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택광 경희대 교수<인문좌파를…> 출간, 마르크스 등 10여 명의 사상가 사유 친절히 짚어줘

왜 40대 아저씨들은 소녀시대에 열광하나? <지붕 뚫고 하이킥>의 결말은 왜 그렇게 우울했나? 여기 잡담을 담론의 영역으로 끌어들이는 사람이 있다. 그가 쓴 글의 일부분을 읽어보자.

'명품에 대한 젊은 층의 집착이라는 '징후'가 있다고 치자. 이 징후를 '나쁜 것'이라고 도덕적으로 나무란다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어떤 대안도 제시할 수가 없다. 중요한 것은 이런 명품 집착이라는 문화가 어떤 구조의 문제, 마르크스주의적 관점에서 본다면 생산양식의 비밀을 감추고 있다는 사실이다.' (<인문좌파를 위한 이론 가이드> 35페이지)

저자는 원더걸스와 꿀벅지 열풍, 촛불집회와 천안함 사태가 한국의 정치경제 구조를 드러낸다고 말한다. 국내 대중문화평론을 한 단계 끌어올린 그는 경희대 이택광 교수(영미문화전공)다.

텔레비전에 관한 인문학적 성찰

이택광 교수의 포지셔닝은 독특해 보인다. 같은 문화비평도 문학, 영화비평의 경우 이론과 텍스트, 이론과 현실을 접목시키는 작업이 꾸준히 진행돼왔다. 하지만 한국의 대중문화, 특히 텔레비전 비평에서는 인문학 이론을 접목시키는 작업이 전무했다.

"모든 대중비평을 나처럼 쓰는 건 아니다. 나는 대중문화비평을 인문학적 출구, 한국 인문학의 고립을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이라고 생각했다. 인문학이란 원래 현실에 개입해야 하고, 어떤 실천적인 장 속에서 이론을 만들어야 한다. 외국의 인문학 이론을 가져와서 한국현실을 해석하는 것은 인문학의 본령이 아니다. 인문학은 새로운 문제를 던지는 것이다. 이론이란 보편적인 것이다. 특수한 상황에서 이론이 만들어졌지만, 그 이론을 다시 특수 상황 속에서 재확인 해야만 새로운 것이 나온다. 대중문화 비평이 나에게는 학문적 활동이다."

최근 한국사회의 바로미터를 보여주는 대중문화 현상은 무엇이라고 보나?

"당연히 천안함 사태다. 사실 모든 본질은 그 상태에서 나타난다. <지붕 뚫고 하이킥>이든 '소녀시대 열풍'이든 천안함이든 드러나는 외향 자체가 본질을 내재하고 있는 거다. 천안함 침몰이 우리 사회 던진 여파는 2008년 촛불시위와 똑같다고 본다. 단지 규모가 작을 뿐이다. 희생자 가족, 즉 개인이 국가에 뭔가를 요구하는 거다. 여기에는 복합적인 사회 구조가 포함되어 있다. '왜 내 자식만 군대에 가야하냐', '왜 우리 해군은 그렇게 부실한가?' 등등 국방문제, 분단문제, 심지어 천안함 사태로 주식 떨어질까 걱정하는 중간계급의 욕망도 드러난다. 이런 것이 복합적으로 작용해서 천안함 침몰 이후 사건의 내막이 명쾌하게 드러나지 않고 미적거리고 있지 않나. 우리사회 복합적인 문제가 드러나 있다. 천안함 사태에서."

대중문화로 한국의 정치 사회 구조를 분석한다. 이를테면 연예인들의 잇따른 자살 후에 몇 가지 글을 발표했는데.

"연예인이 자살할 때 흔히 개인 불행의 관점으로 바라보는데, 실제 연예인은 대타자의 욕망을 가장 체현하고 있는 주체다. 예민한 주체고, 약한 주체다. 이 사람들이 죽어간다는 건 잠수함에 토끼가 죽는 거나 마찬가지다. 대타자는 한국의 욕망체제를 말하는데 이들이 얼마나 강력한 폭력을 구사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고 최진실, 최진영 남매 자살 소식을 접하고 인터넷 언론이 쏟아냈던 '우울증 진단'보다 '무의식적인 순간에서 그럴 수 있지 않을까'란 생각을 했다.

"누적된 거라고 본다. 사람이 자살할 때는 왜 죽는지 자신조차도 모른다. 그건 죽음 충동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죽음 충동의 트라우마가 오는 것은 결정적 계기는 인터넷 댓글이었다고 본다. 인터넷 댓글 단 사람들이 나쁘다 결론을 내리는 게 아니라, 바로 그런 시선, 타자의 시선들이 자신으로부터 떠나는 걸 참을 수 없는 게 한국의 연예인들이란 것이다. 나는 연예인은 공인이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많은 사람들이 연예인에게 공인의식을 부여한다. 한국사회 특유의 강제가 있다. 정신병리학에서 말하는 일종의 도착증처럼 유명인들이 자기 소유물이라고 생각하는 환상이 있다. 일부 팬들이 '소녀시대나 원더걸스를 내가 키워 줬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물론 여기에 상업주의가 영합되어 조장하는 경우도 있다."

블로그나 칼럼을 읽어보면 최근 이슈 되는 매스미디어 콘텐츠는 거의 다 언급한다. 텔레비전, 영화, 인터넷 신문…. 언제 다 챙겨보나?

"인터넷에 이슈가 되면 그때 찾아본다."

큰 담론에 강한 평론가가 있는가 하면 디테일에 강한 평론가 있다. 대중문화 평론가 강명석 씨 경우는 후자다. 거의 모든 텔레비전 드라마를 다 챙겨 본다고 들었다. 이택광 교수는 전자다. 큰 그림을 그리는 것 같다.

"나는 문화현상을 종합하고 이론화하는 스타일이라서 그런 분들의 도움을 받는다. 예를 들어 강명석 씨가 현장 비평을 하면 콘텐츠를 찾아본다. 대중문화 형식은 기본적인 콘셉트가 있다. 드라마는 첫 방송 후 3회만 보면 거의 똑같은 패턴으로 간다. 다른 패턴이 감지되면 인터넷에 다 뜬다. 문화비평은 대중을 계몽하는 비평이 아니다. 대중이 알고 있는 것을 확인시켜주는 거다. 대중 스스로 말을 다 해두는 거고, 이 점에서 인터넷은 문화비평을 위한 최적의 장치다."

비평을 위한 가이드

최근 출간한 저서 <인문좌파를 위한 이론가이드>는 그가 발표한 일련의 비평, 그 '영업 비밀'이 담긴 노트다. 저자는 말한다. "근육을 사용해야 걷거나 달릴 수 있듯이, 이론이 있어야 모든 것을 집어 삼켜버리는 현실의 중력에 대항해 다른 것을 상상할 수 있다"(5페이지, 서문)고. 마르크스와 프로이트, 벤야민부터 랑시에르와 슬라보예 지젝까지 저자는 비평의 원천이 된 사상가들의 사유를 친절하게 짚어준다.

제목에 쓰인 '인문좌파'라는 표현은 저자가 만든 말인가?

"그렇다. 인문좌파는 정치적 좌파라고 규정할 수 없는 다른 주체다. 기존의 정치 지형도에서 합의한 우파와 좌파 어디에도 해당되지 않는, 우파와 좌파의 이념을 모두 회의하는 독특한 사유의 주체가 인문좌파다. 사회 보편적 기대, 사유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소수다."

10여명의 사상가를 중심으로 20세기 서구철학의 흐름을 소개했다. 사상가들을 선정하는 기준이 무엇이었나?

"이 책에 주로 소개된 사상가들은 라캉주의자들이다. 소개한 인물을 보면 저자인 내가 어떤 눈으로 사유하는지 보일 것이다. 지젝, 데리다, 네그리, 랑시에르, 바디우. 그러니까 라캉주의자의 눈으로 헤겔을 읽는 거다. 발리바르 비롯해 최근 국내 논의되는 사상가 중 스피노자주의자들의 소개는 상당부분 없앴다. 그 부분은 아마 속편에서 쓰게 될 거다."

1999년 이후 비평가로 활동하며 10년 동안 지식인으로 지냈는데, 10년 전과 지금의 인문학계 분위기가 달라졌다고 생각하나?

"2008년 촛불집회 이후 많이 달라졌다. 당시 촛불집회를 두고 한국사회 구조를 많이 분석했는데 그 분석이 이제 현실화됐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2008년 촛불집회 기간을 지나면서 10-20대의 미적 감각이라든가 인식의 패러다임이 바뀐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이른바 삶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고, 앎에 대한 욕구가 생긴 거다. 문화와 관련된 대학의 거의 모든 학과에 출강하는데, 촛불 집회 때문에 대학원에 진학했다는 사람들이 실제로 생겼다. 상당한 변화가 있는 셈이다. 우리가 사는 조건들이 더 이상 과거와 같은 방식으로 지속되지 않는 '티핑 포인트'에 와있다고 생각한다."

참고로 그가 좋아하는 비평가는 벤야민과 지젝이다. 이들은 아주 사소한 것에서 대중의 문화적 취향, 그 취향이 만들어진 사회구조를 살핀다. 이택광 교수가 하는 일련의 작업도 이 연장선에 있을 터다. 이 책의 후반부에 저자는 왜 자신이 소녀시대와 김연아와 하이킥을 논하는지에 대해 밝히고 있다.

'내가 소녀시대에 대해 논하는 까닭은 소녀시대 자체를 이해하거나 품평하기 위함이 아니다. 내가 던지는 개념들은 그 개념에 소녀시대를 끼워 맞추는 것이 아니라, 그 개념을 통해 소녀시대를 사유할 틈을 발견하기 위함이다. 소녀시대를 이해하는 방식은 이미 '합의된 가치체계'내에서 결정되어 있다. 이 가치체계는 곧 한국 사회를 구성하는 윤리다.이 합의적 윤리를 깨는 것이 바로 개념이다'(247페이지)

"기본적으로 제가 하는 건 이미 다 알고 있는 상황에서 새로운 문제를 던지는 것이기 때문에 해답은 글을 읽는 본인이 다 갖고 있는 거죠. 대중의 배움의 능력이죠. 예전의 비평가라면, 자기가 알고 있는 전문지식을 전파하는 거잖아요. 이제는 대중들 스스로 그런 비평가를 인정하지 않아요. 배움의 능력을 믿는 게 새로운 시대의 비평가라고 저는 생각해요."



이윤주 기자 miss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