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이신조30대 초반 슬럼프 극복… 5년간 7편 소설 묶어 <감각의 시절> 출간

'가지고 있는 작가는 이를테면 이렇게 밖에 쓸 수 없다고 말하는 작가들이다. 머리와 가슴과 손이 완강하게 결합되어 있는 이들이다. 그래서 그들이 쓴 모든 것들은 어떤 필연성의 산물이 된다.'

편혜영의 두 번째 소설집 <사육장 쪽으로>에 붙은 평론가 신형철의 해설이다. 작품집을 소개하는 첫 머리에서 그는 '이렇게 밖에 쓸 수 없기 때문에' 그녀를 신뢰할 수 있노라, 말했다.

유혈이 낭자한 작품은 작가의 머리와 가슴과 손이 완강하게 결합된 산물이기 때문에.

그러나 이 말은, 기실 우리 시대 거의 모든 순수 문학 작가에게 해당되는 말 일터다.

10년 단위로 시대를 나누며 참여문학과 여성적 말하기와 판타지로 세대별 작품들의 특징이 '발견'되고, '분석'되는 건 다만 동세대 작가들이 통과한 시간과 겪어낸 경험치의 어느 한 자락이 맞물려 있기 때문일 뿐, 작가 개인들은 출판시장이나 비평계 작업과 상관없이 자신들의 글쓰기를 이어간다.

작가 이신조 역시 '머리와 가슴과 손이 완강하게 결합되어' 있다. 그녀의 소설은 그녀가 글을 써온 지난 12년의 시간과 정확하게 맞물린다. 98년 현대문학으로 등단한 그녀는 이듬해 장편 <기대어 앉은 오후>로 문학동네작가상을 수상하며 주목받았다.

당시 이 작품들은 섬세한 감성, 연민과 관용, 정밀한 심리 묘사 등 90년대 여성주의 문학의 계보에 속하면서도 기존 여성 소설들의 경계를 넘어서고자하는 도전의식을 선보였다는 평을 받았다. 감각적인 문체와 영상적인 표현력은 이들 90년대 여성소설과 변별점인데 2000년대 식 판타지와 궤를 달리한다.

"90년대 여성주의 말하기와 2000년대식 발랄한 감수성, 그 사이에 있는 것 같다"는 신간의 감상평을 듣고 작가가 말했다.

"제가 의도한 건 아니에요."

그렇죠. 그러니까 작가죠. 라이터(writer)가 아니라.

타인의 독백은 대개 들리지 않는다

작가는 지금까지 두 권의 장편과 두 권의 소설집을 냈고, 얼마 전 세 번째 소설집 <감각의 시절>을 냈다. 이 5권의 책을 통해 작가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무엇인가. 새 소설집 앞에 실린 3편의 단편을 작가는 "가장 이신조다운 소설"이라고 했다.

첫 번째 수록된 단편 <음악을 듣거나 책을 읽거나 너를 기억하기 위해 필요한 고독>은 사랑과 기억이라는 두 가지 층위로 서술되는 이야기다. 사랑하는 연인과 헤어지는 단순한 플롯은 이 소설의 중심이 아니다. 이 소설의 변별점은 '너와 나는 다른 언어를 가진다'는 설정에서 시작된다.

'내게 그 사전의 용도는 사전적이지 않다. 네가 내게 준 첫 책은 사전이다. 익숙한 단어를 낯선 사전에서 찾아보고 새삼스러워 하듯, 너와의 시간이 팔락팔락 얇은 책장 사이로 펼쳐진다.' (15페이지)

커뮤니케이션학(學)에서는 두 사람이 대화할 때 기실 6명의 자아가 있다고 말한다. 내가 알고 있는 나, 상대방이 알고 있는 나, 상대방이 알고 있을 거라 내가 상상하는 나. 그리고 상대방도 이런 3개의 자아를 가지고 6명이 의사소통을 나눈다고 말이다. 그러니 온전한 소통이란 결코 이뤄질 수 없다.

그런가 하면, 작가의 자전적 경험이 담긴 소설 <엄마와 빅토리아>의 주제는 정반대의 벡터로 나아간다. 62세 부동산 중개업자인 엄마는 우연히 알게 된 남아공출신의 영어강사와 '콩글리시'로 대화를 나누며 친구가 된다.

'케이크를 먹고 가라는 모두의 강력한 제의를 박 여사는 목욕가방을 흔들며 단호히 거절했다. "유어 패밀리, 온리." 엉겁결에 나온 말이지만 딱 맞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134페이지)

너와 나 사이 완전한 합일을 이룰 수 없다는 것(단편 <음악을 듣거나…>)과, 말은 통하지 않아도 마음은 통할 수 있다는 희망(단편 <엄마와 빅토리아>) 사이의 양가적인 감정을 그녀의 소설은 드러내고 있다.

"모든 작가들이 언어에 대한 고민을 하지만, 특히 저에게는 경험이나 감정을 저만의 언어로 재구성, 재확립하는 것이 화두였던 것 같아요. 100% 합일이 불가능하지만, 소통에 대한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것, 비논리적인 것이 아니라 양가적인 감정이죠."

감각의 시절

'이신조다운' 나머지 두 편의 소설은 어떤가. 단편 <베로니크의 이중생활>은 한국에서 태어나 벨기에로 입양된 베로니크가 자신이 또 다른 이름인 최선경을 마주하게 되면서 겪은 일을 그린 소설이다.

<흩어지는 아이들의 도시>는 '출혈성 호흡기 면역 증후군'이란 괴질로 인해 종말을 맞이한 도시를 떠도는 16세 미혼모 미하의 이야기다. 피폐한 도시의 모습은 그녀 작품의 주된 배경이었고, 소외된 사람들은 이전 작품에도 자주 등장하는 주요 인물이었다.

초기작부터 지금까지, 그녀의 작품을 일관되게 관통하는 주제 중 하나는 말할 수 없는 자들에게 말할 수 있게 해주기, 말이 박탈된 이들에게 말을 돌려주기였다.

"세상에서 이해받지 못하고 어린 소녀, 헤매고 방황하는 소녀가 저한테 어떤 저의 무의식 자아 중에 하나인 것 같아요. 세상과 단절되고, 사랑받지 못하고, 이해받지 못하고 교감할 수 없는 채로 반쯤 헐벗고 배회하는 소녀 혹은 젊은 여성이 저의 내면에 있는 자아 중 하나인 것 같아요."

7편의 소설을 묶는 동안 5년의 시간이 지났다. 이 책은 2005년 <새로운 천사>이후 5년 만에 내는 소설집이다. 작가는 "30대 초반 <주간한국>에서 인터뷰(이신조의 작가와 차 한잔)를 쓰며 여러 선배 문인을 만났다. 일일이 말하지 않아도 30대 여성작가로 글쓰기의 어려움을 알고 있었고, 많은 위로를 얻었다"고 말했다. 이 책의 끝머리, 작가의 말은 이렇게 끝을 맺는다.

'잘 가라, 내 청춘'

"30대 초반 슬럼프란 말이 부족할 정도로 힘든 시기를 겪고 이제서야 내 청춘에게 웃으며 작별을 고할 수 있게 됐다" 작가의 말처럼, 소설은 예전보다 한결 단단하고도 넉넉해진 깨달음이 담겨 있다.

책의 제목인 감각의 시절은 작가의 고백같이 들린다.



이윤주 기자 miss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