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초대석] 강영숙 예지원 원장36년 예절교육의 산실… 국내외 한국 전통문화 알리기 앞장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 맞은편에는 36년의 역사를 간직한 '예지원(禮知院)'이 자리하고 있다. 한국 전통 예절의 교육장인 예지원은 1974년 개원한 이래 우리의 예절을 지키고 전하는 데 앞장서 왔다.

그 중심에는 예절 교육의 선봉자로 불리는 강영숙(79) 원장이 있다. 강 원장은 지금까지 현역에서 활동하며 뜨거운 열정으로 한국의 전통 예절을 알리는 데 여념이 없다.

"이것 좀 보세요. 이 사진을 보고 감사하는 마음도 들었지만 몹시 안타깝더군요."

강영숙 원장은 최근 스크랩해둔 한 일간지 기사를 내보였다. 그 기사의 사진에선 국립중앙박물관 최광식 관장이 두루마기 차림으로 외국인에게 우리의 문화재를 소개하고 있었다. 이에 대해 강영숙 원장의 날카로운 지적이 이어졌다.

바로 최 관장이 착용한 두루마기와 목도리 때문이었다. 실내에서 남성들의 두루마기는 예복이 되지만, 목도리를 하는 건 예의에 어긋나는 실수라는 것이다.

"목도리는 방한용이라 실내에서는 하지 않는 게 예의랍니다. 두루마기의 동정이 드러났다면 한국 고유의 멋이 더 잘 살았을 텐데 아쉽네요."

강 원장은 아침마다 신문을 읽으며 전통 예절이나 문화가 나온 부분에 눈을 크게 뜬다. 신문이나 잡지를 꼼꼼하게 스크랩하고, 예절 교육이나 강연을 할 때 자료로 쓰기도 한다. 전통 예절에 대한 이런 고집이 그를 36년의 외길 인생을 걷게 한 원동력이 됐다.

한국 전통 문화의 전도사

강 원장은 한국 전통예절 교육기관으로 예지원을 설립할 때 이미 '국제부'를 두고 외국에 우리의 전통문화를 알리는 데에도 신경을 썼다. 가장 큰 이유는 70년대 MBC 아나운서로 활동할 당시 자신이 방송에서 소개했던 글 때문이었다.

일본 사람들이 소위 '기생관광'이라는 이름으로 국내 여행길에 오른다는 내용을 접했다. 강 원장은 곧바로 관광공사에 건의를 했고, '문화관광'으로 탈바꿈하기 위한 기획서를 제출했다. 강 원장은 이런 기획의 일환으로 일본의 예도가로 유명한 '오가사하라류(小笠原流)'라는 단체를 알게 됐고, 이들에게 우리 고유의 문화를 알리기 위해 노력했다.

"당시 오가사라하류는 한국의 다도(茶道)문화를 보여달라고 요청했어요. 하지만 우리에게 다도문화가 있었는지조차 몰랐던 시절이었죠. 저 또한 역사공부를 통해 한국의 다도문화를 처음으로 접할 수 있었어요. 우리는 1,00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더군요. 500년이라는 일본의 다도문화를 훨씬 앞선 것이어서 그들에게 보여주고 설명하는 데 자부심이 들었던 기억이 나네요."

강 원장은 오가사하라류의 요청에 당황하기도 했지만 고(故) 안광석 선생에게 우리 고유의 다도문화를 전수받아 보여줬다. 국내에서 처음으로 우리의 다도문화를 찾아 보여준 사건으로 남아있다. 강 원장은 이에 그치지 않고 오가사라하류에 한국의 복식문화와 관혼상제 관례 및 음식 문화를 알렸다. 이후 '기생관광'이라는 말은 사라졌고, 그야말로 '문화관광'의 시대를 알리는 계기가 됐다. 그 이후부터 대학에 차예 학과가 생겨났고, 일본과 차 문화를 교류하는 등 보이지 않는 외교관 역할을 담당하였다.

강 원장은 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일본과 인연을 이어가며 한국의 예절 문화 전도사로 활동하고 있다. 그의 끊이지 않는 휴대폰 벨소리가 그 증거다. 수준급 일본어 실력도 한 몫하고 있다. 강 원장은 오랜 시간 동안 일본에 한국 문화를 알리며 교류행사로 눈코 뜰 새 없는 일정을 소화 중이다.

"외국인들의 한국 전통문화에 대한 관심이 날로 높아지고 있어요. 특히 복식과 관련된 패션쇼를 할 때면 우리의 아름다운 색채와 선에 외국인들의 박수가 끊이지 않아요. 그들에게 우리의 전통문화를 알리는 데 더욱 책임감을 느끼게 돼요."

우리의 근본을 알면 예절이 보인다

강 원장은 최근 TV를 보며 놀라는 일이 많아졌다. 언제부터인가 뉴스를 전하는 아나운서들이나 예능 프로그램의 MC인 개그맨들이 하는 말을 도통 알아들을 수 없게 됐다. 우리말의 장단음을 분명하게 발음해야 하는 상황조차 무시되고 있는 현실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기 때문이다.

얼마 전까지 뉴스에서는 천안함 사고로 목숨을 잃은 장병들을 위한 화장(火葬) 문제가 이슈가 됐다. 그러나 아나운서들은 하나 같이 장음(長音)으로 소리 내야 하는 발음을 '화장(化粧)'이라는 의미로 짧게 단음(單音)으로 발음하며 혼란을 줬다.

또한 예능 프로그램들에서는 매너와 에티켓이 없는 MC의 말투와 행동들이 자주 비쳐져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다시 한 번 교육의 문제가 대두되는 상황이라고 강 원장은 말한다.

"요즘 학생들은 학교에서 크게 소리 내서 책을 낭독하는 시간이 없다고 해요. 그러니 말의 고저장단이나, 장단음 등을 배울 시간이 없는 거죠. 그저 각자의 학문을 매진하는 데에만 급급할 따름이에요. 그래서 가정에서의 교육이 더 중요해졌다고 생각해요."

최근 강 원장은 강연에서나 교육을 실시할 때 가정에서의 예의범절에 대해 강조한다. 가정에서는 교과서나 시간표가 없으니 그만큼 어머니의 역할이 커졌다는 것이다. 특히 강 원장은 주부들에게 "남편에게 먼저 인사하라"고 조언한다. 아침에 일어나면 먼저 따뜻하게 "잘 잤어요?"라며 건네는 식이다.

강 원장은 "인사는 사람이 하는 가장 기본적인 일"이라고 강조한다. 아내가 먼저 남편에게 존중의 인사를 건넴으로써 자신도 남편으로부터 존중받는 관계를 만들자는 것이다. 이는 자녀들에게도 아름다운 부부 관계도 보여질 뿐만 아니라 저절로 예절교육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최근 젊은 세대들이 예의범절이 없다고들 하지만 이는 젊은 사람들의 탓만은 아니에요. 이를 일러주지 않은 어른들의 문제라고 봐요. 젊은 세대들의 문제를 지적하지 이전에 우리부터 반성하고 그들에게 덕을 쌓는 법을 가르쳐야 할 것입니다."

강 원장은 예절 교육을 할 때 '덕체지(德體知)'를 최우선으로 꼽는다. 덕을 쌓은 후에 학문을 닦는 게 순서라는 의미다. 하지만 지금은 '지덕체'로 그 순서가 바뀐 것 같아 안타깝다고 한다. 지난 5월 17일에는 예지원은 서울시와 함께 성년의 날 기념식과 전통성년례 재현 행사를 가졌다.

강 원장은 이날 60여 명의 성년자들을 위해 일일이 비녀도 꽂아주고, 갓도 씌어주며 우리의 전통 관례를 진행했다. 강 원장은 이 과정에서 학생들이 '우리의 근간은 무엇인가'를 느끼며 더욱 확고한 국민의식을 키울 수 있다고 장담한다. 이런 행사를 통해 어른이 되었다는 의식을 고취시켜줌으로써 바른 마음가짐도 심어줄 수 있다고 믿는다.

가정생활에서 배어나오는 예절문화

강 원장이 36년간 예지원을 지켜오면서 철저하게 지켜오는 철학이 있다. '하루를 미리 돌아보자', '욕심을 부리지 말자', '겸손하자' 등이다. 그는 이런 철학들이 생활 습관에서 나온다며 역시 가정에서의 교육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강조했다. 강 원장은 하루를 시작하기 전 '오늘 하루 무엇을 하는지', '내가 어떤 장소에 가서 누구를 만나는지' 등에 대해 계획을 세운다.

이에 걸맞은 옷차림과 자세를 미리 생각해 놓으면 편안하게 하루를 보낼 수 있다. 아나운서 시절부터 몸에 익힌 이러한 생활 습관은 강 원장을 현역에서도 활발하게 활동할 수 있게 했다. 강 원장은 이런 철학들을 남녀노소, 직업을 불문하고 사람들에게 전하기 위해 주력한다.

강 원장은 최근 급격하게 늘어난 다문화 가정에 관심을 갖고, 그들에게 한국의 전통 예절문화를 알리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

"다문화 가정뿐만 아니라 해외 근로자들이 우리나라에 왔을 때 우리의 언어와 풍습을 몰라 곤란을 겪는 모습을 자주 봤어요. 특히 한 다문화 가정의 외국인 주부가 한국의 제사상 차림을 가르쳐 달라며 생선 대신 멸치를 가져왔던 기억도 있죠. 한국의 풍습을 빨리 전해야겠구나 하는 다급한 마음이 들더군요."

강 원장은 다문화 가정에 한국의 설날이나 추석 등 명절문화와 함께 제사나 생일을 지내는 가정문화를 가르치고 있다. 또한 다문화 가정에게 생소한 어른을 공경하는 절 문화도 전하며 한국 전통 예절을 알리는 데 온 힘을 쏟고 있다.

더불어 학부모들을 통한 예절 교육에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각 학교에서 교장의 추천에 한해서 선정된 학부모들에게 9시간의 예절 교육을 전수하면, 그 학부모들이 자녀들의 학교로 돌아가 예지원에서 배운 예절을 가르치는 시스템을 구축해 놓았다. 강 원장의 이런 여러 활동이 제자만 30만 여명을 넘어서는 진기록을 남기고 있다.

그는 70년대 아나운서로 활동할 당시 영부인이었던 고(故) 육영수 여사의 지원으로 여성들을 위한 가정교육과 예절교육 등을 위한 계획을 세웠다. 이후 36년 동안 변함없이 예지원을 책임지며 한국 전통 예절 교육의 선구자가 됐다.

"매번 느끼지만 예지원과의 36년은 제 운명이었던 것 같아요. 여전히 건강하고 목소리에도 이상이 없으니 강의를 할 때도 생기가 나죠. 제가 가장 하고 싶은 말은 덕을 먼저 쌓으라는 겁니다. 덕에서 파생되는 것이 겸손과 노력이니까요. 그 마음이 가정에서 사회로, 사회에서 세계로 뻗어가는 기원이 될 겁니다."

강영숙 예지원 원장은...
1세대 여성 아나운서로, 1954년부터 KBS, MBC 아나운서로 활동하며 아나운서 실장과 해설위원을 역임했다. 1974년 예지원을 설립해 여성들을 대상으로 한국 전통 예절 문화를 전파했다. 서울시 문화상 심사위원장,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부의장, 서울시정 자문위원, 교통방송 시청자 위원장으로 활동했다. 현재 시조시인으로도 활동 중이며, 사단법인 예지원 원장으로 재직중이다.



강은영 기자 kiss@hk.co.kr