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출가 안토니오 데 루치아 & 소프라노 파올라 로마노이탈리아 오페라 연출의 마법사와 '라 스칼라 극장' 주역 가수 내한

선교사 남편을 따라 일본에 갔던 누이의 경험은 존 롱의 소설 '나비부인'으로 쓰여졌다.

소설은 벨라스코의 희곡으로 옮겨져 뉴욕과 런던에서 공연됐는데, 런던에서의 공연이 푸치니와 '나비부인'의 역사적인 만남을 주선했다. 그러나 오페라 <나비부인>이 처음부터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1904년 초연된 오페라는 단 하루 만에 막을 내리는 굴욕을 겪었다. 이후 지휘자 토스카니니의 조언을 받아들여 수정된 작품은 재연에서 대성공을 거뒀고 한 세기 이상 푸치니의 3대 걸작으로 군림하고 있다.

서구의 작가와 작곡가의 글과 음악으로 빚어진 이 작품은 비단 서구가 바라본 동양의 이상적인 이미지만을 재현하지 않는다. 미국의 해군장교 핑커톤과 15살의 게이샤 초초상과의 엇갈린 사랑과 운명, 그 안에서 드러나는 모성애는 비단 그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오페라 <나비부인>(3월 25일~28일, 예술의전당)을 위해 한국으로 온 이탈리아 연출가 안토니오 데 루치아와 소프라노 파올라 로마노(나비부인 역) 역시 보편적인 인간의 감정과 내면에 주목했다.

지난 16일 찾아간 연습실에서 그들은 3막을 연습 중이었다. 미국으로 떠난 핑커톤이 재혼한 미국인 아내와 함께 3년 만에 일본으로 돌아오는 장면이다. 나비부인의 자결로 극중 긴장감이 극대화되는 이 장면을 파올라는 피아노 반주에 맞춰 몇 번이고 되풀이했다. 연출가 안토니오는 가수들 사이로 비집고 들어가 마치 배우처럼 몰입했다. 연습과 연습 사이, 쉬는 시간마다 이어진 인터뷰는 두 차례에 나뉘어 진행됐다.

오페라 <나비부인>이 개인적으로는 어떤 작품인가요.

안토니오(연출가): 지금까지 <나비부인>을 20번 정도 연출했어요. 이 작품은 단순히 일본 이야기가 아닙니다. 신화나 전설도 아니고 전 세계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모습이지요. 사람들 간의 관계, 그 감정에 접근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파올라(소프라노): 세 자녀의 어머니로서, 나비부인에 동화되는 면이 많아요. 3막에서 자살을 결심하는데, 그것은 핑커톤을 향한 그리움이 아니라 아이에 대한 마음 때문이었죠. 아이를 데려간다는 핑커톤의 편지를 받았으니까요. 결국 일본이나 동양이 아니라 사람이라면 공감할 수 있는 작품이라는 거죠.

두 분은 지난해 <투란도트> 내한공연에서 호흡을 맞춘 적이 있는데요.

안토니오: 네. 파올라와 함께 일하면서 즐거운 점 중 하나는 끊임없이 단련하는 가수라는 점입니다. 연출가로서 하나의 액션을 취하면 거기에 만족하지 않고 자기 나름대로 발전시켜서 표현하지요.

파올라: 안토니오는 일방적인 연출가가 아닙니다. 이런 표현을 왜 해야 하는지 충분히 설명을 해줘 마땅히 이 장면에서 이런 감정을 표출해야만 하는, 이유 있는 장면을 만들 수 있게 해주죠.

안토니오 씨는 스펙터클한 오페라 연출과 무대로 '오페라의 마법사'라로 알려졌습니다. 이번 무대는 어떨지 궁금한데..

안토니오: 무대 디자이너인 알렉산드로는 디자이너 이전에 그림을 그리는 화가입니다. 무대는 그가 그린 일본식 그림으로 가득 찰 거예요. 3막 내내 나비부인의 집에서 배경은 바뀌지 않지요. 집이란 공간에 하녀인 스즈키와 나비부인 둘만이 세상과 단절된 느낌으로 그려질 겁니다. 기존의 일본화나 동양화와는 사뭇 다른 인상적인 그림이 될 겁니다.

조명 디자이너인 쟌니 넷티는 이탈리아의 3대 극장이라 불리는 산 카를로 극장에서 5대째 조명 디자인을 하고 있어요. 개인적으로 신뢰하는 사람인데, 이번 공연에서 2막과 3막 사이에 조명으로, '빛의 게임'이라고 할까요? 극중 감정을 극대화하는 중요한 역할을 할 겁니다.

파올라 씨는 소프라노 김영미와 나비부인으로 더블 캐스팅되었습니다. 두 분은 평소 아는 사이였는지도 궁금하네요.

파올라: 함께 무대에 서는 건 이번이 처음이지만 김영미라는 이름은 굉장히 많이 들었어요. 유명한 소프라노이고 굉장히 프로페셔널한 분이라고 알고 있죠. 내가 서양인이다 보니 동양인 소프라노가 전해줄 수 있는 감성과는 다를 거라고 생각합니다. 각자 다른 나비부인을 선보이게 될 것 같네요.

안토니오 씨는 이탈리아의 정부 공인 연출가라고 들었습니다. 정부로부터 인정과 동시에 추가적인 역할도 부여받나요?

안토니오: 정부가 일정 수준에 오른 예술가에게 '정부 공인 예술가'라는 호칭을 부여하죠. 전 연출만 하는 게 아니라 기획과 홍보대사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탈리아 정통 오페라의 법적 보호라던가(참고로, 그는 법학과 성악을 전공했다) 작품 왜곡을 방지하는 역할도 하죠. 요즘 오페라가 현대화되면서 결말을 바꾸기도 하죠. 무대는 바뀔 수 있지만 작곡가의 의도를 왜곡해서는 곤란합니다.

이탈리아 오페라 연출의 '마법사'로 불리는 안토니오와 '라 스칼라 극장'의 주역 가수인 파올라는 한국과의 인연도 깊다. 안토니오는 지난 3년간 한국에서 15편의 오페라를 연출했고 2년 반 정도 서울시립대학교에서 후학을 양성하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파올라는 12년 전 <맥베스>에서 맥베스 부인으로 처음 한국과 연을 맺은 뒤 지난해 <투란도트> 내한공연에 이어 세 번째 한국 무대에 섰다.

한국 오페라 제작환경의 질적 향상과 젊은 관객들의 해박한 오페라 지식과 애정에 놀라움을 표하던 그들은 따끔한 조언도 잊지 않았다. 특히, 이번 공연을 위해 이탈리아에서 유학 중인 한국인 조연출을 대동한 안토니오는 "작품 이해를 위해서는 언어 습득이 가장 중요하다"면서 "오페라 제작을 위해 뛰어드는 많은 젊은이가 언어를 통해 작품을 더 깊이 이해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국 음식 중에서도 '참치 김밥'과 '만둣국'을 특히 좋아한다는 안토니오와 파올라는 오페라 <나비부인> 이후 오는 6월 <아이다> 내한공연에서 또 한차례 호흡을 맞출 예정이다.



이인선 기자 kell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