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BS 18기 공채 이원희드라마 '사랑과 전쟁' 주역으로 익숙한 얼굴… 연기, TC 둘다 재미있어요

여행을 떠날 때 가장 중요한 요소는?

현지 숙소, 기후, 물가, 교통, 음식 등…이 모든 게 다 중요하겠지만 아마도 가장 큰 변수는 '같이 가는 사람'일 것이다.

혹시라도 TV에 나오는 스타나 배우와 함께라면 과연 상상 속 꿈이기만 할까? 그렇게 거창할 것 없이 벌써 어떤 사람들은 'TV속 그 사람'과 여행에 나서고 있다. 바로 탤런트 이원희씨다.

KBS에서 한창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시리즈, 부부클리닉 '사랑과 전쟁'. 이 드라마에서 그는 주연급으로 자주 모습을 비췄다.

부부간, 혹은 고부 갈등 속에서 우유부단한 남편이나 아들로 등장하던 것이 대부분 그가 맡았던 역할의 캐릭터다. 반듯하고 곱상한 외모에 물오른 연기력으로 그는 특히 주부층으로부터 인기를 끌었다.

드라마 '부부클리닉'에 출연한 탤런트 이원희
지금 탤런트 이원희를 볼 수 있는 곳은? 그는 요즘 여행길에 자주 나타난다. 그가 인솔하는 많은 여행객들과 함께.

정확히 지금 그가 하고 있는 일은 여행사의 TC 업무다. Travel Conductor의 약자로 번역하면 해외여행 인솔자이다. 여행사의 정식 직원으로 해외여행을 단체로 떠나는 손님들의 모든 일정과 진행을 안내하고 책임지는 것이 주 임무다.

여행사와 연예 스타! 둘의 상관관계를 따지자면 일부 스타나 연예인들이 여행사 주주로 참여하거나 홍보를 위해 '얼굴마담' 격으로 이름을 내세우는 것은 간혹 목격되는 사례다.

하지만 TV탤런트 출신이 여행사의 직원으로 필드에서 현장을 뛰는 경우는 이씨가 유일무이하다. 국내 최초 탤런트 출신 TC라는 타이틀도 당연히 따라 붙는다.

"탤런트와 TC, 둘 다 재미있어요. 연기도 즐겁고 여행도 좋아하지만 아무래도 TC는 배워가는 입장이죠." 연기 생활 와중에도 여행에 워낙 관심이 많았던 그는 특이하게도 수 년간 여행사인 여행박사 홍보마케팅 팀장, 한국유스호스텔연맹 홍보팀장의 경력도 갖고 있다.

지난해 중반부터 그가 본격 선택한 길은 TC. 아예 한국관광공사에서 시행하는 자격증을 취득하고 소정의 과정을 이수, 정식 여행 인솔자로 나섰다. 여행사 시절 간간이 기회를 가졌던 TC 일에 매력을 느껴서다.

여행객 인솔자로서 탤런트 경력은 '다행히도 큰 힘'이 된다. "손님들 중에 3분의 1 정도는 먼저 알아 봐 주십니다. 아무래도 패키지 여행이다 보니 주부들이 많으셔서 그런 것 같아요."

공항에서 처음 마주치는 이들로부터 그는 "혹시 탤런트 아니셨어요?"라는 말을 가장 많이 듣는다. 그리고는 "어쩐지 그런 것 같았어." 나머지 3분의 1은 '드라마를 잘 안 본 듯 '그런가요?!'라고 한다고.

TC 이원희는 고객들로부터 지금 친근감과 호감을 쉽게 느낀다. '같이 여행 가게 돼 영광입니다' '우리 TC가 멋쟁이라 기분이 좋네요'란 얘기를 들을 때마다 힘도 솟는다.

전직 탤런트와 일반 여행객들이 같이 사진도 찍고 대화를 나누면서 여행 자체가 더 즐거워질 수 있다는 것은 이미 짐작 가능하다. "무엇보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본다는 것이 무척 즐겁습니다."

"왜 탤런트를 계속 하지 않나요? 요즘 TV에 잘 안보입니다." 이런 얘기 또한 그는 자주 듣는다. 지난 해도 이따금 TV에 출연을 했지만 아무래도 큰 주목을 받지는 못한 탓. 드라마 속에서 그는 드센 여자들을 만나 당하거나 손해 보는 전문직 역할을 많이 소화해냈다.

"지금 아니면 여행, 아니 TC를 못할 수도 있을 것 같아서요. 나이가 더 들기 전에 꼭 해 보고 싶었습니다. 연기자는 대본만 외울 줄 알면 나이 들어서도 언제든 할 수 있으니까요." 그는 지금 이순간이 TC 일에 전념할 때라고 말한다.

그렇다고 평생 여행인솔자로 살 계획은 아니다. 아마도 지금부터 5년, 길면 10년쯤. "탤런트를 포기한 것도 아니고 그만 둔 것도 아니에요. 쉰 살이 넘어 TC일을 하기란 쉽지 않잖아요."

그는 여행사 TC일도 장차 연기나 방송 일을 해나가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여행이나 교양 프로그램에서도 역할이 주어질 수 있다는 판단 때문.

탤런트 이원희는 1996년 KBS 공채 탤런트 18기로 방송 연기 생활을 시작했다. 당시 수백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시험에 합격한 30명 중 연기로만 생활하는 동기는 10명 남짓. 나머지는 다른 직장을 찾거나 (여자인 경우) 결혼해 가정에 안착했다.

"연기자들은 나미 40 즈음이 기로인 것 같아요. 이때쯤부터 부업도 많이 하고 틀을 잡아 보는 시기이죠." 71년생인 그는 10여 년의 전문 연기인 경력을 쌓았다. 지금의 변신은 경제적 이유라기보다는 하고 싶은 것을 추구한 것이기 때문에 만족스럽기만 하다. "집 사람한테는 조금 미안하죠."

그래도 지금 여행 인솔자 이원희의 몸 속에는 여전히 연기인의 피가 흐르고 있다. "지금 당장이라도 좋은 배역이 들어 오면 연기를 해야죠. 여행사 TC일은 출장을 안 가거나 스케줄을 조정할 수 있거든요. 제 본업은 탤런트, 연기자입니다."

한편으로 그가 TC일을 택한 이유는 '여행의 자유, 생활의 자유' 말고도 연기를 병행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두 가지 일이 잘 어우러지고 간섭이나 상충하기 않기 때문에 탁월한 선택이라고 믿는다. "짬짬이 어학이나 교양, 세계사 등 책도 많이 보고 있습니다. 언젠가 도움이 되겠죠."

그는 여행을 무척 좋아한다. "출장으로 여행을 가든, 촬영을 나가든 어떤 형태로든 나가 본다는 것이 무척 좋습니다. 낯선 곳을 찾아가 새로운 것들을 보고, 새로운 음식도 맛보고 하다 보면 전혀 피곤하지 않아요."

다른 문화, 이질적인 것을 보는 즐거움은 본질적으로 모든 사람들이 추구하는 것이라고 그는 확신한다. 그래서 영화나 공연을 보는 것처럼 여행도 그의 삶에 활력을 불어 넣어준다.

"탤런트로 크게 성공한 것 보다야 수입은 못하겠죠. 하지만 일반 직장인 급여 수준보다는 많을 것 같아요." 요즘 여행사 TC 일자리는 구하기가 무척 힘들다.

지난해 경제 위기로 여행 경기도 안 좋았고 TC 대기 인력이 수요를 웃도는 상황. 또 TC 인력 상당수가 여행사나 항공사, 관광통역사 출신이 많은데 비해 그의 경력은 특히 눈길을 끈다.

보통 그의 해외 출장 기간은 한 달에 절반 남짓. 이 기간 동안 고객들의 편의를 봐주고 여행을 즐겁게 이끄는 일에 그는 흠뻑 빠져 있다. 크게 두드러진 건 없지만 TC 한 명의 역할 하나만으로도 전체 인원과 여행의 분위기 자체가 좌지우지되기 때문.

"그래도 더 출장을 나가고 여행을 다니고 싶어요. 아직 못 가본 나라들도 꼭 가 보고 싶습니다. 언제든 영화나 여행 관련한 프로그램이 있으면 좋은 작품도 만들어 보고 싶고요." 전직 탤런트 출신 TC, 아니 이제는 탤런트 겸 TC 이원희는 여행길에 나설 때면 항상 설렌다고 한다.



글 사진 박원식기자 park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