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성한 숙명여대 전통문화예술대학원 주임교수스타 무용수 출신… 이론·실기 병행 새로운 전통 예술 인력 양성 앞장

얼마 전 인터넷 인기검색어에 별안간 '푸에테'가 떴다.

푸에테(Fouette)는 한 다리를 축으로 몸을 연속으로 회전시키는 고난도의 발레 동작. 발레마니아들 사이에서나 회자되는 이 용어가 검색어 순위에 오른 것은 한 미모의 발레리나가 TV 오락 프로그램에 출연해 동작으로 보여준 까닭이었다.

'어려운 춤'이었던 발레가 대중 속으로 들어오는 경로는 이처럼 다양해졌다. TV에서 다루어지는 발레의 새로운 매력에 대중의 관심은 순간이나마 급상승한다.

이에 비하면 우리 춤이 대중과 소통할 수 있는 통로는 여전히 제한되어 있다. 전통춤의 참맛을 제대로 느끼게 해주는 '친절한' 공연은 만나기 어렵고, 무엇보다 전통공연예술을 흥미롭게 재해석해 보여주는 학문적 시도도 부족하다.

결국 관객은 '해설도 없는' 전통춤 공연보다는 차라리 쉽고 흥미로운 아이리시 댄스나 아르헨티나 탱고를 선택하고 만다.

미담무용단
최근 몇 년 동안 공연계의 주목을 받고 있는 숙명여대 전통문화예술대학원의 부상도 이런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인간문화재 공연이나 국가 행사 등 전통춤이 실효성 없는 공연으로 전락하며 일반 관객과 점점 멀어지는 상황에서도 이런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무용계 내부의 연구와 노력은 미비했다.

무용학 대학원은 이미 타 대학에도 개설되어 있지만, 한국 전통춤만을 전문으로 하는 특성화 대학원은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1997년에 숙명여대에 등장한 국내 첫 번째 전통춤 전문 대학원은 전공자와 현장 예술가들에게도 반가운 소식이었다.

차근차근 전통춤의 이론과 실제의 기반을 닦던 전통문화예술대학원이 본격적인 제2의 도약을 시작한 것은 배성한 현 주임교수가 부임하던 5년 전부터였다. 배 교수는 국립무용단과 서울예술단 등에서 주역 무용수를 지낸 스타 무용수 출신 이론가.

부임하면서 전통무용 전공자들에게 부족한 이론 공부를 위해 관련 과목을 대폭 신설한 배 교수는 자신이 쌓아온 역량을 몽땅 쏟아붓기 시작했다. 현재 개설 중인 <무대공간 연출사>, <문화예술 페다고지 연구>, <무용연출> 등의 강의는 배 교수가 무용수 시절부터 박사 과정까지 체험한 정보와 지식들을 총망라한 것이라고 할 만하다.

보통의 무용가들이 은퇴를 앞두고 미학이나 무용치료 쪽으로 방향을 잡는 것과 달리, '무용가 배성한'의 관심은 여전히 무대에 있었다. 현재도 그렇지만 당시 무용극에서 안무는 무용가가, 연출은 연극계의 연출가가 맡는 것이 다반사였다. 그 결과 각자의 장르 특성을 고집하는 두 사람이 충돌하는 것은 불가피했다. 그래서 평소 '왜 무용계에서 연출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없을까'를 고민하던 배 교수는 무용과가 아닌 연극영화과 대학원 연출 전공으로 공부를 시작했다.

무용수 시절의 배성한 교수
"그 당시에도 안무는 할 수 있었지만 조명이나 무대 활용 같은 연출까지 해내기 위해서는 전문적인 연출 공부가 필요했어요. 그래서 연출 전공으로 학위를 따고 거기서 알게 된 무대 연출법을 춤 환경에 맞게 적용한 것이 지금 전통문화예술대학원에서 가르치고 있는 과목들이죠."

연극영화학을 통해 타 장르와의 교류에서 오는 장점을 체감한 그는 이어 박사 과정에서는 보다 범위를 넓혔다. 문화교차학과 문화예술학 전공으로 춤 연구에서의 통섭적 시각을 완전히 받아들인 것. 그 결과 배 교수는 그동안 주로 동양철학 과목에만 국한됐던 강의들 대신 새롭고 혁신적인 전통 담론을 현재의 전통문화예술대학원 커리큘럼에 담아냈다.

그렇게 만들어진 <전통무용 컴퓨터 연구>나 <무용영상 기록법 및 재현> 등 디지털 시대와 만난 전통을 생각하는 강의는 단순한 강의를 넘어 공연계가 함께 음미할 만한 주제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콘텐츠도 학교 안에만 머물러 있다면 '그들만의 예술'이 되고 만다. 또 학교 측 역시 미래지향적이고 진취적인 인력 양성을 대학원에 요구했다. 부임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주어진 과제에 배 교수는 그해 말에 ''이라는 해법을 내놓았다. 전통문화예술대학원 졸업생과 재학생들이 참여하는 은 그 이름처럼 '아름다운 이야기(美談)'를 춤으로 보여준다는 콘셉트를 가지고 있다.

정기공연이나 기획공연은 다른 무용대학원의 공연단에서도 하는 것이지만, 의 진가는 해외공연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지난해 전통춤 레퍼토리를 가지고 터키를 방문한 은 현지에서 기대 이상의 호응을 얻은 데 힘입어 올해는 7월 말부터 폴란드를 시작으로 루마니아와 러시아를 거치는 대규모 순회공연을 계획하고 있다. 얼마 전에는 중국 난징대(南京大)에서 갑자기 6월 공연을 요청해와 계획을 재검토할 정도로 대외적으로 주가를 높이고 있다.

이 같은 이론과 실기의 이상적인 병행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역시 현재 전통춤을 이끌고 있는 막강한 교수진이다. 현재 문화재청 문화재 전문위원이기도 한 배 교수를 비롯한 교수진 대부분이 중요무형문화재 제27호 승무 이수자다.

이는 대학원 설립 당시 전통무용 전공 개설에 힘썼던 정재만 교수(중요무형문화재 제27호 승무 보유자)의 영향과도 무관하지 않다. 또 다른 전통춤의 전수조교들도 포진해있다. 따라서 전통문화예술대학원은 승무를 비롯해 이른바 춤의 사군자로 불리는 살풀이와 태평무 등을 어느 곳보다도 효과적으로 가르치고 있다.

그래서 배성한 교수는 "전통문화예술대학원 교수진의 실력만큼은 국내 최고"라고 자신한다. "이런 장점 때문에 타 학교 무용과 출신 학생이나 현직 무용수들, 교육자들도 지원을 많이 합니다. 덕분에 우리 대학원은 자연스럽게 무용가의 재교육의 장이 되고 있습니다." 대개 실기에만 치중하는 타 무용대학원과 달리 이론과 실기를 적절하게 병행하는 전통문화예술대학원의 교육방침은 그대로 시대가 요구하는 새로운 전통예술 인력을 양성하고 있다.

전통춤이 민속학의 그늘에서 빠져나온 지 약 20년. 전통춤의 전승과 대중적 보급은 여전히 난제에 부딪혀 있다. 하지만 교육과 공연을 통한 전통춤의 인식이, 작지만 큰 노력으로 서서히 변화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분명 그 노력의 한 축이 되는 전통문화예술대학원의 더 나은 운영을 위해, 배 교수의 연구실은 오늘도 밤 늦은 시간까지 불이 켜져 있다.



송준호 기자 trista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