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계 앙팡테리블] (58) 뮤지컬배우 김우형진지한 표정·중저음의 목소리… <미스 사이공>서 존재감 과시

<지킬 앤 하이드>의 지킬과 하이드, <올슉업>의 채드, <대장금>의 민정호, <쓰릴미>의 나와 그, <달콤한 나의 도시> 위치…. 이 화려한 경력의 소유자는 뮤지컬스타 류정한이나 조승우가 아니다.

얼마 전 4년만에 다시 막이 오른 <미스 사이공>에서 크리스의 친구인 존 역으로 또 한 번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는 김우형에 관한 설명이다.

데뷔 5년, 나이 서른. 데뷔작부터 지금까지 알토란 같은 대형작품들의 주역들만 잇따라 거머쥔 김우형에게 기대주나 유망주라는 표현은 사실 미안한 감마저 있다.

하지만 위 아래로 한 살 터울인 조승우와 홍광호가 각각 연기와 노래로 '불꽃 카리스마'를 발휘할 때, 김우형의 차가운 카리스마는 상대적으로 '불꽃'에 자주 가려졌다. 많은 사람들이 김우형을 말할 때 <지킬 앤 하이드>를 말하지만, 정작 <지킬 앤 하이드>를 말할 때 거론되는 이름에선 그가 자주 빠지는 이유다.

그러나 이는 김우형이 자신만의 매력과 배우로서의 역량을 탐색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오늘날의 그를 있게 해준 <지킬 앤 하이드>는 이제까지 총 네 번의 국내 버전 공연이 있었다. 초연 이후 지킬의 매력을 알린 것이 조승우와 류정한이었다면, 김우형은 지킬의 새로운 대안이었다.

특히 류정한, 조승우와 함께 지킬 역으로 맞대결을 펼친 2006년 공연에서 김우형은 뮤지컬 무대에 선 지 1년밖에 안 된 신인이었다. 서울예대 연극과 졸업 후 영화배우로서의 꿈을 갖고 있던 그가 <지킬 앤 하이드> 초연(2004)에서 지킬의 약혼녀 엠마 역을 맡았던 누나 김아선의 공연을 보러 갔다가 뮤지컬로 방향을 선회한 지 1년여 만에 이뤄낸 일이다.

처음에 조승우의 카리스마나 류정한의 노련함이 없다는 평가를 받았던 그는, 하지만 바로 그런 점 때문에 그들이 하지 못하는 배역까지 소화해낼 수 있었다. <올슉업>의 채드, <대장금>의 민정호, <쓰릴미>의 '나'와 '그' 역이 그런 것들이다. 185cm의 장신과 탄탄한 몸매는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그림이 됐다.

하지만 그가 어디 그냥 서 있기만 하는 배우던가. 광기 어린 하이드는 엘비스의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기도 하고, 때론 점잖고 온화한 민정호가 되며, 다른 무대에선 동성애를 나누는 죄수가 되기도 한다. 그가 가진 진지한 표정과 중저음의 목소리는 특정 작품에서 자신의 매력을 배가시키는 어떤 배우들과는 다른 행보를 가능하게 했다.

그런 점에서 최근 공연 중인 <미스 사이공>에서의 존 역은 그의 장점과 가장 잘 어울리는 캐릭터라고 할 만하다. 미군이 베트남에 남긴 상처인 전쟁 고아들을 돌보는 '미국의 양심'을 표현하는 존은 강직한 이미지의 그와 잘 어울린다.

김우형은 공연 전 제작발표회에서 "크리스에 대한 욕심이 없지는 않지만, 무대에서 가장 잘할 수 있는 역이 있다면 존이라고 생각했다"고 털어놓았다. 본인이 가장 잘 표현해낼 수 있는 배역을 잘 알고 있다는 말이다.

그는 항상 모든 인터뷰에서 "조승우의 연기와 홍광호의 노래, 그리고 류정한의 존재감을 닮고 싶다"고 말한다. 언뜻 자신이 그런 지점에 도달하지 못했다는 겸손 같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대단한 욕심이다. 그 세 명이 합쳐진 배우라니, 그런 배우가 과연 존재하기나 할까.

그럼에도 늘 그들의 재능을 탐내며 냉정하게 자신을 연마하고 있는 김우형. 늘 차분해보이는 그의 얼굴 뒤엔 의외로 욕심많은 하이드가 보인다.



송준호 기자 risa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