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트르 보디취카 체코 민족인형극단 대표한국·체코 수교 20주년 맞아 <돈 지오바니> 내한 공연

'체코' 하면 떠오르는 것은 무얼까. 우선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과 영화 <프라하의 봄>이 금방 연상된다.

체코는 또 카프카와 릴케, 드보르작의 나라이기도 하다. 니체가 말년을 보낼 정도로 아름다운 건축물로도 유명하다.

특히 젊은 세대에게 체코는 독일과 함께 최고의 맥주 강국이자 동유럽의 축구 강호다. 하나 또 있다. 드라마 <프라하의 연인> 이후로 더욱 유명해진 문화상품 '마리오네트 인형극'이 그것이다.

최근 국내에서도 몇 차례 공연됐던 마리오네트 인형극은 프랑스, 독일, 오스트리아 등 유럽에서 쉽게 접할 수 있지만, 체코의 인형극은 약 30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을 정도로 최고의 전통을 자랑한다. 체코 관광을 위한 여행사 정보 서비스를 검색하면 공통적인 추천 상품이 바로 마리오네트 인형극일 정도.

그중에서도 체코를 대표한다고 할 수 있는 작품이 바로 이번에 한국을 찾은 <돈 지오바니>다. <돈 지오바니>는 한국과 체코의 수교 20주년을 맞아 내한한 체코의 대표적인 문화 상품. 모차르트의 동명 오페라를 원작으로 한 이 작품은 전설적인 바람둥이 귀족 돈 후안의 이야기를 마리오네트 인형극으로 각색해 보여준다.

한 나라를 대표하는 작품답게 이번에 한국에서 공연할 극단도 국가대표급이다. 페트르 보디취카(Petr Vodička) 대표와 함께 한국을 찾은 체코 민족인형극단이 그 주인공. 야로슬라브 올샤(Jaroslav Olša, jr.) 주한 체코대사는 체코를 대표하는 최고의 마리오네트 인형극단을 물색해 이들을 초청했다.

체코 민족인형극단은 <돈 지오바니>와 여러모로 인연이 깊다. 현재 전 세계인들에게 알려져 있는 인형극 <돈 지오바니>의 인기는 바로 체코 민족인형극단의 초연과 함께 시작됐다. 1787년 오페라 원작이 프라하에서 초연될 때 모차르트가 직접 오케스트라를 지휘했고, 훗날 체코 민족인형극단 연출진은 이 장면을 인형극 버전에 그대로 담았다.

하지만 보디취카 대표는 당시 이런 인형극과 오페라의 만남은 처음부터 성공을 예상하고 했던 것은 아니었다고 말한다. "감독을 맡은 카를 브로?도 기획자들에게 이 공연의 프로젝트를 제안받았을 때 이걸 하는 건 자살행위나 다름없다고 생각할 정도였습니다." 제작진조차 처음엔 3주 정도의 공연만 예상했던 인형극 <돈 지오바니>는 프라하에서 그렇게 1991년 초연한 후 지금까지 3500회의 공연을 거듭하며 세계적인 작품으로 성장했다.

65만 명 이상의 관객들을 극장으로 이끈 인형극 <돈 지오바니>의 매력은 체코식 인형술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보디취카 대표는 이번 공연의 특징도 이 같은 체코 인형극만의 독특함에 있다고 설명한다. "인형을 움직이는 인형술사들의 손이 객석에서 그대로 보이도록 무대를 설계했고, 객석에선 이들의 손을 통해 움직이는 체코식 인형 조종술을 볼 수 있습니다."

체코식 마리오네트 조종술이 궁금해질 때쯤 극단 단원들이 직접 인형을 들고 조종술을 보여준다. 약 1미터의 크기에 5kg 정도 무게를 지닌 마리오네트 인형은 딱 인형과 어린 아이의 중간적인 존재 같다. 한 인형술사가 건네준 인형을 들어보니 약간 묵직한 정도. 그는 "무겁지 않죠?(Not heavy, isn't it?)" 하고 씨익 웃는다.

이들이 보여주는 조종술은 의외로 투박하다. 가까이서 본 인형의 모습도 인간에 완전히 가깝다기보다는 인물의 특징만을 부각시킨 형태다. 하지만 그래서 더 인형답다. 보디취카 대표는 바로 그 점이 체코 마리오네트 인형극의 특징이라고 말한다. "오스트리아나 독일 인형극은 굉장히 섬세하고 정교한 조종술을 자랑합니다.

모양도 사람 모습에 최대한 가깝게 만들어져 있어요. 하지만 보다시피 체코의 마리오네트 인형은 상당히 거칠고 뻣뻣하게 움직입니다. 하지만 바로 그게 체코 인형극만의 특징입니다. 돌발적이고 희한하게 움직이면서 사람과는 다른 동작을 만들어냅니다. 그래서 더 상상력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거죠."

이처럼 체코 마리오네트 인형술이 유명해지자 프라하에는 1999년 이후 전 세계에서 몰려든 학생들에게 체코 전통방식의 목각 마리오네트 제작을 가르치는 교육 코스가 개설됐다. 특히 마리오네트 인형극을 배우기 위해 체코를 찾는 사람들은 유럽을 넘어 아시아와 기타 지역까지 폭넓게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보디취카 대표는 현재 민족인형극단에도 5년 정도 된 젊은 인형술사와 50년이나 된 베테랑이 함께 공연을 한다고 설명한다. 그만큼 신구 세대의 기술 공유나 전수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뜻이다.

그가 설명하는 '체코 맛' 인형극의 특징은 또 있다. 인형들의 모습에서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 '유머 감각'이다. 가령 주인공 인형이 목욕을 하다가 의도적으로 객석에 물을 뿌리면 앞 좌석에 앉아 있던 관객은 난데없이 맞은 물방울에 웃음을 터트린다. 또 인형이 던진 악보가 객석까지 날아오면 관객은 그걸 주우면서 자연스럽게 극에 참여하게 된다. 보다취카 대표는 "체코만의 유머 감각이라고 꼬집어 말할 것은 없지만, 과묵하거나 진지하지 않은, 가볍고 유쾌한 연기가 보편적인 웃음의 정서를 만드는 것 같습니다"라고 설명한다.

그래서 극의 시작과 동시에 등장하는 모차르트의 마리오네트 인형은 오페라보다는 영화 <아마데우스>를 연상시킨다. 아이들과 성인들이 함께 즐길 수 있는 인형극의 대중성이 바로 이런 부분에서 비롯된다. 3시간짜리 오페라를 2시간으로 축약하고 흐름상 중요한 장면들로만 재구성하면서 오페라처럼 어렵거나 지루하지 않게 만든 점은 인형극만의 장점이다.

"체코에서조차도 인형은 원래 어린이들의 장난감이라는 인식이 강했어요. 하지만 민족성이나 자신들만의 정서를 표현하는 수단으로 인형극이 활용되면서 성인들까지 즐길 수 있는 문화가 된 거죠."

단순한 인형극이 아닌, 체코의 역사와 문화가 살아 있는 마리오네트 인형극에는, 그래서 18세기 동유럽의 냄새가 물씬 풍긴다. 보디취카 대표는 "아직 밝힐 수는 없지만 프라하의 역사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작품도 준비 중"이라고 살짝 귀띔한다. "이번처럼 한국에서 공연할 수 있는 기회가 또 주어진다면 그 작품을 선보여서 다시 한 번 체코를 제대로 알리고 싶습니다."



송준호기자 trista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