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비 한 작가'앉아 있는 세 명의 여신들'로 소버린 예술재단의 아시아 작가상 수상

사진제공=미술세계
뱃살이 두텁게 접힌 세 명의 중년 여인들이 바닥에 앉아 이야기꽃을 피운다. 암흑의 공간이지만 한국인이라면 한 눈에 봐도 찜질방의 한 장면처럼 보인다. 하지만 사진 속엔 반전이 숨어 있다. 그녀들의 알몸은 석고상처럼 매끄럽고 머리엔 비너스 두상이 하나씩 얹혀져 있다. 서구의 궁극적 아름다움과 우아함의 상징인 비너스 얼굴과 한국의 보통 중년 여성 몸매의 조화라니, 기묘하다.

'앉아 있는 세 명의 여신들(seated three graces)'이란 제목의 이 작품은 좌식문화가 낯선 외국인들에게 동서양의 육체적 결합뿐 아니라 '앉아있는' 여신이라는 점이 흥미로웠을 법하다. 최근, 데비 한(41) 작가에게 소버린 예술재단이 수여하는 아시아 작가상 수상의 영광을 안겨준 결정적인 작품이다.

작가는 이 작품에만 꼬박 2년을 쏟아 부었다. 2006년에 이미 했던 작업이 만족스럽지 않아 모든 것을 새로 시작한 참이었다. 30대 후반부터 50대의 일반인 여성 세 명을 섭외하는 데에, 스페인 미술관에서 비너스 두상을 핸드캐리하는 데에, 각자 사진으로 촬영해서 컴퓨터로 옮기기까지도 쉽지 않은 작업이다. 하지만 99%의 작업이 컴퓨터로 이루어지는 '여신 시리즈'는 그때부터가 시작이다. 작은 털 한 가닥, 모공 하나까지도 마우스 커서가 닿지 않는 곳이 없다.

그렇게 만들어진 모습은 사람도 조각도 아닌, 동양인도 서양인도 아닌, 현대인도 고대인도 아니다. 데비 한 작가가 지난 5년간 계속해 온 '여신들 시리즈'가 보여주는 모습은 이처럼 이율배반적이다. 동양과 서양의 문화와 신체가 충돌을 일으키고 여신이 가지는 고귀함과 인간인 여성의 성적 본능 사이에 간극이 있다. 입을 가리고 웃거나, 공손히 인사를 하거나, 자위를 하는 모습은 그녀들이 서구와 여신의 얼굴을 가지고 있을 때 조화를 이루기 어렵다.

'여신들 시리즈'는 11살에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다가 7년 전 한국으로 돌아온 그녀의 삶의 행로에서 그 연원을 찾을 수 있다. 한국적인 문화와 전통에서 희망을 발견했지만 현재의 한국은 서구 문화에 경도되어 있었다. 지나치게 큰 눈, 오똑한 코, 작은 얼굴 등 흡사 백인 여성처럼 보이는 연예인들은 한국 여성의 미의 기준이었다. 성형을 '고친다'고 표현하는 방식('고치다'의 뜻은 잘못되거나 틀린 것을 바로잡는 행위를 말한다) 역시 의식 속 '미'의 기준이 서구를 향해있음을 드러낸다고 작가는 지적했다.

데비 한의 'Seated Three Grace'
"과연 '미'란 무엇인가, 질문을 던지고 싶었어요. 아시아적 미에 집착하거나 강요할 것이 아니라 초대하고 싶었습니다. 사람들이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해석할까 궁금했습니다.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의 현재를 서구에 보여주고 싶었고요. 지금의 시대는 명백히 혼성의 시대인데, 어떤 것을 융화해서 새로운 하이브리드 문화를 만들어 갈 것인가가 한국이 가진 숙제 같습니다."

그녀가 '미'에 천착하는 이유도, 이것을 여성만의 이슈가 아닌 사회 문화적인 현상으로 바라봤기 때문이다. '고친다'라는 단어에도 '미'를 바라보는 관점이 담겨있듯이 말이다. 데비 한 작가는 언뜻 사소해 보이고 쉽게 지나칠 법한 현상과 언어를 포착해내고, 기저의 진실에 이르기 위해 메타포를 사용해 왔다. 일종의 '미끼'인 셈이다.

'미를 해체하는' 여신 시리즈 외에도 미국의 정크 푸드를 해체하기 위해 사용한 재료는 뉴욕에서 주운 개똥이었다. '달콤한 세상' 시리즈에서 개똥을 치장해 달콤하고 향긋해 보이는 초콜렛으로 탈바꿈시켰다. 일본의 식민 잔재가 고스란히 남은 한국 미술교육을 비판하기 위한 재료는 지우개 가루. 말 그대로 찌꺼기를 붙여 만든 석고데생은 '이상적 기이함'시리즈를 완성해냈다.

그리고 국제 프로젝트로 진행 중인 '식(食)과 색(色)' 시리즈는 자본주의 시대 소비를 부추기는 광고에 대한 일격이다. 일반인 여성을 모델처럼 꾸며 광고사진을 촬영하는데, 모델을 치장한 것은 각 나라를 대표하는 식재료다. 데비 한 작가의 작품 속에는 이처럼 늘 반전이 있다. 그녀의 작품이 흥미로운 이유다. 하지만 여기엔 거짓 없는 노동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

그녀가 직조해낸 사유를 실체화하기 위해 사용하는 매체는 다양하다. 페인팅, 조각, 설치, 도예, 사진까지. 미국 UCLA에서 개념미술 위주의 교육을 받았지만 몸으로 부딪히며 새로운 매체를 익혀왔다. "상품이 아닌 예술에서는 작가의 에너지와 기가 전달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그녀는 철학적 사유를 즐기지만 동시에 직접 몸을 사용하며 또다시 새로운 사유를 길어내는 작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상적 기이함' 시리즈를 위해 지우개 가루를 만드는 데는 한 달이 걸렸고 지우개 가루를 핀셋으로 하나씩 집어서 석고 데생을 하듯 붙여가는 동안 어깨도 크게 상했다. 2004년에 했던 청자 시리즈와 현재 진행 중인 백자 시리즈도 마찬가지다. 한국을 대표하는 소재로 '미'에 대한 사유를 담아내는 작가는 사람들의 비웃음을 뒤로 하고 6년을 가마 앞에서 보냈다. 석고 틀을 만들고 흙물을 붓고 가마에서 굽기까지 수없이 많은 '미의 여신'들이 뭉그러졌다.

청자 비너스 두상에서는 은근하고 영롱한 푸른 빛과 미묘한 균열을 얻기까지, 매끄럽게 빛나는 백자 비너스 두상에선 푸르스름한 흰색을 얻기까지 자신과 수없이 싸워야 했다. 백자 비너스 두상은 마지막 한 가마를 구우면 총 10개가 된다. 지금껏 120개를 구워 겨우 10작품을 남겼다. 작품을 본 큐레이터는 백자의 밀도감에 가슴이 떨릴 정도라는 찬사를 보내기도 했다.

"미친 짓이라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처음엔 한국을 대표하는 청자가 좋아서, 그 다음엔 백자가 좋아서 시작한 일인데 너무 무모했지요. 흙과 물과 불과 시간이 결합되고 결과도 예측할 수 없는. 가마를 열고 두상이 다 무너져 있을 때는 눈물이 나더군요. 피 말리는 작업이었어요. 하지만 그동안 배운 게 굉장히 많습니다. 6년간의 흙 작업을 통해 이것을 배우려고 한국에 오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요."

단순한 작품 속에 온갖 철학과 사상을 덧붙여 놓은 포스트모더니즘에서의 개념미술은 데비 한이라는 작가와 교집합일 수 있어도 결코 합집합일 수는 없는 이유다. 중국의 큐레이터가 그녀에게 '신 개념 미술가'라는 타이틀을 붙여준 것도 이런 맥락이다. 작품에 개념이 깔려있지만 "얼마나 신선하고 강렬한 시각적 미술로 보여줄 수 있을까"는 그녀가 늘 고민하는 화두다. 다작을 하면서도 각 프로젝트가 자가인용 없이 개성이 넘치는 것도 그 고민이 얼마나 치열한지를 방증한다.

"같은 세상을 살지만 서로 다른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고 봐야죠. 그래서 생각이 중요합니다. 사회의 시스템은 늘 뭔가를 주입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항상 생각해야 하죠. 제가 늘 프리씽킹하는 이유지요." 그녀의 사유로 직조해낸 세계에 대한 러브콜은 올해만 이스라엘, 독일, 홍콩 등으로 이어지고 있다.


소버린 예술재단(The Sovereign Art Foundation)

영국과 홍콩에 기반을 둔 소버린 예술재단은 2003년부터 매년 각 본부에서 유럽 작가상과 아시아 작가상을 시상하고 있다. 세계적 미술계 인사로 구성된 심사위원들의 만장일치로 선정된 데비 한을 제외한 29명의 작가들은 홍콩에서 열린 전시 후 소더비의 경매를 통해 작품을 판매했다. 소버린 예술재단은 독특하게도 판매 수익금의 절반은 작가에게, 나머지 절반은 자선사업을 위해 자동 기부하는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이인선 기자 kell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