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세계화 활동단체 '예스맨'의 앤디 비크바움세계화의 오작동 바로 잡는 법 시연… 마치 익스트림 스포츠 하는 기분

모두가 예스라고 말할 때 노라고 말하는 사람은 성찰을 이끌어내지만, 모두가 노라고 말할 때 예스를 외치는 사람은 행동을 부추긴다.

잘못된 일에 대한 비판은 반성으로 이어지지만, 이상한 일을 바로잡으려는 시도는 희망을 준다.

'예스맨'이 하는 일은 후자에 가깝다. 시장경제에 대한 절대적 믿음을 거름 삼아 진행된 세계화의 오작동을 조목조목 설명하기보다 차라리, 스스로 공구를 들고 나서 고치는 법을 시연해 보인다.

이런 식이다. 2004년 12월에는 BBC 방송에서 미국의 화학기업 다우케미컬을 대신해 성명을 발표했다. 20년 전 인도 보팔에서 일어난 유니온카바이드의 살충제 공장 가스 유출 사고에 대해 전적으로 책임을 지고 현지 주민에게 보상하겠다는 내용이었다.

2만 명 이상이 사망했고, 수십만 명이 불구가 되었으며 보팔 지역을 불모의 땅으로 만든 이 사고에 대해 유니온카바이드도, 이 기업을 인수한 다우케미컬도 책임을 회피했다. 대신 이미지 개선을 위한 광고에 수백만 달러를 지출했다.

영화 '예스맨 프로젝트'
하지만 "인간보다 더 중요한 원소는 없다"는 추상적인 광고보다 더 확실한 이미지 개선 방법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닐까? 예스맨은 당연한 일을 했을 뿐인데, 시장의 반응은 영 희한했다. 방송 후 다우케미컬의 주식은 폭락해 23분 만에 20억 달러가 사라졌다.

그렇다면 시장은 보팔 사고를 해결하는 게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일까? 고민에 빠진 예스맨은 시장이 환영할 만한 또 하나의 해결책을 고안해 냈다.

초국적 기업이 수익을 내는 데 제3 세계의 인명 피해쯤은 감수해야 하는 것이라면, 인명 피해 대비 수익률을 계산해 리스크 관리 프로그램을 만들면 어떨까? 결과는 예상대로였다. 국제금융전문가 회의에서 다우케미컬을 대표해 예스맨이 발표한 혁신적인 리스크 관리 프로그램 '감수할 만한 위험'은 많은 관심을 끌었다. 청중들은 "참신하다"며 명함을 건넸다.

세계화된 시장경제의 실상은 이런 것이다. 수익이라는 미래를 위해서는 가치 없는 누군가의 삶은 희생되는 게 효율적일 수 있다. 명함이 다 '팔린' 예스맨은 묻는다. "세상은 탐욕과 이기심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사이비 종교에 빠진 것일까?"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휩쓸고 지나간 미국 뉴올리언스주에서도 예스맨은 뭔가를 해야 했다. 마침 이곳은 너도 나도 뭔가 해보겠다는 분위기였다. 예스맨은 가장 앞장 선 쪽에 묻어가기로 했다. 바로 미국 주택도시개발청(HUD)이었다. 아무렴, 이런 자연재해 극복에는 정부가 나서는 게 마땅하다.

하지만 어쩐지 돌아가는 상황이 이상했다. 정부는 이참에 일대를 재개발할 작정이었다. HUD는 허리케인도 이겨내고 꼿꼿이 서 있는 서민임대주택을 철거하고 민간 건설업자에 사업을 맡길 계획을 발표했다. 멀쩡한 집을 폐쇄해 주민들을 내쫓았다. 지역이 재개발되면, 부동산 가격은 올라갈 테고 예전 주민들은 돌아오지 못할 것이다. 예스맨 생각에 그건 정부가 할 일이 아닌 것 같았다.

그래서 정부 대신 정부가 할 일을 했다. 연안도시 재건 회의에 HUD 보좌관으로 참석해 재개발 계획 철회를 발표한 것. 서민임대주택 철거를 중단해 주민들을 돌려 보내고, 이 비극의 원인인 환경 문제에 초점을 맞추어 복구 작업을 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주민들은 물론, 수익을 낼 기회를 잃은 건설업자들도 이 해결책에 수긍했다. 노발대발한 것은 뒤늦게 이 사실을 안 HUD뿐.

모두의 뜻이 만장일치라면 좋으련만, 예스맨의 수리를 받은 당사자들의 심기가 불편한 게 조금 걸리기는 하지만 그들이야말로 '감수할 만한 위험'이 있음을 가르쳐준 주인공들이 아니었나. 예스맨은 이 상황에 대해 그들과 민주주의적 법제도 안에서 논의해볼 의향도 있었지만, 아쉽게도 아직 누구도 예스맨을 고소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쯤 되면 예스맨의 정체를 눈치챘을 것이다. 이들은 양심을 공구 삼아 돈에 눈 먼 세상을 고치는 임무를 수행 중인 활동가들이다. 앤디 비크바움과 마이크 보나노가 '얼굴마담'이고, 물밑에 수백 명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 초기에는 주로 WTO가 주장하는 자유무역과 세계화에 대해 바로 알리는 데 주력했지만, 자체적으로 WTO를 해체해버린 2002년 이후에는 다양한 초국적 기업과 스스로 기업인 줄 착각하는 정부에까지 오지랖을 넓혔다.

앞의 사례는 새발의 피다. 예스맨의 홈페이지(yesmen.org)에는 노동자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할 수 있는 '경영자 여가복', 기후 변화로 인한 어떤 재난에도 살아 남을 수 있는 구호장비 '서바이바볼', 석유 에너지 기업 엑슨의 노동자를 원료로 한 재생 에너지 '버볼리움', 6개월 후 이라크전 종전을 미리 알린 '뉴욕 타임스' 등등을 만든 기상천외한 행적이 낱낱이 밝혀져 있다.

정치적 행동이지만, 보기에 따라선 발명이거나 실험예술이다. 앤디 비크바움과 마이크 보나노는 각각 파슨스 디자인 스쿨과 렌슬레어 폴리텍 대학교에서 디자인과 미디어아트를 가르치고 있기도 하다.

책과 영화 <예스맨 프로젝트>와 함께 한국을 찾은 앤디 비크바움을 지난 24일에 만났다. 인터뷰 중 그가 가장 많이 쓴 단어는 '재미fun'였다. 그렇다, 이 우울한 세상에는 더 많은 유머감각과 더 '펀펀'한 예스맨이 필요하다.

한국은 처음인가. 인상이 어떤가.

-처음 왔는데, 미국보다 좀더 상업적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아마도 급속한 발전 때문이 아닐까.

강연도 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한국 청중이 가장 궁금해한 것이 뭔가.

-예스맨 활동이 미국에서는 법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냐는 점이었다. 기업이 고소하면 왜 문제가 안 되겠나. 하지만 그런 경우 언론에서 보도하기 때문에 기업에도 타격이 있고, 판단은 대중이 하게 된다.

초국적 기업, 국제 기구, 정부 등을 대변(?)하려면 대단한 용기가 필요할 것 같다.

-물론 일을 할 때마다 긴장하지만, 이런 식으로 긴장하는 것은 재미있다. 익스트림 스포츠를 하는 기분이랄까.(웃음) 정작 두려운 것은 시작도 하기 전에 발각되는 상황이다.

이런 활동을 시작하게 된 특별한 동기가 있나.

-뭔가에 분노해 있었던 것은 아니다.(웃음) 32살 때 게임회사에서 일했는데, 만들고 있던 게임 중간에 수영복 차림의 남자들이 나와 뽀뽀를 하는 장면이 나오도록 몰래 프로그래밍했다. 회사는 이 사실을 게임 출시 후에야 알았고 나를 해고했다. 그런데 전세계 언론이 이 일을 보도하게 되었다. 미 전역의 방송사는 물론, 핀란드의 일간지까지. 언론의 주목을 받는 것이 이렇게나 쉽다는 사실에 좀 놀랐고, 언론을 활용해 뭔가 중요한 일을 해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알티엠아크(RTMark.com)'란 이름의 웹사이트를 만들었다. 골탕먹이고 싶은 기업의 주가를 떨어뜨릴 수 있는 계획을 짜는 곳이었다. 시작은 우연에 가까웠다.

후회한 적은 없나.

-없다. 얼마나 재미있는데.(웃음)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고, 그들이 활동하는 것을 보는 게 그야말로 익스트림 스포츠라니까.(웃음) 아이디어가 멍청할수록 더 재미있고, 정치적 목적으로 하면 다섯 배는 더 재미있어진다.

전세계를 다니면서 다양한 사람들과 대화할 텐데, 받은 질문 중 자신을 가장 괴롭게 한 질문은 뭔가.

-질문보다는 이런 기업, 이런 문제가 있는데 당신이 해결해줘야 한다(You should do it)는 말을 들었을 때 괴롭다. 그건 당신 몫이라고 대답해 주고 싶다. 왜냐하면 우리가 할 수 있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니까. 우리가 특별한 재능이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에너지와 시간을 얼마나 들이느냐가 문제다. 그래서 이렇게 돌아다니며 자꾸 사람들에게 이야기한다. 웹사이트를 통해 비밀도 전수하고 있고. 심지어 연습 코너(challange.theyesmen.org)도 마련해 뒀다.

열정이 대단한 것 같은데, 지치지 않는 비결이 뭔가.

-활동도 너무 열심히 진지하게 하면 금방 피곤해진다. 그리고 눈에 보이는 성공, 빠른 변화를 바라면 금방 지친다. 세상은 잘 바뀌지 않는다. 성공하는 사례는 드물다. 하지만 우리의 일이 당장의 성과를 내지는 않더라도 밑거름이 되는 것 같다. 쌓이고 쌓여서 어느 역사적 순간에 성공을 가져오는 것 같다. 예를 들면 70년대 환경 단체가 미국 기업의 폐기물 투기에 대해 지적하고 또 지적한 결과 정부의 규제 법안 제정이 이루어지지 않았나. 기업의 나쁜 짓이 알려져 공공의 압력이 가해지면 룰이 바뀔 수 있다.

요즘 진행하는 일은 뭔가.

-'예스랩'이라는 일종의 워크숍이다. 다른 활동가, 시민단체들이 각자의 주제를 의뢰해오면 우리의 노하우를 전수해준다. 총 3개 프로젝트가 진행 중인데 내용은 절대 알려줄 수 없다.(웃음)

파슨스 디자인 스쿨에서는 뭘 가르치나.

-무엇을 만들 것인가, 보다는 어떻게 룰을 어길 것인가를 가르친다. 이를테면 정치적 디자인을 가르친다고 해야할까. 학생 중 한 명은 우리 같은 퍼포먼스를 수행한 적도 있다. 미군 모집책 행세를 하며 고등학교를 돌아 다녔다. 미국은 모병제이고, 군대가 가난한 젊은이들에게 기회를 준다고 선전한다. 하지만 이 학생은 매우 바보처럼 미군 모집책 역할을 해서 군대가 얼마나 끔찍한지를 알렸다.

예스맨 활동이 스스로를 바꿨나.

-그럼. 예전에는 삶의 의미를 몰랐다. 이 활동을 한 후에야 내가 하고 싶어한 일들인 글쓰기, 컴퓨터 등등이 다 연결되더라. 내 능력이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는 걸 알자 삶의 의미가 생겼다.



박우진 기자 panorama@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