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여울 문학평론가인터넷 연재 묶은 영화와 철학 그리고 삶의 퀄트

<시네필 다이어리>는 미끼다.

'파워 블로거'의 감각적인 영화 단상 모음집, 같은 책 제목의 인상은 '저자의 말'을 읽으면서 혼란스러워지기 시작한다. 책을 덮을 때는 '속았다' 싶다.

문장의 수려함은 우직한 공부에서 나오고, 영화는 철학을 삶의 형태로 구체화하는 빌미다. 저자는 '파워 블로거'라는 인터넷 세계의 신종 명예직과는 상관 없는, 심지어 아직 '세부 전공'이 없다는 이유로(!) 블로그 운영을 두려워하는 문학평론가 정여울이다.

전통적인 의미에서라면 이 책도 '세부 전공'이 없다. 영화를 영화로만 보는 것도 아니고, 철학적 개념을 독파하려 들지도 않는다. 저자의 체험이 고전의 인용구와 섞이고, 장마다 규칙이 다르다.

그러나 그 자체가 전공이다. 다양한 대중문화의 영역을 가로지르는 것이야말로 정여울 평론가가 꾸준히 해온 일이다. 이 책 제목도 '시네+필+다이어리'라고 읽어야 적절하다.

영화와 철학, 그리고 삶의 '퀼트'다. 각각의 재료들이 서로에게서 고리를 찾아 얽히는 것이 묘미인데, 읽다 보면 이들간 '인터뷰집'처럼 느껴진다.

신화적 상징으로서의 소녀들을 주인공으로 한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애니메이션 영화에 신화학자 조지프 캠벨을 초대한다든지,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의 계급 구별짓기 논의를 19c 말 미국사회 상류층 사교계를 배경으로 한 치정극 <순수의 시대>에 적용하는 식이다.

흥미로운 것은 저자가 개입하는 방식이다. 객관을 담담히 서술하고 영화 줄거리를 고스란히 따라가는가 싶더니 어떤 지점에서는 톤의 변화를 무릅쓰고 쑥 들어가, 끝까지 간다. 그렇게 독자가 머물 수 있는 웅덩이를 곳곳에 파 놓았다.

예를 들면 현대인이 사진이라는 미디어를 통해 타인의 고통을 '소비'하고 있음을 비판한 수잔 손택의 글을 인용한 후 "그녀의 사진론은 '미디어'를 통해 매개되는 현실 속에서 과연 '진짜 고통'과 마주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생각하게 한다.

그래, 영화도 미디어일 뿐이다. 영화는 두 시간 만에 끝나버린다. 그런데 영화의 러닝타임은 두 시간 안팎이지만, 영화가 전하는 메시지는 영화가 끝나고 나서야 비로소 상영되기 시작한다.

오랫동안 우리의 기억 속에 남아 끊임없이 새로운 물음표를 던지는 영화들. 그런 의미에서 영화는 평생 '1인분의 삶'밖에 살 수 없는 인간이 '타인의 삶' 속으로 스며들어 가는, 아주 제한적이지만 소중한 메시지의 통로가 아닐까"라고 다시 묻는다.

영화 <쇼생크 탈출> 이야기를 하다 말고 오늘날 한국사회의 신종 감옥에 대해 운을 떼기도 한다. "원룸에서는 숨바꼭질을 할 수 없다.

'원룸'이라는 현대적 공간의 치명적인 단점은, '숨을 곳'이 없다는 것이다. 사방이 꽉 막힌 공간에 침대와 책상(휴식과 노동)을 한곳에 몰아넣고, 밥을 먹을 때도, 일을 할 때도, 잠을 잘 때도 한곳에서밖에 있을 수 없다는 것.

이 밀폐된 동심원적 공간에서는 방안의 어느 지점에 앉아도 침대와 책상이 동시에 보일 수밖에 없으므로, 어쩔 수 없이 '다양한 시점'이라는 것이 존재하기 어렵다. 원룸뿐만이 아니다.

하루 종일 '디지털 무언족'으로 살아가며 한동안 오직 인터넷만으로 세상과 소통해본 사람은 알 것이다. 유비쿼터스의 환상이, 우리를 마치 '모든 곳에 존재하는 듯'한 착시를 선물하지만, 감각이 모니터에 고정되어 있는 한 우리는 스스로 만든 무형의 감옥에 갇힐 수밖에 없다는 것을. 감옥은 단지 죄수들만을 위해 고안된 공간이 아니다. 감각의 한계를 고정시키는 한, 경험과 자극으로부터 스스로를 유폐시키는 한, 어디든 쉽게 감옥으로 돌변해 버린다."

왜 이렇게 썼을까. 저자는 공부를 솔선수범하는 중이다. 인문학이 대중화되었다지만, 아직도 인간을 존중하고 사리를 깊게 분별하는 인문학적 삶은 보편적이지 않은 한국사회에 인문학이 얼마나 실용적인지 간증하고 있는 중이다.

"누군가와 친구가 되고, 인생의 나침반을 설정하고, 사랑하는 사람의 흔들리는 마음을 붙들고, 타인을 이해하고 싶을 때" 철학자들의 조언을 이렇게 물고 늘어져 보라고 '사용설명서'를 쓰는 중이다.

이쯤 되면 알 것이다. 아무리 새로 나온 책이 빌미라고 하더라도 정여울 문학평론가와 그것에 대해서만 이야기 나누기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한 인터넷 사이트에 일일연재한 글을 묶었다. 일일연재라니 어렵지 않았나.

아침 운동하듯 썼다.(웃음) 마침 새로운 일을 시작하고 싶었다. 강의도 쉬고 글만 쓰면서 살아 보려던 참이어서 스스로 평생 교육 커리큘럼을 정하듯 스케쥴을 짜서 썼다. 처음엔 매일 정해진 양을 채우는 것이 어려울 것 같았는데, 틀이 있으니 어쨌든 쓰게 되더라. 나중엔 공부한 내용을 바로 바로 쓸 수 있는 게 재미있었다.

그래서인지, 문장이 술술 흘러가는 인상이다.

이전보다 메이크업을 덜 했달까. 시간이 없어서 머리도 못 감고 외출하는 격이었다.(웃음) 날 것 그대로의 문장도 많지만 솔직한 것 같다. 처음 떠올린 문장을 꾸미려고 몇 번 고치고 나면 더 이상 같은 문장이 아니지 않나. 심지어 나 자신에 대한 평가기준도 바뀌었다. 이렇게밖에 쓸 수 없는 나도, 내가 맞단 식으로.

삶에 대한 태도 자체가 바뀌었단 뜻으로 들린다.

이 책을 쓰면서 좀 자유로워졌다. 이제는 인문학 공부만 하고 살아도 불안하지 않겠구나 싶다. 세상의 시선을 많이 신경 쓰는 편이었는데, 그런 스트레스도 좀 덜하다. 이런 생각이 책 내용에도 반영되었을 것이다.

공부의 힘인가 보다.

책을 쓰다 보니 이전에 읽었던 책 구절, 함께 세미나를 했던 사람들의 말들 같은 것들이 불려 나오더라. 비로소 내 마음 속에 멘토들이 이렇게나 많이 살고 있었구나, 엑스트라라고 생각했던 사람들, 죽은 줄로만 알았던 사람들이 다 살아 있구나 싶었다. 감사할 사람이 너무 많았다.

원래 미디어 자체에 관심이 있지 않나. 인터넷 글쓰기는 어땠나.

글쓰기 방식보다는 자료를 찾는 방식이 변한 것 같다. 쉽고 빠르게 검색할 수 있지만, 좋아졌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인터넷으로 찾은 정보는 맥락 없이 텍스트만 남은 것처럼 느껴진다.

책을 펼치면 정보의 앞뒤를 볼 수 있고, 찾으려던 것과 상관 없이 우연히 영감을 주는 부분과 마주치는 기쁨도 있지 않나. 그리고 인터넷에서 찾을 수 있는 자료는 거의 원전이 아닌 2차 자료라 밀도가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

뉴 미디어 환경이 지적인 측면에선 도움이 안된다는 뜻인가.

발터 벤야민은 정보와 지식을 구분하면서, 자신이 습득한 것을 토대로 이야기를 만들 수 있어야 그것이 비로소 지식이라고 했다. 그런 의미에선 뉴 미디어 환경이 우리를 게으르게 만드는 것 같다.

인문학 서적의 대중화 현상에 대해서도 할 말이 있을 것 같다.

인문학을 쉽고 재미있게 알려준다는 핑계로 나오는 요약본들은 경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조지프 캠벨은 지식을 쌓기 위해서는 몇 년이 걸리든 한 대가의 전집을 읽으라고 권했다. 그래야 문리가 트이고 다른 사람을 만날 준비가 된다는 것이다.

그럼 이번에 나온 <시네필 다이어리>는 어떻게 봐야 하나.

이 책은 이를테면 철학의 티저 광고다. 8명의 철학자를 담았지만, 그들의 모든 논의와 개념을 다루지는 않았다. 각각의 철학자에게서 하나씩 봤다. 하나씩만 보여주되 언젠가 그들을 다 읽고야 말겠다는 의지를 불러 일으켰으면 했다.

대중적으로 제법 읽히는 인문학 책 저자 중 신뢰하는 사람이 있나.

유시민 씨다. 대부분의 인문학자들이 자신이 읽은 것을 바탕으로 쓰는데, 그는 살아온 것을 쓴다. 많은 인문학자들은 아는 만큼 실천하고 있지 못하단 자괴감에 시달리는데, 그는 삶과 학문이 일치하니 얄밉기도 하고(웃음) 감동적이다. 삶의 화두를 살면서 쓰는 게 진정한 공부가 아닐까 생각한다.



박우진 기자 panorama@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