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윤욱 한의사<아날로그 오디오 가이드> 출간… 음악은 당시의 매체로 듣는 게 원칙

'음악 감상에 있어서, 음악이 우선일까, 아니면 오디오가 우선일까?' 클래식 애호가들 사이에서 이 질문은 지금까지도 상당한 논쟁의 소지가 있다.

그 논쟁의 정도가 과거에는 다소 과격했다면, 이제는 누가 옳다, 그르다의 흑백논리에서 자유로워졌다는 정도의 차이일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자신의 경험치에서 비롯된 고정관념이 만연하다. 누가 해답을 가지고 있는지도 알 수 없다.

이럴 땐, 소위 '고수'에게 물어보는 것이 근사치에라도 닿을 수 있지 않을까. 최근 세 번째 오디오 관련서적을 펴낸 최윤욱 씨는 클래식 음악과 오디오 사이에서 비교적 균형 잡힌 시각을 가지고 있다. 대학시절, 선배 집에서 우연히 고급 오디오로 들은 클래식 음악에서 느낀 '황홀한 체험'을 통해 클래식 음악과 오디오를 동시에 사랑하게 된 탓이다.

현재 그의 본업은 한의사요, 취미는 아날로그 전문 평론가다. 1997년부터 『오디오와 레코드』를 시작으로, 『월간 오디오』 등 다수의 오디오 전문지에 오디오 평을 실어왔다. 자칭 '오디오 박애주의자'라고 말하는 그는 2008년 <아날로그의 즐거움>, 2009년 <굿모닝 오디오>, 그리고 올해 <아날로그 오디오 가이드>에 이르는 오디오 관련 서적을 펴냈다. 이들 저서는 진입 장벽이 높은 오디오 기기에 대한 일종의 대중화 작업인 셈이다.

지난 26일, 진료가 끝난 저녁 시간에 한의원을 찾았다. 한편에 80년 된 오디오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 부품이 닳으면 어디에서도 구할 수가 없어 구입한 후 한 번도 틀어보지 않았다는 진공관 오디오라고 한다. 그 오디오와는 본지에 실릴 사진촬영을 함께 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지금까지 그가 인연을 맺은 오디오는 천대 정도를 헤아린다. 오디오 전문지에서 리뷰를 하면서 일정기간 체험하고 반납하며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했던 적도 있고, 직접 구입해서 일일이 테스트를 거친 후에 되판 적도 많다. 그 안에서 생긴 에피소드는 수도 없다.

"한번은 테스트도 하지 말고 가져가라더군요. 싸게 주는 대신 굉장한 리스크가 있는 거죠. 사왔는데, 소리가 거의 안 나오더라고요. 모깃소리만하게 나오는데, 그래도 꾸준히 틀어줬더니 뻥 뚫리는 순간이 있더라고요. 횡재했다 생각했지만, 사실 이런 경우는 아주 드물죠."

15년 전, 2천 200만 원을 들여 구성한 크렐 FPB 300(파워앰프)과 틸CS6(스피커)는 지금껏 최 씨가 애용하고 있다. 한의원 개업 초기와 아파트 입주가 겹쳤음에도 빚을 내가며 구입했던 제품이다. 동시에 그에게 오디오는 소유가 아니라 소리를 조율해가는 과정에 의미가 있음을 알려준 기기이기도 하다.

"전 원래 부드럽고 강하지 않은 소리를 좋아합니다. 하지만 제가 가진 스피커는 다이내믹하고 강력한 소리를 내는 것으로 유명하거든요. 이 스피커를 제가 원하는 소리에 가깝게 만들어보고 싶었어요. 지금 생각하면 오만이었지만 70% 정도는 목표에 도달한 거 같아요. 집에 와서 들어본 사람들은 틸에서 이런 소리가 날지 몰랐다고 할 정도니까요."

그는 늘 오디오에 대해서 묻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당신의 귀를 믿어라." 귀는 정확하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자신에게 가장 좋은 소리는 자신이 가장 잘 안다는 것. 뇌가 다르고 수용기인 귀가 다르니, 자연히 소리에 대한 취향도 다를 수밖에 없다.

"오디오는 나에게 가장 좋아야 합니다. 오디오를 알아가다 보면 그것을 알아간다기보다 나를 알아가는 과정이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나이가 들수록 자신에 대해 알아가는 것처럼 내가 어떤 소리를 좋아하는지 알아가는 가게 되는 거죠."

하지만 좋은 소리에 학습이 되다 보면 듣는 귀도 예민해지기 마련이다. 음악을 전공한 이들이 오디오를 전혀 모름에도 불구하고 구성을 잘할 때가 있다. 브랜드 이미지나 주변의 의견이 아니라 순전히 귀로만 판단하기 때문이다.

"좋은 소리를 구별할 수 있는 경지가 분명히 있긴 합니다. 하지만 그 지점이 한 곳이 아닌 거죠. 무협지에서 당랑권과 취권의 고수가 다르듯이, 좋은 소리를 서로 알기는 하지만 취향은 별개지요. 오디오를 다룬다는 건, 뇌 속에 기억과 체험을 쌓아가는 것이지 기기를 쌓아가는 건 아니거든요."

최 씨는 15년 전, LP와 CD의 기로에 서서 LP를 선택했을 당시만 해도 '아날로그로의 회귀'가 일어날 줄은 예상치 못했다고 했다. LP 시대가 막을 내리고, CD 시대가 열린 10여 년 전만 해도, LP를 고수한 그를, 주변 사람들은 '시대에 뒤떨어진 구닥다리 마니아'라고 놀렸다. 하지만 그에게 황홀한 경험을 안겨주는 음악은 LP뿐이었기 때문에 후회는 없었다.

"음악은 당시의 매체로 듣는 게 원칙입니다. 전 60년대~80년대의 음악을 좋아했기 때문에 아날로그 오디오를 택했던 거구요. 요즘의 음악을 좋아한다면 요즘의 매체로 듣는 게 맞지요. 아날로그 음반을 복각한 CD로 들으면 LP로 듣는 맛이 나질 않죠. 그래서 종종 클래식 애호가 중에는 70년대 연주자의 복원한 음반을 듣고는 연주가 형편없다고 말하는 누를 범하기도 합니다."

지금은 아날로그 오디오와 관련한 네 번째 책을 준비 중이라는 그에게 아날로그 오디오의 매력을 물었다. "유한하다는 거죠. 들으면 들을수록 바늘도, 판도 닳잖아요. 음질도 나빠지고요. 사람이든 동물이든 죽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귀하지 않죠. 유한하기 때문에 이 순간이 아까운 거잖아요. 카피만 존재하는 세상에서, 그나마 원본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LP가 아닐까 싶습니다. 제한적이고 사라지고 있으니까요. 또 재밌는 것은 역시 부딪혀야 소리가 좋다는 겁니다. 직접 마찰을 해서 그런지, 소리에 실재감이 있습니다."

시간은 흘렀고, 이번엔 CD 시대가 종언을 고하고 있다. 아날로그와 컴퓨터 디지털 파일이 주류로 떠올랐다. 오디오의 트랜드도 아날로그와 컴퓨터를 기반으로 한 PC-Fi로 양분되어가고 있다. 미래의 시장에는 이 둘만 남지 않겠나 하는 것이 최윤욱 씨의 예측이다.



이인선 기자 kell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