

영남대학교 음대 교수와 음대학장 및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교수를 역임했으며 현재 중앙대학교 국악대학 초빙 교수 및 한국음악사학회 이사장으로 재직 중이다. 지금까지 음악사에 관한 41권의 저서를 집필했다.



이인선 기자 kell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