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덕여대 큐레이터학과 심상용 교수<시장미술의 탄생> 과정 해부… 미술 모티프 동시대 문명 비평

미국발 금융위기에 따른 미술시장의 급변은 오늘날 미술시장이 얼마나 불안정한지를 증명했다.

수년간의 활황은 한순간 물거품이 되었다. 데미안 허스트, 무라카미 다카시 등 스타 작가의 작품이 반값에 거래될 만큼 작품 가격이 폭락했다.

이를 경제 위축의 일시적이고 부수적인 현상으로 이해하는 것은 명쾌할망정, 미술시장의 앞날을 의논하는 데 큰 도움은 안된다.

미술시장이 주식시장처럼 투자 혹은 투기 영역이라는 사실은 지난 활황이 미술시장의 '제 자리'도, 치솟은 작품 가격이 '제 값'도 아니었음을 뜻한다.

끊임없이 불거지는 기업 비자금과 미술 작품 간 관계도 이를 뒷받침한다. '실질수요'를 파악할 수 없게 되었다는 의미에서 미술시장은 주류경제학이 상상하는 '시장'이 아닌지도 모른다.

금융자본의 힘 앞에서 순진한 수요공급법칙은 무색해진 지 오래다. 이는 동시대 시장 보편의 위기이기도 하지만, 미술을 둘러싼 결과는 좀더 치명적이다. 미술의 고유한 가치가 이윤 추구만을 목표한 가격 결정 메커니즘에 휘둘리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시장에서 만들어낼 수 없는 가치들이 분명히 있습니다. 자유와 사랑, 정의, 신뢰, 인간에 대한 이해와 포용 등 삶을 풍요롭게 하는 이 수많은 예술적 가치들을 화폐 가치로 재단하는 것은 인류에게 손해죠."

동덕여대 큐레이터학과 심상용 교수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시장미술의 탄생> 과정을 해부한다. 시장미술은 "과도하게 시장화된 현대미술의 새로운 학명"이자 "모든 가치가 화폐가치로 환원될 수 있다는 믿음에 기초한 미술시장의 수확이자 상속자, 혹은 영혼"이다. 즉, 미술시장의 가격 결정 메커니즘 자체다.

시장미술의 산파는 대규모 자본이 투입된 제도들, 글로벌 아트페어, 경매회사, 블록버스터 전시회, 언론 등이다. 이들은 서로 꼬리에 꼬리를 물며 폐쇄적 권위를 형성한다. 이 회로 속에서 미술 작품의 가격은 만들어지고 부풀려지며, 가치를 대체한다.

예를 들면 글로벌 아트페어에서 소개된 작품은 그 사실만으로도 미술적 가치를 인정받은 것처럼 보도된다. 아트페어는 판매의 목적을 숨긴 '문화적' 외양을 근거로 제시한다. 작품을 미술관 방식으로 전시하고, 컬렉터나 소비자뿐 아니라 비평가와 학자를 초청하며, 학술 행사를 마련한다. 그리고 권위를 유지하기 위해 자본을 투자한다. 이 과정에서 추어올려진 스타 작가는 투자비용을 이윤으로 바꾸는 기회가 된다. 그 사이 정작 '미술'은 점점 잊혀진다.

시장 내부의 문제만이 아니다. 시장을 바탕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친다. 예를 들면 "예술가의 삶은 시장이 가치 판단의 고유 권한마저 행사하는 상황에서 더욱 위험하고 불안정해진다. 소외와 고독감은 견디기 어려울 정도로 심화되었다."

미술이 자유와 사랑, 정의, 신뢰, 인간에 대한 이해와 포용 같은 비시장적 가치들을 담보하지 못하는 사회는 자본의 논리에 따라 "극심한 경쟁이 난무하는 격전지"로 치닫기 쉽다.

"시장을 반대한다기보다 시장을 건강하고 견고하게 만들자는 취지입니다. 상호교환 제도로서 사람들 간 갈등을 줄이고 공존을 가능하게 한 시장의 의의를 되찾고, 초국적 금융 자본에 의해 들썩거리지 않는 안정된 시장을 만드는 게 중요합니다."

이런 시장이 필요한 것이 미술만이 아니라는 점에서 <시장미술의 탄생>은 미술을 모티프로 한 동시대 문명에 대한 비평이기도 하다.

- 미술에 대해 경제, 사회 비평적으로 접근했다. 어떻게 쓰게 됐나.

이런 책이 너무 없어서 썼다.(웃음) 미국발 금융위기 때 미술 작품 가격이 시장의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을 보고 빨리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국내 미술 비평은 작품 내부에 머무는 경우가 많은데, 물감뿐 아니라 시장 조건, 사회적 환경도 작품의 재료다. 그것을 모르면 작품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더구나 오늘날처럼 미술을 둘러싼 제도들이 연동되어 작동하는 상황에서는 전체 메커니즘을 볼 필요가 있다.

- 왜 국내 상황에 초점을 맞추지 않았나. 그랬다면 더 구체적일 수도 있었을 텐데.

미술만큼 국경이 무너지는 상황을 잘 대변하는 것도 없다. 예를 들면 데미안 허스트, 제프 쿤스 등 스타 작가는 국내 미술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불가항력적 준거로 작동하는 것이다. 세계 미술의 흐름을 보면 국내 상황은 덩달아 알게 된다.

- 나무 대신 숲을 봐야 한단 뜻인가.

문명의 문제는 역사 속에서 반복된다. 지금 불거진 시장과 미술 간 관계의 문제도 반복되어 왔고, 반복될 것이다. 그 전체를 설명하는 게 중요한 것 같다. 특히 한국처럼 변화 속도가 빠른 사회일수록 현상 하나하나에 급급하지 않는 통찰력이 필요하다.

- 그게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나.

예를 들어, 시장이 왜 생겼는지를 모르고 시장 문제에 접근할 때는 무조건 반대만 하기 쉽다. 이는 현실적 해결책으로 이어지기 어렵다. 하지만 시장의 연원을 알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막스 베버가 지적했듯, 시장은 사람들 간 갈등을 교환으로 치환하는 계약관계 제도다. 효용이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으론 충분하지 않다. 사람은 계약관계만 맺고 살 수는 없다. 시장을 삶의 바탕의 한 제도로 받아들이되, 그 바깥에서 다른 관계들을 맺을 수 있는 가능성이 필요하다.

- 경제 등 미술 바깥 영역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 어렵지 않았나.

미술시장은 독립적이지 않다. 자본의 쓰나미가 한번 지나가면 고유의 구조가 많이 허물어진다. 오늘날 모든 사회 현상이 연동되어 나타나기 때문에 영역을 구분해서는 어떤 현상도 이해할 수 없고, 해결할 수 없다. 미술에 대한 가치 평가도 내부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대형서점의 미술서가에만 머물렀다가는 장님이 되기 십상이다. 줌인, 줌아웃을 잘 해야 한다.

- 경제학 책 중 도움이 된 책이 있나.

브랜드 새뮤얼의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다. 시장 안에서 물건을 만들고 사는 사람들이 자본주의의 주인공이라는 내용이다. 경제 체제에 대한 판단 기준은 그것이 궁극적으로 사람을 존중하는 문화를 만들어내는가, 가 되어야 한다는 점에 동의한다.

- 학생들에게는 어떤 충고를 해주나. 미술인으로서 살아갈 앞날에 대해 걱정이 많을 텐데.

미술인들이 사회에서 자기 지분을 확보하는 게 쉬웠던 시대는 없는 것 같다. 하지만 요즘 학생들은 생존에 대한 공포가 우리 세대보다 더 큰 것 같다. 미술인이 큰 돈을 벌지는 못해도 임금이 높은 어떤 직업보다 더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는 자부심이 필요하다. 나는 예술인들이 일종의 늪지 같다. 늪지는 쓸모 없는 땅처럼 보이지만 사실 생태계를 보존하는 마지노선이 아닌가. 고단하고 환영받지 못할지언정 인류의 문제를 누구보다 집중적으로 끌어안고 사는 사람이 예술인이다. 자신을 알려고 노력하는 예술인이 없다면 존재를 확장하려고 혈안이 된 현대사회는 스스로 누구인지 모르게 될 것이다. 이런 자부심과 긴 안목을 가지고 시대의 부침으로부터는 조금 거리를 두면서 삶의 기술을 터득해 갔으면 한다.

- 미술시장을 건강하게 만들려면 누가 어떻게 노력해야 할까.

모든 시장참여자들이 조금씩이나마 사람과 미술의 존엄성을 고민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어주기만 해도 좋아질 것 같다. 혁명을 꿈꾸는 것은 아니고, 개인적 개혁을 바란달까. 미술시장의 지향성을 공통분모로 공유하는 문화가 있어야 건강해질 수 있다.



박우진 기자 panorama@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